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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2화 (102/687)

102화

물의 정령이 도망치자 이한도 주문을 멈추고 외쳤다.

“당장 거기 서라!”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태는 호수에 있던 물의 정령 놈들 탓이었다.

이렇게 먼저 오지 않았다면 흰 호랑이 탑 놈들을 느긋하게 모래사장에 집어넣어서 다 확인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워다나즈, 다친 상태로 정령과 싸우는 건 조금 위험...!”

말리려던 듀크마는 정령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말을 바꿨다.

“아니다! 안 위험하겠군! 쫓자! 앙라고!”

“잠, 잠깐만!”

앙라고는 서둘러서 음식을 가죽에 싸서 감쌌다. 그냥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놈을 쫓아라! 놈은 교장의 수하가 분명하다!”

이한은 어두워지는 밤의 냉기보다 더 서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마치 자신들이 악당이 된 기분으로 달려 나갔다.

...분명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도 왠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앙라고는 왼쪽으로 돌았다. 물로 만들어진 구슬이 날카롭게 날아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듀크마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물로 만들어진 가시가 날아들었지만 머리가 낮아서 그냥 피할 수 있었다.

‘물의 정령들의 공격은 정말 단순하군.’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운데에서 접근했다. 물의 정령이 이한에게도 공격을 날렸다. 이한은 피하는 대신 물의 구슬을 불러내 그대로 튕겨냈다.

모래사장의 언데드 소환수, 조르반 2세야 워낙 덩치가 크고 힘이 있는 놈이었지만 저런 하급 물의 정령 정도는 정면으로 이한을 이길 수 없었다.

살벌한 마력을 뿜어내는 이한이 가까이 다가오자 물의 정령은 바들바들 떨며 패닉에 빠졌다.

“도망치지 마라. 물의 정령. 해칠 생각은 없다.”

“...?”

목검을 들고 물의 정령을 겨누던 앙라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안 믿지 않을까?’

앙라고가 물의 정령이라면 절대 믿지 못할 것 같은데...

“해골 교장의 부하겠지. 그렇지?”

물의 정령은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정령들과 말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왠지 물의 정령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절대 아니라는 거구나.’

물의 정령은 기본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동그란 모양으로 뭉쳐진 물 덩어리는 부드러운 물의 기운을 풍기며 사람들의 적대심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날 속일 생각 하지 마라. 해골 교장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겠지.”

“...!”

듀크마는 놀랐다.

그런 거였어?

그러나 물의 정령은 다시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한은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호수를 건너는 우리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까지 공격했지?”

“그렇군...!”

이한의 논리적인 지적에 두 학생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물의 정령이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따라와서 공격하는 건 이상했다.

물의 정령은 몸을 이리저리 뒤흔들면서 이한을 가리켰다.

“?”

“뭐지?”

둘은 물의 정령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한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자기들을 공격하려고 온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군...’

그렇게 말하면 이한도 할 말은 없었다.

먼저 호수 위에서 살벌하게 마력을 뿜어낸 건 이한이었으니까.

“워다나즈. 저 정령이 뭐라고 하고 있는 거야?”

“네가 노로 찌른 탓에 자기를 공격하는 줄 알았다는군.”

“큭.”

앙라고는 물의 정령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실수였다고. 만약 물의 정령이 있는 줄 알았다면 훨씬 더 조심해서 저었을 거야. 그것만은 믿어줬으면 좋겠는데...”

물의 정령은 앙라고의 변명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당황스러워했다.

이한이 무섭다고 했는데 저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한은 대신 고개를 끄덕여줬다.

“실수할 수도 있으니 이해하겠다는군.”

“다행이다...!”

“하지만 호수에서의 일은 그렇다 쳐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를  공격한 건 변명할 수 없을 텐데.”

호수에서 있었던 일은 길게 이야기해봤자 좋을 게 없는 만큼 이한은 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물의 정령은 이한의 사악한 속셈에 넘어갔다.

호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건 잊어버리고 바로 모닥불을 가리켰다.

“밤에 불을 켠 것 때문에 그랬다고?”

“뭐 이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화를 냈다.

물론 정령 입장에서는 침입자들이 요리하느라 불을 피우고 냄새를 풍기는 게 못마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말로 경고하는 대신 공격부터 하려고 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난폭한 반응 아닌가!

물의 정령은 당황해서 온몸을 내저었다. 잘못 이해했다는 뜻이었다.

정령은 모닥불을 가리키고, 그슬린 자국을 가리키고, 이한의 지팡이를 가리켰다.

둘은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한은 바로 이해했다.

‘음. 내가 주변을 태워버려서 화가 난 거였군.’

언데드 소환수를 상대하느라 질러버린 불이 주변을 태워 근처 물을 탁하게 만든 것이다.

쉬고 있던 물의 정령으로서는 화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령이 뭐라고 하는 거지, 워다나즈?”

“속 좁은 행동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군.”

“흥. ...용서해줄까.”

“그래. 상대는 정령이니까.”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크게 선심을 쓰기로 했다.

언데드와 달리 정령은 모질게 대하기 힘든 존재였다. 하물며 물의 정령이라면 더더욱.

정령은 무언가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느꼈는지 이한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한은 못 본 척 무시했다.

*         *         *

물의 정령은 해골 교장의 수하가 아니었지만, 해골 교장이 이 섬에 찾아왔을 때 멀리서 구경한 목격자였다.

그런 정령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이한은 물었다.

“정확히 교장이 어떤 주문을 사용했지?”

해골 교장의 마법을 이한이 전부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마법이 있는지 미리 알아낼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할 터.

물의 정령은 말은 못해도 몸을 부풀리고 바꿔가면서 열심히 설명했다.

