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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3화 (113/687)

113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심지어 투탄타 가문의 살코도 그랬다.

저 금지된 흑마법 책이라면 워다나즈가 분명히 만족스러워 할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어... 어째서지? 워다나즈?”

“아! 이미 다 읽은 책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런...!”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묻고 답을 찾았다.

그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헛소문 퍼뜨린 흰 호랑이 탑 놈들을 모조리 징벌방에 가둬야 한다.’

헛소문이 신성한 배움의 터전인 마법학교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저 책을 어디서 찾은 거냐?”

이한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저주를 내뿜는 흑마법 책까지 발견할 줄이야.

“도서관 4층에 바닥없는 구멍 구역이 있는데, 거기서 발견했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 돋는군.’

마법학교의 도서관은 평화로운 지식의 보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1, 2층까지는 그래도 사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위층은 그냥 던전이나 미궁이라고 봐야 했다.

바닥없는 구멍 구역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갔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도서관은 왜?”

“우리는 학교의 지도를 완성하려고 하고 있다. 지도가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할 테니까.”

‘오...’

이한은 감탄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먹고 자고 카드놀이나 하는 동안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저렇게 건설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니.

‘우리 쪽 애들하고 바꾸고 싶군.’

“학교 안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책이 있을까 싶어서 찾다가 발견한 건데, 네 수준에 차지 않는 책이라니 아쉽게 됐군.”

이한은 오해를 풀려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니까.

“워다나즈. 그래도 한 번 읽기라도 해주면 안 되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고생해서 건진 책인데 이렇게 쓸모없는 취급을 받다니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이한도 원래라면 읽어주기는 했을 테지만...

“방금 상자 열었을 때 저 책이 저주를 내뿜지 않았나?”

저주 걸린 책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정체를 모르는 책 하나 읽자고 저주를 감당하는 건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인 것이다.

“너 정도라면 저주를 막아내고 읽을 수 있지 않나?”

“......”

이한은 순간 의심쩍은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들, 흰 호랑이 탑 놈들한테 사주 받고 날 암살하려는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

“아니었던 건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그들은 저주 때문에 오래 건드리지 못해도 워다나즈라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마력 흡수의 저주를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교수님께 부탁드려보면...”

“교수님이 이걸 그냥 두고 보시겠어?”

“잠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대화를 듣던 이한은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슨 저주라고?”

“마력 흡수의 저주. 이 책이 마력을 흡수하더라고.”

핏빛 표지를 가진 책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력을 흡수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 몇몇이 읽으려다가 마력 탈진 증상을 일으키며 쓰러졌던 만큼 상당히 까다로운 저주였다.

“...줘봐라. 한 번 읽어는 볼 테니.”

“역시 워다나즈. 괜히 겸손한 척 할 필요 없다. 네 능력은 이미 알고 있으니.”

“우린 능력이 있는데 쓸데없이 겸손해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헛소리를 들으며 이한은 상자를 열었다.

정말로 핏빛 책이 마력 흡수의 저주를 뿜어냈다. 이한은 마력이 조금씩 책으로 빨려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역시.’

마력 흡수의 팔찌와 허리띠를 차고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핏빛 책 하나 더 든다고 달라지겠는가.

이한은 놀라지도 않았다.

<기초 혈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

마법에 있어서 시약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법의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마법의 대가인 시약의 중요성 또한 올라가기 마련. 온갖 복잡하고 다양한 시약 중 마법사의 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시약이라고 할 수 있다. 혈마법은 이 피를 시약으로 삼아 마력을 증폭시켜 평소라면 사용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안전수칙을 말하려고 한다. 풋내기 마법사들의 혈마법 생존 확률은 채 5%가 되지 않는데, 다음과 같은 안전수칙을 지킨다면 생존 확률을 7%까지 늘릴 수 있다. 먼저 혈마법을 사용하기 전날에는 핏기가 진한 고기 요리를 먹고 일찍 자야 하며, 마법을 쓰기 전에 최대한 물을 많이 마셔야...

이한은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하나는 이게 흑마법 책이 아니라 혈마법 책이라는 것이었다.

둘 다 이름만 들어보면 사악하게 들렸지만 좀 차이가 있었다.

흑마법은 제국 유명 마법 계파 중 어엿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법이었고(인기는 좀 없었지만), 혈마법은 그냥 마법을 보조하는 비전에 가까웠다.

피를 사용해서 마력량을 증폭시키는 기술.

물론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어쨌든 기술은 맞았다.

정말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그리고 이한이 놀란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의 글씨체가 <기초 번개 원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비교해보니 제목도 비슷하군.’

볼라디 교수한테서 받은 <기초 번개 원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나 <기초 혈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 모두 제목도 비슷한데다가 글씨체도 똑같았다.

