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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98화 (98/687)

098화

“잘 만든 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흥. 아첨하지 마라.”

앙라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거친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

이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저 나룻배가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날 슬프게 하는군.’

부여 마법을 지금 바로 배울 수도 없고 얼음 정령과 친해질 수도 없으니 남는 건 저 방법밖에 없었다.

못 미더워도 어쩌겠는가. 한 번 확인은 해봐야지.

“몇 명이나 탈 수 있지?”

“스무 명도 너끈히 태울 수 있지!”

앙라고의 자신감은 이한에게 더욱 역효과일 뿐이었다. 열 명도 간신히 태울 것 같은 나룻배를 가지고 저런 소리를 하니 이한은 더더욱 불안해졌다.

“마침 잘 됐다. 워다나즈. 타봐라!”

이한은 침착하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안 그래도 차가운 얼굴이 더욱 더 차갑게 변했다.

그 모습에 앙라고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내가 너무 거칠게 말했나?’

“그 전에... 먼저 네가 배를 모는 걸 보고 싶군. 나나 다른 사람들이 타면 혼자서 몰 때처럼 자유롭게 몰 수 없을 테니까.”

앙라고는 이한의 말에 매우 의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투를 집어 던지더니 바로 나룻배 위에 올라탔다.

“그래, 보고 있어라!”

앙라고는 제법 멋들어지게 깎아 만든 노를 하나씩 양손에 잡더니 능숙하게 노질을 하기 시작했다.

돛도 없는 나룻배가 잔잔한 호수의 표면을 타고 미끄러졌다.

지켜보고 있던 앙라고의 친구는 감탄했다.

“훌륭해, 앙라고!”

마치 호수가 자기 것이라도 된 것 마냥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앙라고는 실로 자유로워보였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나룻배를 모는 앙라고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느꼈다.

마치 여기가 마법학교가 아니라 어딘가 한적하고 아름다운 호수 같이 느껴질 정도로.

‘물은 안 새는군.’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낭만에 취해 있는 동안 이한은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나룻배에 물이 새지 않았다.

그리고 십 분 넘게 호수를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덤비는 몬스터나 해골 교장이 없었다. 제법 안전한 상태란 뜻이었다.

“어때, 워다나즈. 앙라고의 실력을 인정하겠나?”

“미안하군. 아직 그럴 순 없다.”

“어째서냐!”

“한 명이서 몰 때는 누구나 잘 몰 수 있지. 하지만 한 명이 더 탔을 때도 과연 저렇게 몰 수 있나?”

이한의 도발에 앙라고의 친구는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앙라고! 워다나즈가 날 태우고 나서도 똑같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묻는데?”

“흥. 당연하지!”

앙라고는 바로 나룻배를 끌고 호숫가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를 태우고 외쳤다.

“잘 지켜봐라, 워다나즈!”

“과연 그럴까. 한 명을 더 태우는데도 아까처럼 모는 건 불가능하다.”

이한은 일부러 앙라고를 부추겼다. 앙라고는 매우 효과적으로 반응했다.

“지켜보고 있어라!”

앙라고는 아까보다 더 물살을 거세게 가르며 호수를 질주했다. 어찌나 노를 열심히 젓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팔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이한은 한 이십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직 알 수 없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정도면 저럴 수 있지’ ‘이제 곧 실력이 드러날지도 모르겠군’같은 말로 앙라고를 응원했다.

대충 확인하고 싶은 건 다 확인한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흰 호랑이 탑 놈들과도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         *         *

“헉... 헉... 헉헉헉... 봤냐... 이게... 내 실력...”

“그래. 내 패배를 인정한다.”

이한의 말에 앙라고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너무 지쳐서 그러지 못했다.

풀밭에 드러누워서 그저 헥헥댈 뿐.

한참을 쉬고 나서야 앙라고는 힘을 회복하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럼 나도 타보도록 하지.”

“...또?”

앙라고는 자신도 모르게 약한 소리를 내뱉었다.

몇 번의 노역(櫓役)이 앙라고를 두렵게 만든 것이다.

상대가 주저하자 이한은 간단하게 응원해줬다.

“설마 자신이 없...”

“타라!”

앙라고는 벌떡 튕겨 일어나더니 나룻배 위로 탔다. 앙라고의 친구, 듀크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라도 내리는 게 낫지 않나?”

“듀크마! 날 못 믿는 건가?”

“...미안하다. 앙라고. 내가 네 명예를 무시했구나!”

“빨리 출발해라.”

이한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기사가 우정을 나누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섬의 위치부터 확인한다.’

배가 제법 안전하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섬의 위치를 확인하고 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해 둘 생각이었다.

앙라고는 이를 악물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나룻배가 다시 한 번 호수 위로 미끄러졌다.

이한은 인상을 찌푸리고 호수 위에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집중했다.

‘망원경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티팩트나 마법을 쓸 줄 알았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한은 문득 알라르롱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경지에 오른 검사는 마력을 사용해 자신의 신체를 활성화시키고 강화시킵니다. 마법만큼 정교하고 체계화 된 힘은 아니지만, 생사를 다투는 난전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안력(眼力)도 마력의 힘으로 강화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이한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직 몸 안의 마력을 마음대로 조종해 순환시키며 신체 기관 하나만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대신 이한에게는 무한히 낭비할 수 있는 마력이 있었다.

이한은 그냥 마력을 전신으로 내뿜듯이 방출시켰다. 안구에 집중된 마력이 일시적으로 시야를 강화시키며 방출됐다.

“?!?!”

옆에 있던 두 학생들은 갑자기 이한이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자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호수 위였다.

누구 한 명 죽으면 시체를 던져버리기 좋은...!

