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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0화 (110/687)

110화

말을 타지 않고 같이 걸어간 요네르와 이한이었지만, 그게 생각보다 느리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말을 타고 간 학생들이 생각보다 앞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우와악! 우와와아악!”

앞뒤로 점프하는 말등 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는 흰 호랑이 탑 학생부터 시작해서...

다그닥다그닥!

“너희는 왜 다시 돌아오고 있어?”

“몰라! 내가 조종하는 거 아니야! 도와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말까지.

이한은 의외로 고삐를 잡고 걸어가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푸흥.

흰 말은 다른 말들의 난동에 아쉽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한을 등에 태운 다음 마구 날뛰고 싶었는데,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한은 주머니를 뒤져서 각설탕을 꺼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올려 흰 말 앞에 내놓았다.

-푸흥!

평소에는 온갖 지랄을 해대던 흰 말이었지만 간식을 줄 때만큼은 이한을 싫어하는 걸 멈추곤 했다.

이한은 속으로 흰 말을 욕했다.

‘이런 타산적인 짐승 같으니.’

옆의 요네르를 보니 둘은 정말로 친해진 것 같았다.

밤색 말은 요네르가 간식을 주지 않아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따랐다. 오히려 요네르가 지치는 걸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워다나즈!”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투탄타 가문의 살코와 그 친구들이었다.

“무슨 일이지? 잠깐. 다가오지 마라.”

“?”

이한은 일단 살코와 친구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너희들이 내 쪽지시험을 망칠 수 있으니까.”

“...안 해!! 워다나즈, 우리를 뭘로 보는 거냐!”

살코의 부하들이 분노했다.

그들은 이한과 달리 성적에 목을 매지 않았다.

이번 쪽지시험도 성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들인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였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 그러니 다가오지 마라.”

“다들 진정해라.”

살코가 친구들을 말렸다.

“원래 황금 광산 주변에서는 배낭을 뒤적거리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까. 워다나즈는 뛰어난 만큼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다. 푸른 용의 탑 내에서도 경쟁자들이 많겠지.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간다.”

“?”

요네르는 의아해했다.

아닌데?

“더 이상 다가가지 않겠다. 워다나즈.”

“그래. 투탄타. 무슨 일이지?”

살코가 말하기 전에 부하 중 한 명이 먼저 화를 냈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봐라, 워다나즈!”

이한은 멈칫했다.

순간 너무 많아서 뭐부터 골라야 할 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한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모르겠군. 뭘 말하는 거지?”

“지금 그 말한테 뭘 먹였지?”

“각설탕을 먹였다.”

“그래! 그걸 말한테 먹이면 어떡하나! 차라리 암시장에 갖고 와서 팔았어야지!”

“......”

-푸흥!

이한과 흰 말은 모처럼 한 마음이 되어서 황당해했다.

살코가 처음으로 부끄러운 듯이 헛기침을 했다.

“아니다. 워다나즈.”

“아니었나?”

“그래. 그런 이유일 리가 있나.”

살코는 친구에게 갈색 종이로 싼 꾸러미를 받아 이한에게 건넸다. 그 사이로 얼핏 내용물이 드러나보였다.

당근이었다.

“당근도 똑같이 좋아할 거다. 설탕은 구하기 힘든 희귀물자니, 설탕 대신 당근을 쓰도록.”

살코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이한은 듬직한 등을 가진 드워프, 아니, 엘프 친구를 불렀다.

“투탄타. 고맙다.”

“별 거 아니다. 다음에 암시장에 와라.”

“그래. 어렵지 않지.”

“체스도 한 판 두고 가도록.”

“......”

이한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살코를 쳐다보았지만, 살코는 이미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뭐... 설탕 아낄 수 있으면 나쁠 거 없긴 하지.”

아직 물자가 넉넉하긴 했지만 설탕 같은 건 귀한 물자가 맞았다.

당근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한은 당근을 들어서 흰 말에게 권했다.

-푸힝!

흰 말은 싫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한은 진지하게 다른 흰 말을 하나 구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마법학교에 흰 말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은데...’

잘 먹이고 덩치 키우면 얼추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         *         *

“!”

이한과 요네르의 눈에 저 멀리 강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몇몇 학생들이 말을 끌고 강가에 들어가 있었다.

황녀를 모시는 추종자인 흰 호랑이 탑의 로웨나가 이한을 보더니 말했다.

“워다나즈 님. 조심하십시오.”

“무슨 일이지?”

로웨나는 대답 대신 목검으로 강물을 가리켰다.

옆의 학생 한 명이 강가 근처에 말을 세우고 물을 마시게 하려고 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강물의 수위가 쭉 내려간 것이다.

“......”

“......”

이한과 요네르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진짜 너무하네!

“해결 방법을 찾았나?”

“더 깊숙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유속이 좀 빨라서...”

로웨나는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강은 절대 우습게보면 안 됐다.

허리춤까지만 물이 와도 균형을 잃을 경우 익사할 수 있었고, 그 물의 속도가 빠를 경우 더더욱 위험했다.

하물며 눈앞의 강은 가슴팍까지는 너끈하게 잠길 것 같은 강.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한이 오자 황녀는 쪼르르 달려왔다. 로웨나가 대신 말했다.

“황녀님께서 워다나즈 님이 오신 걸 반가워하십니다.”

“그냥 걸어 온 것 같은데...?”

황녀는 이한이 들고 있는 갈색 꾸러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근을 말한테 먹이고 싶은가?’

이한은 당근을 하나 꺼내서 내밀었다.

황녀는 받자마자 당근을 한 입 깨물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배신당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운 건 이한과 요네르였다.

