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네 자만심으로 학생들이 배울 귀중할 기회를 놓쳐버렸...
해골 교장의 헛소리를 도중에 끊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외쳤다.
“워다나즈!!”
“살아 있었구나! 우린 네가 납치된 줄로만 알고 있었어!”
“납치라니?”
뒤에서 따라 나오던 앙라고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다.
누가 워다나즈를 어떻게 감히 납치를 한단 말인가?
“손 들어!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저주를 날리겠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앙라고와 듀크마를 발견하고 지팡이부터 겨눴다.
“왜, 왜 이러는 거냐!”
“이런 치밀한 놈들... 학교 근처에서 납치했다면 증거가 남을 테니까 호수로 끌고 왔군!”
가이난도는 제국 인기 추리 소설 ‘강아지 수인족 탐정 토베리즈’ 애독자답게 날카로운 추리를 보였다. 아산도 그럴듯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납치한 게 아니라 같이 호수를 탐색하다가 표류한 거다.”
“아. 그런 거였어?”
“어쩐지.”
“나 참. 앞으로 조심하라구.”
이한의 말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빠르게 지팡이를 내렸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만 뻐끔거렸다.
‘무슨 저런 뻔뻔한 새끼들이...?’
나름 제국 대귀족 가문 출신이란 놈들이 저렇게 뻔뻔하다니.
입학할 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저렇게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장 사과하지 못해!? 우릴 납치범으로 몰고 그냥 넘어간다고?”
“아니. 지금 서로 잃어버린 친구들을 찾아서 이렇게 기쁜 상황에 꼭 그렇게 누가 잘못했니를 따져야 해? 너희 너무한 거 아니야?”
“야 이 시정잡배보다 못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 몇몇이 씩씩대며 따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보다 다른 걸 먼저 신경 썼다.
“앙라고, 괜찮아!? 부러지거나 다친 곳은? 워다나즈가 너한테 이상한 마법을 걸진 않았고?”
“듀크마. 지금 내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지? 내 가문 이름을 기억하나? 말해봐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앙라고와 듀크마의 상태를 매우 걱정스러워했다.
혹시 사악한 흑마법에 당하기라도 했다면...
“다들 걱정하지 마라. 정신없긴 했지만... 워다나즈와는 별 일 없었다. 오히려 워다나즈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
“워다나즈가 모래사장에 숨어 있었던 소환수를 쓰러뜨렸다. 그러지 못했다면 우리 모두 아래로 끌려갔을 거다.”
앙라고와 듀크마는 모여든 학생들에게 둘이 경험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해골 교장의 사악한 음모와 그걸 분쇄한 워다나즈의 이야기를!
워낙 흥미로운 이야기라 다른 탑 학생들도 와서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너무 말도 안 되는데 워다나즈한테 세뇌당한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몇몇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믿기 힘들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니까 해골 교장이 섬 모래사장 밑에 던전을 만들어놓고, 소환수도 소환해놓은 다음, 학생들한테 과제를 내줘서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유도했다고?
너무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이야기가 진짜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뒤에서 해골 교장이 직접 자기 입으로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잘했다! 잘했어. 워다나즈 너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렸지만! 잘했다!
“...죄송합니다.”
이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사과했다.
토라진 해골 교장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속좁음은 교수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양이었다.
해골 교장은 어지간히 억울하고 아쉬웠는지 그 이후로도 자신이 준비해놓았던 걸 털어놓으며 투덜댔다.
모래사장 밑에 준비한 것들을 듣자 호수를 건너온 학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딴 걸 준비했었다고???
“저 사람 황제 폐하한테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닌...”
“쉿. 조용히 해. 모래사장 밑으로 끌려가고 싶어?”
한참 동안을 푸념하던 해골 교장은 대충 속이 시원해졌는지 이한에게 말했다.
어쨌든... 혼자 힘으로 외출권을 가지고 오다니. 그건 칭찬해줄 수밖에 없겠구나.
말과 함께 이한의 부러진 팔이 완전히 치료되었다. 이한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네 덕분에 내년 신입생들은 더 혹독한 시련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한은 별로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그게 이한 탓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혼자 힘으로 해낸 건 아닙니다.”
이한은 앙라고와 듀크마를 가리켰다.
원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를 때에는 공범들도 두둑이 챙겨줘야 했다.
가짜 외출권을 만든 지금 둘은 공범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손을 내저었다.
“저희는 한 게 없습니다.”
“사실상... 워다나즈가 전부 한 겁니다.”
나도 안다. 내가 장님으로 보이느냐? 너희들은 애초에 특별 점수를 줄 생각이 없었다.
“......”
해골 교장은 같은 말을 해도 열받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너희의 우정과 명예가 기특하구나! 너희 모두에게 특별 점수를 주마!’같은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들으니 울컥하는 게 사실이었다.
‘졸업하고 두고 보자.’
‘진짜 졸업하고 봅시다.’
두 흰 호랑이 탑 학생을 원수로 만들고 나서, 해골 교장은 다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다른 무쇠대가리들이 해내지 못한 특별한 과제를 해낸 대가로 특별 점수를 주마. 자. 외출권을 꺼내봐라.
이한은 외출권을 꺼내서 손바닥 위에 올렸다.
해골 교장의 눈에서 빛이 번뜩이자 바로 외출권이 사라졌다. 교장의 창고 중 하나로 공간이동한 것이다.
“...???”
“????????”
정작 사기당한 이한은 가만히 있었지만 다른 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어지간해서는 교장이 무서워서 참던 학생들도 이건 참기 힘들었는지 외쳤다.
