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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88화 (88/687)

088화

“왜 그걸 지금 말해주시는 겁니까!”

이제까지 정령이 어떤 시비와 난폭함을 보여줘도 공손하게 굴던 이한이 화를 내자, 페르쿤트라는 깜짝 놀랐다.

아... 아니. 물어보지 않았잖...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상대하시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도 모르시는 겁니까!”

수업 하나 정도는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닌...

페르쿤트라는 억울하다는 듯이 변명했다.

여기서 오래 지낸 만큼 페르쿤트라도 대충 마법사들이 어떻게 가르침을 받는지는 알고 있었다.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여서 교수들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는 한두번 빠진다고 별 차이 없었다. 마법은 꾸준한 노력과 번뜩이는 재능이 중요한 거지 수업 한 번 듣냐 두 번 듣냐가 중요한 게 아닌...

“과제를 내야 해. 미제출은 절대 안 돼.”

이한의 말에 요네르는 결의로 타오르는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머리칼이 앞뒤로 흔들렸다.

마법학교의 강의들은 대부분 양심이 없었지만 그 중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강의는 특별히 양심이 없는 편이었다.

-내가 젊은 시절에 제국에 제출했던 마법진 제작 설계서다. 이 설계서를 보고 총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지 계산해오도록.

두꺼운 마법진 제작 설계서를 보고서 여기에 얼마나 돈이 들어갔을지 다음 주까지 계산해오라는 미친 과제를 낸 미친 교수.

이한과 요네르는 이를 악물고 교수를 욕하며 밤을 샜다.

그렇게 과제를 끝낸 이상 절대로 그 과제를 제출 못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억울해서 몇 주일은 잠을 이루지 못할 테니까!

...지금 과제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냐??

페르쿤트라가 억울하다는 듯이 묻자 이한과 요네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원래 평소에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고, 고분고분하던 어린 마법사들이 노려보자 페르쿤트라는 찔끔했다.

그, 그래. 과제가 중요할 수도 있지. 미안하다.

“시간이나 말해주십시오.”

페르쿤트라한테 시간을 들은 이한은 초조한 듯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침에 시작하는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강의까지 고작 한 시간 반 정도만 남은 것이다.

“서두르자. 페르쿤트라 씨.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해주십시오.”

안... 안 된다.

두 어린 마법사들은 정말 살의를 담아 노려보았다.

페르쿤트라는 허겁지겁 변명했다.

나는 약속을 했단 말이다!

“뭔 약속이요?”

나를 소환한 마법사와 이 징벌방을 탈출하는 학생들을 막기로! 나는 나가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없다. 애초에 나갈 때 나를 여기에 잠시 봉인하고 나가라고 할 생각이었단 말이다.

이한은 허탈해졌다.

이 학교 지하 징벌방의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고 기괴한지는 이한도 알지 못했다.

페르쿤트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제시간에 빠져나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초조해진 탓에 이한은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아, 왜 이렇게 도움이 안 됩니까! 그럼 계약은 왜 한 겁니까!”

......

페르쿤트라는 자존심에 살짝 상처를 받았다.

드래곤이나 악마와의 싸움도, 리치 교장과의 혈전도 페르쿤트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린 계약자의 말은 페르쿤트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페르쿤트라는 자신도 모르게 주절주절 변명했다.

지금 징벌방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서 그렇지 나중에 밖에 나가서 날 소환하게 되면 내 능력을...

“알겠습니다. 그래서 봉인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한테 잠시 여기에 갇혀 있으라고 명령하면 된다.

이한은 페르쿤트라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명령으로 한동안 페르쿤트라는 이 잊혀진 징벌방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가자. 요네르.”

밖에 나가면 잊지 말고 나를 소환해내라! 내 능력은 고작 이것만이 아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잊지 마라! 잊지 말란 말이다! 듣고 있나? 잊지 말...

*         *         *

슥슥슥-

급한 상황이었지만 이한과 요네르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썼다.

계단과 계단을 오가고, 복도와 복도를 오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막혔어.”

“돌아간다. 여기 복도는 아예 다 막혔어.”

“두 층 내려가서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달그락!

뼈 소환수가 멀리서 달려왔다. 이한은 물었다.

“길이 있었나?”

달그락달그락!

뼈 소환수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길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한은 혀를 찼다.

이한과 요네르는 물론이고 뼈 소환수까지 동원해서 길을 찾고 있었지만, 역시 진행이 느렸다.

이 징벌방은 개미굴 같은 곳이었다.

복도에 나있는 계단들 중 어느 계단이 위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계단은 막다른 폐쇄 징벌방에 연결되어 있었고, 어떤 계단은 아래로 빙 돌아가는 길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어떤 계단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다.

이한은 어쩐지 걸으면서 해골 교장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지만 왠지 해골 교장이 직접 만든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다시 저쪽 복도로... 아니. 잠깐. 너 뭘 갖고 온 거지?”

이한은 당황했다.

급해서 눈치 못 챘는데, 앞손만 있었던 뼈 소환수의 덩치가 확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뭘 물고 온...?!

촤라락!

뼈 소환수는 자기끼리 부딪히고 뒹굴더니 결국 맞게 조립되었다.

넓적한 갈비뼈와, 긴 꼬리뼈. 그리고 뒷다리의 뼈들까지.

머리뼈와 발 하나가 없었지만 이한은 익숙한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그건 표범이었다.

‘표범의 뼈였나??’

이제까지 당연히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아무리 흑마법 교수가 인기가 없어도 신입생한테 사람의 손뼈를 주진 않았을 것 같았다.

‘사람의 손뼈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럽군.’

뼈 소환수, 아니, 표범 뼈 소환수는 자신감 있게 발을 탕탕 두드렸다.

