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다행히 아프하 교단은 이한이 걱정했던 그런 교단은 아니었다.
“아. 그런 걱정을 하셨군요. 하하. 잘 모르는 분들이 가끔 그런 오해를 하지요.”
아프하 교단의 사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세상을 불태우거나 제국에 불을 지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교단이 이렇게 남아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긴 그렇군.’
맞는 말이었다.
제국이 아무리 관대하더라도 불 지르고 다니는 교단까지 허락해줄 정도로 관대하진 않을 테니까.
“우리 사제들은 그저 아프하의 불을 믿을 뿐이죠.”
“맞습니다. 아프하의 불은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테니, 우리는 후회가 남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언젠가 종말의 불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 음울한 비관주의를 제외한다면 아프하 교단의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아프하의 불을 향한 이들의 강력한 믿음은 화염 마법에 상당한 상승효과를 불러왔다.
마법에 있어서 마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개인의 심상(心象).
아프하의 불이란 가공할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교단의 사제들은 화염 마법에 있어서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이한이 짐작한 대로 아프하 교단의 사제들 중에는 화염 마법의 달인들이 많았다.
제국에서 화염 마법이 필요할 경우 아프하 교단에도 지원 요청을 할 정도로.
‘다행이군. 생각보다 멀쩡하다.’
이한은 안심했다.
언젠가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믿는 것만 빼면 아프하 교단은 아주 멀쩡한 교단이었다.
교단의 규칙도 널널했다.
아프하의 불을 향한 명상 정도를 제외하면 해야 할 의무도 별로 없었다.
이쯤이면 사실 저주 받은 아이템을 강제로 장착하고 다니는 프리싱가 교단보다 나은 편이었다.
“이리 오시죠. 영혼 속에 품고 있는 화염을 확인해 볼 시간입니다.”
아프하의 사제는 구리로 된, 투박한 모양새의 큼지막한 잔을 들고 왔다.
이한은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물었다.
“어떤 식으로 확인하게 됩니까?”
설명에 따르면 저 구리 잔은 손을 댄 사람의 영혼에 있는 화염을 끌어내 잔 안에 피어오르게 하는 아티팩트였다.
사제들은 종종 이 잔으로 자신이 얼마나 아프하의 불 앞에서 겸손하고 충실한지 확인하곤 했다.
‘화염 원소 마법 적성 테스트와 비슷하군. 마법에 익숙해질수록 잔 안의 화염이 좋아지는 건가.’
아프하 사제들이 들었다면 ‘이래서 마법사들은! 영혼 속에 있는 화염과 신앙심인데...’라고 반응했을 불경한 소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한은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처럼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교단의 사제들이 신앙심으로 해석하는 것들을 이한은 마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한은 구리 잔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살짝 긴장했다.
‘혹시 사고가 나는 건 아니겠지.’
가르시아 교수한테 들은 말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겪었던 일들이 있는 만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화염이 치솟아 오르거나 주변 천막을 태워버리거나...
화악!
잔 안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크지 않은 불꽃이었다. 잔 밖으로 넘치지도 않게 안정적으로 일렁였다.
‘잔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괜찮은 것 같은데?’
이한은 안심했다.
이상할 정도로 솟구치지도 않고 모양이 불안정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평균 아닌가?
“어떻습니까?”
“이제 확인을 해봐야지요.”
사제 중 한 명이 훅 하고 바람을 불었다. 그러나 이한의 불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
“제법 영혼 속의 화염이 강하시군요.”
아프하의 사제들은 이한의 불꽃이 가진 강함에 즐거워했다.
잔 안의 화염은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어떤 방해에도 견디는 힘이었다.
저렇게 바람을 불어도 꺼지지 않고 버티다니. 제법 강한 불꽃이었다.
다른 사제가 물을 꺼내더니 이한이 쥐고 있는 잔 위에 부었다. ‘칙’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증발해버렸다.
이한의 불꽃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오...?”
“다른 걸 갖고 와보도록.”
사제들은 화염을 많이 다루는 만큼 역설적으로 화염을 상대하는 데에도 익숙했다.
흑영사(黑影沙)라고 불리는 검은색 모래가 꺼내졌다. 어지간한 불꽃은 순식간에 삼켜버리는 마법 시약이었다.
하지만 이한의 불꽃은 끄떡없었다.
“......”
“...다음.”
계속해서 다른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마법, 시약, 물약, 아이템 등등.
그리고 끝내 이한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내내 유쾌하던 사제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다행입...”
이한은 안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제들은 곧바로 뒤로 돌아서 속삭였다.
“교단의 다른 사제님한테 연락을 보낼 수 있나?”
“지금 최대한 빨리 새를 날려서...”
“주교님을 불러와야 할 것 같은데.”
수군거리는 사제들의 목소리에 이한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 *
아프하 교단의 주교 우쇠는 연락을 받고 다급히 날아왔다.
아프하의 불에 가까운 화염을 영혼에 갖고 있는 소년이 있다는 말을 들은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 잠깐. 잠깐.
“오수 고나달테스 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물론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소. 아프하의 사제들이 인재를 찾았다지?
