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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20화 (120/687)

120화

“...감사합니다.”

이한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비켈린츠에게는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어린 신입생을 배려해서 패배를 인정해준 것이다.

“혹시 백양목 기사단에 관심이 있소?”

“예?”

이한은 멈칫했다.

백양목 기사단은...

‘남는 게 명예밖에 없는 고달픈 직장 같은데.’

백양목 기사들이 들으면 화낼 소리였지만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본부에 머무르지 않고 명예와 신념을 위해 제국을 혼자 돌아다니는 만큼 그 고생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저는 아직 부족한데다가 기사로서는 더더욱 부족합니다.”

이한은 좋게 사양했다.

그러나 비켈린츠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들린 모양이었다.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는 진지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하지 않소. 물론 지금이야 더 배워야겠지만, 여기서 몇 년만 배운다면 백양목 기사단의 어떤 마법사보다도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기사단에서 일하는 마법사에게 기사로서의 능력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소.”

“......”

이한은 상대가 그냥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생각보다 진지하게 권하자 당황했다.

어...

어어?

“게다가... 기사로서의 능력도 부족하지 않소. 마법사로서 그 정도면 넘치도록 충분하지. 다른 기사들이 부끄러워 할 것이오.”

“자. 진정하시지요. 비켈린츠 님.”

잉걸델 교수가 비켈린츠를 말렸다.

“아직 신입생이지 않습니까? 미래를 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입니다.”

이한은 잉걸델 교수의 말에 감동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애초에 저 사람이 데리고 왔잖아.’

“맞는 말이오. 내가 흥분해서 너무 욕심을 부렸군.”

“무슨 말씀을. 제 제자들을 좋게 평가해주셔서 기쁠 뿐입니다.”

잉걸델 교수와 비켈린츠가 훈훈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다른 곳에서 싸움을 끝낸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이 걸어왔다.

“끝나셨습니까? 비켈린츠 님? 어떠셨습니까?”

“비켈린츠 님. 학생들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는 않으셨겠지요?”

“내가 졌네.”

“예!?”

비켈린츠는 뒤늦게 온 기사들에게 친절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알려주었다.

손으로 이한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말할 때마다 기사들이 감탄과 경외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자, 이한은 위험을 느꼈다.

‘이거...’

이한은 슬쩍 지젤 뒤로 피했다. 지젤은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훌륭했습니다.”

잉걸델 교수가 셋을 칭찬했다.

이한뿐만 아니라 다른 둘도 정말 고생이 많았다.

마법이 시전되는 동안 계속 비켈린츠의 발목을 묶으며 분투했던 것이다.

“만점입니다. 이기라고 부른 싸움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이길 줄이야.”

‘앗.’

이한은 그제야 이번 쪽지시험의 목표가 승리가 아니었다는 걸 떠올렸다.

비켈린츠가 너무 살벌하게 덤벼들어서 순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자들이 보여주는 예상 밖의 모습이야말로 스승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저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더르규는 괜히 같이 감동해서 외쳤지만 이한과 지젤은 좀 시큰둥했다.

‘백양목 기사단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적당히를 모르시나?’

백양목 기사단을 데리고 와서 갖다 붙인 순간부터 잉걸델 교수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너무하시네’가 된 것이다.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분들도 대련에 매우 만족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다른 동료들에게도 꼭 전하겠다고 하시더군요.”

“?”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꼭 불러달라고 하신 만큼, 예의상 하신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만족하신 겁니다.”

“...예. 그러신 것 같습니다.”

이한은 괜히 불안해졌다.

이거 설마 중간고사 때는 백양목 기사단장과 싸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

*         *         *

“......”

“이한?”

강의가 끝나고 이한과 함께 걸어가던 더르규는 친구가 발걸음을 멈추자 의아해했다.

“왜 그러지? 무슨 일이... 괜찮나?!”

털썩-

이한은 무릎을 꿇었다.

아까 사용한 <피블리쿠스의 위대하고도 엄청난 매직미사일>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으윽.’

이한은 이 마법을 1서클이라고 놓은 피블리쿠스라는 작자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1서클이란 말인가.

발사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 앞에 거대한 마력을 압축시켜서 불안정함을 유도하고 폭파.

원리라고는 그냥 마력을 모으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 파괴력과 위험성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마법사 바로 앞에다가 폭탄을 던지고 터뜨리는 셈이었으니...

이 마법의 안전장치는 하나밖에 없었다.

마력이 폭발할 때 마법사가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통제에 실패하면?

그러면 자기도 그냥 같이 맞았다. 정말 정신 나간 마법이었다.

‘혈마법사들... 제국에서 금지를 때려야 한다.’

나름 마력을 통제해서 충격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들어온 게 있었는지 시야가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그래도 덕분에 혈마법사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효율을 위해 안전장치를 다 빼버리는 놈들 같으니!

이한은 <피블리쿠스의 위대하고도 엄청난 매직미사일>의 이름을 <피블리쿠스의 정신 나간 마력폭발>로 바꿔 부르겠다고 다짐했다.

“이한! 죽으면 안 된다!”

“더르규... 그 정도는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이한은 옆에서 떠드는 더르규한테 말했다.

더르규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게 더 걱정이었다.

“더르규.”

“왜 그러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흰 호랑이 탑 놈들이 내 상태를 눈치 채면 안 되니까... 목소리를 낮추도록.”

“......”

더르규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전쟁터에 나간 기사단장이 보여줄 법한 비장함이었다.

‘넌 1학년이야 이한...!’

하지만 더르규는 이한이 하라는 대로 했다.

