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한 명씩 앞으로.”
시험이 시작되자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을 한 명씩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주문을 외웠다.
“부드러운 별의 장막이 시야를 가린다.”
순간 마력이 허공을 복잡하게 수놓으며 날실과 씨실처럼 엮였다. 신입생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변화가 눈 깜박할 사이에 이뤄졌다.
장막이 펼쳐지자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를 제대로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저기에 있다는 건 아는데, 마치 뇌가 그 정보를 거부하는 기분이었다.
“다들 보이나요?”
“아니요.”
“네.”
“?”
당연히 다들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고 대답한 학생들은 옆에서 반대의 대답이 나오자 멈칫했다.
그리고 그 반대의 대답을 한 이한도 마찬가지로 멈칫했다. 다들 아직 보이는 줄 알았던 것이다.
“...보이지 않나?”
이한의 질문에 친구들은 당황했다.
“안 보이는데?”
“똑똑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한테는 왜 안 보이는 거지?”
“가이난도. 개소리하지 마.”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의 목소리 위로, 가르시아 교수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한 학생이죠?”
“예.”
이한은 딱히 잘못한 것 없지만 왠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력 때문인가?’
마법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이한이 가진 마력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면 거의 맞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맞았다.
“마력 덕분에 <일델리드의 별의 장막>에 저항한 거군요.”
강한 마력을 가질수록 다른 마법에 대한 저항 능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마련.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력 좀 늘어난다고 저항 능력이 그렇게까지 극적으로 늘어나진 않았다. 거의 체감하기 힘든 차이였다.
하지만 가끔 예외도 있는 법.
가르시아 교수의 앞에 있는 소년이 바로 그런 예외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뒤로 돌아서서 이쪽을 안 보면 되죠.”
“그, 그렇군요.”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에 이한은 안심했다.
가르시아 교수가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저주를 걸거나 물약을 먹일 줄 알았던 것이다.
“난 교수님이 저주를 거실 줄 알았는데.”
“교수님이 교장 선생님 같은 사람인 줄 알아?”
푸른 용의 탑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어보니, 이한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 * *
앞으로 불려나간 학생들은 가르시아 교수가 지시하는 대로 마법을 사용했다.
“오, 내 영혼처럼 불타올라라!”
“같은 마법이라도 그렇게 길게 주문을 외워야 심상을 만들 수 있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에요. 집중력을 높여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불러낼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고위 마법을 익힐 때 힘들어질 거예요.”
“타올라라!”
“평소에는 잘 되더라도, 이렇게 긴장되는 자리에서는 마법이 안 될 때가 종종 있지요. 최대한 긴장을 풀고 평소부터 많은 연습으로 몸에 익혀두는 게 좋아요.”
이한의 차례가 왔다.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긴장을 풀기 위해 친절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한 학생은 화염 원소는 하지 마세요. 자. 물 원소를 보여 주세요.”
이한은 물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다른 학생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른 속도였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형태 부여?”
이한은 물 덩어리를 구슬 형태로 압축시켰다.
“모양 변화?”
압축된 구슬이 방패 모양으로 변화했다.
“통제 조종.”
방패가 이한의 주변을 일정한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궤도로.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음 학년 수준의 마법을 마스터해가고 있는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완벽하네요. 만점.”
“감사합니다.”
“이한 학생. 재능은 이해하는데 너무... 앞서나가려고 서두르지는 마세요. 무슨 말 하려는지 알죠?”
“물론입니다.”
이한은 해명하고 싶었다.
정말로 딱히 앞서나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냥 마법학교가 이한의 등을 자꾸 밀어대서 그렇지!
“저는 무리해서 앞서나갈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결연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긴 지금은 이렇게 말해도 기회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앞서나갈 학생이죠. 이한 학생은. 타고난 재능의 비애일지도...”
“...?!”
이한은 터무니없는 누명에 억울해했다.
‘왜 저런 오해를 하시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잉걸델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이한 학생이 물 구슬 다중 운용을 시도했다면서요.”
“......”
이한은 생각치도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잉걸델 교수...!’
그걸 또 소문을 내고 다녔단 말인가?!
물론 잉걸델 교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못한 게 없었다.
제자가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과 맞서서 싸웠는데 심지어 승리까지 거뒀다.
어지간한 스승이라면 주변에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 하는 게 이상했다.
그러나 이한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한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게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
“그렇죠.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이유를 만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어요...”
“......”
이한은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나 생각했다.
왜 같이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데 대화가 헛도는 거 같지?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재능 넘치는 천재들은 기회가 생기면 뛰쳐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는 말에 효과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반복해 말하는 게 스승이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교수님.”
이한은 어떻게 대답해야 가르시아 교수가 자신의 진심을 믿어줄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자. 그러면 흑마법... 이한 학생.”
“......”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가면서, 이한은 생각했다.
‘내 말이 좀 안 믿기실 수도 있을 것 같군.’
* * *
흑마법.
-자. 제가 언데드를 하나 소환할 테니, 저주를 쏘아내보세요.
-예.
-저주를 쏘아내고, 저주를 피하고. 잘했어요. 뼈다귀 손이 하나 필요하겠네요. 불러오도록 해요.
-예. 나타나라, 뼈다귀 손이여!
