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6화 (86/687)

086화

“잘, 잘못 온 거 아니야? 학교 안이 아닌 것 같은데...”

요네르는 안타깝게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교 맞아. 징벌방이야.”

“...?!?”

직접 가본 신입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징벌방은 소문으로만 들려오는 존재였다.

-과목 3개에서 F를 맞으면 방학 내내 징벌방에 끌려간다더라.

-중간고사에서 뒤에서 10명까지는 징벌방에 끌려간다던데?

-이건 소문인데, 선배들 중에 실험을 실패해서 징벌방에 끌려간 사람이 있대.

-학교를 탈출하려다가 붙잡히면 징벌방에 끌려간다는데 거짓말이겠지??

대부분은 거짓말이라는 게 느껴졌지만, 원래 소문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 마련.

철컥!

“!”

걱정하며 개인실의 문고리를 붙잡은 이한이었지만, 괜한 걱정이라는 게 곧 드러났다.

놀랍게도 둘이 위치한 방의 문은 열려 있었던 것이다.

‘징벌방은 징벌방인데...’

이한은 이 징벌방이 지금 사용되지 않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온 복도에는 먼지와 거미줄만이 가득했고, 양옆에 자리 잡은 개인실들은 다 텅 비어 있고 열려 있었다.

“지금은 안 쓰이는 곳 같군.”

“별로 위로가 되진 않아.”

요네르는 겁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있는 징벌방보단, 사람이 없는 징벌방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차라리 사람이 있는 게 낫지...

“징벌방 길 찾는 게 상당히 어렵던데, 골치 아프게 됐군.”

“어떻게 알... 앗.”

요네르는 미안한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이 징벌방에 갔다 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처럼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었어.”

“교장 선생님이 협박한 건 아니지?”

“응. 앞으로 교장 선생님이 협박해서 뭘 말하게 된다면 앞에 ‘맹세컨대’를 붙일게.”

“그거 좋은 생각이다.”

확인을 끝낸 둘은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계단이 없었다.

“...???”

“????”

위치한 건 단단한 벽돌 벽뿐.

당황한 이한은 뒤를 돌아보았다. 반대쪽에는 다른 통로가 없었다. 이쪽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거...’

이한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직감했다. 마법학교에 온지 몇 주밖에 안 됐지만 이한은 이미 뼛속까지 적응이 끝난 것이다.

‘마법 통로군.’

저번 지하 창고로 탈주를 시도했을 때 경험한 것처럼, 마법으로 길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찾아내거나 강제로 뚫거나.

이한은 주머니에서 종이로 곱게 싼 숯가루를 꺼냈다. 요네르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건 뭐야?”

“혹시 탈출할 때 필요할까봐 랫포드와 같이 만들었지.”

흑연 가루를 뿌려서 물건에 묻은 지문을 찾아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이한의 준비된 자세에 요네르는 할 말을 잃었다.

요네르의 묘한 눈빛에, 이한은 요네르가 부러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르쳐줘야겠군.’

요네르라면 분명 이런 기술을 좋아하리라!

“...안 되는군.”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 지하 창고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떤 흔적도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이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요네르. 뒤로 물러서.”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힘으로.

이한은 저번에 기숙사 입구의 방어 마법들을 날려버린 것처럼, 이 통로를 가리고 있는 마법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강하게 칠 필요 없다. 적당히. 통로만 드러낼 정도로.’

그만둬라, 멍청한 놈!

“!”

복도에 정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듣기만 해도 난폭함이 느껴지는 사나운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내 이름은 자격 없는 자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내 그늘터에는 왜 온 것이냐? 빨리 대답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파르아키스 씨에게 소개를 받았습니다.”

파르아키스에게?

사나운 정령의 목소리가 당황한 듯 멈칫거렸다.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이 학교의 교수답게 제법 강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나와 계약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다. 파르아키스가 무슨 생각으로 너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교수가 아니라 학생인데요.”

