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19화 (119/687)

119화

“샘솟아라.”

주문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물 덩어리들이 형태를 갖추고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 인지> 마법은 단순히 마법사 주변의 공간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런 원거리 공격을 할 때에도 추가 효과를 부여했다.

원래라면 하나하나를 조종하느라 일정 개수 이상을 조종하기 힘든 물 구슬의 숫자를 대폭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마법을 조합시켜서 연계시키는 것 또한 마법사의 능력...

“......”

“......”

...이지만 이것도 마력이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더르규와 지젤은 비켈린츠에게 덤벼드는 것도 잊고 황당함과 놀라움이 담긴 시선으로 물 구슬들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놀랍다!’

비켈린츠는 반격하는 것도 잊고 가만히 서있었다.

원래라면 강한 마법사한테 시간을 주는 건 금기 중의 금기였다. 잠깐의 주문만으로도 전장의 상황이 뒤집힐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비켈린츠는 반격하는 대신 지켜보았다.

공격으로 흐름을 끊기에는 너무 놀라웠던 것이다.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학생이라지만 1학년이 저 정도의 마법을?

“잉걸델 교수. 마법학교의 1학년들은 다 저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오?”

비켈린츠는 그렇게 물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백양목 기사단 소속 마법사들을 꾸짖을 생각이었다.

이제 갓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1학년이 저 정도라면 백양목 기사단 소속 마법사들은 대체?

“아니요.”

“아닙니다.”

“절대 아닌데요.”

잉걸델 교수뿐만 아니라 더르규와 지젤도 정색하고 말했다.

쉭!

그 순간 이한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허공에 생겨난 물 구슬들이 제각각 다른 궤도와 다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한 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 모습은 볼라디 교수가 보여준 매직 애로우 컨트롤과 비슷했다.

다량의 투사체들을 공격적으로 날린다는 점에서 볼라디 교수가 보여준 정석을 닮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볼라디 교수한테 한 마디 해야겠는데.’

보고 있던 잉걸델 교수는 걱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이한이 볼라디 교수 밑에서 마법전투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건 여러 교수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알겠나, 잉걸델? 배그렉 교수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세. 그러니 어디 가서 내 이야기 하지 말게. 황제 폐하에게는 특히.

-하... 왜... 이한 소년이 볼라디 교수님한테... 재능이 독이 될 줄은... 아. 실례했습니다. 잉걸델 교수님에게 할 푸념이 아니었는데...

이 마법학교의 마법사 교수들은 아무래도 마법사 출신들이다보니 과격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지금 이한도 그런 교수들에게 배우다보니 닮아가고 있었다.

신입생이 너무 많은 수옥(水玉)을 공중에 띄운 것이다.

아무리 마력이 많다지만 저걸 일일이 조종하는 데에 소모되는 정신력도 상당할 터.

잉걸델 교수는 진지하게 볼라디 교수에게 찾아가서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너무 많은 물 구슬을 벌써부터 띄우게 하는 건 위험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해봐야지.’

이 마법학교의 교수들에게서 학생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잉걸델 교수 본인밖에 없었다.

*         *         *

이한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강하다!’

경지에 오른 기사가 보여주는 강함이란 이렇게 사람을 두렵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한이 느끼는 오싹함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이한 본인은 알 수 없었다.

만약 알았다면 잉걸델 교수한테 가서 ‘제발 볼라디 교수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주십시오!’하고 빌었을 테지만...

지금 이한은 비켈린츠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르규와 지젤이 양쪽으로 돌아가면서 덤비고 허공에서 물 구슬이 연달아서 들이닥치는데도 비켈린츠는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비켈린츠는 달려드는 물 구슬들을 모조리 베어서 떨어뜨리고 달려드는 두 검사를 튕겨냈다.

‘이거... <페르쿤트라의 하급 벼락>도 안 통하겠는데.’

지금 세 명의 학생이 버티고 있는 건 비켈린츠가 적극적으로 덤비지 않아서였다.

