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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8화 (108/687)

108화

키르민 교수는 혼란스러움을 달래기 위해 일단 질문을 더 던졌다.

“우레걸음 교수와는 어떤 이야기를 하니?”

“보통 오두막에서 재료 정리하고 텃밭에서 키울 것들을 이야기합니다만.”

키르민 교수는 들으며 ‘음’하고 소리를 냈다.

보아하니 우레걸음 교수는 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상당히 아끼는 게 분명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오두막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 법.

게다가 생각해보니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중 몇 명이 우레걸음 교수의 실험실에서 쓰는 시약을 들고 다니던 걸 본 적이 있었다.

아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우레걸음 교수한테서 받은 걸 친구들에게 나눠준 게 분명하리라.

‘우레걸음 교수는 워다나즈를 연금술 수제자로 생각하시는군.’

“번개걸음 교수와는?”

“마법학교 근처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에 대해 배우고, 다루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번개걸음 교수도 그런 거 같고...?’

키르민 교수는 이한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았다.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나무 정령이 깃든 지팡이였다.

저런 걸 줄 교수는 버드나무 교수밖에 없었다.

‘버드나무 교수도??’

덜그덕!

거추장스러운 소리를 내며 이한의 허리띠에 묶여 있던 표범 뼈 소환수가 뛰어내렸다.

이한은 애완동물을 혼내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못 쓴다! 당장 돌아와!”

그러자 불완전한 표범 뼈 소환수가 낑낑대며 다시 돌아왔다.

키르민 교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요즘 저 뼈 소환수가 말을 부쩍 안 듣네요.”

“저 소환수는 혹시 그거 아닌가?”

“아. 아시는군요? 모르툼 교수님께서 주셨습니다.”

“......”

흑마법까지!

키르민 교수는 황당해하며 속으로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대체 몇 명의 교수가 먼저 접촉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황당한 것도 황당한 거지만 한 가지 의문이 더 들었다.

‘저렇게 찾는 교수가 많은데 진짜 왜 배그렉한테 배우지?’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 입장에서는 배그렉한테 배우고 싶을 이유가 조금도 없을 것 같은데...

“교수님?”

“아. 미안. 미안. 소환수 때문에 잠시 다른 생각을 했다. 그 소환수가 말을 안 듣는 건 힘이 강해져서란다.”

“그렇다면 겁에 질리게 해서 말을 듣게 해야 합니까?”

“언데드는 거의 겁에 질리지 않으니 무리지.”

“?”

이한은 의아해했다.

그렇다면 모르툼 교수의 흑암관에서 이한을 보고 벌벌 떨던 언데드 소환수들은 뭐란 말인가?

‘음. 전공이 아니셔서 잘 모르시나보군.’

교수는 의외로 다른 전공에 대해 무지한 편이었다. 이한은 놀라지 않았다.

“너무 초조해할 건 없단다. 소환수가 강하다는 건 그 지능이 높다는 것. 지금은 강해지는 과정이라 말을 듣지 않지만, 다 강해지고 나면 정신도 같이 성숙해져서 말을 잘 들을 거란다. ...그런데 왜 언데드의 뼈가 이렇게 부족하지?”

“모르툼 교수님께서 학교 안을 돌아다니면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아...”

키르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모르툼 교수나 할 법할 생각이었다.

“그냥 주시기보다는 학생에게 재미를... 주시려고 한 거구나. 그렇지?”

“아... 예. 뭐.”

이한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키르민 교수는 확실히 사교능력이 뛰어난 모양이었다. 볼라디 교수라면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군’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래도 저 샤르칸은 정말 희귀하고 귀한 몬스터란다.”

“...표범 아니었습니까?”

“아차.”

키르민 교수는 멈칫했다.

모르툼 교수가 학생을 놀래켜주려고(물론 그걸 학생들도 좋아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준비한 선물을 자신이 실수로 말한 모양이었다.

“물론 표범이지. 표범.”

“......”

이한이 저런 말에 속을 리 없었다.

강의가 끝나게 되면 이한은 도서관을 뒤져서 샤르칸이 대체 뭐하는 몬스터인지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표범이 아니었어?’

