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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22화 (122/687)

122화

‘아니. 이런 걸로 사람을 단정 지을 순 없다.’

유머감각이 조금 뒤틀려 있는 것 정도는 이 마법학교에서 사소한 단점에 불과했다.

이한은 눈앞의 교수가 가진 긍정적인 장점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재밌었습니다. 학교생활에 지친 제게 시원한 바람 같은 청량감을...”

두 번째로 다 푼 아산이 일어나서 다가오다가 이한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뭐가 재밌었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시험에서 재밌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달카드 가문의 아산이라고 합니다.”

아산을 발견한 알펜 교수는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흠. 안 그래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따라오게나.”

아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시험을 끝내고 시간을 벌었는데, 다시 교수와 이야기하면서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 이한은 아니었다. 이한은 아산이 핑계를 댈 틈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아산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아산. 마지막 문제는 어떻게 풀었지?”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0부터 대입하려고 써넣었다가 운좋게... 워다나즈 넌?”

아산은 ‘당연히 워다나즈도 나처럼 풀었겠지?’하는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그렇게 풀었지.”

다른 친구들이 물어보면 저렇게 대답해야겠다고, 이한은 그렇게 다짐했다.

해골 교장을 너무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         *

알펜 교수의 방은 상당히 고풍스러웠다.

책들은 먼지 하나 없이 꽂혀 있었고 방 안의 모든 사물들이 제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앉게.”

두 학생이 앉자 알펜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러 찻잔에 차를 채워줬다.

“두 학생은 이번 시험에서 1, 2등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들이지.”

“감사합니다.”

“실은 다음 주에 내 친구 중 한 명이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네. 제국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사귀었던 친구인데...”

조용히 듣던 이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제국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사귄 친구라면, 마찬가지로 제국 고관 출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친구가 방문할 때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솜씨를 보고 싶어하더군. 그래서 간단한 마법진 제작을 자네들에게 맡기고 싶네. 강의 시간에도 말한 적 있는 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

이한은 반색하고 아산은 질색했다.

무엇이 아쉬워서 추가 과제를 해야 한단 말인가.

성적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이건 내가 하면 되겠군.’

이한은 아산의 싫어하는 반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적도 이한이 좋은데다가 무엇보다 아산이 하기 싫어하지 않는가.

완벽한 기회였다.

“내 생각에는 달카드 군이 맡아주면 좋을 것 같네.”

“...?!”

이한은 놀랐다.

어째서?!

“제... 제가요? 워다나즈가 맡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산은 자신없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실력도 실력이고 굳이 저런 추가 과제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한은 속으로 아산을 응원했다.

‘힘내라. 아산!’

“그야 워다나즈 군은 지금 맡고 있는 게 너무 많지 않나.”

“......”

“......”

이한도, 아산도 할 말을 잃었다.

그건 그렇지!

“들어보니 다른 교수들한테 따로 시간을 내서 배우고 있을 정도로 열렬히 학문에 집중하고 있더군. 그런 학생을 방해할 수는 없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산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산도 양심이 있었다.

푸른 용의 탑 소속 학생이라면 저렇게 바쁘고 힘든 이한을 상대로 ‘그래도 네가 맡아줘!’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교수님. 저도 아산을 돕겠습니다.”

“그래도 되겠나?”

“예.”

“워다나즈...!”

아산은 눈가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감동했다.

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귀찮아 보이는 작업을 우정 하나만으로 도와주겠다니.

슥슥-

아산은 눈물을 소매로 닦아냈다.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유난히 눈물이 많아진 기분이었다.

“고맙다. 워다나즈.”

“별 거 아니다. 아산.”

이한은 아산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반드시 눈에 들고 말겠다.’

알펜 교수의 친구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반드시 눈에 들고 말리라!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두 학생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방에 혼자 남은 알펜 교수는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쉽군. 원래라면 워다나즈 군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재능이나 실력만 놓고 보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나중에 제국 행정관들에게 추천을 하고 싶을 정도의 인재였다.

뛰어난 두뇌와 학문에 대한 강한 열정.

분명 제국의 좋은 관료가 되리라.

그렇지만...

‘저렇게 뛰어난 인재는 관직이 아니라 학문에 집중하게 내버려두는 게 맞다.’

알펜 교수도 잘 알고 있었다.

적당히 뛰어난 두뇌는 제국의 관직에 걸맞지만, 정말로 뛰어난 두뇌는 제국의 미래를 위해 학문에 전념하게 해야 했다.

오랜 시간 관직에서 일한 알펜 교수가 이 학교에 찾아온 것도 제국 미래의 동량들을 조금이라도 키워내기 위해서였다.

전 관료로서는 아쉬웠지만, 교육자의 입장으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나도 최대한 도와주겠네. 학문에 전념하도록. 워다나즈 군.’

*         *         *

목요일.

연금술 수업을 듣기 위해 걸어가던 이한은 학생들의 얼굴이 피곤에 절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어제 몇 시에 강의실에서 나왔지?”

“자정 넘어서... 마법 안 풀리더라구.”

“......”

“대체 마지막 문제 정답이 뭐였어?”

요네르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720닢 말고 다른 정답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0닢.”

“응?”

“0닢.”

“왜?”

“그게... 그러니까...”