“교장 선생님! 약속과 다르시지 않습니까 이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희와의 약속을 이렇게 쉽게 어기셔도 되는 겁니까! 명예를 잊으신 겁니까?”
내가 언제 약속을 어겼지?
해골 교장은 화를 내거나 겁을 주는 대신 오히려 되물었다.
너무나도 당당한 질문에 학생들이 살짝 당황할 정도였다.
혹시 해골 교장이 지금 가이난도처럼 뻔뻔하게 굴려는 것인가?
“교장 선생님께서... 이번 과제를 해내시면... 외출권을 준다고 하셨잖습니까.”
이런. 이런...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를 헛들었군 다들. 내가 정확히 뭐라고 했었지?
해골 교장이 정확히 했던 말.
-그 호수 위에 섬 하나가 있다. 거기에 내가 외출권을 숨겨 놨다. 다들 협력해서 나한테 가지고 와라.
...을 보면, 외출권을 준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외출권을 가지고 오라고 했을 뿐!
해골 교장은 학생들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좀 풀렸는지 친절하게 말했다.
이제 계약에 있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지? 다들 교훈을 얻어서 참으로 잘됐구나!
“......”
“......”
이한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 중 몇 명이 졸업하면 교장을 암살하러 찾아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해골 교장은 벌써 쓰러졌을 수준이었다.
드래곤 새ㄲ... 아니. 워다나즈. 이번 외출권의 가장 큰 관련자인 네가 말해 보거라. 어떻게 생각하지? 내가 널 속인 것 같나?
‘방금 나보고 드래곤 새끼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나?’
이한은 해골 교장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절대 속지 않았다.
교수가 ‘혹시 불만 사항 있나?’라고 물을 때는 ‘교수님께서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든 저 자신이 바로 불만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법.
여기서 계속 불만 있다고 덤비다가는 모래사장 밑으로 들어가는 수가 있었다.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저는 처음부터 외출권에는 조금도 욕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왜 불만이 있겠습니까?”
해골 교장은 기특함과 아쉬움이 섞인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제자였다.
단순히 마법적인 재능뿐만이 아니라 마법 외적인 능력에서도.
원래 마법 재능과 자제력은 반비례하기 마련이었다. 재능이 있으면 성질이 오만해지는 것이다.
이한의 절반 정도도 못 되는 재능만 가져도 보통 신입생 때 교장을 잡아먹으려고 건방지게 덤벼들곤 했다.
그러다가 이제 징벌방에 세번쯤 들어가면 겸손의 교훈을 아주 조금 얻곤 하는데...
어떻게 된 게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재능과 자제력을 둘 다 믿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갖고 있었다.
기특하고 신기하긴 했지만 동시에 해골 교장으로서는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재미가 없다!
‘안 걸리는군...’
해골 교장은 실망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으니 언젠가 기회가 또 찾아오리라.
그렇다는군. 다들 워다나즈를 본받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이한은 독심술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학생들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중요한 건 해골 교장을 미래에 죽일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해골 교장이 설마 이럴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천만다행이군.’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한도 설마 해골 교장이 외출권을 뺏어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임기응변으로 가짜 외출권을 올려놓았는데, 해골 교장이 눈치 채지 못했는지 그대로 사라진 것이다.
앙라고와 듀크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경악한 얼굴로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 설마 이 상황을 대비해서...?’
‘대체 워다나즈 너는...?!’
물론 이한이 이 상황을 예상하고 가짜 외출권을 만든 건 아니었지만, 둘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워다나즈... 너는 어떻게...?”
“쉿. 조용히 해라.”
이한은 검지를 입가 앞에 세웠다.
아직 해골 교장이 근처에 있었다.
수상함을 느끼고 자기 창고에서 외출권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이한은 모래사장 지하가 아니라 징벌방 행이었다.
“이, 이렇게 귀한 걸 우리가 받아도 되나?”
앙라고와 듀크마는 누가 볼까봐 품속으로 가짜 외출권을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이한은 자기 것만 만든 게 아니었다. 남는 시간을 쪼개서 앙라고와 듀크마의 가짜 외출권도 위조해 준 것이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인데도 마치 천금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조심해서 써라. 특히 교장이 교내에 있을 때는 쓰면 안 돼. 그랬다가는 바로 잡혀갈 거다.”
“물... 물론이지.”
“알겠어. 워다나즈.”
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의 경고를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한은 궁금해졌다.
‘그런데 가짜 외출권이 통할까?’
가짜를 만들긴 했지만 이한도 이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확신이 없었다.
일단 해골 교장이 교내에 없을 때 다른 교수한테 말해서 사용하면 꽤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돌아오고 나서의 뒷감당이었다.
‘징벌방에 한 달쯤 가두는 건 아니겠지?’
일단 이한은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이 가짜 외출권을 쓰는 걸 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이한이 갖고 있는 건 진짜긴 했지만, 해골 교장이 있을 때 쓰는 건 영 찜찜했던 것이다.
* * *
호수 위에 생겨난 길을 따라, 학생들은 왔던 것처럼 돌아갔다.
이한도 서둘러 떠날 준비를 했다. 해골 교장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한 혼자 남을 경우 모르는 척 얼음을 치워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물의 정령이 이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는 뜻이었다.
“고마웠다. 네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섬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몰라.”
물의 정령은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이한은 갑자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게 정령과 친해진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페르쿤트라처럼 서로 소리를 질러대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친밀감 같았다.
이한은 입을 열었다.
“혹시 나와 계...”
물의 정령은 이한의 말을 듣지 않고 달려가더니, 떠나려는 닐리아 앞에서 뒹굴거렸다.
마치 자기와 계약해달라는 것 같았다.
“......”
이한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