‘무덤? 봉인? 자물쇠?’

작은 무덤 모양을 만들더니 그 위에 봉인을 뜻하는 띠를 몇 개 만들고 자물쇠 비슷한 것까지.

이한은 정령이 뭘 말하려고 하는지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교장이 가둬놨군.’

가둬놓을 물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외출권이었다.

‘접근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이한은 눈을 감고 교장의 머릿속을 상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교장이라면 어떻게 만들어놨을까?

‘모래사장 지하에 시련의 던전을 만들어놓고, 그 던전을 통과해서 나오면 외출권이 있는 장소. 교장이 할 만한 생각이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잠가놓았다면 더더욱 교장이 할 만한 생각이었다.

모래사장 지하 던전에서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서로 힘을 합해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그 끝에 위치한 외출권이 잠겨 있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딱 교장이 좋아할 만한 상황이었다.

“워다나즈, 저기!”

앙라고가 놀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물의 정령이 움직임을 멈춘 곳 너머에 정말로 교장이 만들어 놓은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작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석조로 건축된 장소였다.

이한은 왠지 모르게 신전 같다고 느꼈다.

지하로 연결된 돌 계단(모래사장 지하던전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기하학적인 규칙을 가지고 사방에 배치된, 안이 비어있는 커다란 돌 기둥. 그리고 가운데에 위치한 제단까지.

물론 제단 안에 들어 있는 건 희생양이 아니라 외출권일 것이다.

‘이 두 놈을 어떻게 먼저 보내지?’

이한은 앙라고와 듀크마를 어떻게 먼저 들여보낼까 고민했다.

교장의 함정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희생양, 아니, 선발대가 필요했다.

“워다나즈. 내가 먼저 가겠다.”

“앙라고. 지금 날 모욕하는 거냐? 내가 먼저 가겠다.”

“듀크마. 이 상황이 벌어진 건 내 탓이다. 내가 물의 정령을 화나게 만든 탓이잖나.”

“앙라고. 넌 배를 만들고 배를 몬 것으로 네가 해야 할 임무를 다 완수했다. 그에 비해 나는 한 게 없다. 지금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내 기사로서의 명예는...”

이한은 하품을 했다. 그리고 동전을 던졌다.

탁-

“앞면. 앙라고 알파. 네가 가라.”

“...으, 으응.”

앙라고는 뭔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원래 팔을 다친 워다나즈를 위해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 생각이긴 했는데, 이 아리송한 기분은 왜일까?

‘올 테면 와라!’

앙라고는 비장한 기분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 가문 출신이라 하더라도 마법 함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듣고 자라기 마련.

앙라고는 어떤 함정이 발동되더라도 버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함정은 발동되지 않았다.

크기를 맞춰서 잘 채워 넣은, 돌로 된 바닥을 밟고 올라갈 때에도.

돌 기둥 사이를 지나 제단 앞까지 나아갔을 때에도.

이한은 그 모습에 살짝 놀랐다.

‘혹시 해골 교장 이 인간... 두 명이 올라갔을 때 발동되게 준비해 놓은 건가?’

함정이 없다면 없는 대로 불안했다.

이한도 지금 전력으로 집중해서 주변에 깃든 마법이나 마력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었다.

정말 없거나, 혹은 해골 교장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이한이 눈치 채기 힘든 거거나.

‘아마 후자겠지.’

사실 정말로 걸려 있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감각적인 부분이라면 이한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됐다.

교수들은 물론이고 해골 교장도 감탄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해골 교장이 무언가 해놨을 거다!

“워다나즈. 여기... 교장 선생님께서 써놓은 글이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지? 이제 함정이 시작된다고 쓰여 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여기까지 온 것을 축하한다. 어린 신입생들아. 갑작스러운 시련에 당황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은 너희 어린 마법사들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란다.

‘기분 나쁘게 친절하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해골 교장이 저렇게 친절하게 말할 때는 더 두렵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너희 신입생들은 서로 다른 탑의 친구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배웠을 거다. 이제 그 배운 방법으로 최후의 협력을 해보려무나. 돌기둥 안에 다른 사람을 넣는다면 외출권이 들어 있는 제단의 봉인이 풀릴 것이다!

셋은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 보았다. 커다란 돌기둥들은 안이 비어 있어서 사람 하나는 들어가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였다.

저기 안에 사람을 집어넣어 가두는 거라면...

제단이 열리든 말든 외출권과는 멀어지는 것 아닌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듀크마는 벌컥 화를 냈다.

기사 가문 출신으로서, 이렇게 열심히 힘을 모아서 같이 시련을 통과한 학생들을 갈라놓는 함정은 용납할 수 없었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

‘없을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이한은 침착했다.

정말 딱 해골 교장이 좋아할 만한 일이라서 전혀 놀랍지 않았다.

여럿이 같이 힘을 합쳐도 결국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건 한 사람 뿐! 억울하다면 실력을 키워서...

‘등등의 개소리를 하겠지.’

이한은 고민했다.

듀크마를 먼저 제압해야 할까, 앙라고를 먼저 제압해야 할까?

원래라면 두 명이 도착했을 제단에 셋이 도착한 덕분에 이한이 불리한 꼴이 되었다.

게다가 이한은 지금 한쪽 팔도 다치지 않았는가.

이기기 위해서는 흰 호랑이 탑 놈들이 공격을 하기 전에 먼저 쳐야 했다.

“워다나즈!”

듀크마가 고함을 질렀다. 이한은 멈칫했다.

‘들켰나?’

“앙라고를 말려다오!”

“!”

고개를 들자 앙라고가 돌기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한은 순간 저걸 말려야 하는가, 아니면 못 이기는 척 내버려둬야 하는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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