이한은 자신이 문제를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네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요네르의 눈동자에서 금속을 제련할 때 사용할 법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죽...! ...그래. 그거였구나. 그래.”

요네르는 간신히 진정했다.

이 학교에서 이런 걸로 일일이 화를 낸다면 버틸 수 없었다.

쫙쫙-

“?”

이한은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던 황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각종 수식과 숫자가 쓰여 있는 종이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어제 풀지 못한 탓에 오늘까지 계속 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괜히 미안하군.”

“왜. 네 잘못도 아닌데. 괜히 그러지 마.”

요네르가 이한을 위로했다. 메이킨 가문의 소녀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달카드하고 마법진을 하나 만든다면서?”

“응.”

“...그냥 달카드 혼자 하게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아?”

“야... 메이킨...”

지나가던 아산이 서운하다는 듯이 요네르를 쳐다보았다.

물론 요네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심지어 다른 탑 학생들도 동감했는지 요네르를 거들었다.

“혼자 하는 게 낫지 않나?”

“달카드. 워다나즈를 배려해줘야지.”

“......”

아산이 도와달라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결정한 거니, 다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황자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되나? 시간 널널해 보이던데.”

탕탕탕-

강의실에 들어온 우레걸음 교수가 솥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다들 반갑다. 굳이 내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오늘 뭘 할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학생들의 얼굴이 뾰루퉁해졌다.

같은 쪽지시험을 보더라도 우레걸음 교수는 조금 더 얄밉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우레걸음 교수는 껄껄 웃었다.

“자.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으로 들어와라.”

“?”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의 시험에 학생들은 웅성거렸다.

평소 하던 것처럼 다 같이 강의실에서 솥을 사용해 물약을 만드는 방식의 시험일 줄 알았는데...?

“왜 그러냐? 다들 줄을 서서 들어오라니까.”

“......”

학생들은 우레걸음 교수를 매우 수상쩍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줄을 섰다.

강의실 안쪽 문에 뭐가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대체 뭐가 있는 거야?”

“몬스터 있는 거 아닌가?”

“연금술 수업인데?”

“그러면 첫날에 미친 몬스터가 덤벼온 건 무슨 수업이었는데?”

“...그것도 연금술 수업이었지. 젠장.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학생들은 빠르게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지팡이를 붙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높게 느껴졌다.

‘설마 몬스터가 나오진... 않겠지?’

이한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친구들한테 과자를 건넸다.

“이게 뭐야?”

“맥주사탕. 마력 부족하면 먹어.”

친구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사탕을 챙겼다.

몬스터 상대할 때 마력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는 만큼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워다나즈. 들어와라.”

이한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몬스터가 덤벼 오진 않았지만, 이한은 방심을 풀지 않았다.

“...허리춤에서 손 떼도 된다.”

우레걸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물론 의심하는 건 좋은 습관이었지만 연금술 시험 보러 와놓고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는 저 자세는 뭐란 말인가.

검술 시험 보러 왔나?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믿습니다.”

“저번에도 말한 것 같지만 정말 믿는 놈은 그런 말을 안 한다니까. 자. 솥을 보고 옆의 재료를 봐라.”

이한은 솥을 확인했다.

그리고 옆에 놓인 재료들을 확인했다. 모두 다 처음 보는 재료들이었다.

“봤습니다.”

“그러면 방 안에 있는 재료들만 써서 이 물약을 만들어봐라.”

“?”

우레걸음 교수가 흔드는 유리병 안에 담긴, 찰랑이는 물약을 본 이한은 멈칫했다.

처음 보는 물약이었던 것이다.

“강의 시간에 가르쳐주신 적 있는 물약입니까?”

“아니.”

“어떤 물약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

우레걸음은 지금 상황이 너무 즐거웠는지 짙은 미소를 흘렸다.

뛰어난 연금술사는 임기응변에 능했다.

생전 처음 보는 재료들만 가지고서도, 정체도 모르는 물약과 비슷한 물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재료들의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 특성들이 일으키는 효과들을 머릿속에 완전히 집어넣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우레걸음 교수도 신입생들이 완벽한 물약을 만들 거라는 기대를 하진 않았다.

얼마나 많은 물약의 특성을 눈치 채고 거기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게 바로 이번 시험의 핵심이었다.

“자.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걸? 시간이 무한하지는 않잖냐.”

“으음.”

이한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금술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가장 뛰어난 축에 드는 이한이 움직이지 않고 계속 고민만 하자, 오히려 우레걸음 교수가 의아해했다.

‘뭘 고민하는 거지?’

빨리 재료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물약의 특성을 파악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고민만 하고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수님.”

“왜 그러냐?”

“방 안의 재료들이라면 뭐든 써도 되는 겁니까?”

“네가 갖고 있는 재료라도 쓰려고?”

우레걸음 교수는 코웃음을 쳤다.

어떤 재료를 갖고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마 별 소용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운 좋게 쓸만한 재료를 갖고 있다면 우레걸음 교수는 인정해 줄 생각이었다.

그 정도 행운이라면 뭘 해도 될 테니까!

“마음대로 해봐라.”

“알겠습니다.”

이한은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우레걸음 손에 있는 물약을 뺏었다.

우레걸음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너무 당황해서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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