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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7화 (87/687)

087화

페르쿤트라가 하려고 했던 건 원소 변환이었다.

정령들 사이에서 자신의 강력한 힘을 보여줄 때 사용하는 일종의 묘기.

방법은 간단했다.

한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화염을 얼음으로.

얼음을 번개로.

번개를 어둠으로.

뛰어난 마법사라면 이미 존재하는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꿔버리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았다.

차라리 새로운 원소를 불러내는 게 쉬웠지, 기존에 있는 원소를 멋대로 바꿔버리는 건 난이도가 훌쩍 뛰었다.

더군다나 이건 마법사가 소환한 원소였다.

이게 가능하다는 건, 마법사가 날린 화염구를 멋대로 얼음의 창으로 바꾼 뒤 되돌려 보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즉 마법에 포함된 원소 개념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는, 강력한 힘의 증명 같은 것인데...

......

실패한 이상 증명이고 뭐고 없었다. 이한과 요네르는 방금 페르쿤트라가 뭘 한 건지 진지하게 속닥이고 있었다.

“번개를 보여주려고 하신 건가봐.”

“번개를...? 확실히 대단한 번개긴 했는데, 그게 화염 원소를 불러온 것과 무슨 상관이지?”

“번개의 힘을 좀 더 대비시켜서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 화염 위에 번개가 꽂히면 화염이 튀면서...”

“그런 건가? 별로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보았는가? 이 벼락이 바로 나의 힘이다.

페르쿤트라는 급히 말을 바꿨다.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어린 마법사들 상대로 실패를 인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령의 말에 이한과 요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번개를 보여주려고 한 거였군.”

“그런데 화염을 불러온 건 정말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아.”

“쉿. 정령의 감성은 조금 다를 수도 있잖아.”

페르쿤트라는 이를 갈았다.

어린 마법사들의 진심 어린 배려가 강력한 정령을 더욱 굴욕적으로 만들었다.

‘대체 왜...?’

페르쿤트라는 일렁거리는 화염을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저 앞에 있는 마법사보다 훨씬 노련한 마법사의 원소도 통제권을 뺏고 마음대로 변환시켰던 페르쿤트라였다.

그런데 저 어린 마법사의 화염 하나를 빼앗지 못하다니.

‘!’

페르쿤트라는 그제야 이한이 불러낸 화염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겉은 평범한 화염이었지만, 그 안에는 폭발할 듯한 마력이 응축되어 이글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저건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변할 수 있는 드래곤의 화염이나 마찬가지였다.

페르쿤트라는 오랜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린 마법사들은 실수와 사고가 잦은 편이었다.

간단한 화염 마법을 쓸 때도 화염의 열기를 마법사 본인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올리거나, 화염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방에 터뜨리거나 등등.

이런 실수나 사고에도 어린 마법사들이 비교적 안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마법에 담는 마력량이 적기 때문이었다.

마력량이 적으니 마법을 폭주시키더라도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어린 마법사는 달랐다.

만약 지금 저 어린 마법사가 실수로라도 통제를 잃어버리고 화염을 폭주시키기라도 한다면?

이 폐쇄된 징벌방은 그대로 녹아버리고 저 두 마법사도 즉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대체 왜 저렇게 무모한 짓을...’

속으로 욕하던 페르쿤트라는 곧 범인을 깨달았다.

...범인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력을 모으라고 재촉하고, 파괴적인 원소로 전환시키라고 또 한 번 재촉한 것이다.

당연히 어린 마법사는 정령이 하라는 대로 최대한 마력을 모아 파괴적인 화염을 만들어냈으리라.

거기에 페르쿤트라가 통제권을 뺏으려고까지 했다.

누군가 통제권을 뺏으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강하게 움켜잡는 게 마법사.

그 탓에 무의식적으로 마력량이 폭증한 게 분명했다.

‘실수했다...! 마력이 저 정도로 많다는 걸 감안했어야 했는데!’

이제 페르쿤트라의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든 저 어린 마법사를 당황시키지 않고 화염을 취소시키는 게 중요했다.

내... 내 벼락의 위엄은 잘 보았겠지.

“예. 정말 멋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좀 길을 열어주시면...”

이한의 말은 반 정도만 진심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빨리 나가고 싶어서 하는 아첨이었다.

페르쿤트라는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아직도 이한 앞에 화염 덩어리가 이글거리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욕을 한다->어린 마법사가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분노한다->분노가 화염에 영향을 끼친다->화염 대폭주!

기다려라! 길은 열어주겠다.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다.

“정말이십니까?”

이한은 의아해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령이 친절했던 것이다.

더 꼬장을 피울 줄 알았는데...

‘하긴 정령은 교수가 아니지.’

이한이 정령을 너무 나쁘게 생각한 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당황해하지 마라. 침착해라. 절대 겁먹지 말고. 알겠나? 이해했다면 알겠다고 해라.

“...??”

“???”

페르쿤트라는 화술에 재주가 없었다. 이한과 요네르는 대번에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왜 저러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 문제도 없다니까!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팡이를 흔들어 화염을 옆으로 옮겼다.

페르쿤트라는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랐다. 정말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지... 팡이를 흔들지 마라.

“??”

이한은 의아해했다. 지팡이에 깃든 나무 정령 때문인가 싶어 지팡이를 들어 쳐다보았다.

흔들지 마라ㄱ...! ...말라니까??

페르쿤트라는 고함을 지르려다가 참았다. 이한이 놀라면 더 위험했던 것이다.

“왜요?”

페르쿤트라는 정말로 답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저게 얼마나 위험한 화염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황한 어린 마법사들이 더 사고를 칠 수 있었다.

내가...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

“......”

이한과 요네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페르쿤트라는 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둘은 페르쿤트라를 괴팍하고 이상한 정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따질 여유가 없었다.

