079화
그러나 함정치고는 뼈다귀 손의 자세는 지나치게 공손했다.
이한이 한 걸음 다가서자 뼈다귀 손은 벌벌벌 떨며 뒤로 굴러 누웠다.
마치 적의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라고 하려는 것처럼.
“...?”
이한이 혼란에 빠지려는 순간 모르툼 교수가 입을 열었다.
“콜록. 언데드 소환의 아름답고 웅장한 겉모습에 속기 쉽지만, 사실 언데드 소환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지.”
흔히 소환마법을 배우기 위해 무생물체를 설계하는 마법사들은 이런 고민에 빠지기 쉬웠다.
-꼭 무생물체를 소환해야 하나? 그냥 자아가 있는 놈을 소환하면 안 되나??
당장 마법검을 하나 소환하더라도 그 검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어떻게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지 다 미리 짜둬야 했다.
그 수준이 높아지면 거의 인공지능 수준의 자율성을 필요로 했으니, 소환마법을 공부하는 마법사들이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갔다.
왜 우리가 하나하나 다 짜야 할까?
그냥 처음부터 자아가 있는 놈을 소환하면 안 되나??
물론 당연히, 자아가 있는 놈을 소환하는 것의 단점이 명확하니 저런 식으로 설계하는 거였다.
자아가 있다는 건 소환사의 말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는 일반적으로 다른 몬스터들보다 ‘조금’ 더 말을 안 듣는 편이었다.
애초에 속성부터가 서로 정반대였다.
소환사들은 대부분 살아 있었고, 언데드들은 다 죽어 있었으니까.
친해지려고 해도 친해지기가 힘든 게 당연했다.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언데드들과 친해지기 위해 각종 방법을 사용했다.
무덤에서 지내기, 몸에 썩은 물질 바르기, 각종 뼈나 살점 주렁주렁 목걸이로 만들어서 걸고 다니기...
이런 것들은 흑마법사들이 변태라서 저러는 게 아니었다.
살아있는 자의 생명력을 가리고 언데드와 가까워지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
“......”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표정이 언데드처럼 창백하게 질렸지만 모르툼 교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콜록. 그러니 일단 뼈다귀 손과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해져보게. 뼈다귀 손과 친해진다면 언젠가 다른 언데드 몬스터들과도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
언데드 몬스터들과 친밀하게 어울리다 보면 영혼에 그 기운이 물들기 마련이었다.
뼈다귀 손 같은 최하급 언데드 몬스터들과 어울리며 지낸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들도 언젠가 다룰 수 있게 되리라.
“교수님.”
“?”
모르툼 교수의 말이 끝나기만을 조용히 기다리던 이한은 손을 들고 교수를 불렀다.
“혹시 겁이 좀 많은 언데드도 있습니까?”
“??”
언데드 몬스터들은 대부분 겁이 없는 편이었다.
살아 있지 않은 만큼 당연했다.
모르툼 교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코웃음치...
...려다가 이한 앞에서 벌벌 떠는 언데드 몬스터, 뼈다귀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모르툼 교수는 자신이 소환한 뼈다귀 손을 보고 어이없다는 시선을 던졌다.
학생들을 상대하랬더니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뼈다귀 손은 면목이 없다는 듯이 모르툼 교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빨리 다가가지 못하겠나?’
모르툼 교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뼈다귀 손은 벌벌 떨며 이한에게 다가가기 싫어했다.
모르툼 교수는 자신이 쓴 시약에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다.
철썩! 철썩!
다른 뼈다귀 손은 접근하는 가이난도의 뺨을 신나게 올려붙이고 있었다. 다들 아주 멀쩡했다.
‘뼈 소환수와 같이 다녀서 뼈다귀 손이 친밀함을 느꼈나? 아니... 그러면 겁먹을 이유가 없지.’
한 가지 결론만이 남았다.
모르툼 교수는 내심 경악했다.
설마...?
“콜록. 한 번 직접 소환해보게.”
“그래도 됩니까?”
“그래. 소환마법보다 흑마법이 나은 건 이런 실전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지. 소환마법은 가면 일년동안 공부만 시킬걸.”
“......”
모르툼 교수는 마법에 필요한 뼛조각 하나를 던져주고 바닥에 마법진을 새겼다.
이한은 지팡이를 들고 집중했다. 모르툼 교수가 저러는데 걱정이 안 될 리 없었다.
