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3화 (133/687)

133화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챈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원소의 통제력과... 형태 변환, 부여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원소를 직접 경험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난폭한 방법이잖습니까.”

당황스러워하는 주교의 모습에 옆에 있던 사제가 말했다.

“아마 농담한 거겠지요. 학생들은 다 짓궂잖습니까.”

“아하. 농담을...”

‘아니었는데.’

이한은 농담한 게 아니었지만 분위기만 더 어색해 것 같아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교단에서는 먼저 명상과 기도로 화염을 통제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한은 놀랐다.

‘그게 다라고?’

그리고 다시 놀랐다.

이번에는 스스로에게였다.

‘...내가 볼라디 교수 때문에 사람이 이상해졌군.’

생각해보니 명상과 기도로 화염을 통제하는 건 충분히 멀쩡한 방법이었다.

특히 화염 원소를 목숨 걸고 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         *         *

아프하 교단의 명상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채 스스로의 내면 안에 화염을 떠올리는 것이다.

화염을 떠올리는 데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유지였다.

일정 시간 동안 유지가 되었다면 이제 화염을 이용해 복잡한 응용을 심상 안에서 펼쳤다.

꽤나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면 결코 쉽지 않았다. 도중에 집중이 끊기거나 잡념이 끼어드는 순간 명상은 실패였다.

‘마법 훈련과 일치하는 면이 있군.’

이한은 교단의 명상이 마법 훈련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마법이란 고도의 집중과 상상력이 필요한 학문이었다.

주문을 외우고 지팡이를 휘두르고 마력을 알맞게 배열하더라도 제대로 된 집중 없이는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여기 촛불을 놓겠습니다.”

주교는 촛대를 놓더니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이 촛불이 꺼지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십시오.”

“예.”

아프하 교단의 촛불은 명상하는 사제의 집중이 끊기면 그 순간 같이 꺼졌다.

어린 사제의 집중을 도와주기 위한 소도구였다.

한 시간 후.

“...명상은 더 하실 필요 없겠습니다.”

“예?”

눈을 감고 상상 속에서 볼라디 교수에게 화염구를 날리던 이한은 멈칫했다.

한참 명상에 푹 빠져 있었는데 왜 말린단 말인가.

“한 시간 동안 촛불을 끄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타고난 재능에 볼라디 교수의 혹독한 훈련을 통과한 이한에게, 저런 명상은 이제 손쉽게 통과할 수 있는 간단한 훈련에 불과했다.

“과연...”

이한은 주교의 말을 이해하고 다시 외투를 벗었다. 주교가 갑자기 당황했다.

“화염은 안 날릴 겁니다. 이한 님.”

“그냥 계속 불을 쬐고 있었더니 조금 더워서 벗은 겁니다.”

“아하.”

아프하 교단의 사제들은 멋쩍어했다. 이한은 살짝 억울했다.

‘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군. 억울하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화염 마법에 적성이 맞는 편입니까?”

이한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물 원소는 제법 잘 맞는다는 걸 몸으로 확인하고 있었고, 번개 원소도 나름대로 잘 쓰고 있었다.

그에 비해 화염 원소는 이제까지 워낙 쓸 일이 없었던 만큼 이한 본인도 얼마나 잘 맞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일까?

“어...”

“음...”

사제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저 정도면 손꼽힐 정도로 재능이 있는 편이 맞았다.

보통 교단의 사제들은 꾸준히, 주기적으로 명상을 통해 내면의 불꽃을 유지시켜나가는 것이다.

그걸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손쉽게 해냈다는 건 타고났다고 봐야 했다.

선천적으로 화염 원소의 적성이 매우 높은데다가 화염에 대한 심상도 아주 견고하다?

타고난 아프하 교단의 사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교장과 약속을 했던 것이다.

‘제대로 진실을 말할 경우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 아프하 교단의 사제가 되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지.’

마법학교의 교장은 뛰어난 인재를 교단에 뺏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사제들도 그걸 존중했다.

물론 이한의 성격에 아프하 교단 사제를 하고 싶어 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사제들은 그것까지 알지는 못했다.

“평범한 수준이군요.”

“평범합니다.”

“과연... 그렇군요.”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가보군.’

사제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니 이한은 의심하지 않았다. 굳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평범한 정도면 충분했다. 다른 마법을 배울 때 방해되지 않을 정도면 됐으니까.

“자.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주교는 이한의 손가락에 반지 하나를 끼워줬다. 반지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이건...?”

“화염 흡수의 반지입니다. 화염 마법을 사용할 때 이 반지가 이한 님을 보호해 줄 겁니다.”

원래라면 화염 마법을 방어하거나 화염 속성 몬스터를 상대할 때 쓰는 반지였지만, 자신의 화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재능 있는 화염 마법사가 수련할 때도 요긴하게 쓰이는 아티팩트였다.

이한은 감사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발화(發火) 주문은 아십니까? 한 번 해보십시오.”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타올라라!”

화르르르륵!

주먹만한 화염이 손바닥 위에서 불타올랐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효과에 이한은 반색했다.

“대단하군요.”

“...반지를 더 갖고 오십시오.”

“?!”

주교의 심각한 반응에 이한은 당황했다.

효과가 없는 거였나?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였군...’

손을 내려다보니 반지에 벌써 금이 가있었다.

나름 최대한 흡수를 했는데도 이 정도인 모양이었다.

반지 하나로는 별 의미 없는 수준이라니.

찰칵, 찰칵, 찰칵.