‘처음에는 볼라디 교수가 쓴 건가 했었는데, 볼라디 교수는 절대로 이렇게 상세하게 쓸 사람이 아니다. 누구지? 제자가 썼나?’

“어때? 워다나즈? 흥미가 생기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법서가 이한의 마음에 들지 안 들지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괜찮군.”

“!”

“역시...!”

검은 거북이 탑 학생 한 명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흑마법 책을 워다나즈가 싫어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겠군.’

이한이 이 책에 흥미가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 마법사들도 꺼려하는 위험한 비전인 혈마법에 도전정신이 생겨서...

는 당연히 아니었다.

이한은 혈마법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지금도 마력이 충분한데 뭐하러 피까지 사용해가면서 마력을 증폭시킨단 말인가.

이한이 관심을 가진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여기 평소에는 마력 요구량이 많아서 사용하기 힘들지만, 혈마법을 썼다는 가정 하에서 쓸 수 있는 마법들을 몇 개 소개해보려 한다. 대부분은 마력 요구량이 많아 제국에서도 실전된 마법이지만 그 효과는 결코 약하지 않은 마법들이니...

마법도 유행이 있고 인기가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이 사용해주지 않는 마법은 곧 잊혀져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마력이 많은 마법은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마력 소모 심한 마법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이한은 달랐다.

‘나한테는 오히려 마력 소모량이 많은 마법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마력 소모량이 많은 마법이라면 세세한 컨트롤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혈마법에는 별 관심이 없고, 혈마법을 써야 시전할 수 있는 마법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좋아. 같이 가주도록 하지.”

이한은 책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저주 걸린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품속에 집어넣는 모습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내심 경탄했다.

진짜 워다나즈 가문 출신은 대단하구나!

‘어렸을 때부터 저주를 맞아가면서 단련한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하지만 몇 개 더 조건이 있다.”

“말해봐라.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겠다.”

“나도 학교를 탐사하고 있는데, 노련한 도둑놈들... 아니, 노련한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방금 도둑놈이라고...?”

“잠깐. 워다나즈.”

살코가 동료의 질문을 끊고 끼어들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있지 않나? 굳이 우리의 도움까지 필요한 일인가?”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그야 실력이 비교가 안 되니까 그렇지...’

밖에서 온갖 범죄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vs평생 해온 거라고는 하인들 시켜서 뒹굴거리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가 똘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체면도 있으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법.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이한의 말에 살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 친구들을 부르지 않다니. 존중한다.”

밤에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잡히면 징벌방 행이었다.

그걸 아는 워다나즈였기에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을 부르지 않는 것이리라.

‘아닌데.’

“네가 탐사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겠다.”

“두 번째로, 너희들이 만들고 있는 지도의 정보를 공유 받고 싶다.”

“......”

고민하던 살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의 정보를 다른 탑 학생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워다나즈는 지도의 정보를 공유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무하딘 사제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한이 살짝 머뭇거리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긴장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어떤 요구를 하려길래 저렇게 망설이나 싶었던 것이다.

“...주방에서 발견한 식재료는 나도 나눠서 가져가겠다.”

“......”

“......”

겨우 그거 말하려고 지금 이렇게 뜸을??

*         *         *

저녁이 되자 도둑놈, 아니 학생들은 본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밤의 학교를 1번 이상 누벼 본 사람들.

덕분에 복장부터 시작해서 동작까지 여유가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워다나즈 님.”

도둑놈들 중에서 가장 프로 도둑놈인 랫포드가 반갑게 이한을 반겼다.

이런 일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랫포드를 부르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갑게 인사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닐리아는 안 왔나?”

“부르지 않았으니까요?”

랫포드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나중에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가진 환상을 더 부풀려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지하 주방에 가본 적이 있는 건 이한과 랫포드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설명도 이한이 하게 되었다. 가장 거친 신분을 가진 검은 거북이 탑 학생도 이한을 살짝 감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그 짧은 사이에 학교의 어디부터 어디까지 확인한 걸까?

“지하에는 식료품 창고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시설들이 있는데, 창고지기가 거길 지키고 있다.”

“창고지기?”

“눈을 가린 장님이지만 탐지 능력이 뛰어나. 한 번 마주치는 순간 따돌리거나 숨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살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한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워다나즈는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불가능한데 무슨 방법으로?

“너희는 도서관이나 다른 곳을 돌아다닐 때 발각될 경우 어떻게 따돌렸지?”

이한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한이야 투명화의 허리띠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방법들이 있었지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아닐 것 아닌가.

특별한 방법이 있나?

“한 명이 나서서 유인한 다음 잡혀갔다. 그 사이에 시선을 피했지.”

“......”

이한은 무식한 방법에 감탄했다.

무식하지만 효과적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있으면 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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