‘흑마법이 낫다는 걸 보여주려고 너무 커리큘럼을 당기시는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뼈다귀 손은 덤벼들어도 이한이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한은 주문을 외웠다.
“나타나라, 뼈다귀 손이여!”
뼛조각을 던지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마력을 삼킨 뼛조각이 음산한 연기와 함께 뼈다귀 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까 소환한, 모르툼 교수가 철통같은 통제력으로 통제하고 있는 뼈다귀 손들이 아니었다.
이한이 직접 소환한 새 뼈다귀 손이었다.
소환마법의 주문이 마치 짐승 목에 걸린 사슬처럼 언데드 몬스터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경험 없는 신참 마법사는 그 사슬을 잘 다루지 못하는 법.
모르툼 교수는 뼈다귀 손을 주시했다.
만약 뼈다귀 손이 사슬을 이겨내고 이한에게 덤벼든다면 먼저 역소환시킬 생각이었다.
데굴데굴데굴-
“......”
“......”
이한이 소환한 새 뼈다귀 손은 모르툼 교수가 소환했던 뼈다귀 손보다 더 격렬하게 복종을 표했다.
이한의 벨트에 걸려 있는 뼈 소환수가 질투하며 몸을 뒤흔들었다.
* * *
“자네는 마력이 너무 많네.”
진정한 모르툼 교수는 침착하게 설명해줬다.
생각해보니 저주 때부터 이미 징조가 있었던 셈이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겁을 먹고 저렇게 굴종할 정도로 심각하게 많을 줄은 몰랐지만...
이한은 불치병을 선고 받은 환자처럼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군요. 교수님. 어떻게 고칠 방법이 있을까요?”
“콜록. 그걸 왜 고치나? 축복 받은 재능인데?”
“??”
이한은 당황했다.
그야...
마법도 쓰기 힘들고 정령들도 도망가고 하니까요?
“콜록. 그런 재능이 있다면 언데드 몬스터들과 굳이 친해질 필요도 없네. 힘으로 억눌러버리면 그만이지. 얼마나 좋은 재능인가.”
흑마법사들이 무덤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언데드 몬스터들과 어떻게든 친해져야 하니까 그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면?
모르툼 교수가 보기에도 언데드 몬스터와 친해지는 것보다 언데드 몬스터를 굴복시키는 게 한층 더 수준 높은 통제방법이었다.
그게 힘들어서 그렇지.
“하지만 교수님. 언데드 몬스터들이야 소환시키고 굴복시키면 된다지만, 정령들은 그럴 수 없잖습니까.”
정령과 친해지기 전에는 부름 자체에 응하지 않을 텐데 겁주는 능력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이한의 질문에 모르툼 교수는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콜록. 좋은 방법이 있네.”
“그게 뭡니까?”
“정령 소환을 포기하면 되지.”
“......”
이한은 탁자에 감사했다.
탁자 밑에 손이 가있었기에, 주먹을 불끈 쥐어도 들키지 않았다.
그러나 모르툼 교수는 진지했다.
“콜록. 왜 그렇게 좋은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풀을 뜯으려고 그러나. 자네에게 가장 걸맞은 건 흑마법일세. 내 이런 말은 원래 잘 하지 않지만... 자네는 흑마법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아. 그렇군요.”
“?!”
이한의 덤덤한 반응에 이번에는 모르툼 교수가 당황했다.
진짜, 정말로, 잘 하지 않는 귀중한 칭찬의 말인데 학생이 너무 덤덤했던 것이다.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라 그런지 반응이 생각과 달랐다.
‘교수들의 칭찬에 속아 넘어갈 때는 지났지.’
원래 교수들은 필요할 때면 칭찬을 자주했다. 인기 없는 분야일 경우에는 특히 더 조심해야했다.
칭찬에 잘못 홀렸다가 인생 꼬이는 수가 있는 것이다.
이한은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교수님. 마력량 때문에 마법 시전이 힘듭니다.”
“그건 익숙해지면 괜찮을 걸세. 콜록. 내가 연습을 도와주지.”
‘젠장. 교수들은 진짜 도움이 안 되는군.’
학생들을 데리고 자기들 욕심만 챙기려고 한다니.
교수가 이래도 되...
...생각해보니 교수들은 원래 그랬었다.
“저런... 정말 감사합니다.”