저 화염을 오래 둘수록 폭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저 화염을 취소하게 만들어야했다.

‘대체 어떻게?’

페르쿤트라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화염을 취소하라고 말하면...

이유를 묻는다->어린 마법사가 감정적으로 동요한다->동요가 화염에 영향을 끼친다->화염 대폭주!

생각이... 바뀌었다.

“???”

너와 계약해주겠다!

“......”

이한은 슬슬 앞에 있는 정령의 정신상태가 의심가기 시작했다.

‘조울증이 있나?’

물론 이한이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긴 했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정령과 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았다.

“혹시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페르쿤트라는 진짜 한 대 벼락을 갈겨주고 싶었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든 저 어린 마법사를 설득시켜야했다.

나는 네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예? 대체 뭘 보고...”

페르쿤트라의 서툰 칭찬이 이한의 경계심을 더 불러온 모양이었다.

심지어 붉은 머리 마법사도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수상해 보이는데...”

“그렇지? 대화한지 얼마나 됐다고.”

네 마력! 네가 가지고 있는 마력은 어떤 마법사도 따라오기 힘든 괴물 같은 것이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하지만 아까는 마력량 때문에 계약하지 않는다고 하셨잖습니까. 잘 모르는 사람하고는...”

그 때는 몰랐으니까 그렇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빨리! 빨리 계약을 해다오!

초조해진 페르쿤트라는 안달이 나서 외쳤다. 언제라도 화염이 폭주할지 모르는 것이다.

‘진짜 조울증이 있나...’

이한은 고민했다.

상대의 정신 상태가 조금 의심이 가긴 했지만, 솔직히 정령과 계약할 기회가 탐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파르아키스가 추천할 정도면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정령이 맞았다.

왜 처음에는 싫다고 툴툴대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게 기회일지도 몰랐다.

괴팍한 성격을 가진 정령이 유일하게 부드러워질 때가 바로 지금인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좋습니다! 계약을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영혼을 열고 날 받아들여라!

이한의 영혼을 향해, 페르쿤트라가 언령을 보냈다.

그 순간 이한은 페르쿤트라의 진명을 알 수 있었다.

번개의 정령, 페르쿤트라!

그것이 상대의 이름이었다.

‘아. 번개의 정령이었군. 그래서 정신이 불안정한건가?’

-계약한 이상 네놈의 의심은 내게도 느껴진다! 작작 해라!

‘아차.’

서로의 영혼이 표식과 함께 얽혀들었다.

-나는 너를 동반자로 인정하겠다. 너는 나를 불러낼 권한이 있다. 그러나 기억해둬라. 나는 네 종복이 아니며, 너는 내 주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잘 생각했다. 나를 소환할 때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내 일부만 소환하더라도 네 마력이...

말하던 페르쿤트라는 말을 멈췄다. 생각해보니 마력은 별 상관이 없었다.

-...나를 생각 없이 소환하다 보면 정작 필요할 때는 소환하지 못할 테니까.

정령과 계약했다고 해서 상대를 심심하면 불러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둘은 어디까지나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하물며 페르쿤트라 같이 강대한 정령은 더더욱 자존심이 강했다. 자주 불러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 어지간해서는 소환할 일 없을 겁니다.

이한도 정신이 불안정한 정령을 자주 만나고 싶진 않았다.

페르쿤트라는 이한의 말에 담긴 감정을 읽고 욕을 하려다가 말았다.

더 급한 게 있었던 것이다.

계약이 완료된 지금, 내 힘을 보여주겠다!

“뭘 하시려고요?”

바로 이거다!

페르쿤트라는 고함과 함께 이한의 팔에 깃들었다.

그리고는 전력을 다해 화염을 통제했다.

빨리 저 화염을 풀어버려라! 취소해버려!

“??”

페르쿤트라가 한 걱정이 허무하게, 이한은 어렵지 않게 마력을 흩어지게 만든 다음 화염을 풀어버렸다.

그제야 페르쿤트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너... 너! 네가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이 어리석은 어린 마법사 놈아!

씩씩대며 화를 내는 페르쿤트라는 두 어린 마법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요네르는 당황한 와중에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쪽에서 마력을 모으고 가장 파괴적인 원소로 전환하려고 하셨잖아요?”

......

‘말문이 막혔군.’

‘말문이 막혔네.’

이한과 요네르는 상대가 할 말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절대 그러지 마라! 정말 위험한 짓이니까!! 이 징벌방이 모조리 녹아버릴 수도 있었다!

페르쿤트라의 경고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진심에 이한은 방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가 경고했던 것처럼, 화염 마법은 이한에게 아직 이른 걸지도 몰랐다.

‘저승길 갔다 왔군.’

가르시아 교수가 괜히 경고한 게 아니었다. 통제되지 않은 화염 마법은 시전자 본인을 죽일 수도 있었다.

이한은 앞으로 마력을 절대 그렇게 무식하게 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이해가 갔나보군. 명심해둬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휘둘리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잠깐. 애초에 그렇게 모으라고 안 했으면 위험한 일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이한은 다시 지적했다.

페르쿤트라가 시키지만 않았으면 서로 안전했을 것 아닌가.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계약도 했으니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왜 그렇게 마력을 모아서 원소를 변환시키라고 한 겁니까?”

내가 길을 열어주겠다. 자! 봐라! 여기서 나가는 길이다. 어떻지?

벽이 열리고 새로운 계단이 생겨났지만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꽤 궁금했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페르쿤트라는 아무 말이나 주워서 던졌다.

너희 두 어린 마법사! 밖에는 이제 해가 떠오르고 있는데 수업은 안 들을 거냐!

“!”

“!!!”

이한과 요네르는 경악했다.

금요일 아침에는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강의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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