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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1화 (131/687)

131화

‘말의 모든 내용이 틀렸잖아.’

번개걸음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그냥 충성스러운 거지...”

“앗. 그렇습니까?”

이한은 샤르칸을 다시 쳐다보았다. 샤르칸이 기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이리 와라. 샤르칸. 사실 널 믿고 있었지.”

샤르칸은 컹컹대며 달려들었다.

이한은 샤르칸을 쓰다듬으며 나중에 가이난도한테 줄 소시지를 샤르칸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별다른 마법처리가 안 되어 있었다는 건...’

미치광이, 아니 모르툼 교수가 별다른 마법을 걸지 않았는데도 저 언데드 소환수가 저렇게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면 둘 중 하나였다.

저 샤르칸이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거나(아마 고나달테스가 선량하고 자애로워질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아니면 그냥 이한의 존재감이 너무 강력해서 샤르칸을 압도해버렸거나.

샤르칸 같은 몬스터는 서열에 민감한 편이었다. 이한처럼 미친듯이 마력을 뿜어내는 주인에게 저렇게 충성심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다른 마법사들은 온갖 마법과 비전과 술수를 사용해야 길들일 수 있는 몬스터를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굴복시키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 본인에게 별다른 자각이 없다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몬스터 사육에 대해 잘 아는 번개걸음 교수의 친구들이 여기 있었다면, 방금 일에 대해 몇 시간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래그래. 샤르칸. 기특한 녀석 같으니. 날 널 믿고 있었다.”

사실 정말 믿고 있었던 사람은 저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샤르칸은 그래도 좋다는 듯이 신나했다.

번개걸음 교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잠깐. 너는 왜 저 샤르칸은 믿어주면서 그ㄹ... 흰 말은 안 믿어주는 거냐?”

“예?”

이한은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번개걸음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야 샤르칸은 처음부터 충성스러웠고, 저 폰리그는 계속 절 발로 차고 물려고 했잖습니까.”

이한의 입장에서 폰리그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계속 난리치던 놈이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니 아무리 봐도 수상했던 것이다.

게다가 폰리그는 마구간의 말들 중에서도 가장 영리하고 교활했다.

무슨 물약을 먹였는지 마법을 걸었는지 아니면 다른 몬스터의 핏줄이 섞였는지 지능이 다른 말의 몇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 말이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면 더욱 더 수상하다!

-푸히히힝!

폰리그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발굽으로 땅을 구르며 항의했다.

물론 말이 갑자기 그러면 수상할 수 있겠지만 원래 그리폰은 이런 생물이었다.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가 자신을 타려고 하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한 번 주인으로 인정하면 충성을 바치는 고고한 마법생물.

그런데 자신을 말로 생각하고 저런 오해를 하고 있으니 폰리그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보십시오. 바로 저러잖습니까.”

-푸힝!!

이한을 설득하는 걸 포기한 폰리그는 번개걸음을 보며 미친듯이 울어댔다.

뜻은 하나였다.

마법 풀어!!

번개걸음 교수는 폰리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럴 수는 없지.’

멀쩡한 그리폰을 말로 변신시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들어간 물약과 마법시약 가격만 생각해봐도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아무리 말에게 물약을 먹이고 마법을 걸어서 흉폭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몬스터 같을 수는 없는 법.

말로 변신한 몬스터 하나 정도는 마구간에 있어줘야 신입생들이 나중에 진짜 몬스터들을 만났을 때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나도 네 말을 들어보니 네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샤르칸하고 달리 폰리그는 속마음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푸히힝! 푸히히히힝!

폰리그는 번개걸음 교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변신 풀리면 진짜 두고 보자!

“그러면 난 이만 가보도록 하마. 산책 잘 하고 들어가라.”

“예. 들어가십시오.”

-푸힝!! 푸히히힝!!

“그만해라. 폰리그. 믿어줄게.”

주인의 진심 없는 말에 폰리그는 서러워서 바닥을 뒷발로 찼다. 샤르칸이 위로하듯이 폰리그를 꼬리로 툭툭 쳤다.

같이 마법을 풀어볼 방법을 찾아보자...

*         *         *

“어. 오늘 평소보다 고기가 적은 거 같은데.”

“가이난도. 더 먹으려고 지금 속임수 쓰는 거야? 명예롭게 행동해.”

“아... 아니. 진짜 평소보다 적은 거 같은데?? 이상하다?”

“네가 한 입 먹고 잊은 거 아냐?”

“그럴... 그런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산책을 하고 돌아온 샤르칸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냥 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휴게실에 쌓여 있는 책들을 넘어뜨리거나 선반 안에 넣어놓은 시약들을 꺼내놓았다.

“왜 그래, 샤르칸?”

“배가 고픈가? 가이난도...”

“내 접시에 손을 대면 결투다!”

학생들이 질문을 던졌지만 샤르칸은 대답도 하지 않고 책과 시약들을 계속해서 뒤졌다.

“왜 저러는 거지?”

“찾는 게 있는 거 아닐까? 지능 높은 몬스터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

요네르의 말에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샤르칸이 찾는 게 있나?

“그런 게 딱히 없을 텐데. 샤르칸. 이리 와라.”

이한은 샤르칸을 끌어당겼다. 샤르칸은 발톱에 힘을 주며 버티다가 결국 끌려왔다.

“맞아. 워다나즈. 밖에 사제님들 오셨던데 봤어?”

