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09화 (109/687)

109화

이한은 당황했다.

이한이 알고 있는 교수들의 반응 중에서 없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한이 잘못한 건 없었다.

‘마력이 많아서인가?’

이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력이 많아서 환상 마법을 익히기 어려운 겁니까?”

“아니?”

“그러면 혹시 컨트롤이 부족해서?”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에이. 그래. 말해줘야겠네.”

키르민 교수는 고민하다가 이한에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워다나즈. 지금 네게는...”

이한은 긴장했다.

교수가 보통 저렇게 진지하게 말할 때는 심각한 문제점이 나왔던 것이다.

가르시아 교수가 입학한 이한에게 마력과다증이라는 불치병을 선고했을 때처럼...

“눈독을 들인 교수가 너무 많아.”

“......”

이한은 황당했다.

마력과다증이야 그렇다 쳐도 교수과다증도 있나?

‘후자가 훨씬 위독해 보이긴 하는군.’

전자는 그럭저럭 살 수 있다면 후자는 생명이 위험해보였다.

“그게 왜...”

“잘 생각해봐. 그 교수들에게 배우면서 환상 마법까지 배우면 너무 힘들지 않겠어?”

‘아하.’

이한은 키르민 교수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감동받았다.

방금 말한 걸로 키르민 교수는 이 학교의 교수들 중 상위 인성 1%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저 정도면 가르시아 교수 옆의 자리를 줘도 될 것 같았다.

“아닙니다.”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마법을 안 들으면 모를까 이런 교수가 있는 강의를 안 들을 수는 없었다.

일단 친해져놔야 한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지금 힘들다고 안 들었다가는 후회하는 수가 생겼다.

아무리 친절한 교수라 하더라도 교수는 교수.

나중 가서 ‘교수님 이제라도 듣고 싶은데요’했다가는 ‘미안하군 자리가 없네’같은 말이 돌아올 수 있었다.

“들을 수 있습니다. 교수님. 저는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한의 눈빛은 열정으로 타올랐다. 결연한 표정에 키르민 교수는 놀랐다.

이 정도 열정을 보여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조각 같은 얼굴이 각오로 빛나자 한층 더 강한 인상을 풍겼다.

“정말 힘들 텐데.”

“괜찮습니다.”

“알겠어. 그러면 다음 모임 때부터 들어오라고.”

키르민 교수는 이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언제나 열정적인 제자는 스승을 기쁘게 만들었다.

워다나즈처럼 재능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힘들 테니 조심하고.”

“예.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더 이상 듣는 강의를 늘리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

키르민 교수는 묘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마치 불행한 운명을 예지한 마법사 같은 눈빛이었지만, 이한은 안타깝게도 눈치채지 못했다.

*         *         *

키르민 교수가 강의를 끝내고 나가자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했다.

일주일의 강의 중에서 그나마 과제로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는 건 천사 혼혈, 아니, 트롤 혼혈인 가르시아 교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르시아 교수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잠깐만요. 이번 주에 쪽지시험이 있어요.”

“......”

“......”

학생들은 상처받고 배신당한 것처럼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가르시아 교수는 미안해할지언정 물러서진 않았다.

“그러니 다들 준비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어떤 게 시험으로 나옵니까?”

한 학생의 질문에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마법의 기초를 배우고, 이런저런 마법의 분야에 대해서 알아보았죠. 거기에 대해 얼마나 잘 배웠나 물어볼 생각이에요.”

“하... 하지만 교수님! 저는 흑마법을 잘 모르는데...”

“소환마법도 물어보실 건가요?”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여기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주관이 뚜렷했다.

원하는 마법이 있는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다른 분야의 마법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가르시아 교수는 안심하라는 듯이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진정해요. 질문은 학생에게 맞춰서 각자 낼 테니까요. 적성이 맞지 않거나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질문은 내지 않을 거예요.”

안도의 한숨이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친구들과 같이 안심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잠깐.’

생각해보니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강의에서 나온 모든 분야의 마법에 다 참가하고 있었다.

...어?

설마 그러면...

‘난 설마 다 준비해야 하나?’

이한은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진정한 두려움을 맛보게 되었다.

*         *         *

화요일.

<기초 탈 것 훈련> 강의는 평소보다 조금 먼 들판에서 열렸다.

번개걸음 교수는 담뱃대에 불을 댕기며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저걸 봐!”

“너무 귀엽다!”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번개걸음 교수 뒤에 새끼곰들이 있었던 것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생김새의 새끼곰들은 다 자랐을 때의 모습을 잊을 정도로 귀여웠다.

학교에 찌들대로 찌든 학생들은 새끼곰들을 보고 나이에 걸맞은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그래도 우리를 생각해주시는구나.”

“맞아. 우린 이렇게 쉴 자격이 있어.”

몇 주 동안 과제와 강의로 힘들게 달려온 데다가 이제는 쪽지시험까지.

강의 하나 정도는 들판에서 뒹굴거리면서 보내도 벌 받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저번의 불타는 강아지와 달리 저 새끼곰들은 완전히 무해해보였다. 휴식이 확실했다.

“왔냐?”

“네!”

학생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평소보다 두 배는 밝고 기쁜 목소리였다.

“그래. 왔으면 쪽지시험 보자. 각자 말 갖고 와라.”

“?”

“????”

번개걸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당황했다.

“새끼곰은요?”

“새끼곰?”

번개걸음 교수는 담뱃대를 입에서 떼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 저 새끼곰들은 오늘 강의용이 아니라, 친구가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해서 맡아준 거다.”

“......”

학생들은 해골 교장을 만났을 때보다 더 실망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껄껄대며 웃었다.

“새끼곰하고 놀려면 나중에 몇십년은 더 지나고 은퇴해서 놀아라. 자. 말을 갖고 와라! 너희들이 얼마나 친해졌는지 보자!”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다음 시간에 하면...”

