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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0화 (80/687)

080화

다행히 밀레이 교수는 이한을 내보내지 않았다.

쉭!

허공에서 두 권의 두꺼운 책이 나타났다. 어찌나 두꺼운지 흉기로 써도 될 것 같았다.

잘 장정된 책의 표지에는 <소환마법의 이론적 기초와 사례>라고 적혀 있었다.

“둘 다 앉으세요.”

밀레이 교수는 칼을 겨누거나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엄정한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이난도도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교수님. 다른 친구들은 어디 있나요?”

“가르침을 받고 과제를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그렇... 과제요?”

가이난도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과제가 추가되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가이난도는 소심한 반항을 시도해보았다.

“교수님. 흑마법은 과제 안...”

밀레이 교수는 가이난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가이난도는 그대로 제압당했다.

‘혹시 시선에 석화(石化) 효과라도 있으신 건 아니겠지.’

하도 이상한 교수들이 많아서 괜한 의심이 들었다.

“둘 다 책을 펼치세요.”

둘은 얌전히 책을 펼쳤다. 빼곡히 적혀 있는 글자에 가이난도는 현기증이 올라왔는지 비틀거렸다.

“읽고, 필사하세요. 그리고 문제를 풀면 됩니다.”

이한은 책을 쳐다보았다.

<1장. 무생물체 소환에 관하여>

-소환마법의 가장 기초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생물체 소환은, 다른 분야의 소환에만 관심이 있는 소환술사라 하더라도 반드시 배우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위대한 소환술사 볼츠만은 후대를 위해 교육적이고 효율적인 마법진들을 구성해놓았고, 이후 이 마법진들을 기억하는 것은 소환마법에 있어서 기본이 되었다. 그러니 어린 소환술사여, 감사하고 정진하라. 볼츠만의 기초 마법진들을 외우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소환마법에 있어서 놀라운 성취를 보장하는 일일 터이니...

(1번 마법진)

(2번 마법진)

(3번 마법진)

(4번 마법진)

...

...

-어린 소환술사여. 재밌는 지식을 배웠으니 이제 그 지식을 더 재밌게 활용해 볼 시간이다.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에 대답해 보아라.

신참 소환술사 처르수는 추운 북부를 여행하던 도중 사고로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남게 되었다. 하필이면 누군가 처르수의 두꺼운 옷가지가 든 짐을 훔쳐갔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서 처르수가 입고 있던 옷도 산산조각나버렸다. 이 때 처르수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쓸 수 있는 소환마법진은 무엇인가?

‘소환마법진도 마법진이지만 범인을 먼저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군.’

문제가 좀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것 말고, 교과서는 훌륭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전공서적은 질릴 정도로 봐왔던 이한인 만큼 이 책이 얼마나 괜찮은 책인지 알 수 있었다.

모든 교과서가 다 친절하진 않았다.

어떤 책은 읽는 사람의 수준을 생각해서 친절하게 배려를 해줬다면, 어떤 책은 ‘나는 널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려는 게 목표야’라고 말하듯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보통 전공서적은 후자인 경우가 많았다.

...여기 교수들도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웠고...

그러나 밀레이 교수가 준 책은 훌륭했다.

천천히 집중해서 읽으면, 소환마법에 자주 쓰이는 기초적인 마법진 구성들을 쉽게 외우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한은 밀레이 교수를 높게 평가했다.

‘사실 좋은 사람이었군.’

학생들을 위해 수많은 마법책들 중에 가장 교육에 적합한 걸 고른 것이다.

다른 교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교육자의 마음가짐이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밀레이 교수는 이한이 보내는 감동 섞인 눈빛에 아주 살짝 당황했다.

‘??’

밀레이 교수가 처음부터 소환마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소환마법은 풍부한 지식과 준비가 없다면 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무생물체 소환도 충분히 시전자를 다치게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학생들이 경거망동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가득한 신입생들한테 바로 소환마법을 가르쳐주면 그 혈기와 오만함으로 사고를 낼 수 있었다.

공부만 시킨다.

어렵고 지루해서 학생들의 몸이 뒤틀리고 꼬일 때까지.

그게 밀레이 교수의 철학이었다.

도중에 참지 못하고 소환마법을 포기한다면 오히려 좋았다. 그런 학생은 소환마법을 배우지 않는 게 학생에게도 좋았다.

‘그런데...?’

밀레이 교수는 이한이 불평불만 하나 없이 묵묵히 책을 베끼고 문제를 푸는 모습에 놀랐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만큼, 가장 오만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조금만 지나면 하품을 하고 몸을 꼬고 밖을 힐끗거리다가 눈치를 보며 도망가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이한은 자세에 미동 하나 없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꿋꿋이 앉아서 깃펜만 사각거렸다.

“이한.”

“왜?”

“나 화장실 좀.”

“도망치려고?”

“뭐... 뭐?? 뭐? 아니야! 아, 아니야!”

가이난도는 격렬하게 부정했다. 별 생각 없이 물었던 이한은 덕분에 확신했다.

‘도망치려고 했군 이 자식.’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이한은 가이난도가 흑마법에서 소환마법으로 갈아타려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모르툼 교수님 보고 싶다...”

화장실을 갔다 온 가이난도가 미친놈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         *         *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뭐라도 시켜주겠지?’하던 가이난도의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다.

밀레이 교수는 끝날 때까지 공부만 시켰다.

이한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수업도 있어야지.’

하도 파란만장한 강의들을 들었더니 이런 질 좋은 이론적 공부가 달달하게 느껴졌다.

