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23화 (123/687)

123화

“그건 아니지!!”

“예?”

“내가 이 방 안의 재료들은 모두 써도 된다고 했지만, 물약을 뺏어서 그냥 제출하는 건 네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짓 아니냐!”

우레걸음 교수의 항변에 이한은 멈칫하더니 우레걸음 교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우레걸음 교수는 머쓱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러려던 게 아니냐?”

“아닙니다. 아니, 누가 그렇게 물약을 뺏어서 제출합니까? 교수님도 참...”

이한의 말에 우레걸음 교수는 머쓱해하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아니 이 자식이 힘으로 뺏어놓고 지금 누구보고 저러는 거야?’

다짜고짜 교수의 손아귀에서 물약을 뺏어간 주제에 갑자기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니 어이가 없었다.

제자가 나중에 제국제일검이 될 가능성만 없었다면 한 대 때렸을 것이다.

“그러면 왜 뺏어간 거냐?”

“물약을 조금 더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입니다. 교수님께 물약을 달라고 말해봤자 교수님께서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맞는 말이었다.

제자들이 달라고 해도 절대로 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맞는 말이라고 얄밉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레걸음 교수는 맞는 말을 하는 제자가 오늘따라 유독 더 얄미웠다.

“흥. 어디 잘 해봐라.”

우레걸음 교수는 팔짱을 끼고 이한을 노려보았다.

물약을 뺏어간 건 예상 밖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약을 똑같이 만드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물약을 손에 넣었어도 그 특성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인 것이다.

‘설마 무식하게 마시는 건 아니겠지...’

우레걸음 교수는 조마조마했다.

물론 영리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그럴 리는 없었지만, 저 소년이 가끔 미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대뜸 마셔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우레걸음 교수의 걱정과 달리 이한은 매우 정석적으로 접근했다.

‘저 방법은?’

이한은 유리병에서 물약 몇 방울을 꺼내 바닥에 늘어뜨렸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두르고 주문을 외웠다.

“성분이여. 분리되어라.”

‘저 마법을 익혔군!’

우레걸음 교수는 놀랐다.

<성분 분리> 마법.

물약 같은 것에 든 성분들을 강제로 분리시키는 마법이었다.

연금술사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편리한 마법이었지만 우레걸음 교수는 굳이 가르쳐주지 않았다.

뛰어난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찾아서 배우려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 법.

교수가 떠먹여주면 뛰어난 연금술사가 될 수 없었다.

이한은 그런 우레걸음 교수의 교육관에 걸맞게 알아서 도서관의 책을 뒤져서 마법을 익혀온 것이다.

그 모습에 우레걸음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얄미운 놈 같으니!’

우레걸음 교수는 이한이 마법에 실패해 매캐한 연기나 마시고 콜록대길 빌었다.

다행히 <성분 분리> 마법은 결코 쉬운 마법이 아니었다.

안에 있는 성분들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분리해내기 쉬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분리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마법이란 건 주문만 외울 줄 안다고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가 아니었다.

똑같은 마법이라 하더라도 그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의 지식과 실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억지로 마력을 무식하게 퍼부어 성분을 분리시키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주문을 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

우레걸음 교수는 뒤늦게 깨닫고 멈칫했다.

그리고 바닥에 늘어뜨린 물약 방울들이 천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         *         *

‘생각보다 잘 되는군.’

이한과 요네르는 지금 탑에서 누구보다도 연금술에 진심인 학생들이었다.

다른 걸 떠나서 랫포드가 훔쳐 갖고 나온 물약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성분 분리> 마법도 그 과정 중에 익히게 된 마법이었다.

저번에 연금술 책을 뒤적이다가 이름을 발견하고 다른 책들을 샅샅이 뒤져 간신히 주문을 익힌 마법.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법은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다.

물약 방울이 그보다 작은 여러 색의 방울들로 나눠졌다.

이한은 고개를 들고 우레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음. 잘 된 게 맞군.’

우레걸음 교수의 표정이 매우 못마땅한 걸 보니 잘 된 게 확실한 모양이었다.

“물약을 그렇게까지 분리한 건 칭찬해주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분리된 성분들을 알아낼 방법이 없을 테니까!”

“어. 이거 자신감의 물약 아닙니까?”

“????”

우레걸음 교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         *         *

이한보다 먼저 시험을 보고 나온 닐리아는 랫포드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색깔을 비슷하게 맞추는 데에 성공했어? 대단한데?”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전혀 비슷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은데...”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건 어느 누구도 완벽한 결과물을 낼 수 없는 시험이었으니 말입니다. 교수님께서도 과정을 보셨을 겁니다.”

랫포드의 위로에 닐리아는 기운을 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저번에는 나를 빼놓고 밤의 학교를 돌아다녔어?”

“......”

랫포드는 삐질삐질 진땀을 흘렸다.

“그...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게... 투탄타 가문의 살코는 자기가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부하들하고 같이 다니는 친구입니다. 저도 길잡이로 불려서 간 겁니다. 워다나즈 님도 모르고 오신 거고요. 저희끼리만 간 거였다면 당연히 불렀을 겁니다.”

“아. 참. 그랬지.”

닐리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리고 십분 정도 연금술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닐리아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래도 출발하기 전에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

“......”

랫포드는 자신도 모르게 문을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님 언제 나오시지?’

이건 랫포드가 설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한이 나와야 했다.

“어떻게 생각해? 응?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게... 살코가 성질이 좀 더러워서...”

랫포드는 원래 살코에게 크게 원한이 없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살코를 나쁜 놈으로 모는 수밖에.

“그럴 틈을 전혀 주지 않지 뭡니까...”