혹시 주인을 죽이는 언데드 몬스터 같은 건 아니겠지?

이한의 시선을 느낀 표범 뼈 소환수가 신이 나서 뼈를 흔들어댔다. 이한은 일단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친절하게 대해주면 나중에 강해지더라도 주인의 목을 물지는 않을 테니까.

“어쨌든 모르툼 교수도 워다나즈 너를 참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모르툼 교수님께서는 모든 학생들을 좋아하시죠.”

이한은 진심이었다.

흑마법을 따로 들으려는 학생들이 없는 만큼, 모르툼 교수는 가이난도마저 총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죽하면 흑마법사들 잡으려고 흑마법 배우러 온 기사도 강의를 잘 듣고 있겠는가.

“마법사는 재능 없는 제자를 좋아하지 않지. 아무리 친절한 마법사라도.”

키르민 교수는 이야기에 나온 교수를 다시 한 번 세어보았다.

나오지 않은 교수들까지 더하면 정말 많았다.

이쯤 되면 워다나즈 소년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벌써 저렇게 가르침을 전수하고 있는 교수들이 호락호락 물러설 리는 없을 테고, 워다나즈는 모든 강의에 불려다닐 가능성이 높았다.

안 그래도 배그렉 교수 때문에 심신의 피로가 지독할 텐데...

괜찮은 거 맞나?

‘으음. 고민이 드는데.’

키르민 교수는 재능 뛰어난 제자를 들이고 싶은 마음과, 안 그래도 힘든 제자를 자기까지 괴롭혀야 하는가 고민했다.

고민 끝에 키르민 교수 마음속의 저울이 전자로 기울었다.

“워다나즈. 혹시 괜찮다면...”

“참. 교장 선생님과도 따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고나달테스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마법책을 받았습니다. 혹시 괜찮은지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한은 선량해 보이는 키르민 교수의 힘을 빌려서 교장의 사악한 마법서를 좀 탐색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역효과였다.

키르민 교수는 경악한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하필이면 걸려도 학교 제일의 미치광이한테 걸리다니.

“...그건 힘들겠구나. 하지만 힘내려무나!”

“???”

키르민 교수가 이한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응원의 말을 하자, 이한은 살짝 당황했다.

왠지 목소리에 담긴 뉘앙스가 이상했던 것이다.

약간... 그... 교수 밑에서 일하게 됐을 때 선배가 ‘힘내라!’하고 동정의 눈빛으로 말하던 뉘앙스와 비슷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환상 마법에 대해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몰라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워다나즈. 넌 환상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

이한은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는 키르민 교수의 모습에 한 번 더 당황했다.

‘왜 이러는 거지?’

‘힘내라. 워다나즈. 널 응원해줄 테니.’

*         *         *

이한은 이 마법학교의 학생들이 반응이 좀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들 나이가 어리긴 해도 기본적으로 성인 취급 받는데다가 각자 다양한 신분과 배경 속에서 자라온 만큼 훨씬 성숙한 것이다.

<기초 마법의 이해> 강의도 그랬다. 모르툼 교수가 들어왔을 때 학생들이 얼마나 심심하게 반응했던가.

물론 소환마법 때는 좀 달랐지만 그건 예외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 제가 가려는 계단에 맨날 환상 마법이 걸려 있어서 나아갈 수가 없는데 이걸 해제하거나 뚫는 방법이 없을까요?”

“검은 빵에 환상을 걸어서 꿀을 바른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까?”

“환상을 이용한 침입자 방지 결계를 휴게실에 걸고 싶은데 혹시 워다나, 아니, 다른 1학년이 뚫을 수 있을까요?”

그냥 흑마법만 인기가 유난히 없는 거였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마법 분야에 다 강한 관심을 보여줬다. 환상 마법만 해도 벌써 질문이 다섯 번째 나오고 있었다.

키르민 교수는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자. 자. 질문에 다 대답해주다가는 하루를 다 써도 모자랄 테니,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고 환상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 간단하게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키르민 교수는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있었다.

뜬금없는 침묵이 계속되자 학생들은 당황스러워했다. 가이난도가 속삭였다.