비켈린츠가 공세로 나서기 시작하면 지금 퍼붓는 연합공격은 순식간에 무너질 터.

상대가 여유를 부릴 때 어떻게든 데미지를 넣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이한도 원래 물 구슬로 승부를 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물 구슬은 그저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빈틈을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빈틈이 만들어지면 <페르쿤트라의 하급 벼락> 같은 마법으로 제대로 된 공격을 넣어보려고 했는데...

아예 빈틈이 만들어지지 않다니.

‘잉걸델 교수님은 대체 왜 저런 기사를 데리고 와서...’

불평과 별개로 몸은 움직였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향해서.

“나는 밤에 숨노니.”

이한은 작게 주문을 외웠다. 환상 뒤로 몸을 빼면서 주문을 외우자 이한의 몸이 투명해졌다.

꽤 떨어져 있는데다가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들로 인해 이한의 분신들이 여러 개 있는 만큼 비켈린츠는 눈치 채지 못했다.

‘이 정도까지.’

기껏 투명화 마법을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한은 그렇게까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상대의 감각이 두려워서였다.

볼라디 교수의 강의에서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뛰어난 마법사는 눈을 가리고도 마력만으로 주변의 상황을 탐지 가능했다.

뛰어난 기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정 거리 안으로 다가가는 순간 투명화 마법이 있더라도 바로 알아차릴 터.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이한은 숨을 들이쉬고 각오했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믿는다. 페르쿤트라!’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벼락이여!”

마력이 폭발하듯이 이한의 몸 중심에서 흘러나오더니 번개 속성의 마력으로 바뀌었다.

시전하는 순간 발사되는 1서클 마법 <번개 생성>에서는 불가능한 번개 마력의 축적(蓄積).

구(球) 형태에 번개 속성의 마력이 빠르게 쌓이고 사납게 날뛰며 쏘아져나갔다.

비켈린츠는 오늘 겪은 일 중 가장 놀랐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어느새 은신해서 다가오더니 뒤에서 번개 마법을 날린 것이다.

그것도 족히 4서클은 되는 것 같은 마법을!

4서클 마법을 신입생이 시전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속도였다.

평온한 공방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것과 격렬한 전장에서 마법을 시전하는 건 전혀 달랐다.

전자는 부담 없이 몇 번이고 천천히 시전해도 됐지만 후자는 긴장감과 압박감을 이겨내고 단번에, 빠르게 시전해야 하는 것이다.

신입생이 그런 악조건들을 뚫고 이렇게 빠르게?

백양목 기사단 소속 마법사들보다 오히려 나은 것 같았다.

‘워다나즈 가문...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소문이 오히려 과소평가 된 거였나!’

카카칵-!!!!

비켈린츠의 검에서 자색(紫色) 빛이 번뜩이더니 쏘아져 날아오는 번개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번개가 찢어져서 양 옆으로 튕겨나가고 바닥으로 꽂혀서 사라졌다.

번개가 꽂힌 흙이 시커멓게 타버리는 모습에, 번개가 가진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한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페르쿤트라. 다시는 믿지 않겠다!’

믿었던 마법까지 막혀버린 상황에서 ‘그래도 위력은 괜찮네’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한은 페르쿤트라를 욕했다.

더 최악인 것은 비켈린츠가 이번 기습으로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정말 감탄했소.”

비켈린츠는 검을 들어올렸다. 날카로운 검날에 번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켈린츠는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서있을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어린 신입생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실력을 보여주는 상대에게 이렇게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건 모욕이고 무례였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

이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미 수없이 겪은 상황들로 예상이 갔던 것이다.

“기사님 오해가 있는 것 같습...”

쾅!

말할 틈도 없이 비켈린츠가 발을 구르고 벼락처럼 쏘아져 나왔다.

이한은 본능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모이고 응축하여 폭발하라!”