“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마법학교에 있다 보면 신앙심 없던 귀족 가문의 자제들도 갑자기 신앙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밖에서 온 사제들이 학생들을 챙겨주고 도와주는 걸 보면 ‘어라? 그러면 이제까지 우리가 만난 교수님들은 대체?’같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네르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사제님들 오셨구나?”

“플레맹 교단에 갈 건가?”

“응. 그리고 물약들 물어볼 거야.”

“!”

랫포드가 마차에서 빌려 온 물약들.

요네르와 이한은 그 물약들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신입생의 지혜만으로 도전하고 있다 보니 과정이 느렸다.

하지만 연금술의 교단, 플레맹 교단의 사제들에게 물어본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요네르... 만약 수상한 물약이 있을 경우 변명하기가 힘들 텐데.”

“주웠다고 끝까지 우겨보려고. 다들 친절하셔서 뺏어가진 않으실 걸? ...아마?”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진 않았다.

이한은 요네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탁한다.”

상자 안에 넣어놓은 다른 물약들도 요네르의 가방에 들어갔다. 그 때 갑자기 샤르칸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크르르르릉...

“샤르칸. 가만히 있으라니까.”

-컹! 컹컹!

샤르칸이 이한의 손에 있는 물약을 향해 애타게 짖어댔다.

마치 그 물약을 갖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샤르칸. 이건 네가 먹을 게 아니다.”

그리고 색도 선명한 녹색인 게 아무리 봐도 건강에 좋은 색이 아니었다.

샤르칸이 언데드 소환수긴 해도 굳이 독약을 먹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결국 녹색 물약은 가방에 들어갔다.

샤르칸은 안타깝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요네르는 가방의 입구를 닫아버렸다.

“나중에 보자.”

“응. 프리싱가 사제님들 방문할 거지?”

“그래. 프리싱가 사제님들도 뵈어야지.”

“...?”

고개를 끄덕이던 요네르는 이한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사제님들‘도’?

“다른 교단 사제님들은 누가 오셨는지 확인하러 가봐야겠다. 나중에 봐.”

“......”

교단을 무슨 골목 가게 구경하듯 돌아보려는 친구의 모습에 요네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빛으로 응원했다.

힘내!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         *         *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여기에서 보게 되니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군.”

“혹시 빌도츠칼 님에 대한 신앙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평소에 관심이 있긴 했지.”

“그러면...!”

“그런데 혹시 빌도츠칼 교단은 다른 교단을 같이 믿어도 되나?”

“안 됩니다만?”

“다음에 찾아가도록 하지. 권해줘서 고맙다.”

본관 앞에 사제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들어가니 의외로 이한에게 아는 체 하는 불사조 탑 학생들이 많았다.

저번에 보여준 선행 덕분이었다.

어린 사제들은 호의를 담아서 이한을 불렀지만...

이한은 거절했다.

여러 교단을 오가면서 이득을 봐야 하는 만큼 다른 교단을 같이 믿는 걸 허락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타오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니기소르 사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정령 혼혈답게 오늘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반갑군.”

“혹시 아프하 교단에 관심이 있으시오?”

“평소에 관심이 있긴 했지. 그런데 아프하 교단은 다른 교단을 같이 믿어도 신경 쓰지 않나?”

이한의 질문에 니기소르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하의 불은 그저 타오를 뿐, 방향을 강제하지는 않소.”

“오... 그러면 사제님을 한 번 뵙고 싶은데.”

“기쁜 일이군. 따라오시오.”

니기소르 사제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한은 따라가면서 아프하 교단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프하 교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군.’

제국의 교단들은 워낙 그 숫자가 많아서 유명한 교단이거나 그 교단을 직접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고 있기 쉽지 않았다.

아프하 교단은 불을 숭배하는 교단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화염 계열 마법을 다루는 곳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한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한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바로 화염 원소 마법이었으니까.

다른 원소 마법들은 비교적 낫지만 화염 원소 같은 경우는 이한과 상성이 최악이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잘못 쓰면 이한 본인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뜻하다.’

아프하 교단의 넓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따뜻함이 느껴졌다.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자줏빛 불꽃 때문이었다.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교단의 사제들은 통일성 없는 제각각의 복장으로 편하게 앉아서 떠들다가 니기소르 사제가 들어오는 걸 보고 반가워했다.

“니기소르 사제! 아프하의 불이 찾아오기를.”

“아프하의 불이 찾아오기를. 사제님들. 여기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입니다.”

“아아. 저번에 말한... 이거 놀랐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들은 신앙에 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요.”

“잘못된 소문입니다.”

이한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어쨌든 관심이 있으시다니 기쁘군요. 신앙에 대해 설명해드릴까요?”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프하 교단의 사제는 전장에서 십 년 정도 구른 것 같은 용병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을 열자 해박한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한은 집중해서 들었다.

아프하 교단에 가입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의 종말이 아프하의 불과 함께 찾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프하의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거죠.”

“...?”

집중해서 듣고 있던 이한은 멈칫했다.

어라?

“그... 불이 비유적인 불입니까? 세상의 부조리와 악인과 해골 리치 같은 것들만 태우는?”

“아니요? 그냥 모든 걸 태워버리는 불입니다.”

“...아. 새로운 창조와 재생을 위한 파괴 같은 겁니까?”

“재밌는 발상이시군요. 그런데 종말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불타는 거죠.”

“......”

“자. 그러면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 영혼 속에 품고 있는 화염을 확인해보도록 하지요.”

이한은 갑자기 티질링 사제와 시아나 사제가 왜 니기소르 사제를 피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내 영혼 속의 화염을 꺼내서 세상을 불태우는데 일조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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