“저번에 섬도 그래. 기껏 다 준비했는데 흰 호랑이 탑 친구들하고 같이 가더라?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원래 난폭하고 비열하잖습니까.”

랫포드는 흰 호랑이 탑 친구들에게도 크게 원한이 없었지만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었다.

또 나쁜 놈으로 모는 수밖에.

“워다나즈 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

“예. 그러니까 이제 이 화제는 그만...”

“그래. ...내가 너무 투덜거렸어?”

닐리아는 투덜거리는 걸 자각했는지 물었다. 랫포드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닐리아는 다시 십오분 정도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 시험이 어땠느니, 과제가 어땠느니, 중간고사는 어떨 것 같다느니...

시험을 보고 나온 다른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도 대화에 끼어들어 의견을 내놓았다.

완전히 화제가 넘어간 것 같아서 랫포드는 안심했다.

“그런데 이건 내 이야기는 아니고 내 친구 이야기인데. 다른 탑의 친구들이 자꾸 자기를 잊고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구.”

“......”

랫포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은 진지하게 고민에 참여했다.

“역시 다른 탑이라 그런 거 아닌가? 다른 탑 놈들은 기본적으로 무례하거나 건방지거나 오만하잖아.”

“그나마 불사조 탑이 낫지.”

“흰 호랑이 탑 놈들은 진짜 재수 없어.”

랫포드가 어떻게 하면 화제를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이한이 문을 열고 나왔다.

랫포드는 이한이 며칠간 굶다가 손에 넣은 따끈한 수프처럼 반가웠다.

“워다나즈 님...!”

‘시험이 그렇게 힘들었나?’

이한은 랫포드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자 살짝 당황했다.

“무슨 일이지?”

“닐리아 씨한테 저번 일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십시오.”

“왜 그래. 랫포드. 난 다 이해했다니까.”

닐리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랫포드를 타박했다.

랫포드는 억울함에 입을 벌리고 닐리아를 쳐다보았다.

‘그게 다 이해한 사람의 행동입니까...!?’

이한은 닐리아와 랫포드를 쳐다보고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투탄타 가문의 살코와 밤의 학교를 누볐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닐리아. 살코가 좀 너무하더군. 부르려고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한사코 막는 거야.”

“!”

“?”

랫포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대화가 있었나?

“들어보니 너처럼 뛰어난 사냥꾼 출신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린다고 하더군.”

“그랬어?”

닐리아의 긴 귀가 쫑긋거리며 살짝 올라갔다.

이한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랫포드도 ‘왠지 그런 대화가 있었던 것 같다’싶을 정도로.

“요네르도 부르지 못하게 하더라고. 살코가 많이 너무하지? 그래도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말고. 자기 친구들을 위해서 한 짓이잖아.”

“...그래. 그러네!”

닐리아는 아까보다 확연히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귀의 각도도 훨씬 올라가 있었다.

랫포드가 작게 속삭였다.

“그런 대화를 하셨습니까?”

“쉿. 조용히 해라.”

“......”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이한을 보고 불렀다.

“워다나즈. 시험은 어땠어? 혹시 물약을 완벽하게 만들었어?”

“그럴 리가. 애초에 불가능한 시험이잖나. 실패했지.”

이한의 말에 다른 학생들은 안심했다.

가장 우등생인 이한도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까지 망한 건 아닐지도 몰라!

“다들 어떤 특성을 눈치 챘어? 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서 핀덴시스를 넣어봤는데.”

“그랬나? 나는 색 맞춰보려고 일단 비슷한 색 위주로...”

학생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한은 묵묵히 들었다.

그러는 사이 마지막으로 시험을 본 요네르까지 문에서 걸어 나왔다.

“다들 고생했다. 물론 너희들이 만든 물약들은 어디 가서 팔면 칼 맞을 수준이지만, 고생한 건 사실이니까.”

우레걸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째려보았다. 드워프 교수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시험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교수님!”

“최소한 저희가 배운 범위 내에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워다나즈도 실패했는데 이걸 누가 맞춥니까!”

학생들은 중간고사에도 이런 시험이 나올까봐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웃으면서 듣고 있던 우레걸음 교수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워다나즈는 거의 성공했는데 무슨 소리냐?”

“예?”

“거의 성공했다고. 사소한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면 성공이지. 최고점수다.”

방금까지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고개를 홱 돌려서 이한을 찾았다.

그러나 이한은 벌써 자리를 빠져나간 탓에 보이지 않았다.

우레걸음은 쯔쯔 혀를 차며 말했다.

“너희보다 공부 잘 하는 친구의 말을 믿다니. 참 순진하군 그래.”

“...크윽...!”

“워다나즈...! 믿었는데...!”

*         *         *

이한은 종이에 적어 놓은 것들을 읽어보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 마법학교의 신입생들은 물에 타 넣은 잉크 방울처럼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한은 가장 적극적으로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본관 서쪽 2층 유령 나오는 복도(미해결)-학교 쪽에서 쌓아 놓은 옷감 창고가 있다는 소문이 있음.

본관 지하 1층 자물쇠 걸린 감옥(해결)-교수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음. 절대 접근하지 말 것.

본관...

‘흥미롭긴 하지만 역시 첨탑에 있는 마구간으로 가는 길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다.’

종이 위에 이것저것 지도를 그리며 메모하는 이한을 본 가이난도가 물었다.

“너 근데 가르시아 교수님 시험은 괜찮냐?”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대충 다 준비했지.”

“......”

가이난도는 이한을 괴물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워다나즈 가문... 진짜 무섭다!”

“딱히 워다나즈 가문이랑은 상관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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