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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5화 (115/687)

115화

파하이트의 환상 마법 시리즈는 다른 환상 마법보다 난이도가 있는 마법이었다.

단순한 환상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열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만큼 당연히 난이도가 올라갔다.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은 환상에 어울리는 온도를 조절하는 정도에서 끝나지만, 중급이나 상급까지 가면 실제로 침입자를 공격하는 환상을 불러낼 수도 있었다.

‘침착하자.’

선배는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추하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추슬렀다.

신입생이라고 꼭 마법에 실패하란 법은 없었다. 운 좋게 그 마법이 적성에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보니까 화염 원소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같군. 내가 맞춰보지. 가르시아 교수님의 수업 때 화염 원소에 재능을 보였지?

“교수님께서 화염 원소 마법은 금지하셨습니다만.”

-......

선배는 할 말을 잃었다.

재능이고 뭐고 떠나서 대체 뭘 했길래 화염 원소 마법을 금지당했단 말인가?

‘이 자식 뭐지?’

*         *         *

일행은 일단 주방으로 이동했다.

걸어다니는 갑옷이나 창고지기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체불명의 선배는 종이와 깃펜을 흔들며 일행을 앞으로 안내했다.

주전자 문양이 새겨진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여기가 지하 ‘주전자’ 주방이야. 학교의 다른 주방에 비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곳이지. 술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술이 중요한가?’

뭘 그런 걸 아쉬워하냐는 이한의 생각과는 달리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술이 없다니...”

“정말 너무 아쉽다.”

“주방에 술이 없어도 되는 거야?”

친구들이 보여주는 술에 대한 강한 열망에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뭐 저런...’

배우러 왔지 술마시러 왔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혹시 술이 없나 미련에 차서 주방을 뒤지고 있는 사이 선배는 이한을 불렀다.

아까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에서는 추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는 좀 선배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헐벗고 굶주린 신입생들에게 학교의 숨겨진 장소는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자. 날 따라와. 그리고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조심해.

“?”

-저 찬장을 열어보라고.

선배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하며 찬장을 열었다.

‘함정이라도 있나?’

고깃덩이를 잘라서 만든 햄과 소시지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소금에 절였거나 연기로 훈제한 소시지들의 모습에 이한은 고마워했다.

“이런. 감사합니다.”

-......

선배는 당황했다.

보통 신입생 때는 저런 거 하나 보면 눈이 뒤집혀야 정상이었다.

본인도 1학년 때 우연히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소시지 한 덩이를 손에 넣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도 않았다. 주머니칼로 대충 슥삭 잘라서 허겁지겁 삼켰었다. 지금도 그 소시지 맛이 기억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저 신입생 소년은 ‘제법 잘 만들었군’하면서 품평까지 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신입생이 보여줄 모습은 아니었다.

대체...?

“워다나즈. 필요한 재료를 찾았다. 와서 좀 도와주겠나?”

“그래. 알겠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솥 밑에 불을 붙이고 재료들을 모았다.

선배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뭐하는 거지?

“친구를 위해 영양식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학교는 주는 대로만 먹기에는 지나치게 혹독한 곳이었다. 신입생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알아서 챙겨먹어야 했다.

-...잠깐만. 잠깐만.

“?”

-지금 저건 그냥 요리가 아니잖아!

선배는 깜짝 놀라서 말리려고 했다.

평범한 요리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솥에 들어간 재료들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독특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연금술의 일종이었다.

게다가 준비한 걸 보니 딱 봐도 과정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마법 주문도 필요할 것 같은데...’

-신입생이 할 만한 난이도가 아니야. 관두게 해!

‘그런가?’

이한은 살코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들은 이상 확인을 해야 했던 것이다.

“투탄타. 지금 이 요리가 평범한 요리가 아니라 연금술의 일종이라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살코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한은 살짝 안심했다.

‘저러는 걸 보니 믿는 구석이 있나보군.’

살코는 무모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

“알고도 이렇게 준비한 걸 보면 자신이 있나보군.”

“그렇다.”

그리고 살코는 이한에게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이한은 멈칫했다.

“...?”

“여기, 내가 최대한 자세히 기록한 가문의 비법이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

이한은 황당했다.

가문의 비법을 믿고 넘겨주는 살코도 황당하긴 했지만, 그보다...

그러니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믿고 있는 구석이 이한이었단 말인가?

‘이 자식들 과대평가가 너무 심하군.’

흑마법에 관한 헛소문이야 이미 너무 퍼져서 돌이킬 수 없다지만, 이건 전혀 다른 영역 아닌가.

“내가 연금술에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

“시아나 사제님께서 널 엄청나게 칭찬하시던데. 플레맹 교단의 사제님이 칭찬한 거라면 거짓이 없지.”

“워다나즈. 우리 앞에서는 겸손할 필요 없다니까.”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말했다.

이한은 앞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아부를 좀 덜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으음. 그런데 못 만들 것 같진 않은데.’

일단 이한은 투탄타 가문의 비법을 읽어보았다.

이것저것 재료가 까다롭고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못 할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다.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실험도 몇 번이고 해봤는데 굳이 이 정도에 겁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신입생이 할 만한 난이도가 아니라니까.

옆에서 선배가 깃펜으로 끼적거렸다. 이한은 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너 나중에 후회할 거다.

선배는 저 건방진 신입생이 연금술에 실패해서 솥 안에 든 액체를 뒤집어쓰길 기원했다.