더르규가 보기에도 흰 호랑이 탑 친구들한테 이한이 약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다려라. 이한. 치유실로 데리고 가줄 테니까.”

더르규는 이한을 부축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흰 호랑이 탑 친구 하나가 둘을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훈련 중이다!”

“그, 그래?”

더르규는 필사적으로 이한을 데리고 치유실로 향했다.

*         *         *

“가벼운 마력 진탕 증상이군. 어떤 미친 교수가 마력 폭발을 1학년 주변에서 터뜨린 거지?”

이한이 눈을 떴을 때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르규와 치유실의 주인이 나누는 이야기였다.

“그...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교수가 보복할까봐? 참나. 제국의 다른 사람들은 우릴 왜 두려워하는지 모르겠군. 마법사들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치유실은 처음이군.’

다치는 일이 매우 많은 만큼 마법학교에도 양호실 같은 곳이 있었다.

저번 반마법주의자들과의 혈투로 쓰러졌을 때는 해골 교장이 직접 데리고 온 덕분에 치유실로 갈 일이 없었지만...

오늘 어쩌다가 이렇게 와보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평범했다.

깨끗하고 청결한 흰색 풍경에 침대들이 배치되어 있고 치유실을 담당하는 사람은 책 모양으로 더르규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

‘...?’

이한은 눈을 깜박거렸다.

치유실의 주인은 다시 봐도 책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공중에 펄럭거리는 책이 더르규에게 말했다.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마력 폭발을 지근거리에서 겪은 탓에 진탕 증상이 온 거다. 회복을 걸었으니 괜찮을 거다.”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로... 폭발이 터지고 나서도 한동안 멀쩡했는데, 갑자기 쓰러져서... 마력 관련해서 큰 문제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치유실의 책은 더르규의 말에 상당히 황당해했다.

“폭발이 터지고 나서도 한동안 멀쩡했다고?”

“예.”

“무슨 이런 무식한...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말도록.”

가까이에서 마력 폭발이 터지고 나서도 멀쩡해 보일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냥 정신력으로 버틴 것이다.

설명을 듣자 더르규도 황당해했다.

“말도 안 됩니다. 이한이 그렇게 지독하게 버틸 이유가... 음. 아닙니다.”

“......”

생각해보니 이한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한은 더르규에게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자, 책이 펄럭거리면서 다가왔다. 이한은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난 치유실의 악마다.”

“...예?”

“날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아... 그러셨습니까.”

이한은 말하는 책이 자기 자신을 악마라고 밝혀도 놀라지 않았다.

설령 놀라더라도 이제 평온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말할 수 있었다. 마법학교가 이한을 성장시킨 것이다.

“뭐냐. 재미없게... 다른 신입생들은 깜짝 깜짝 놀라는데.”

“제가 맞춰보겠습니다. 아마 치유실의 악마께서는 교장 선생님에게 잡혀서 강제로 여기서 근무하게 되신 거겠지요.”

“!!!”

말하는 책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대단하구나! 보통 영특함이 아닌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한은 손을 내저었다.

해골 교장과 몇 번 만나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추리였다.

물론 그 사정을 모르는 더르규는 매우 감탄하고 있었다.

“맞다. 고나달테스한테 소환되어서 붙잡힌 탓에 책의 형태로 여기서 근무하고 있지.”

말하는 책의 목소리에서는 불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더르규가 물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여기서 일하시는 것에 만족하시는 겁니까?”

“아니?”

“예? 그런데...”

“설마 내가 목소리를 즐겁게 내고 있다고 해서 불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둘의 대화에 이한이 끼어들었다.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태도를 불성실하게 할 경우, 교장 선생님께서 처벌을 가하시는 거겠죠.”

“대단하구나!”

치유실의 악마이자 말하는 책은 또다시 놀랐다.

신입생치고 너무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해줬던 것이다.

고나달테스의 괴팍한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치유실에서 툴툴거렸다가는 책장이 뜯겨나갈 확률이 높았다.

“너무 영특한데... 잠깐. 너 혹시 고나달테스가 변신한 건 아니겠지...”

말하는 책은 수상쩍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 감지!”

이한에게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에 말하는 책은 깜짝 놀랐다.

“고나달테스! 너 진짜!”

“아닙니다.”

“이한은 그냥 마력이 많은 것뿐입니다!”

더르규가 필사적으로 나서서 설득해 준 덕분에, 말하는 책은 의심을 멈췄다.

온갖 확인 마법과 탐지 마법을 그 이후로도 몇 번씩 더 쓰긴 했지만...

“저하고 계속 같이 움직였습니다. 절대 교장 선생님이 아닙니다.”

“좋아. 믿어주지. 하지만 신입생. 고나달테스는 네가 눈을 돌린 짧은 순간에 네 친구를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

“......”

더르규는 말하는 책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한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진짜 조심해야겠군.’

“하긴 고나달테스였다면 내가 마법을 쓰는 순간 정체를 드러냈겠지. 가만히 있을 작자가 아니니... 신입생. 미안했다. 사과하지.”

“괜찮습니다.”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하는 책의 치유 마법 덕분에 몸도 회복되었으니, 이제 슬슬 나갈 때가 된 것이다.

“잠깐. 이걸 받아라.”

말하는 책은 나가려는 이한에게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쥐어줬다.

“이게 뭡니까?”

“간단한 치료제지.”

“아... 다 나은 게 아닙니까?”

이한은 놀랐다.

몸 상태는 완전히 멀쩡해진 것 같은데, 아직 남은 게 있었나?

“아니. 그냥 자주 놀러오라고 준 선물이다.”

“......”

이한은 감사함과 찜찜함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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