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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24화 (124/687)

124화

사실 워다나즈 가문과 별 상관없긴 했지만 가이난도는 완강했다.

“저런 습관은 워다나즈 가문에서 강제로 가르친 게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저렇게 공부할 리가 없잖아.”

‘넌 공부 좀 해...’

푸른 용의 탑 친구는 가이난도를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걸어가 버렸다.

가문 덕분에 성적에 그리 얽매이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가이난도는 그 정도가 조금 심했다.

공부에 열중하지 않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봐도 ‘그래도 저건 너무 노는 거 아닌가?’싶을 정도로.

공부 좀 해라!

“좋아. 가볼까.”

이한은 정리를 마치고 손수 그린 지도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단순히 지도만 넣은 게 아니었다.

날카롭게 갈린 단검, 못, 망치 같은 연장들은 물론, 튼튼하고 질긴 밧줄과 기름을 먹인 헝겊으로 손수 만든 횃불들도 배낭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기름을 담은 유리병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통조림 몇 개. 설탕이 담긴 유리병과 가죽으로 된 물통...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만큼 이한의 손놀림은 능숙하고 정확했다.

...학교 안을 탐사하는데 정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 들긴 했지만.

“진짜 나가려고?”

“그래.”

내일이 가르시아 교수님의 시험인데 당당하게 말하는 이한의 모습에 가이난도는 감동했다.

멋지다!

‘저게 귀족이지!’

성적에 얽매여서 쩔쩔대며 공부하는 건 귀족다운 일이 아니었다.

진짜 귀족은 호방하게 책을 집어던지고 나들이를 나갈 줄 알아야 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한은 공부를 다 끝내고 나가는 것에 가까웠지만...

가이난도는 그 사실은 무시하기로 했다.

“나도 같이 가자.”

“음?”

이한은 가이난도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

가이난도가 같이 가자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괜찮나?”

“당연히 괜찮지. 친구가 위험한 곳을 간다는데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잖아.”

“너 공부하기 싫어서 같이 가자고 그러는 거지?”

“......”

정곡을 찔린 가이난도는 입을 다물었다.

휴게실에 남아 있으면 지나가는 놈들마다 ‘너 공부 안하냐?’ ‘카드게임은 무슨 카드게임이야 곧 쪽지시험인데 공부나 해’ 같은 소리를 할 게 분명했다.

괜히 구박을 받느니 이한을 따라가는 게 나았다.

“아...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따라와도 괜찮겠지. 와라.”

이한의 허락을 받은 가이난도는 신이 나서 외투를 입었다.

아산이 들어오면서 물었다.

“가이난도. 너 공부 안 해도 되냐?”

“아, 그만 물어봐 좀!”

“아니 한 번 물어봤는데...”

*         *         *

이한이 첨탑 마구간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역시 탈출 방법 때문이었다.

마법학교 밖의 마구간 주인 아무르와 한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사악한 리치가 쓰러지고, 진홍빛 새벽녘이 찾아오면, 고개를 들어 첨탑 동쪽을 바라보게!

‘...음. 생각해보니 이 정도로 비장한 대화는 아니었던 것 같군.’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그 짧은 사이 좀 심하게 왜곡된 것 같았다.

정확히는 마구간 주인 아무르가 2주일마다 한 번씩 학교로 날아오겠다고 한 약속이었다.

아직 날아다니는 탈것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마구간으로 가는 길은 미리 익혀두는 게 좋았다.

그리고 또 누가 알겠는가.

첨탑 마구간으로 가는 과정에서 탈것을 구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약속대로라면 이번 주말에 한 번 올 텐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렇게 모이니까 정말 좋다. 그렇지?”

닐리아의 질문에 이한과 요네르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난도는 멀뚱하게 서 있다가 이한에게 등을 꼬집히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탄타 가문의 성질 더러운 친구 대신 닐리아처럼 든든한 길잡이와 같이 돌아다니게 되다니 너무너무 기쁜데. 그렇지. 요네르?”

“물론이야. 나도 정말 너무너무 기쁘다.”

“저도 정말 너무너무 기쁩니다.”

이한과 요네르와 랫포드가 연달아 아부를 한 덕분에, 닐리아의 기분은 확실히 좋아진 것 같았다.

‘다른 검은 거북이 탑 놈들이 있어야 좀 편한데.’

이한은 아쉬워했다.

살코 패거리들은 서로 이용해먹자고 손을 잡은 만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미안할 일이 없었다.

만약에 해골 교장이 나타나서 살코 패거리 중 한 명을 미끼로 던져주고 도망친다 하더라도 사전에 합의된 만큼 미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살코 패거리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 비해 닐리아는 버릴 수가 없었다. 이한은 그게 아쉬웠다.

‘어떻게든 한두명 데리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살코 패거리 중 한둘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면 살코도 낄 거고, 살코가 끼면 닐리아는 저번에 빠진 원한을 갚으려고 할 거고...

괜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느니 이한은 그냥 깔끔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데리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건 참 힘든 일이군. 랫포드.”

“???”

이한이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자 당황스러웠지만, 랫포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도둑들 사이에서도 인간관계가 의외로 중요했던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고 적이 많은 도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솔선수범해서 나서줄 친구 한두명이 있으면 했는데 말이지. 살코 패거리처럼 말이야.”

“으음. 하지만 닐리아 씨는 살코 패거리를 그다지...”

“그래. 나도 안다.”

이한은 말을 마치고 별생각 없이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랫포드도 무심코 따라서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둘은 서로 은밀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가이난도. 네가 있어서 든든하다.”