*         *         *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굳이 스승에게 배우지 않더라도 마도서가 있으면 읽고 연습해서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였다.

물론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법사들이 쓰는 마도서라는 건 기본적으로 지식 전수가 목표가 아니라 마법사 개인의 자기만족에 가까운 것이다.

읽는 사람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배려가 조금도 없다!

온갖 암호와 추상적인 비유, 비뚤비뚤한 글씨와 저자만 알아볼 수 있는 축약과 인용 등등으로 가득 찬 책이 바로 마도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한이 <기초 혈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를 읽어도 읽어도 첫 장에서 막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이 이한이 본 책들 중 그나마 상세하고 자세히 쓰여 있는 책인데도 그랬다.

오랜 시간 책을 붙잡고 씨름한 덕분에 이한은 마법 하나를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초 혈마법과 그 응용에 대하여>

피블리쿠스의 위대하고도 엄청난 매직미사일에 대해서 모르는 혈마법사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뛰어난 혈마법 달인 피블리쿠스는 이 마법을 후대의 혈마법사들을 위해 만들었으니, 그 방법은 다음과 같도다...

<피블리쿠스의 위대하고도 엄청난 매직미사일>.

상당히 아이러니하고 거창한 이름이었다.

매직미사일은 쉽고 쉬운 1서클 마법.

오죽하면 용병들 중에서 매직미사일만 익히고 마법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일까.

그러나 <피블리쿠스의 위대하고도 엄청난 매직미사일>은 확실히 기존 매직미사일과 다르긴 달랐다.

기존 매직미사일과 차원이 다른 막대한 마력을 순간적으로 끌어내서 응축시킨다.

단순한 원리였지만 혈마법으로 마력을 증폭시킨 마법사한테는 더 복잡한 원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한처럼 넘치는 마력이 장점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한은 이 마법이 쓸만하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연구했다.

물론 이런 실전상황에서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쓰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끼기긱.

마력이 응축되면서 충돌하고, 불안정해질 때 나는 기묘한 소리가 났다.

이한은 당황했다.

‘뭐지?’

처음에는 마법이 실패한 줄 알았다. 그러나 실패한 게 아니었다.

응축된 마력이 이한의 의지에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

이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주문에 있었던 ‘폭발하라’.

원래 보통의 매직미사일이라면 ‘쏘아져라’나 ‘발사되어라’여야 했다.

그런데 ‘폭발하라’라니.

그 말은 즉...

‘애초에 발사하는 형태의 매직미사일이 아니었다!’

막대한 마력을 일부러 압축시켜서 불안정하게 만든 다음 지근거리에서 폭발시키는 마법!

이런 불안정한 매직미사일이 형태를 유지하고 날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마법은 애초에 발사하는 과정을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다.

이한은 혈마법사들을 욕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까지 시전한 마법을 포기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 폭발을 통제할 수밖에!

‘통제한다.’

*         *         *

달려드는 비켈린츠는 앞에서 번쩍이며 덮쳐드는 마력의 폭발을 목격하고 대경실색했다.

그 짧은 사이에 또 이런 마법을 시전하다니?

“흐읍!”

비켈린츠는 온몸의 근육에 마력을 순환시켜서 단단히 강화시키고 버텨냈다.

그렇게 짧은 사이에 시전했다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눈앞의 어린 적수에게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보냄과 동시에, 비켈린츠는 이한의 지팡이를 손에서 날려버렸다.

싸움이 끝난 게 확인되자 비켈린츠는 검을 허리춤에 꽂고 이한에게 다가갔다.

“혹시 백양목 기사단에...”

쉭!

이한은 목검을 뽑아서 찔렀다.

목검은 비켈린츠의 가슴팍 앞에서 멈췄다.

비켈린츠는 놀란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멀었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마법에 정신이 팔린 탓에, 지팡이를 날린 걸로 싸움이 끝난 줄 알았던 것이다.

비켈린츠는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졌소.”

이 어린 신입생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승리를 얻을 자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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