표정관리를 끝낸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로를 흑마법으로 확실히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훗날 다른 마법에서 다 실패하고 흑마법만 남았을 때를 대비하긴 해야 했다.
그 때를 생각한다면 모르툼 교수에게 나쁘게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교수와 제자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흐뭇한 웃음을 상대에게 날렸다.
“이 자식. 널 부숴버리겠어!”
뺨이 부어오른 가이난도가 지팡이를 잡고 뼈다귀 손을 후려갈겼다.
라파드엘도 만만찮게 맞았는지 목검을 뽑아서 뼈다귀 손을 때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 이미르그였다.
덤벼드는 뼈다귀 손을 힘으로 붙잡아서 누른 다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이한이 어이없어하는 걸 느꼈는지 모르툼 교수가 입을 열었다.
“콜록. 흑마법사의 재능이 있다고 해서 꼭 언데드들과 빨리 친해지는 건 아니지. 저건 안 좋은 방법일세. 어린 흑마법사들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지.”
“하지만 저렇게 패다 보면 언데드 몬스터들이 소환사를 좀 존중해주지 않겠습니까?”
모르툼 교수는 미친놈 보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괜히 억울해졌다.
‘굴복이 좋은 방법이라면서...’
* * *
추가수업이 끝나자, 가이난도는 모르툼 교수에게 받은 연고를 뺨에 바르면서 투덜거렸다.
“고귀함도 모르는 언데드 몬스터들 같으니... 이한.”
“?”
“빨리 소환마법 들으러 가자. 언데드 몬스터들이 아니라면 좀 괜찮을 거야.”
“......”
과연 그럴까?
‘정령 빼고, 악마는 언데드 몬스터보다 더 사나울 테고, 몬스터들도 기본적으로 야성이 강할 텐데.’
이한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라파드엘은 퉁퉁 부운 얼굴로 외쳤다.
“사악한 흑마법사 자식. 두고 보자. 내가 널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랄.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같은 흑마법 수업을 듣는 친구로서 꼭 싸워야 하나?”
“개자식아! 아까 내 뺨을 때렸잖아!”
“그건 실수였다.”
다른 친구들이 언데드 몬스터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이한은 모르툼 교수의 지시에 따라 언데드 몬스터한테 어떤 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스스로 파괴하라는 어려운 명령까지 성공시키자 모르툼 교수는 박수를 칠 정도로 감탄했다.
하지만 실수도 있었다.
도중에 명령 실수로 인해 ‘사악한 흑마법사 자식’이라고 투덜거리는 라파드엘의 뺨을, 이한이 소환한 뼈다귀 손이 후려갈긴 것이다.
안타까운 실수였다.
“그랄. 왜 내 말을 믿지...”
“이한. 이미 가버렸어.”
“아쉽군.”
가이난도는 이한을 두려움 섞인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이래서 언데드들이 잘 따르나?!
“이미르그. 다음 수업 때 봐.”
“으, 응. 이한. 밖에서는 말고...”
이한은 살짝 상처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 * *
영제관(靈祭館).
밀레이 교수가 사용하는 공방이자 탑인 영제관은 흑암관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도서관 같군.’
정작 마법학교의 도서관은 도서관보다 폐업한 회사의 무질서한 창고를 연상시켰는데, 영제관은 도서관보다 더 도서관 같았다.
탑으로 향하는 길은 벽돌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근처에는 산책할 수 있게 연못과 산책로까지 있었다.
‘흑암관도 연못이 있긴 했지.’
독 거품이 올라오는 보라색 연못이긴 했지만...
가이난도는 영제관의 문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그리고는 이한을 보며 물었다.
“잠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있는 그대로.”
“언데드한테 뺨을 맞아서 늦었다고...?”
“...그냥 내가 말하도록 하지. 밀레이 교수님! 늦게 도착해서 죄송합니다. 다른 교수님께서 선약을 잡으셔서...”
“선약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죄송해할 필요 없습니다.”
밀레이 교수는 그렇게 대답하며 탑의 문을 열었다.
늦게 도착한 신입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1층으로 걸어 나간 밀레이 교수는 이한을 보고 눈썹을 올렸다.
마치 이한이 온 것에 놀라는 것 같았다.
‘...뭐지?’
이한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모르툼 교수가 다른 교수들한테 ‘얘는 내 제자가 될 거니까 다들 관심 끊으시오’같은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