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3화 (93/687)

093화

“착각하신 것 같...”

“번개 마법을 쓴 게 맞군.”

‘젠장.’

볼라디 교수가 흔적을 보고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교수는 쓰러진 몬스터의 흔적과 이한의 팔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번개 정령의 잔향(殘響)으로 상황 파악을 마쳤다.

“흥미롭군...”

볼라디 교수가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모습은 어지간한 몬스터보다도 이한을 두렵게 만들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가르시아 교수가 끼어들었다.

이한은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교수님!

“배그렉 교수님. 번개 마법은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뭘 하시려고요?”

“가르침에 필요합니다.”

“가르침이라니, 무슨... 잠깐. 이한 학생 ㅈ... 아니, 배그렉 교수 수업 들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저 교수’라고 말하려다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한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

“......”

가르시아 교수는 이마를 짚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마법학교의 어느 사람이든 존중해주는 참된 인격자였지만, 강의까지 그렇진 않았다.

몇몇 교수의 몇몇 강의는 볼 때마다 가르시아 교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볼라디 배그렉 교수의 강의가 바로 그런 강의 중 하나였다.

가르시아 교수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혹독하고 가혹한 강의!

아무리 생각해도 신입생이 배울 만한 강의가 아니었다.

차라리 싸움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면 모를까, 극한의 전투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싸우는 마법전투법을 신입생한테 가르친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학생들이 그 강의를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워낙 어려운 만큼 매 해 학생들이 한 번 들으러 오면 다 도망을 치곤 했다.

그래서 가르시아 교수도 ‘언젠가 배그렉 교수도 깨닫고 강의를 바꾸겠지?’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듣고 있는 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볼라디 교수가 왜 그러느냐는 듯이 말했다.

“저번에 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뭘요?”

“반마법주의자들과의 싸움 말입니다. 그 때 제가 가르쳤다고 말했었습니다.”

“...!”

가르시아 교수는 머릿속에 번갯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한이 사용했던 쇠구슬들.

그 때는 제국 반마법주의자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 쇠구슬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볼라디 교수의 방식이었다!

-마법전투에 재능이 있어. 볼라디 교수, 자네가 가르친 건가? 놀랍군.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후 교장과 볼라디 교수가 나눴던 대화도 매우 의미심장했다.

그냥 우연찮게 몇 마디 가르침을 받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예 강의에서 집중적으로 전수를 받고 있었다니!

“괜찮아요????”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질문에 멈칫했다.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괜찮아요’였던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괜찮습니다.”

“......”

볼라디 교수가 대신 대답해줬다. 이한과 가르시아 교수 모두 황당한 눈빛으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워다나즈는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따라오고 있습니다.”

“...따라가고 있다고요?”

가르시아 교수는 처음에는 경악했고 다음에는 이해했다.

가끔 뛰어난 재능이 독이 될 때가 있었다.

그건 지금 같은 상황에도 통하는 말이었다.

이한이 가진 뛰어난 재능이, 오히려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비극이...!’

볼라디 교수는 자기 딴에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이제 왜 번개 마법의 발현을 확인했는지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따라오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 진정한 선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급 염동력 주문의 통제력이 꽤 올랐다고 해서 바로 번개 원소 마법으로 넘어가는 건 너무 급한 거 아닐까요? 적어도 다른 안전한 원소 마법을 먼저 익히고...”

말하던 가르시아 교수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멈칫했다.

볼라디 교수가 아주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그래서 먼저 물 원소 마법을 익히게 했습니다.”

“...벌써요?”

“그렇습니다.”

볼라디 교수의 ‘그렇습니다’에는 아주 희미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같은 교수로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따라오는 학생이 있는 걸 보니, 내가 잘못 가르친 게 아니군.

...의 확신이었다.

‘안 돼!!’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필이면 왜!

볼라디 교수의 왜곡된 세계는 나중에 바꾼다 치더라도, 일단 눈앞의 뛰어난 제자부터 지켜줘야 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사실, 꽤 많은 학생들이 물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까지는 쉽게 하지 않나요?”

‘그런 거였나?’

가르시아 교수의 속마음을 모르는 이한은 놀라워했다.

어쩐지...

“아무래도 물이라는 원소의 특성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단순히 형태 부여를 성공했다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다른 형태로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면서 좀 더 원소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물 방패 마법도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

가르시아 교수는 경악한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왠지 미안해졌다.

단순히 물 방패 마법을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았다면 원소 형태 부여를 거의 통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원리와 이치를 고민해서 깨달았다면 다른 형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 정도로 스스로 깨닫는 것은 중요했다.

“하, 하지만... 형태 부여를 마스터했다고 하더라도 원소 통제력의 길은 아득한 법이지요... 최소한 형태가 부여된 물 원소 마법을 쇠구슬을 조종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종할 수 있어야...”

말하던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이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지금 말씀하신 것도 익히게 했습니다. 회전 속성까지 부여하려고 하기에, 제가 말렸습니다.”

가르시아 교수는 살면서 볼라디 교수가 ‘내가 이렇게 학생을 생각합니다’같은 부류의 말을 할 거라고는 악몽에서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건 어떤 악몽보다도 더 끔찍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건 이제 가르시아 교수에게는 더 이상 설득할 방법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침울해진 목소리로 슬프게 말했다.