덩치가 커진 만큼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머리뼈와 팔 하나가 없는 상황에서 그런 자신감은 좀 기괴하게 보였다.

“모르툼 교수님이 뼈를 징벌방 구석에 숨겨놓으신 거야?”

“응.”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다.

요네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눈빛의 뜻은 간단했다.

-계속 그 교수님 밑에서 흑마법 배워야 하는데 괜찮은 거 맞아?

“...괜찮을 거야. 아마.”

이한은 표범 뼈 소환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덩치가 커졌으니 속도도 좀 빨라졌으리라.

“이쪽으로 가서 길을 전부 확인해. 알겠나?”

“그쪽은 헛수고다.”

“!!”

이한과 요네르는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이쪽이다. 이쪽.”

문 안쪽에서 탕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복도 옆의 독실 안에 학생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던데, 길도 모르면서 징벌방에는 왜 들어온 거지?”

“긴 사연이 있습니다. 그쪽은 왜 징벌방에 계신 겁니까?”

“이쪽도 긴 사연이 있지. 몇 학년이지?”

“이번에 새로 들어왔습니다.”

“......”

방 안에서는 갑자기 침묵이 돌아왔다. 이한은 의아해했다.

뭐지?

“너 혹시 저번에 징벌방에 끌려온 신입생 아닌가? 지하 통로로 탈출했다가 붙잡힌?”

“그럼 선배는 혹시 교장의 비밀 창고를 털다가 붙잡힌 그...? 이번엔 또 뭘 했길래?”

이한은 놀라워했다.

그 때 그 징벌방 동기가 여기 있다니.

“목소리 낮추지 못해?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부끄러울 게 뭐가 있다고? 나도 교수의 창고를 털다가 여기로 오게 됐는데.”

“......”

독실 안의 학생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교수 창고를 털다가 여기까지 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상상을 초월하긴 했다.

고작 신입생이 저번에는 지하 통로를 통해 탈출하고 이번에는 교수 창고를 털다가 징벌방까지 흘러오다니...

다음에는 학교를 날아서 탈출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요네르가 이한에게 속삭였다.

“누구셔?”

“저번에 옆방에 들어가신 선배신데, 편하게 대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지.”

“편하게 대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됐다. 무슨 말을 하겠냐. 어쨌든 복도에서 뭐하는 거냐?”

“탈출할 길을 찾고 있었지.”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래. 길을 찾았고?”

이한은 대답하지 못했다. 독실 안의 학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쉽지 않을 걸. 여기서 올라가는 길은 보통 복잡한 게 아니거든.”

“선배. 혹시 풀어줄 테니까 같이 나갈 생각은 없나?”

이한의 제안에 독실 안의 학생은 웃음을 터뜨렸다.

“멍청하긴! 안에서 탈출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이 문을 열면 뭐가 나오는지 알기나 해?”

“번개의 정령?”

“...너 뭐야. 어떻게 알았어??”

독실 안의 학생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래에서 올라오다 만났는데.”

“......”

독실 안의 학생은 아찔해져서 비틀거렸다. 대체 어떻게 따돌린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너.... 대체... 아니. 됐다. 어쨌든 미안한데, 난 탈출할 생각이 없어.”

“어째서지?”

“여섯 시간 후면 석방이니까.”

“......”

이한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면 혹시 나가는 길에 대해 조언이라도 해줄 수 없나?”

이한이 던진 질문에 저번과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독실 안의 학생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걸 왜 가르쳐줘야 하지?”

“...망했군.”

“??”

“저번에는 먹을 걸로 꼬드겼는데, 이번에는 먹을 게 없어.”

이한은 요네르를 보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꼬드기다니! 사람을 뭘로 보고!”

독실 안의 학생이 대화를 듣고 발끈했다.

나름 후배를 위한 선배의 가르침이었는데, 저렇게 말하니 그냥 허기져서 넘어간 것 같지 않은가.

달그닥달그닥!

대화하는 사이, 표범 뼈 소환수가 이한을 툭툭 건드렸다. 빨리 다음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이었다.

“기다ㄹ...”

“잠깐.”

독실 안의 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거 혹시 뼈 소환수야?”

“그런데.”

“...혹시 모르툼 교수님 밑에서 흑마법을 배우나?”

“그런데...?”

“......”

어색하고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잠시 후 문 밑에서 종이 한 장이 밀려나왔다.

즉석에서 그린, 여기서 출구로 나갈 수 있는 간단한 지도였다.

“...받아. 힘내라.”

“......”

지도를 얻었지만 이한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미래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         *         *

‘늦었다!’

이한은 이를 악물었다.

저 멀리 복도에서 교수가 강의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달렸는데도 늦다니.

출석을 확인하는 교수는 아니었지만, 그 깐깐한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가서 ‘늦었습니다 교수님 하지만 과제는 해왔습니다’이러면 ‘시간관념도 지키지 못하는 학생이 과제는 어떻게 제출하겠나?’같은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요네르는 절망에 찬 표정으로 거센 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 것이다.

“이한... 아니. 아니. 아니.”

이한을 부르려던 요네르는 다급히 이한의 팔을 잡았다.

이한이 지팡이를 꺼내들고 교수의 등을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안 돼!”

“뭐가?”

“교수님을 공격하는 건 위험해!”

“공격하려는 게 아니야. 저걸 노리는 거지.”

이한은 손가락으로 교수의 옆에 둥둥 떠다니는 과제더미를 가리켰다.

이번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서 거둔 과제더미였다.

“저기에 끼워넣을 거야.”

“...그, 그게 가능해?”

“응.”

이한은 단호하게 말하고 지팡이를 들었다.

이제까지 볼라디 교수에게 당했던 수많은 고난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고난은 마법사를 성장시킨다.

지금 이 순간, 이한은 마법학교의 가르침을 완전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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