“왜 저러시는 거지?”

이한은 키르민 교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 환상인가?’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이한과 같이 강의실에 들어와서 가르시아 교수와 말하고 나서부터 한 번도 바꿔칠 기회가 없었는데, 학생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환상과 진짜 자신을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 위화감을 인지하기 시작하자 이한은 갑자기 주변이 다르게 느껴졌다.

볼라디 교수의 살인미수, 아니, 강의에서 한 번 번개 원소의 움직임을 깨닫자 그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마법에 있어서 깨달음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영감이었다. 이한은 자기와 가이난도 앞의 책상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서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가이난도. 네 앞에 교수님이 있다.”

“뭐?! 마비되시오!”

가이난도는 깜짝 놀라 저주부터 날렸다. 괜히 흑마법의 수재가 아니었다.

물론 키르민 교수가 1학년의 저주에 맞고 쓰러질 사람은 아니었다. 키르민 교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저주를 되돌려보냈다.

팟!

가이난도는 하급 마비 저주를 맞고 뻣뻣해져서 옆으로 넘어졌다.

“찾아낸 건 잘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저주를 날리면 안 되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한은 대신 사과했다. 가이난도는 뻣뻣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이난도는 정말 흑마법에 재능이 있나?’

원래 몸의 한 부위도 마비시키기 어려운데 아무리 자기 자신한테 쐈다지만 저렇게 전신을 멈추게 만들 줄이야.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키르민 교수는 원래 환상과 다시 위치를 바꿨다. 가이난도는 마비 저주를 풀어달라고 속으로 외쳤다.

“방금 본 것처럼, 나는 너희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간단하게 파고들었지. 이런 게 환상 마법이 보여줄 수 있는 거야. 투명해지고, 투명 속에 숨어 있는 상대를 간파하고, 환상을 만들어서 적을 혼란시키고.”

키르민 교수는 행동거지부터 시작해서 확실히 화려한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벌써 홀린 표정이었다.

이한은 모르툼 교수의 흑마법이 떠올라서 괜히 마음이 다시 짠해졌다.

“하지만 물론 너희 신입생들은 간단한 기초부터 해야겠지? 뛰어난 마법사는 예리한 관찰력을 갖고 있어. 옆에 있는 학생들과 서로 쳐다보고, 달라진 게 있는지 깨달아봐. 위화감을 눈치 채는 건 환상을 깨닫는 가장 첫 걸음이야.”

키르민 교수는 다시 한 번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강의실 이곳저곳에 환상을 걸어놓았다.

학생들은 평소에 계속 보던 친구들의 모습이 무언가 조금씩 달라진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잠깐. 너... 입학할 때만 해도 이렇게 마르지 않았잖아.”

“못 먹어서 그런 거야. 멍청아.”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각 탑에서 환상을 눈치 채는 데 성공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왔다.

키르민 교수는 이 눈썰미 좋은 학생들을 칭찬해주고 다음 가르침을 전수했다.

“눈썰미만으로 위화감을 눈치 챌 수 있다면, <하급 환상 해제> 마법도 배울 수 있지. 여기 걸려 있는 환상을 해제해봐.”

이한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앞으로 나와서 환상을 쳐다보았다.

자물쇠 걸린 나무 상자의 환상이 학생들 앞에 놓여 있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키르민 교수에게 배운 대로 주문을 외우고 지팡이를 휘두르자, 나무 상자는 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

“환상 마법을 해제할 때 너무 방심하지 마. 환상 마법이 하나 걸려 있다는 건 주변에 온갖 경계가 걸려 있다는 뜻이니.”

키르민 교수는 학생에게 충고하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지팡이를 들고 나무 상자의 환상을 조준했다.

환상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제 현실은 어떨지 정확히 머릿속에 그린 뒤, 주문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렀다.

“사라져라, 환상아!”

나무 상자의 환상이 그대로 사라졌다. 옆에 있던 황녀가 작게 박수를 쳤다.

그러나 키르민 교수는 칭찬 대신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한에게 말했다.

“워다나즈. 환상 마법을 그렇게 억지로 열심히 연습할 필요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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