‘말 먹이라고 준 건데...’

‘쉿.’

로웨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대신 물었다.

“어디서 나신 겁니까?”

“...검은 거북이 탑 친구가 아까 싱싱하다고, 먹으라고 주더군.”

“죄송하지만, 황녀님의 얼굴을 보니 덜 익은 것 같습니다만...”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농사에 서투른 것 같군. 하지만 성의를 생각해서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라고.”

“예. 선물 받은 것에 그렇게 말할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습니다.”

이한은 뻔뻔하게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물 조종 마법으로 강에서 물을 떠와보도록 하지.”

지팡이를 휘두르자 강물 위에서 거대한 물 덩어리가 솟구쳤다. 로웨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저렇게 빠르게, 그리고 저렇게 쉽게!

물 덩어리는 말의 입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혓바닥이 닿으려는 순간 물 덩어리가 증발했다.

“......”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너무하는군.’

이렇게까지 시험에 진심이어야 하나?

번개걸음 교수가 강물에 무슨 마법을 걸었는지는 몰라도, 말을 끌고 들어가지 않으면 먹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한은 배낭에서 길고 튼튼한 밧줄을 꺼냈다.

멍하니 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저게 왜 저기서 나와??’

저걸 어디서 구한 건지도 신기했지만 저걸 평소에 갖고 다니는 워다나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이걸 이용해서 서로 묶자.”

“!”

말과 사람을 서로 묶어서 들어간다면 강물이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견디기 쉬워졌다.

강가에 도착한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해볼 만한 일이었다.

“좋은 생각이야. 워다나즈.”

“같이 해보자고.”

학생들은 서로를 밧줄로 묶고 말들과 함께 들어갔다.

“조심... 됐다!”

“됐어! 해냈다고!”

강 안 깊숙이 들어간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말이 물을 마시려고 하자 강물의 높이가 내려가긴 했지만, 못 마실 정도로 내려가진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선두의 말이 꿀꺽꿀꺽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정말 쉽게 해결한 셈이었다.

이대로만 끝나라!

-푸흥.

흰 말은 가기 싫다는 듯이 투덜댔다.

“가서 물을 마시면 각설탕을 하나 더 주마.”

-푸르르...

이한의 말에 흰 말은 투덜거리는 걸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학생들은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가장 앞에 서고 있었다. 지금은 이한의 차례였다.

흰 말이 물을 마시는 동안, 이한은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볼라디 교수의 괴롭힘, 아니, 강의에서 눈을 감고 원소의 움직임을 탐지했을 때.

그 때 느꼈던 오싹함!

이한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상류 쪽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살이 살벌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번개걸음!”

친구들은 이한이 갑자기 교수의 이름을 왜 외쳤는지 알지 못했다.

그 안에 담긴 뜻이 욕이라는 것도.

“다들 피해!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뒤에 있는 학생들에게 피하라고 외친 다음 지팡이를 휘둘러서 거대한 물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대하고 두꺼운 물의 방패.

가능한 근처 강물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물의 방패!

순간 주변 강물의 수위가 내려갔다. 덕분에 뒤에 있던 학생들은 빠르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안쪽에 들어와 있던 이한은 빠져나가기에 늦은 상태였다.

상류에서 몰려나온 물살이 물의 방패에 정면으로 충돌해서 옆으로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물이 비산하고 다시 강물의 높이가 올라갔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견딜 만하다!’

애초에 이한은 물의 방패를 불러냈을 때부터 강물을 전부 차단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만 벌면 충분했다.

이한의 근처에만 물이 차오르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푸흥!

흰 말이 넘어져버렸다.

먼저 알아차리고 대비하고 있었던 이한과 달리, 뒤늦게 물살을 알아챈 흰 말은 갑자기 발목을 친 강물에 그대로 넘어져서 허우적댔다.

학생들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빠져나온 요네르는 황급히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붙잡았다.

“밧줄을 당기십시오!”

로웨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밧줄이 끊어져나갔다. 이한을 중심으로 양옆에 거세게 새어나간 강물들이 밧줄을 날려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이 없었다. 로웨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워다나즈 님! 혼자라도 빠져나오십...”

“......”

흰 말이 공중에 번쩍 떴다.

이한이 갑자기 새로운 마법을 깨닫고 흰 말을 공중에 띄운 게 아니었다.

...이한은 흰 말을 등에 업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의 방패가 위태롭게 이한의 주변을 감싸고 보호했다.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흰 말마저 이한의 기행에 당황한 것 같았다.

흰 말은 히힝대며 무슨 짓이냐고 따졌다.

“...지금 지랄하면 강물 바닥에 거꾸로 박아버린다.”

이한은 살벌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하고 장엄한 모습이었지만 이한의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쪽 신경으로는 물의 방패를 유지하고, 다른 신경으로는 전신에서 마력을 미친듯이 방출하고 있었다.

잉걸델 교수가 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전신에서 낭비되듯이 방출되는 마력이 극심해서 흰 말이 겁먹을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간이 먼저 탈진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한은 쓰러지지도 강물에 빠지지도 않았다. 간신히 얕은 물가까지 흰 말을 들고 나오더니 그대로 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원한과 분통이 섞인 외침을 터뜨렸다.

“번개걸음!!”

“???”

학생들은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이한이 왜 교수의 이름을 외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푸흐흥...

흰 말은 허겁지겁 일어서더니 이한에게 달려왔다. 이한의 상태가 괜찮은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속지 않았다.

“아무리 착한 척 해도 팔찌와 허리띠는 안 풀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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