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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5화 (95/687)

095화

“나는 정말 나갈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하지만 네가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지겠다면, 기꺼이 그 정보를 듣도록 하겠다.”

이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각 같은 얼굴로, 농담기 하나 없이 그렇게 말하자 살코는 자신도 모르게 혼란스러워졌다.

‘정말로 밤에 나간 적이 없나?’

살코는 옆의 다른 검은 거북이 탑 친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속지 말란 소리였다.

“......”

살코의 표정이 살짝 험악해졌다. 역시 겉만 번드르르한 귀족 놈들은 믿기에는 위험했다.

“...따라와라. 설명해 줄 테니.”

그러더니 살코는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이한은 궁금해져서 저번에 야채 스튜를 먹은 적 있는 친구에게 슬쩍 물어봤다.

“투탄타가 뭐라고 한 거지?”

상대는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기 없을 때 너랑 단독으로 대화하지 말라고...”

“......”

*         *         *

사실 이한만 밤에 밖을 돌아다니는 건 아니었다. 어지간한 학생들은 이제 슬슬 탑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냥 밤에 가만히 잠만 자다가는 이 학교에서 버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먹을 걸 위해서든, 과제를 위해서든, 그도 아니면 탈출을 위해서든 학교를 돌아다니고 무엇이든 찾아 헤매야했다.

당연히 살코도 그러고 있었다.

“밤에 학교를 몰래 돌아다니면서 날 비난하다니?”

“...난 비난한 적 없다.”

살코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없었다.

“그렇군. 계속해라.”

“......”

살코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살코와 친구들이 요즘 계속 도전하고 있는 곳은 본관 건물의 3층이었다.

마법학교 건물들 중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신비가 담겨 있는 본관.

소문에 따르면 교장도 이 본관 건물에는 뭐가 다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본관 건물 3층은 찾아갈 때마다 자꾸 달라졌다.

어떨 때는 복도가 다섯 개가 되고, 어떨 때는 아예 그쪽으로 향하는 계단이 없어지고, 어떨 때는 몇 걸음도 가지 못했는데 벽으로 막혀 있고...

하지만 살코는 석공 길드 출신다운 끈질김으로 매달려서 어느 정도 들어가는 방법을 찾은 상태였다.

“어떻게 들어가지?”

“시(時)와 분(分)이 홀수일 때, 그리고 달에 구름이 끼지 않았을 때, 그리고 지팡이를 왼손에 들었을 때. 이걸 지켜야 3층의 복도가 제대로 열리더군.”

“......”

이한은 순간 살코가 그를 놀리나 싶었다. 그러나 살코는 매우 진지했다.

“그... 그렇군.”

하긴 마법학교라면 그럴 수 있었다.

이한은 3층의 복도가 밤에 제대로 열리는 조건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번개로 땅콩을 볶으면서 회전시키며 불의 원을 뛰어넘어야 하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고맙다. 쓸만한 정보군.”

안 그래도 본관 상층에 위치한 마구간을 찾아가야 하는 이한이었다. 3층 정보는 상당히 요긴했다.

“정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3층에 네게 도움이 될 만한 존재가 있다.”

“벼락의 정령은 아니겠지?”

“?”

“아니. 농담이다. 어떤 존재길래?”

이한은 궁금해졌다.

마법적인 존재라고 해도, 이미 마법학교 안에는 온갖 기이한 존재들이 가득했다.

리치, 트롤 혼혈, 뱀파이어, 벼락의 정령 등등...

그리고 아마 대부분 만나서 대화하기 좋은 상대는 아닐 것이다. 이한은 금화라도 걸 수 있었다.

“그건 말할 수 없다.”

“......”

“그 존재의 정체를 말하지 않고 다니기로 맹세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군.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보란 건가?”

“아니. 그 존재를 찾는 건 3층 복도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내가 같이 가야 한다. 네가 결정하는 대로, 3층 복도로 가서 그 존재에게 안내해주겠다.”

살코는 단단한 바위 같은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한은 의심부터 들었다.

‘이 자식 함정 아닌가?’

하도 다른 학생들한테 부당한 공격을 받았더니 의심부터 먼저 들었다.

안 그래도 상대는 귀족과 기사들을 싫어하지 않은가.

3층 복도 갔더니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복면을 쓰고 대기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3층 복도의 존재가 학생 한 명을 제물로 바치고 싶어하는데 살코가 이한을 고른 걸 수도...

“왜 그러지?”

살코는 이한이 매우 실례되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 존재에게 맹세를 했는데 날 안내해주면 싫어하지 않나?”

“아니다. 정체를 밝히지만 않는다면 새로 학생을 데리고 오는 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혹시 몰라서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강의에서 다시 확인해봤다.”

‘쯧.’

상대는 이한만큼 성실한 학생이었다. 가이난도처럼 손쉽게 갖고 놀 수 없었다.

“정말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내 판단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겠지만.”

살코는 드워프처럼 수염을 쓰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뭐든지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

고민하던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관 상층에 위치한 마구간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면 찬물이든 더운물이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좋아. 언제 갈 생각이지?”

“오늘 저녁.”

*         *         *

토요일 저녁.

다른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담요를 두르고 따뜻한 모닥불을 쬐고 있을 시간이었다.

한 손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차나 커피가 든 컵을, 다른 한 손에는 깃펜이나 체스말 혹은 카드를 잡고 있을 시간.

그런 시간에 이한은 살코와 함께 어두컴컴한 본관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다른 놈들은 없는 것 같군.’

