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4화 (114/687)

114화

일행은 능숙하게 본관 1층, 중앙 현관 뒤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학생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공간이 복도 옆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텅 빈 연회장이나 대형 홀의 모습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홀려서 쳐다보았다.

왜 저런 곳이 있는데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딱딱한 빵을 먹어야 하는가 생각하고 있으리라.

이한과 랫포드는 시선을 교환했다.

-절대 방심하지 마라.

-물론입니다.

랫포드는 도둑의 신조를 떠올렸다.

‘한 번 턴 곳을 다시 갈 때는 몇 배로 주의해야 한다.’

이한은 해골교장을 떠올렸다.

‘저번에 지하 통로가 뚫렸으니 분명 방어 시스템을 바꾸고 강화시켰을 것이다.’

저번처럼 인기척 없이 바로 지하로 들어가는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철컥.

아니나 다를까.

저 복도 멀리서 판금갑옷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보였다.

*         *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와 신입생을 착각하는 게 말이 되나?

-......

이한과 랫포드가 지하 물자 창고의 통로를 통해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게 발각되자, 창고지기는 교장한테 불려와 질책당했다.

하지만 창고지기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셔도 마력량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만.

-이런 미련한... 그래. 알겠다. 확실히 이렇게 말해봤자 바로 바꿀 수는 없겠지.

해골 교장은 창고지기의 태도에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번에 워다나즈를 놓친 것 때문에 질책하기에는 창고지기는 매우 유능한 존재였다.

단순히 지하 창고의 물자를 관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설과 설비 보수, 유지, 관리 등 각종 잡무를 책임지고 있는 존재.

거기에 가끔씩 순찰을 돌면서 야밤에 돌아다니는 불운한 학생들까지 잡아내는 만큼 이번 실수 한번으로 더 질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이번 실수는 해골 교장이 보기에도 어쩔 수 없는 실수였다.

마력으로 침입자를 구분하는 창고지기 앞에 하필이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 같은 별종이 등장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소환수를 빌려주겠다. 너무 마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도 침입자를 확인하도록.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을 발견하면 절대 놓치지 말고. 꼭 징벌방에 보내야 한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냥 하라면 좀 하면 안 되나?

어쨌든 해골 교장과의 대화 이후로, 창고지기는 본관 뒤편과 지하의 경계 수준을 확실히 올려놓았다.

학생들은 생쥐나 개미와 하는 짓이 비슷했다.

한 번 통한다는 걸 알고 나면 그 이후로 계속 그쪽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더더욱 학생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줄 필요가 있었다.

이쪽으로는 꿈도 꾸지 마라!

해골 교장이 빌려준 소환수들은 겁도 없이 들어온 학생들을 확실하게 붙잡아 줄 터.

창고지기는 오늘도 정해진 길을 따라 돌아다니며 점검을 시작했다.

*         *         *

“걸어 다니는 갑옷이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공포에 질려서 속삭였다.

“아는 놈인가?”

“만난 적 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치가 떨리는 표정이었다.

저 걸어 다니는 갑옷 때문에 몇 명의 학생이 잡혀갔던가.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게 아닌 만큼 거세게 공격해도 주섬주섬 다시 갑옷을 모아 일어나고, 간신히 발을 묶는다 하더라도 곧바로 동료를 불러왔다.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잡을 방법이 있나?’

들어보니 저번 모래사장의 주인 조르반 2세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환수였다.

살아 있지 않은, 무생물 타입의 소환수.

하지만 살아 있지 않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일정 이상의 데미지가 들어가면 소환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역소환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나마 효과적인 게 번개 원소 마법 같은데, 지금 썼다가는 좀...’

싸워서 이기냐 지냐가 아니라, 싸우는 순간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손해였다.

하물며 번개 원소 마법 같은 시끄럽고 번쩍이는 마법을 썼다가는 ‘저희 왔습니다!’하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터.

‘피하는 게 낫겠군.’

“아직 발견 못한 것 같은데, 피하는 게 낫겠군. 놈이 잘 쫓아왔나?”

“잘 모르겠다. 때에 따라 달라서...”

이한은 일단 일행과 함께 물러서기 위해 돌아섰다.

철컥.

그러나 어느새 또다른 판금갑옷 하나가 저 멀리 뒤에 나타나있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놈들을 유인할...”

“옆으로!”

이한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복도에 들어왔을 때부터 만약의 경우 열려고 눈여겨봤던 문이었다.

예전에는 강의실로 쓰였던 것 같은 낡은 공간이 나타났다. 의자와 책상 뒤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잡동사니 중에 쓸만한 게 없나 훑어보았다.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다들 갑옷이 이 안으로 들어오면...”

“알고 있다. 워다나즈. 흩어져서 도망치라는 거지? 누가 잡히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났을 때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흩어져서 도망친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벌써 이 원칙을 숙지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마법 쏴서 쓰러뜨릴 테니까 놀라지 말고 도망치라고. 아마 엄청나게 시끄러울 테니.”

“......”

당당하게 판금갑옷을 쓰러뜨릴 이야기를 꺼내는 이한의 모습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생각했다.

‘잘 데리고 왔구나!’

저렇게 판금갑옷을 일단 쓰러뜨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정말 데리고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덜컹!

“?”

뒤의 잡동사니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네가 건드렸어?”

“아니... 너는?”

종이와 깃펜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글자를 새겼다.

-조용히 하지 못해, 신입생들?

“유... 유령이다!”

-유령이 아니라 선배다. 이 멍청한 신입생들아.