-완벽하네요. 그런데 이한 학생. 이한 학생한테 한 소리가 아니라 제가 소환한 언데드한테 명령한 거였어요.
-......
소환마법.
-이번에는 깃펜 하나만 잘 소환했네요. 역시 저번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많이 소환했던 건가요? 아니라고요? 그러면 왜? 실수였다고요? 이한 학생이 왜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교수님. 저는 일학년입니다.
-...아차. 미안해요.
환상마법.
-자. 환상마법을 써보세요.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이한 학생. 그건 강의 시간에 배운 마법이 아닌데요. 심지어 2서클 마법이잖아요.
-...사라져라, 환상아!
-만점을 두 번 줄까요?
-아닙니다...
모든 시험을 마치고 이한은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전부 만점이 나왔지만 가르시아 교수의 오해는 풀지 못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 모습에 가이난도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시험을 망했을 때 가장 든든한 건 같이 망한 친구였다.
“너도 망했구나! 그렇지?!”
“난 만점인데.”
“......”
가이난도는 배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럼 왜 한숨을 쉰 거야?!
* * *
폭풍 같은 쪽지시험 주간이 끝나고 황금 같은 토요일이 찾아오자 학생들의 얼굴은 유난히 빛나는 것 같았다.
이한도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사실 더 자려고 했었지만 샤르칸이 이한의 얼굴을 핥아대며 깨우는 탓에 일어날 수밖에 없긴 했다.
샤르칸은 산책가자는 듯이 이한을 잡고 끌어당겼다.
어차피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나가긴 해야 했는데...
‘...그런데 표범도 원래 주기적으로 산책을 해줘야 하나?’
이한은 샤르칸을 데리고 기숙사 탑 정문을 나서면서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한이 샤르칸의 사육 방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표범의 왕’같은 칭호를 갖고 있는 몬스터라면 좀 더 고고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나...
-컹! 크르르르릉!
-푸히히힝!
마구간에서 흰 말을 끌고 나오자 샤르칸은 시끄럽게 짖어댔다. 흰 말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마주 울어댔다.
이한은 달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로 마음껏 싫어하면서 산책하면 되겠군. 자. 떨어져라. 서로 건드리지 말고.”
그러나 샤르칸은 포기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렀다.
바닥을 파고 그르렁거리면서 계속 앞발로 흰 말을 가리켰다.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 샤르칸. 저건 네 먹이가 아니야.”
이한의 말에 샤르칸은 더욱 더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자신의 말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환장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안 된다면 안 돼. 샤르칸. 투정부리지 말고 일어서라.”
-......
계속 발버둥치던 샤르칸은 결국 포기했는지 일어섰다. 이한은 잘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샤르칸. 돌아가면 먹을 걸 주마.”
-그르르르르르릉...
-푸흐흥.
샤르칸이 낮게 그르렁대자 흰 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서로가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어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동물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단 말이지.’
이한은 두 동물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배워도 배워도 참 이해가 안 가는 존재들이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멀리서 번개걸음 교수를 발견한 이한은 고개를 숙였다.
가죽 재킷을 걸친 번개걸음 교수는 이른 아침부터 동물을 돌보고 있는 이한의 모습을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샤르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한을 쳐다보았다.
“...언데드 사냥개치고는 너무 사납게 생겼는데? 뭐냐?”
“아. 저번에 여쭤봤던 그 샤르칸이라는 몬스터 있잖습니까.”
“그랬었지.”
번개걸음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한의 질문에 번개걸음 교수는 친절하게 대답해줬었다.
몬스터를 길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고, 그 몬스터가 난폭하고 강할수록 더욱 어려워진다고.
그런 몬스터를 언데드로 부리는 건 더더욱 위험해서 언제 흑마법사의 목을 노릴지 모른다고.
“그 몬스터입니다.”
“...혹시 나한테 반항하는 거냐?? 내가 너한테 그렇게 박하게 대했나?”
번개걸음 교수는 경악해하며 물었다.
마법학교에서 죽고 싶다면 저것보다 좋은 방법이 더 많았다. 반항 말고는 굳이 저런 몬스터를 언데드 소환수로 부릴 이유가 없었다.
“아닙니다. 모르툼 교수님이 주셔서 받게 된 겁니다.”
“오...”
“괜찮은 것 같지요?”
“아니.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툼 교수님께서 마법처리를 하셨는지 저를 공격하지는 않던데요. 순하고 충성스럽습니다.”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모르툼 교수를 변호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샤르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샤르칸이 낮고 살벌한 소리를 내며 위협하듯이 경계했다.
“흠...”
번개걸음 교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샤르칸을 훑어보았다.
만약 모르툼 교수가 언데드 소환수를 만들면서 성질을 관리하기 위해 추가로 마법을 걸었다면 그 흔적이 보여야 했다.
“아닌데?”
“예?”
“딱히 순하게 만들거나 충성스럽게 만드는 마법처리가 되어 있지는 않다.”
“......”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샤르칸과 거리를 벌렸다.
샤르칸은 상처 입은 표정으로 짖었다.
“그... 그러면 저 폰리그처럼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겁니까?”
이번에는 흰 말이 항의하듯이 울었다.
충성심을 의심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