반지가 추가로 채워졌다. 이한은 주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열 손가락에 반지 열 개를 채우자 이한도 조금 걱정이 됐다.

이 정도로 반지를 채우면 화염 마법이 아예 시전 안 되는 게 아닐까?

“확실히 조금...”

“과한 면이 있습니까?”

“...부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팔찌도 갖고 오십시오.”

“......”

이한은 자신이 마법학교의 신입생인지 아니면 제국 최악의 화염 마법 범죄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주교는 이한의 양손에 반지를 열 개 채운 것도 모자라 팔찌를 네 개 채우고 목걸이도 두 개를 걸었다.

화염 마법을 상대하는 일이 많은 아프하 교단인 만큼 이런 대(對) 화염 마법 아티팩트는 넘쳐났다.

‘음. 상당히 전위적인 패션이군.’

마법사들이 패션에 별다른 감각이 없다지만 이건 좀 심한 것 아닐까?

*         *         *

겉모습이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프하 교단의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다.

이한은 아티팩트를 주렁주렁 차고서 화염 마법 수련에 들어갔다.

<화염 생성> 마법부터 시작해서, 생성된 불씨를 움직이는 것.

그리고 <하급 화염 저항>, <화염 진화> 같은 마법들까지.

사실 사제들은 후자에 훨씬 더 진심이었다.

다행히 모두 다 생각보다 잘 됐다.

이한은 원소 마법이 적성에 맞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볼라디 교수의 가르침이 화염 마법에도 효과가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후자가 아니길 빌었다.

볼라디 교수의 교육론이 맞았다는 실제 증거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돌아가면 혼자서 연습을 해도 됩니까?”

“당연히 안 됩니다.”

“.....”

옆에서 사제가 진지하게 속삭였다.

“이한 님에게 몇 개 더 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한은 못 들은 척 하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잖습니까.”

“다음 주에는 교단의 사제들이 학교에 머무를 겁니다. 봄 축제 기간을 맞이해서 황제 폐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

이한은 다른 것보다 지금 주교의 말에 더욱 놀랐다.

이번 주말이 끝나도 사제들이 학교에 머무른다고?

그런...

그런 기쁜 소식이?

이한의 얼굴이 밝아지자 사제들도 흐뭇해했다.

역시 신입생답게 봄 축제를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봄 축제가 기쁘시군요?”

“예? 아... 예. 뭐. 기쁩니다!”

이한은 뒤늦게 봄 축제를 떠올렸다. 사제들이 학교에 머물러준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놓쳤던 것이다.

“혹시 교장 선생님도 아십니까?”

“오늘 일정이 끝난 다음에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지금 바로 가서 말해주시면 교장 선생님께서도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몇 시간 빨리 말한다고 나쁠 건 없었다. 의아해하던 주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니기소르 사제가 돌아갈 때가 된 이한을 배웅해주기 위해 나섰다.

각종 가르침은 물론이고 아티팩트까지 받은 만큼 이한은 아프하 교단에 대해 매우 만족한 상태였다.

“아프하 교단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들이 많았지만, 오늘 만나보니 멍청한 자들이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걸 알게 되었군.”

니기소르 사제가 이한의 말에 기분 좋은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물론이오. 아프하의 불을 모시는 사제님들은 다들 친절하고 선량하오. 그분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에 이렇게 있을 수 없었을 터.”

제국에서도 인기 있는 종족과 없는 종족이 있었다.

그리고 선대에 잠들어 있던 정령의 핏줄이 발현한 정령 혼혈은 다들 꺼림칙하게 여기는 편이었다.

무성(無性)이 대부분인데다가 화염 정령 혼혈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 피해를 안 끼치기 힘든 특성을 갖고 있으니...

“확실히. 아프하 교단의 사제들은 다들 친절하셨지. 사제들이 일부러 불을 질러서 종말을 불러오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은 불에 태워버려야 해.”

본인도 처음에 그런 의심을 한 주제에 이한은 뻔뻔하게 말했다.

니기소르 사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다들 그런 오해를 하다니. 나를 제외하면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는데.”

“그렇지. ...음?”

동의하려던 이한은 멈칫했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방금 뭐라고?”

“뭘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 니기소르 사제가 불을 지르고 싶어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불을 지르고 싶어하는 건 아니오.”

“아. 그렇지?”

“다만 화염 마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아프하의 불이 더욱 빨리 찾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소. 사제님들께서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명상을 할 때마다 아프하의 불께서 제게 속삭이곤 하니...”

“......”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벌렸다. 니기소르는 이한의 속마음도 모르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이 그렇게 강한 화염을 영혼에 타고났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오. 앞으로 많은 활약을 기도하겠소.”

“......”

상대한테 응원을 받았는데 이렇게 기쁘지 않은 건 또 처음이었다.

*         *         *

“비쩍 말랐구나. 뼈밖에 남지 않았어.”

“아닙니다.”

“비쩍 말랐잖니! 이렇게 뼈만 남다니...”

“진짜 아닙니다.”

티질링과 교단 사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한이 천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한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사제를 쳐다보고 티질링을 쳐다보았다.

티질링은 눈빛으로 부탁했다.

사제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그만하게 만들어달라고.

“비쩍 말라서 뼈만 남은 것 같긴 합니다.”

“그렇지? 먹을 걸 갖고 와라.”

“......”

티질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이한은 못 본 척 자리에 앉아 냅킨을 깔았다. 마법학교에서 오래 살려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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