“어? 왜? 뭐야?”

*         *         *

닐리아와 랫포드는 둘 다 뛰어난 길잡이들이었다.

한 명은 실외의 전문가였고 다른 한 명은 실내의 전문가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그런 만큼 아무래도 마법학교의 복잡한 복도와 계단을 오고 다닐 때에는 랫포드가 좀 더 활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랫포드가 손을 뻗어 친구들을 막더니 복도 바닥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댔다.

지금 이한 일행은 잘려나간 2층 복도 끝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도에 따르면 이쪽 길로 3층을 가는 게 맞는데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으음... 저쪽입니다! 저쪽에서 계단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나도 저거 할 줄 아는데...”

닐리아가 뒤늦게 복도에 엎드리려고 하자 이한이 말렸다.

“닐리아. 지금부터 능력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껴둬야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한과 요네르가 말리면서 잡아당기자 닐리아는 아쉽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는 사이 계단이 천천히 다가왔다. 일행은 계단을 타고 3층으로 향했다.

‘이쪽 방향은 처음이군.’

살코의 안내를 받아 본관 3층에 올라가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이쪽 방향의 3층에는 어떤 게 있을지 이한도 알 수 없었다.

철컥-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계단이 연결되었다.

이한은 3층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이한은 주변의 풍경이 복도와 창문과 천장으로 이뤄진 마법학교의 본관이 아니라 수목이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

마법학교 내에 온갖 자연의 풍경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본관 내에서도 이런 변화를 목격하게 될 줄이야.

뛰어난 마법사는 공간을 늘리고 재배열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고정관념에 갇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법학교 본관은 교장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곳.

숲은 물론이고 화산이나 빙하지대가 안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놀랍군. 3층에 이런 숲이 있었을 줄이야... 닐리아. 잘 부탁해.”

이한은 옆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닐리아가 활약할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이한이 괜히 다 기쁠 정도였다.

그러나 옆에는 닐리아가 없었다.

“???”

야옹.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은 털의 고양이가 이한의 발목을 박박 긁고 있었다.

어지간히 학교에 익숙해진 이한도 지금 상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어디 갔...?”

놀랍게도 움직이는 계단에 타고 같이 3층에 도착한 친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한은 바로 지팡이를 뽑아들고 숲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옹. 야옹.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이한의 발목만 앞발로 계속 탁탁 때리는 고양이의 모습에, 이한은 순간 설마 싶었다.

“...혹시 닐리아니?”

검은 고양이는 므앵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매우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폴리모프!’

그냥 숲이 아니라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강제로 동물로 변화하는 폴리모프 마법을 거는 숲이라니.

이한은 소름이 돋았다.

‘잠깐. 왜 나는 안 걸렸지?’

생각해보니 친구들이 다 변신했다면 이한 혼자 멀쩡한 게 이상했다.

‘마력 때문인가.’

마법학교에 들어와서 남들과 다른 일을 겪을 경우 타고난 마력량을 의심하면 보통 99% 확률로 맞았다.

이한은 일단 닐리아를 데리고 다른 친구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샤르칸. 다른 친구들을 찾아줘.”

허리띠에서 잠들어 있던 뼈 소환수가 달그락거리며 모양을 갖추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닐리아가 앞발로 이한을 꾹꾹 눌렀다.

“닐리아. 살살 좀... 왜?”

닐리아는 뼈 소환수를 가리키고 양발을 들어올렸다. 마치 위협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뼈 소환수를 만나면 다른 친구들이 겁먹어서 도망가지 않겠냐고?”

닐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고 도망치기 전에 빨리 잡아야겠다.”

......

닐리아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         *         *

다행히 다른 친구들은 빠르게 발견되었다.

나뭇가지 위에 있던 박쥐가 이한을 보더니 황급히 날아왔고(이한은 아마 랫포드일 거라고 생각했다) 뼈 소환수를 따라 털이 북슬북슬한 붉은여우가(아마 요네르) 찾아왔다.

“가이난도는 어디 간 거지?”

다른 친구들은 각자 다양한 동물울음소리로 대답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냥 나 혼자 생각하는 게 낫겠군.’

꼭 친구들이 대답을 해준다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불완전한 뼈 소환수, 샤르칸은 주변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끈기 있게 이한을 안내했다.

녹음 우거진 숲의 길을 걷고 걷자 도착한 곳은 커다란 공터였다.

저번에 산맥 속의 숲에서 나무정령을 만난 적 있는 이한인 만큼, 혹시 이번 공터에도 나무정령이 있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

‘이런 숲을 학교 안에서 유지하고 지내려면 정령일 것 같은데.’

그러나 이한의 예상은 빗나갔다.

공터 한가운데에 있는 건 생쥐였다.

달그락달그락-

뼈 소환수 샤르칸이 매우 경계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자세를 낮췄다.

샤르칸만 눈치 챈 게 아니었다. 이한도 생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마법학교는 무슨 멀쩡한 동식물이 없나?’

생쥐는 꼬리를 휘두르며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이한 주변을 가리고 있던 수풀들이 아래로 가라앉고 나무가 양옆으로 밀려났다.

“...!”

이한이 놀라워하는 사이 생쥐는 마법으로 바닥에 글씨를 새겼다.

-숲. 통과. 결투. 승리. 패자. 돌아감.

“숲을 통과하려면 결투에서 승리해야 하고, 패하면 그냥 돌아가야 한다?”

생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고 이한을 쳐다보았다.

찍찍찍찍!

생쥐는 변신하지 않은 이한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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