종이에 새겨진 글씨에 학생들은 떨던 걸 멈췄다. 그렇지만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았다.

“선배면 왜... 그러고 있는 겁니까?”

“맞아요. 얼굴을 보여주세요.”

-미친 소리 하지 마. 난 징벌방에 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 이것도 엄청나게 위험한데!

“...?”

이한은 순간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 1학년하고 접촉하면 교장이 징벌방에 보내나.’

해골 교장이라면 너무나도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선배와 접촉한 학생들이 몇 명은 나왔을 터.

-어쨌든 목소리 낮추고 필담으로 대화해. 저 갑옷한테 들키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신입생이 마법을 써서 쓰러뜨린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고!

이름 모르는 선배의 말에 이한은 살짝 반성했다.

그렇게 무리였나?

“번개 원소 마법을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번개 원소 마법을 쓸 줄 안다고?

상대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글씨체가 떨렸다.

-그래도 주변 시끄러워지니까 하지 마라. 나까지 잡혀간다고.

이한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지금 이렇게 선배를 만난 것이 상당히 귀중한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 먼저 들어온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또 언제 이렇게 오겠는가.

“선배. 저 갑옷은 어떻게 따돌릴 수 있습니까?”

“선배. 여기서 주방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는 게 가장 좋...”

“선배.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시험 뭐 나옵니까?”

갑자기 쏟아지는 질문에 선배는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니들 질문 대답해주러 온 사람이냐! 당장 가만히 있지 못해? 저 갑옷이 어떤 갑옷인지도 모르면서...

이한은 친구들을 말렸다.

괜히 선배를 자극해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못 들으면 손해였던 것이다.

“다들 진정하고 선배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선배. 저 놈은 어떤 놈입니까?”

걸어 다니는 갑옷은 해골 교장이 종종 사용하는 소환수였다.

살아 있지 않은 만큼 하루 종일 학교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데다가 열을 감지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어 불운한 학생들을 족족 잡아내는 악명 높은 소환수!

하지만 학교가 가혹하게 굴수록 학생들도 거기에 맞춰 진화하기 마련.

학생들도 몇 가지 요령을 갖고 있었다.

-화염 마법으로 교란하거나, 열을 띠고 있는 환상으로 속이거나, 열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두껍게 덮거나... 여기 강의실은 내가 환상을 걸어놨어. 문을 열고 봐도 갑옷들은 눈치를 채지 못할 거다. 하지만 소리를 시끄럽게 내면 그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제발 다들 입 다물고 있어!

‘아. 그래서 위화감이 느껴졌던 건가.’

이한은 혼자 납득했다.

아까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미묘하게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달라진 게 없어서 착각했나 했는데, 적당한 열만 감지되게 해놓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군.’

이한은 좋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며 기억해뒀다. 앞으로 학교를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을 텐데, 도움이 되리라.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저도요.”

-너희가 눈치 챌 정도면 그게 환상 마법이겠냐?

깃펜이 빠르게 움직이며 글씨를 남겼다. 어쩐지 글씨에 자부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선배는 여기에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

“???”

-...주방에 가고 있었다.

“잘 됐네요! 저희도 주방에 가고 있었는데.”

“그런데 선배는 왜 주방에 가려고 하셨던 겁니까?”

선배는 다시 침묵했다. 이한이 물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 것 아닌가?”

“에이. 워다나즈. 설마 그렇겠어.”

“맞아. 신입생도 아니고 선배인데...”

-...맞다. 주방에 숨겨 놓은 시약이 있는데, 그 시약이 필요해서 그런 거다.

선배는 서둘러 변명을 남겼다. 다른 학생들은 ‘역시’하며 감탄했지만, 이한은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아닌 것 같은데.’

-갑옷들이 전부 지나갔다. 이제 움직이자.

“혹시 갑옷을 속인 환상 마법을 배울 수 없겠습니까?”

이한은 물었다.

물론 기다리다보면 환상 마법 시간에 언젠가 저런 마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이한은 지금 당장 저게 필요했다.

걸어다니는 갑옷을 만났을 때 ‘내가 배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선배는 코웃음을 치며 글씨를 써내려나갔다.

-가르쳐준다고 해서 지금 신입생이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그래도 방법이라도...”

이한이 끈질기게 부탁하자, 선배는 귀찮다는 듯이 설명을 써내렸다.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

이 마법이 지금 걸어다니는 갑옷들을 속인 마법이었다.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라는 주문에서 알 수 있듯이 열이 담긴 환상을 소환해내는 마법.

선배는 이 마법으로 강의실 내부의 풍경을 바꾸는 대신, 적당한 열기만 장막처럼 펼쳐 놨다.

이것만으로도 걸어 다니는 갑옷의 시선을 피하기에는 충분한데다가, 환상까지 같이 소환해내는 건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굳이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신입생은 못 할 걸.’

이렇게 순순히 알려준 것도 신입생이라면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력을 다루는 법부터 시작해서 쓸 수 있는 마력량까지 전부 다 부족한데 어떻게 이 마법을 쓰겠는가.

괜히 거절하는 것보다 알려주고 빠르게 포기시키는 게 빨랐다.

-신입생들, 빨리 주방으로...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주문과 함께 환상이 이한 일행을 감쌌다.

밖에서 보는 선배의 눈에는 이한 일행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처음 시전하는 거라 이한은 이게 잘 걸린 건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 걸린 겁니까?”

-...환상의 미감이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색감이 약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도 모르게 트집을 잡던 선배는 스스로가 하고 있는 짓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이게 무슨 추한 짓이란 말인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