요네르가 끼어들었다.

?

“신입생인데요...”

......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일었다. 이한은 벽과 천장을 타고 흐르는 마력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정령이 아마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마법사였군... 잠깐. 진짜 어린 마법사가 맞나? 변장한 게 아닌가?

“못 믿겠다면 확인해보셔도 됩니다만.”

사나운 정령은 고민하다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파르아키스가 보낸 게 이해가 가는군. 녀석은 어린 마법사한테 친절한 편이니까. 하지만 계약은 해주지 않겠다. 나는 잘 모르는 자와 계약하지 않는다.

“역시...”

요네르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한이 마력이 많아서 피하시는 거군요. 다른 정령들처럼.”

...무슨 소리냐? 아니다!

상대 정령은 요네르의 말에 당황스러워했다.

다른 오해도 아니고 마력이 많다고 겁을 먹고 피하다니.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오해였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계시잖아요. 파르아키스 씨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이한은 존재 자체가 정령들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하던데요.”

“요네르...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어...”

이상한 놈처럼 들리잖아!

“그래서 모습을 안 드러내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내가 고작 마력 때문에 겁먹어서 모습을 안 드러낼 정령으로 보이나?!

“그러면 무슨 이유 때문에 안 드러내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이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정령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무의미한 싸움을... 좋아하지 않아서, 피하려고 한 거지.

“......”

“......”

이한과 요네르는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알겠듯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럴 수 있죠.”

너희 어린 인간 마법사들! 내가 너희 목소리에 담긴 뜻도 못 읽을 줄 아느냐?!

*         *         *

페르쿤트라.

둘에게 알려주지 않은 정령의 이름이었다.

마법사에게 소환된 정령은 보통 마법사가 마련해 준 장소에서 계약한 일을 하거나, 마법사가 부를 때마다 나와서 계약한 일을 하곤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이었다.

마법사는 처음 계약한 내용 이상을 정령에게 시킬 수 없었고, 정령 또한 그런 건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뒤집어서 말하자면 정령은 처음에 계약한 것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지켜준다는 뜻이 됐다.

그렇다면 페르쿤트라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있는 징벌방이면 모를까, 사람도 없는 폐쇄된 징벌방인데?

정답은 제대로 된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를 불러냈다, 위대한 정령, 페르쿤트라. 내게 굴복해라. 내게 굴종해라. 나는 너의 진명을 아노니, 너는 무릎 꿇을지어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시궁쥐 냄새 나는 리치 놈아! 내가 아무리 강자를 존중한다 하더라도 너 같은 놈에게 무릎 꿇을 줄 아느냐!

고대 유적의 유물에서 이름을 알아낸 리치 교장은 그 이름으로 페르쿤트라를 불러냈다.

물론 페르쿤트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고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리치와 계약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둘은 일주일 낮과 일주일 밤을 꼬박 새우며 싸웠다.

어떻게 위협해도 페르쿤트라가 굴복하지 않자 결국 리치 교장은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렇게 계약이 싫다면 타협은 어떤가, 건방진 정령 페르쿤트라여? 한 가지 일만 해준다면 네게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겠다. 그 대가로 네게 주기적으로 공물을 바치겠다!

-...무슨 일을 말하는 거지?

-나는 어린 마법사들을 기르고 있다. 이 어린 마법사들을 교육시키는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에서 어린 마법사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아줬으면 한다!

-단지 그것만?

-단지 그것만!

페르쿤트라는 리치 교장의 말에 흔들렸다.

온갖 복잡하고 상세한 계약에 비해, 건물 하나를 감시하고 어린 마법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주는 것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정식 계약이 아닌 이상 저 리치 놈과 영혼을 가까이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만약 거절한다면...