“...이한 학생을 잘 부탁드려요...”

“저는 언제나 한결같이 가르칠 뿐입니다. 가르시아 교수님.”

두 교수의 대화가 끝나자, 이한도 정신이 돌아왔다.

“...?!!”

이대로 끝이라고?

더 안 말려주시나??

“교수님...!”

“이한 학생. 열심히 해요.”

이한은 갑자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았다.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하다!

‘...앞으로는 교수한테 도움 요청할 때, 주변에 다른 교수가 있는지도 확인하라고 말해줘야겠군...’

*         *         *

아산은 친구들과 같이 암시장을 향해 걸어갔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가 좀 대접해보자고.”

‘꼭 그래야 하나?’

가이난도는 불평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미 한 번 불평했다가 연달아서 구박을 받았던 것이다.

지금 마법학교 신입생들의 식량사정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밖에서 대량의 물자를 확보해서 들어온 이한 덕분에 가장 고급스럽고 풍요롭게 식사할 수 있는 푸른 용의 탑.

애초에 어떤 식사가 나오던 간에 불평할 생각 없이 조용히 받아들이는 불사조의 탑.

호전적으로 무기를 꼬나쥐고 근처의 숲과 들과 산을 돌아다니며 점점 사냥을 성공시켜가고 있는 흰 호랑이의 탑.

그리고 주기적인 채집과 가끔 일어나는 사냥, 다른 학생들과의 물물교환으로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고 있는 검은 거북이의 탑.

이 중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자기들이 이한의 도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한이 마음 쓰지 말라며 푼돈을 내면 된다고 배려해줬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도 각종 방법으로 식량을 찾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암시장이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탑 근처에 열어 놓은 물물교환 장소!

“저번에 갔을 때는 별로 먹을 게 없던데...”

“아니야. 나도 며칠 전에 가봤는데 물건이 확 늘었더라. 먹을 것도 제법 있어.”

“들어보니까 흰 호랑이 탑 애들하고 거래를 한 모양이던데?”

친구들의 말에 아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에는 물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 내가 괜히 가는 게 아니야. 그리고...”

아산은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유리병들을 꺼냈다.

이번 우레걸음 연구실이라는 던전을 공략하고 얻은 전리품이었다.

참가했던 학생들은 전부 다 물약과 시약을 나눠가진 것이다.

“...검은 거북이 탑 녀석들도 지금 이게 얼마나 귀한지 알 걸. 나중에 덜 귀해지기 전에, 지금 여분을 교환하는 게 이득이야.”

“역시 달카드야!”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암시장으로 향했다.

암시장 입구에 서있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그들을 알아봤는지 표정이 달라졌다.

“반가워. 들어가도 괜찮을까?”

“미... 미안해.”

“??”

“규칙이 생겼어. 너희들은 못 들어와.”

아산은 놀람보다 황당함이 앞섰다.

“너희들끼리만 교환하겠다고? 시장이 줄어들 거야!”

“그래도 상관없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드워프처럼 작은 키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보다 더 근육질인 몸을 갖고 있었다.

헐렁한 외투로도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드워ㅍ...가 아니잖아?’

아산은 당황했다. 드워프인 줄 알았는데, 잘 보니까 엘프였다.

키 작고 매우 근육질인 엘프!

“나는 투탄타 가문의 살코다.”

투탄타 가문.

제국에서도 꽤 유명한 석공 길드 가문이었다.

뛰어난 드워프 장인들의 가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투탄타. 왜 입장을 막는 거지? 우리가 푸른 용의 탑이라서?”

“아니다. 물론 내가 너희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

“......”

“...이런 규칙에 내 사감을 넣지는 않는다. 너희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건 규칙 때문이다.”

“무슨 규칙인데?”

“직접 일해서 얻어낸 물건이 아니라면 갖고 들어오지 못한다!”

살코의 뒤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험상궂은 놈들부터 곱게 자란 녀석까지 제각각이었지만 살코가 리더십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산은 갖고 온 시약들을 꺼내며 발끈했다.

“우리가 지금 들고 온 것도 일해서 갖고 온 거다!”

“그래? 어디서 갖고 왔지?”

“......”

아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우레걸음 교수의 연구실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가이난도가 대신 변명했다.

“밖에서 캤다!”

“들에서 캤는데 지금 그만한 양을 모을 수 있었다고? 훔친 거겠지. 출처를 댈 수 없다면 장물로 판단하겠다. 그리고 내가 검은 거북이의 탑에 있는 한, 시장에 장물은 취급하지 못하게 만들 거다. 그건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더럽히는 짓일뿐더러, 시장을 교란한다.”

너무나도 맞는 말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말문이 막혔다.

가이난도는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하지만 그러면 장물은 어디서 거래하라고! 도둑은 뭘 먹고 살라는 거냐!”

“야... 가이난도... 창피하니까 목소리 낮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부끄러움을 깨닫고 가이난도의 입을 막았다.

그 때 이한이 광주리를 들고 나타났다.

이한은 친구들이 입구에 모여 있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뭐하냐? 안 들어가고?”

“이한!”

아산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이한은 듣다가 살코에게 물었다.

“나는 이거 텃밭에서 직접 길렀는데, 그러면 들어가도 되나?”

“...!”

살코는 놀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보자.”

들어가는 이한을 보고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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