이한은 혹시 모를 매복을 경계해 주변을 확인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살코는 한 손에는 지팡이, 그리고 허리춤에는 망치를 차고 있었다.

솔직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차고 있는 목검들보다 저 망치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워다나즈.”

살코는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물어봤다는 거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

이한은 다시 한 번 주변을 확인했다.

살코가 ‘죽어라, 워다나즈. 네 악행도 여기서 끝이다!’라고 외치고 매복했던 학생들이 뛰쳐나올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네가 다른 학생들한테 먹을 걸 챙겨준다고 들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전원은 물론이고 다른 탑의 학생들까지.”

“그래.”

“선행은 존중받을 일이지만 그건 말리고 싶다. 자신이 먹고 입을 것을 스스로 일해서 구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가 챙겨준다 하더라도 그 소중함을 모를 테니까.”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

살코는 이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황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출신인 이한이 조금의 반박도 없이 저렇게 인정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해...하는 건가?”

“틀린 부분이 없는 말이잖나. 원래 자기가 직접 일하지 않은 놈들은 소중함을 모른다니까.”

“그렇지. 노동이 얼마나 신성한지 귀족 놈들이 알겠나? 아니면 기사 놈들이? 할 줄 아는 건 거들먹거리며 칼 들고 으스대는 것밖에 없는 그런 놈들이?”

“내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귀족 놈들이나 기사 놈들도 농장 보내서 밭을 갈게 해야 할 것 같군. 교양으로 검술도 배우는데 농사라고 배우지 못할 이유는 없잖나.”

두 젊은 노동자는 뜨겁게 의기투합했다.

대화가 끝나자 이한과 살코는 서로 제법이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살코의 바위 같은 얼굴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아무래도 널 착각한 것 같군. 사과하겠다. 워다나즈. 몇몇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대마법사라고 하던데...”

“......”

“...그건 거만한 기사 놈들의 헛소문이었군.”

“그렇지. 언제나 그런 헛소문이 우리의 눈을 가리곤 하니, 우리는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마법사로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살코는 반성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소문이 퍼져도 헛소문이라고 우길 수 있겠군.’

살코는 이한의 손을 쳐다보았다. 텃밭을 가꾸고 각종 작업으로 단단해진 손이었다. 귀족들은 저런 손을 가질 수 없었다.

같은 손을 가진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 살코는 그것으로 완전히 이한을 인정했다.

그러자 살코는 오히려 궁금해졌다.

왜 이한 같은 학생이 다른 게으른 쓰레기들을 챙겨주는 것일까?

“워다나즈. 한 가지 묻고 싶군.”

“뭐지?”

“왜 같은 탑의 학생들을 챙겨주는 건가?”

“......”

이한은 당황했다.

그야...

‘돈 때문이지...’

돈 받으니까 하는 거지 돈도 안 받는데 무상으로 아침 차려주고 찾아가서 밥을 먹여주겠는가.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한은 지금 살코가 자신을 제법 높게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돈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한은 중의적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친구니까.”

“......”

그 대답에 살코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워다나즈를 따르는 학생들이 있는 건 워다나즈의 마법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것 때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기에 너희 귀족들이 말하는 명예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군. 완전히 없는 게 아니었어.”

“......”

이한은 품속에 있는 장부를 좀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만약에 들킨다면 살코는 평생 귀족들을 믿지 못할 테니까.

3층 본관 복도를 앞서서 걸어가던 살코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복도에 위치한 조각상을 가리켰다. 이름 모를 마법사의 조각상이었다.

낡고 퇴색된 데다가 군데군데 부서진 조각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지나치게 잘생겨서 인간의 외모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상하군. 왜 익숙하게 느껴지지?’

“이 조각상이 부서진 게 보이나, 워다나즈?”

살코는 망치를 꺼내들었다. 이한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각상은 저번에 내가 수리했었다. 이렇게 망가진 석상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지.”

‘일 중독자군.’

하지만 이한도 이해가 갔다.

요네르가 식물들을 보면 물을 주고 싶어하고, 닐리아가 사냥감을 보면 잡고 싶어하고, 이한이 교수를 보면 허리를 숙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살코도 그런 직업병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부서졌다고?”

“그래. 이 조각상은 고쳐도 계속 부서진다. 그리고 그게 이 숨겨진 문을 여는 비결이지.”

살코는 조심스럽게 망가진 조각상을 수리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돌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조각상이 한 바퀴 회전했다. 동시에 숨겨진 통로가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라. 워다나즈.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한다.”

“투탄타. ...난 널 믿는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왔겠지.”

“난 널 정말 믿는다.”

“왜 반복하는 거지?”

이한이 자신의 반응을 읽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한 채, 살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새로운 학생이 찾아왔는가.

“!”

통로 안쪽에는 동상이 하나 있었다. 여러 짐승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동상이었다.

반갑다. 나는 잊혀진 짐승의 동상이다. 꽤 먼 예전부터 이 학교에 있었지. 조각상을 수리하고 들어온 학생이여. 먼저 내 정체를 주변에 말하고 다니지 않겠다고 맹세해주겠나?

“...맹세하겠습니다.”

이한이 대답하자 동상에 있는 개의 꼬리 부분이 기쁘게 돌아갔다.

“실례지만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냥 시간을 죽이고 있단다. 내가 지키고 있던 방은 187년 전에 폐쇄됐거든. 그 이후로는 이 학교의 시원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지.

“주변에 왜 이야기하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만...”

그야 교수들이 다시 내게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 그렇지.

“실로 현명하시군요...!”

공감해줘서 고맙구나.

이한은 이 동상이 진정 지혜롭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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