-건방진 정령 놈아. 이게 내 마지막 제안이다. 거절하는 순간 네놈의 전신을 찢어발겨서 봉인시켜버리고, 네놈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들은 잊혀진 무덤 속에 가둬버리겠다. 영겁의 망각으로 들어가겠느냐, 아니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좋다. 받아들이겠다!

리치 교장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안 페르쿤트라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린 마법사들이 또 도망을 치면 얼마나 치겠나 싶었다.

기껏해야 밖이 그리워서 나가는 정도 아니겠는가.

...그런데 생각보다 어린 마법사들은 능력이 좋았고 탈주 시도도 잦았다.

페르쿤트라는 뒤늦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리치 놈이 탈주를 아예 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주에 성공한다면 그것도 재주 아니겠나. 재주껏 탈주해봐라.

미친놈이 어린 마법사가 잘못을 했으면 탈주 못하게 규칙으로 박아놔야지, 탈주 성공하면 바로 징벌방을 취소해버리니 머리 굵은 학생들이 계속해서 탈주를 시도했다.

덕분에 지하 감옥에서의 일은 페르쿤트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되고 힘들었다.

그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때는 이렇게 폐쇄된 징벌방에서 혼자 조용히 있을 때였다.

이것도 학생 놈들이 탈주를 시도하면 금세 깨질 평화지만...

그래도 학생 놈들이 없을 때는 이 폐쇄된 징벌방이 참으로 좋았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웬 새파란 어린 마법사 두 놈이 페르쿤트라가 쉬는 곳으로 찾아온 것이다.

‘파르아키스. 이 자식!’

어린 마법사들을 아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한테 이렇게 보낼 줄이야.

페르쿤트라는 꿈틀거리며 말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너희 어린 마법사들을 위한 배려다!

“아... 그렇군요...”

요네르는 가이난도처럼 대놓고 정령을 열받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페르쿤트라를 더 열받게 만들었다.

페르쿤트라 정도 되는 정령이면 풋내기 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담아 말하는지 읽어낼 수 있었다.

요네르는 속으로 페르쿤트라가 겁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오해였다.

물론 저 옆의 어린 마법사가 어마어마한 마력을 갖고 있긴 했지만 페르쿤트라가 그런 것에 겁먹고 도망갈 정령은 아닌 것이다.

이한은 슬슬 대화가 귀찮아졌기에 정중하게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정령 씨. 계약할 생각이 없다는 건 알겠으니 혹시 길이나 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기다려라!

“?”

너희 두 어린 마법사는 지금 속으로 내 강함을 의심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인지 아느냐?

“아니...”

이한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저희는 예의를 지켜서 말했잖습니까? 왜 그런 피해망상적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그런 감정을 읽어내지 못할 것 같으냐?!

이한과 요네르는 살짝 찔렸다. 하지만 이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까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이야 어떻게 됐든 간에 저희는 명예에 맞춰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응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페르쿤트라는 당연히 납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힘의 편린을 보여주겠다.

“저 벽을 열어주시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용히 하고 준비해라. 너! 마력을 모아라.

“저는 마법을 배운지 일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만.”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한 방법으로 보여주려는 거다. 네가 모은 마력으로 원소를 전환시켜라!

상대는 쉽게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한은 포기하고 마력을 끌어 모았다. 일단 나가는 방법을 찾으려면 저 정령을 설득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원소로 해야 합니까?”

가장 파괴적인 힘으로!

“......”

의심하지 말라고 했지!!

이한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정령이 또 화를 냈다. 이한은 뜨끔했다.

“타올라라!”

가장 파괴적인 원소라면 당연히 화염이었다. 이한은 강아지를 만지면서 얻은 깨달음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화염을 불러왔다.

그 순간 징벌방의 천장에서 거대한 벼락이 화염을 향해 내리꽂혔다.

꽝!!!

“!”

“!!”

이한과 요네르는 그 굉음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다음 드러난 모습에도 놀랐다.

이한이 불러낸 화염이 멀쩡했던 것이다.

“...어, 뭘 하신 겁니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