해골 교장은 아프하 교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약간 좀 많이 비관적이고 멍청한 걸 제외하면 화염 마법을 제법 잘 다루는 자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반해서 어떻게든 데리고 가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이한이 사제 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여러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가.
특히 마법학교에 있는 어린 학생들은 마음이 연약해져서 외부의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었다.
그건 절대로 막아야 했다.
여기 학교는 폐하께서 제국의 동량을 길러내기 위해 만드신 곳. 미래의 마법사를 억지로 교단의 사제로 만들지는 않으리라 믿소.
해골 교장의 경고에 주교는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오수 고나달테스 님. 저희 또한 마법학교의 인재를 사제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시오?
해골 교장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역시 아프하 교단은 예의를 알고 상도덕이 있는 교단이었다.
“하지만 오수 고나달테스 님. 지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해골 교장의 본능적인 변명에 주교는 의아해했다.
“오수 고나달테스 님도 아시다시피, 통제하기 힘들 정도의 강한 재능은 주인을 다치게 만드는 법 아닙니까. 하물며 화염의 속성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마법은 강력한 만큼 위험했다.
그 중에서도 화염 속성은 잘못 다루면 주인을 다치게 만들기 쉬웠다.
이한 정도로 영혼에 강한 화염을 가진 소년이라면 매우 위험하다고 봐야 했다.
최대한 빨리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빠르게 배워야 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해골 교장은 중얼거렸다.
일단 해골 교장 본인이 ‘마법사라면 마법 배우면서 자기 목숨은 스스로 챙겨야지’라는 구시대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그걸 떠나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그걸 통제 못 할 정도로 미성숙한 놈이 아니었다.
자기가 타고난 재능을 통제 못해서 스스로를 다치게 만드는 어린 마법사들이 많다지만 그건 그 놈들 이야기였고...
해골 교장이 보기에 이한은 정반대였다.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재능을, 그것보다 더 강한 정신으로 통제하고 있는 놈.
아프하 교단이 저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이한이 스스로를 태워 먹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태워먹을 놈이라면 벌써 태워먹지 않았을까?
“오수 고나달테스 님! 지금 학생의 안전을 걱정하시지 않는 겁니까?!”
아... 아니오. 아니오.
해골 교장은 주교의 외침에 한 발 물러섰다.
토라진 주교는 생각보다 위험한 존재였다. 황제에게 달려가서 재잘재잘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걱정할 건 없었다.
아프하 교단의 사제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염 마법 훈련 정도 아닌가.
물론 그 훈련을 받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그건 해골 교장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도 물론 걱정이 되는군.
“역시 그러셨군요.”
자! 가서 빨리 가르쳐주시오!
* * *
“그러니까 제가 아프하의 불을 계승해서 제국에 불을 지르거나 세계를 멸망시키는 건 아니란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농담도 참.”
이한은 안심했다.
사제들이 하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길래 ‘뭐지? 내가 아프하 교단의 마지막 계승자 같은 걸로 낙점이 되었나?’하고 걱정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히 엄청나게 강력한 화염을 영혼에 갖고 있어서,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음. 생각해보니 이것도 걱정할 만하긴 하군.’
이미 가르시아 교수 같은 사람한테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진 편이었지만 다른 사제들이 걱정하는 걸 보니 새삼 다시 걱정이 됐다.
괜찮나?
“주교님!”
“!”
주교라는 말을 들은 이한은 몸을 굳혔다.
어느 교단이든 주교 정도 되는 자리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한은 자동으로 아부가 나갔다.
훗날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든 간에 여러 교단의 고위직 인물들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게 없었다.
“저야말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렇게 강한 화염을 갖고 태어나신 분은 근래에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주교는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분명 어린 시절에 통제되지 않는 화염으로 고통 받으셨을 겁니다.”
“...어, 아닙니다만?”
이한의 말에 주교는 멈칫했다.
그리고는 납득했다.
“아하. 워다나즈 가문이라서 분명 방화(防火) 마법을...”
‘안 했는데?’
이한은 딱히 그런 거 없어도 화염 관련 사고 없이 잘 컸다.
애초에 화염 마법을 쓰지 않으면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문을 떠나신 지금, 가문의 마법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실 겁니다. 이한 님은 화염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한은 각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아프하 교단에 기웃거린 이유부터가 화염 마법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화염을 통제하기 힘들지만 신성 마법은 좀 다를지도 몰랐으니까.
“그 방법은 마법학교의 일학년 학생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힘들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떠올리며 말했다.
원소 마법이 가장 친숙한 만큼 쉽다는 말이 많았지만 정말로 원소 마법에 통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한이 단순한 물 마법 하나를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가.
형태 유지, 동작 변화, 원소 감지 등 다양한 일들을 떠올려보니 새삼스럽게 험난한 길들을 걸어왔다 싶었다.
하지만 한 번 한 일이라면 두 번도 할 수 있었다.
하겠다!
‘화염을 통제하는 방법을 미리 배워두지 않으면 나중에 몇 배로 고생할 수 있다.’
이한은 외투를 옆으로 던지고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았다.
“화염을 날리십시오.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주교는 이한의 반응에 당황했다.
지금 눈앞의 소년이 무슨 훈련을 각오하고 있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