원래 1학년 때는 그러면서 자신의 한계를 배우는 것 아니겠는가!

*         *         *

솥 안의 액체가 황금색으로 변하더니 거품이 점점 줄어들고 뭉근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살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워다나즈. 너라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한은 이한 본인보다 자신을 더 믿어주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의 모습에 떨떠름했지만, 일단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일단 잘 됐으니까!

물론 훈훈한 신입생들의 분위기와 달리, 옆에서 보고 있던 선배는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할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너 신입생 아니지?? 말해. 너 몇학년이야??

“신입생입니다. 선배.”

-너 같은 신입생이 어디 있어!

보통의 신입생은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을 한 번에 익히지 않았다. 주방 안에 있는 먹을 것들을 보고서 침착함을 유지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복잡한 연금술 과정을 진행하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보여주지 않다니.

“워다나즈는 신입생이 맞습니다. 선배.”

“맞아요. 왜 워다나즈한테 그러세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선배를 슬슬 의심쩍게 여기기 시작했다.

워다나즈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못한다고 하고...

일부러 방해하는 거 아니야?

선배가 그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선배는 억울함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쓰다니!

“그래서 투탄타. 다 된 건가?”

“그래. 이게 우리 가문의 비전, 맥주사탕이다.”

“???”

이한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장난스러운 이름과 달리 투탄타 가문의 비전으로 만들어진 맥주사탕은 상당히 진지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영양식이자 보존식이었다.

몇 달 동안 실온에서 보관 가능한데다가, 손가락 두 마디만한 크기의 맥주사탕을 먹으면 이틀 분량의 영양분이 해결이 되었다.

“한 번 먹어봐라. 워다나즈.”

이한은 조심스럽게 졸아든 맥주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이 약간 엿을 연상시켰다.

살코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력이 회복되는 것도 느껴지지?”

“...으, 으응.”

이한은 저번 마력 포션을 마셨을 때를 떠올리며 표정을 관리했다.

“그런데 왜 이름이 맥주사탕이지?”

“광산 아래에 갇힌 탓에 맥주 부족으로 고통 받던 우리 가문의 선조님들이 맥주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면서 그렇게 이름을 붙이셨지.”

“그렇군...”

정말로 아무 쓸모없는 유래를 들은 이한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맥주사탕을 잘라서 종이에 싼 다음 주머니에 넣었다.

원하던 요리도 만들었겠다, 이제 주방에서 챙기기 좋은 것들만 가지고서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아까 소시지가 어디 있더라?’

-큰일이ㄷ!!!

선배가 다급하게 깃펜으로 글씨를 썼다. 어찌나 급했는지 마지막 말은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았다.

“뭡니까?”

-창고지기가 오고 있어! 구석으로 피해라!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선배는 말과 함께 주문을 외웠다.

아까보다 훨씬 더 공을 들인 마법이었다.

요리로 인해 너저분해진 주방 안쪽을 가리기 위해 그럴듯한 환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창고지기를 이걸로 속일 수 있습니까?”

-나도 몰라! 조용히 하고 있어!

선배의 긴장은 다른 학생들한테도 전염되었다.

이한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주방의 문을 지켜보았다.

“...?”

그러나 복도를 걷고 있던 창고지기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한은 창고지기가 문 밖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느꼈다.

“마법을 씁니다!”

-마법을... 잠깐. 넌 어떻게 알았어?

선배는 깃펜을 쓰다가 당황했다.

본인이야 누가 오는지를 먼저 보기 위해 복도에 원견(遠見)용 소환물을 띄워놨다지만, 저 신입생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마력이 움직였으니 마법을 쓴 거 아닙니까?”

-그걸 여기서 감지할 수 있다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창고지기가 작정을 했나본데.

선배는 복도를 보고 당황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가야 할 창고지기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각 문에다가 마법을 걸어대고 있었다.

저 마법은...

‘공간 마법!’

선배의 안색이 납빛으로 변했다. 다른 계열의 마법이면 모를까 공간 마법이라면 깨기가 몇 배로 까다로웠다.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기로 악명 높은 마법.

그런 마법을 문에다가 걸어대다니.

‘왜 저러는 거야! 미쳤나!’

그냥 평소처럼 순찰하다가 별다른 이상 없으면 쉬러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은 왜 갑자기 문이란 문에다가 다 공간 마법을 걸어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창고지기가 사라지고 나서 선배는 문을 열고 주방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다.

그리고는 바로 주방 안으로 돌아왔다.

이한과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에게는 그저 문이 열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하시는 겁니까?”

-...직접 해보면 알 거다.

신입생들은 나갔다가 곧바로 들어왔다. 그들은 선배처럼 황당한 표정으로 문을 쳐다보았다.

-문의 공간을 꼬아놓은 거다. 창고지기의 마법이지.

“선배는 해결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없다. 우린 망했다.

선배의 글씨에 이한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이렇게 징벌방에 들어가게 되는군.”

“미안하다. 워다나즈. 우리 때문에 괜히.”

“됐다.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나중에 약속이나 지키도록. 물건을 뺏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다들 잘 숨기고.”

-......

징벌방에 들어가기 직전인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이한의 모습에, 선배는 경악했다.

뭐 이런...?

-사실... 방법이 있긴 하다.

“앗. 그렇습니까?”

선배는 이 신입생 소년이 대체 무슨 상황이 닥쳐와야 당황할지 진지하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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