“원래 짐승들은 너희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굶주린 짐승이 너희들한테 덤벼들 때도 준비해달라고 부탁할 거냐? 움직여라!”

학생들은 불안과 초조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 마구간에 자주 방문하지 않는 학생들은 당연히 불안해했지만, 자주 방문한 학생들도 불안해하는 건 똑같았다.

-괜찮을까?

-저번에는 내 말을 안 듣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마구간의 말들은 흉폭하고 성질이 더러웠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한 학생들도 말을 완전히 풀어줬을 때 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한이 생각하기에 이한이 맡은 흰 말이 마구간에서 가장 성질이 더러운 것 같았다.

가장 덩치가 크고 가장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성질도 다른 말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끔은 진짜 말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우레걸음 교수가 자기 포션 먹인 거 아니야?’

하지만 흰 말에게 야성이 있다면 이한에게는 지성이 있었다. 이한은 나름대로 흰 말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냈다.

“자.”

이한은 바로 흰 말에게 마력 흡수의 쇠 팔찌와 허리띠를 채웠다. 흰 말은 푸드득대며 싫어했지만 이한은 완강했다.

채우지 않고 나가는 순간 흰 말이 어떻게 배신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푸흐흥. 푸흥.

흰 말은 교활하고 영리했다.

힘으로 이 미치광이 신입생한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자, 구슬픈 눈동자로 슬픈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이한은 흰 말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었다.

“미안하군. 어떤 협박이나 애원도 내 마음을 돌리진 못한다.”

-푸흐흐흥!

흰 말이 이한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몸에 찬 아티팩트들이 흰 말의 마력을 쭉 뺏어가고 있었다.

기운이 줄어든 흰 말은 이한이 고삐를 당기자 얌전히 끌려나왔다.

언젠가 두고보자!

“대단해...!”

“저 난폭한 말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이 흰 말을 데리고 나온 모습에 수군거렸다.

처음에 마구간에서 가장 사나운 말을 맡을 때만 해도 다들 워다나즈가 길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비웃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흰 말은 거짓말처럼 고분고분해져서 이한을 따르고 있었다.

타고난 기품을 가진 흰 말의 모습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과 오랫동안 어울린 것처럼 잘 어울렸다.

앙라고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워다나즈가 대단하긴 해.”

“...앙라고 미쳤냐?? 왜 갑자기?”

“섬에서 무슨 마법에 당한 거야?”

“아, 아니. 워다나즈 놈이 나쁜 것과 별개로 그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지!”

친구들이 경악하자 앙라고가 허겁지겁 변명했다.

“앙라고. 너 이상해. 워다나즈 욕도 안 하고.”

“워다나즈에게 정말 뭔가 당한 걸지도...”

“아니라니까! 워다나즈를 싫어해! 난 워다나즈를 싫어한다고!”

그러는 사이 이한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하나둘씩 말을 끌고 밖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아무래도 가장 성실하게 말을 돌본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많았다.

불사조 탑이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제법 있었고...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가장 적었다.

이한은 친구들이 부끄러웠다.

‘이런 게으른 놈들.’

이러니까 투탄타 가문의 살코가 귀족들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게으른 만큼 욕을 먹는 것도 당연했다.

번개걸음 교수가 해시계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말을 데리고 나왔으면 길을 따라 가라. 가다 보면 강이 나올 텐데, 거기서 물을 먹이고 돌아오면 합격이다.”

진흙투성이가 된 가이난도가 속삭였다.

“그냥 우물 물 먹인 다음 돌아와도 모르지 않을까?”

“참. 강가까지 안 끌고 갔는데 물 먹였다고 거짓말하는 놈이 있다면 강물에 처박아버리겠다.”

“......”

가이난도는 얌전히 머리칼에 묻은 진흙을 털어냈다.

“자. 그러면 시작해라!”

번개걸음 교수가 담뱃대를 탁탁 두드리며 외쳤다.

들판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말을 끌고 길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황녀 같은 학생들은 우아하게 말 위에 올라타 추종자들과 같이 천천히 길을 따라갔다.

말과 제법 친해진 다른 몇몇 학생들도 말 위에 타고 길을 따라갔다. 다른 친구들은 그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요네르도 말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러나 요네르는 올라타는 대신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말의 고삐를 끌고 걸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안 타?”

“탔다가 지칠 수 있어서.”

-푸흥!

흰 말은 이한의 배려에 고마워하는 대신 팔찌와 허리띠를 풀어달라고 히힝대며 항의했다.

이한은 무시했다.

‘걷는 게 안전하겠지.’

마력을 흡수해서 고분고분해지는 건 좋았지만, 동시에 체력이 약해질 수 있었다.

괜히 타고 갔다가 흰 말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한은 그냥 같이 걸어갈 생각이었다.

요네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의 고삐를 붙잡았다.

“요네르. 너는 타고 가도 괜찮은데.”

“나도 탔다가 말이 지칠까봐.”

밤색 털을 가진 요네르의 말은 감사의 울음소리를 내며 요네르에게 뺨을 부볐다.

요네르가 간지러워하며 웃었다. 이한은 갑자기 조금 슬퍼졌다.

‘왜 나는 정령도 말도...’

“그리고 친구잖아.”

“고마워.”

이한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쾅!

뒤에서 가이난도가 마구간 밖으로 튕겨나와서 데굴데굴 굴렀다. 친하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내려다가 날아간 것이다.

진흙 가이난도가 외쳤다.

“애들아! 기다려! 같이 가줄 거지? 우린 친구잖아!”

“출발할까?”

“그래.”

이한과 요네르는 매몰차게 출발했다.

친구는 아침에 같이 마구간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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