팟!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허겁지겁 목검을 붙잡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이한이 외쳤다.

“찾았다!”

“??”

“섬을 찾았다고.”

“뭐?! 어떻게 찾은 거지!”

앙라고는 깜짝 놀랐다.

나룻배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나룻배를 띄우고 나서도 섬의 흔적은 찾지 못했던 것이다.

더 멀리 나가기 전에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다. 그런데 왜 목검을 잡고 있지?”

“......”

“...갑, 갑자기 소리쳐서 깜짝 놀란 바람에... 습관이다.”

“생각보다 겁이 많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울컥했다.

갑자기 네가 마력을 뿜어내서 그런 거잖아!

*         *         *

이한은 세심하게 방향을 기록했다.

“일단 돌아가자. 방향을 확인했으니 다음에 다시 오면 되겠군.”

“그래. 알겠다.”

앙라고는 내심 기뻤다.

아까부터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억.”

힘이 빠진 탓에 앙라고는 노를 헛저었다.

‘뭐지?’

삐끗했던 앙라고는 무언가 물컹한 걸 노로 찌른 기분이 들어서 움찔했다.

첨벙-

“...???”

그리고 뭘 찔렀는지는 곧 알 수 있었다.

호수의 수면 아래에서 불룩불룩 모양을 바꾸고 있는 물 덩어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느껴지는 정령의 기운.

물의 정령이었다.

쉬익-!

물의 정령은 날카로운 물의 가시를 쏘아냈다. 이한은 듀크마의 등을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물의 가시가 듀크마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날아갔다.

“미... 미안하다! 워다나즈! 내, 내가 물의 정령을 건드렸어!”

“앙라고! 뭘 한 거야!”

앞으로 넘어진 듀크마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호수 위에서 물의 정령을 화나게 만들다니. 믿을 수 없는 실수였다.

‘아니... 화가 난 것 같지 않은데.’

당황한 둘과 달리 이한은 냉정하게 물의 정령을 관찰했다.

기세가 사납긴 했지만 페르쿤트라 같은 정령이 뿜어내는 위압감과 비교한다면 훨씬 약한 정령이었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걸 보면 상급 정령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정령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

이한은 물의 정령이 왜 그들을 두려워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에 한 대 맞았다고 두려워하는 게 말이 되나?

‘...젠장.’

이한은 혀를 찼다.

물의 정령이 왜 저러는지 깨달은 것이다.

범인은 앙라고가 아니라 이한이었다.

아까 섬을 찾기 위해 마력을 마구 발산한 탓에 물속에 있던 정령이 겁에 질린 것이다.

쉭, 쉭, 쉭, 쉭!

겁에 질린 정령은 이한을 쫓아내기 위해 물의 가시를 발사했다.

섬뜩한 공격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한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지팡이를 휘둘러 맞섰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호수에서 솟구친 물의 구슬들이 정확히 가시를 요격했다.

‘얼핏 보면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겉모습에 속았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충분히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

볼라디 교수의 공격을 몇 번이고 막아낸 이한에게, 정령이 쏘아내는 가시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었다.

‘이... 이 녀석...’

앙라고는 분노한 정령보다 이한이 더 놀라웠다.

같이 들어와서 같이 배웠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워다나즈 가문에서 대체 어떤 훈련을 가르치길래 이런 감정 없는 전투기계가 완성되었단 말인가?

이한이 고개를 돌리고 앙라고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물의 가시가 섬뜩하게 날아오고 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튕겨내면서 쳐다보는 탓에 앙라고가 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네 힘이 필요하다.”

“나... 나를 탓하지 않는 거냐?”

“......”

이한은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 자기 탓인 줄 아는군.’

앙라고는 지금 물의 정령이 저러는 이유가 자신이 노로 한 대 찔러서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착각을 하다니.

“네 잘못이 맞다. 하지만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굳이 이한이 정정해 줄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앙라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동했다.

살면서 워다나즈 놈의 말에 이렇게 감동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 내게 맡겨라!”

앙라고는 검을 뽑아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이한이 무슨 짓을 하냐는 듯이 말했다.

“뭘 하는 거지?”

“...가시를 튕겨내라는 것 아니었나? 내 검술로?”

“아니. 노를 저어라.”

“......”

앙라고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노를 붙잡았다.

그러는 사이 물의 정령은 저 괴물 같은 존재에게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부들부들 떨던 물의 정령은 다른 선택을 했다.

“...잠깐!”

이한은 뒤늦게 눈치 채고 다급하게 말리려고 했지만 물의 정령은 이미 다른 친구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물 구슬 대신 방패를 넓게 펼쳤다.

겁먹은 물의 정령들이 이한이 아니라 나룻배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겁한 정령 놈들.’

이한은 앞으로 물의 정령을 만나게 되면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의 방패를 두텁게 만들며 이한은 냉정함을 유지했지만, 계속 날아와 박히는 물의 가시에 두 흰 호랑이 탑 기사들은 비명을 질렀다.

불투명한 물의 방패 너머로 살벌하게 날아와 박히는 가시가 언제라도 관통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한이 여유로워보여서 더 무서웠다.

넌 안 무섭냐?!

‘볼라디 교수가 보면 눈물을 흘리겠군.’

이한은 변화 하나 없이 직선으로만 공격하는 정령들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이쯤이면 슬슬 물의 방패를 못 뚫는다는 걸 알아야지 계속 똑같은 공격만 하고 있다니?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사이 나룻배는 점점 더 빠르게 속도가 붙었다.

겁먹은 정령들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어디로 몰고 있는 거지?”

이한은 호숫가 반대쪽으로 나룻배가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앙라고가 정신없이 노를 저은 탓에 섬 쪽으로 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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