가이난도가 일어나면서 속삭였다.

“야. 이해가 되냐 이 내용이??”

“나름 알차지 않나? 재미도 있고.”

“...?????!!”

가이난도는 아까 이한이 라파드엘을 제압했을 때보다 더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진짜 미쳤나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까지 이 분량을 읽고 공부해오도록 하세요.”

밀레이 교수는 책을 치우고 두꺼운 종이 묶음을 내밀었다. 가이난도는 공손한 표정으로 받았다.

‘안 오겠군.’

‘안 오겠군.’

이한과 밀레이 교수는 동시에 가이난도의 미래를 예감했다.

딱 봐도 다음 주부터는 안 올 것 같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이한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기본적으로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인격자인 교수들과는 조금 더 친하게 지내야 했다.

나중에 이한이 징벌방에 끌려가게 될 때 도와줄 수도 있었으니까.

“내가 잘못 본 건 사과하겠습니다. 이한 학생.”

“예?”

“그러면 다음 주에 보도록 하지요.”

밀레이 교수는 아주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이한 입장에서는 수많은 상상이 가능한 말이었다.

‘뭐야??’

영제관의 문이 닫히자 이한은 당황스러웠다.

뭘 잘못 봤다는 거지??

‘혹시 모르툼 교수와 내 장래에 대해 이야기를 했나? 흑마법에만 전념하게 하겠다고 한 건 아니겠지? 설마 해골 교장과...’

결국 이한은 그날 밤 잠들 때까지 끙끙 앓았다.

*         *         *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데, 해골 교장은 날이 갈수록 눈빛에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기초 마법 인성 교육> 강의실에 들어온 해골 교장은 즐거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모두들 행복한 한 주가 되어가고 있니?

“......”

“......”

첫 번째 주였다면 예의상 대답했을 학생들이 몇 명 있었겠지만, 네 탑의 학생 모두 침묵했다.

해골 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골을 달그락거렸다. 그러자 학생들의 모가지가 강제로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이한 빼고.

“......”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골 교장은 어이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걸 또 따라하나...’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보면 사자가 양의 탈을 쓰고 양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해골 교장의 마력을 혼자 견뎠으면 당당하고 오만하게 가슴을 피고 있어야지 저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자. 너희 어린 새내기 마법사들의 인성을 위한 교육 시간이 돌아왔다. 내가 저번 주에 내준 과제는 기억하고 있겠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각 탑의 학생들은 내가 지정해주는 탑의 신입생 휴게실에 걸린 깃발을 다음 시간까지 챙겨갖고 와라.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다!

해골 교장의 과제.

그건 다른 탑에 있는 깃발을 갖고 오라는 과제였다.

아무리 양보해줘도 인성과는 상관이 없는 과제였지만, 해골 교장은 당당했다.

자, 검은 거북이 탑부터 확인해볼까? 불사조 탑 깃발을 손에 넣었느냐?

“예. 저희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조심스럽게 갖고 온 깃발을 꺼내려고 들었다.

불사조 탑 학생들과 교환한 깃발이었다.

그래 갖고 왔구나. 잘했다.

“......”

“......”

해골 교장은 노골적으로 관심 없는 표정을 지었다.

서로 교환한 걸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별 관심 없었던 것이다.

불사조 탑도 알아서 잘 챙겼겠지?

“예.”

그래. 이제...

해골 교장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음식이 드디어 나온 사람 같은 기쁨으로,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앞까지 둥둥 떠서 날아갔다.

내 명예로운 기사 가문 출신 학생들아! 너희도 당연히 푸른 용의 탑 깃발을 갖고 왔겠지?? 응??

“......”

“......”

호랑이탑 학생들의 얼굴이 굴욕과 수치심으로 달아올랐다.

어지간해서는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이한도 지금 상황은 조금 불편했다.

‘뒤통수가 매우 따끔거리는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원한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안 꺼내지?! 으응?! 왜?! 설마 못 갖고 온 건가?!

‘작작해라...’

이한은 제발 해골 교장이 지랄을 그만하길 빌었다. 물론 해골 교장은 멈추지 않았다.

신나게 떠들던 해골 교장은 충분히 즐겼는지 화제를 바꿨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 강의는 서로 싸우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 강의의 목적은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고, 화합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 뜻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군. 그런 의미에서 다음 과제는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내주도록 하겠다.

이한은 불안해졌다.

대체 뭘 더 하려고?

본관에서 서쪽으로 쭉 가면 호수가 있다. 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

“...그게 호수였어?”

주변 산책을 나갔다가 본 적 있는 학생들이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왜냐하면...

“바다인 줄 알았는데.”

“학교 안에 바다가 왜 있어?!”

“그, 그냥 이 학교라면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더럽게 큰 호수였던 것이다.

그 끝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깊숙하고 험준한 산맥이 있듯이 이 마법학교에는 호수도 있었다.

그 호수 위에 섬 하나가 있다. 거기에 내가 외출권을 숨겨 놨다.

“!”

“!!!”

학생들의 눈빛이 순간 굶주린 야수처럼 번뜩였다.

다들 협력해서 나한테 가지고 와라.

“알겠습니다!”

이제까지 나왔던 대답 중 가장 뜨거운 대답이 나왔다.

참. 불사조 탑 학생들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과 같이, 푸른 용 탑 학생들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과 같이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저번 과제처럼 말을 듣지 않는 건 자유지만...

해골 교장은 히죽 웃었다.

그랬다가는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서로 쳐다보고 찡그렸다.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하고 같이? 라고 생각하고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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