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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34화 (134/687)

134화

프리싱가 교단 사제들이 차려준 음식은 풍성했다. 이한은 오랜만에 남이 차려준 음식을 마음껏 집어삼킬 수 있었다.

신선한 햄과 양상추를 끼워 넣은 샌드위치를 먹고 설탕과 우유를 넣은 홍차까지 들이킨 다음에야 이한은 티질링 사제한테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비쩍 마른 것 같지는 않군.”

“......”

다른 악마 혼혈이었다면 벌써 욕이 나갔을 테지만 티질링 사제는 오랜 수련으로 인해 수양이 깊은 사람이었다.

“...이제라도 그렇게 생각하시니 아주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메흐리드 사제가 이한 앞에 파운드 케이크를 잘라서 놓으며 감사를 표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티질링이 굶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사제님.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형제님께서는 탑의 다른 학생들도 먹여 살린다고 들었습니다.”

메흐리드 사제는 진심 어린 존중이 담긴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마법학교의 신입생들이 상당히 고되게 생활하고 있다는 건 모든 사제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친구들을 먼저 챙겨주는 건 쉽지 않았다.

‘...돈 받는 건 모르시나보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탑 학생들은 대부분 이한이 꼬박꼬박 장부 기록해가면서 음식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우린 워다나즈가 언제나 식사를 차려줬어’라고 말하고 다닌 덕분이었다.

나중에 졸업 대비용 저축으로 꼬박꼬박 모아놓고 있는 만큼 저런 말을 들으니 조금 민망...

“그런 박애와 헌신이야말로 프리싱가 님의 뜻이나 마찬가지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한은 진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제 와서 말하기에는 서로 민망했다.

식사가 끝나고 티질링 사제가 다른 사제들에게 ‘왜 이렇게 마른 거니’소리를 듣는 동안 이한은 메흐리드 사제와 마저 이야기를 나눴다.

“허리띠는 괜찮으십니까?”

사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한을 훑어보았다.

세상에 내린 저주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내겠다고 맹세한 것이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 사제들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한 같은 경우에는 마력을 흡수하는 저주가 걸려 있는 허리띠를 차고 있지 않은가.

마법사로서 교육 받고 있는 만큼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저는 괜찮습니다.”

“형제님...!”

“오히려 더 짊어지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이한의 눈에 메흐리드 사제는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선물을 주고 가는 사람에 가까웠다.

물론 저주가 걸려 있긴 하지만 이한에게 마력 흡수의 저주는 사실상 무의미했다.

‘정말로 더 주셔도 되는데 말이지.’

메흐리드 사제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배낭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것도 마력 흡수의 저주가 걸린 아티팩트입니다만...”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까?”

“효과 말입니까?”

메흐리드 사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떤 저주냐가 중요하지 효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한은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저주 말고 효과를 기억하고 다녀야 하지 않나, 보통?’

“아! 기억났습니다. 수중 호흡의 반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신입생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

메흐리드 사제의 생각과 달리, 말을 들은 이한의 눈은 반짝였다.

‘수중 호흡!’

밤에 얌전하게 탑에 머무르는 신입생에게는 수중 호흡 마법이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이한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학교 밖으로 빠져나가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 만큼 수중 호흡 마법은 매우 요긴했다.

‘마법학교는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저번에 복도 좀 통과하려다가 숲에서 길을 잃었던 이한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마법학교는 안에서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다음 첨탑 마구간으로 가는 길에 바다가 나와도 이한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형제님...!”

이한이 망설이지 않고 반지를 끼는 모습에 메흐리드 사제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역시 다른 학생들을 먹여 살리는 만큼 그 신앙심도 상상을 초월했다.

‘역시 아무 효과 없군.’

이한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메흐리드 사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형제님. 아티팩트를 너무 많이 착용하신 것 아닙니까?”

아티팩트를 너무 많이 착용하는 것도 위험했다.

각자의 마력끼리 충돌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특이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아티팩트끼리의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으면 비교적 괜찮았지만 반지처럼 한 손가락에 여러 개 붙여서 끼는 경우에는 좀 더 주의를 해야 했다.

화염 흡수의 장신구들은 각자 똑같은 성능을 갖고 있었으니 서로 충돌을 일으킬 일이 없었지만, 수중 호흡의 반지는 조금 주의를 해야 했다.

“번갈아서 착용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저렇게 많은 반지를 왜 차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티질링 사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프리싱가 교단도 봄 축제 때문에 머무르시는군요.”

이한은 매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싱가 교단의 사제들은 아까 다른 사제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똑같은 착각을 했다.

-역시 신입생답게 봄 축제에 기뻐하는구나!

“예. 다음 주까지 학교에 머무르면서 봄 축제를 도울 생각입니다.”

제국의 봄 축제는 찾아오는 봄을 맞이해 격식 없이 자유롭게 축하하고 즐기는 기간이었다.

축제라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연극이나 공연, 행사 같은 것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원래 사제들 없이 해골 교장이 ‘이번 주는 봄 축제다’라고 했다면 이한은 ‘음 개수작이군’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이렇게 사제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다음 주는 식료품을 아낄 수 있겠는데.’

이한은 요네르와 함께 매일 식료품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밖에서 대량으로 들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소모되는 속도가 빨랐다. 아낄 수 있을 때 아껴둬야 했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다시 한 번 나가볼 생각이었지만 실패할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 남은 식료품들이...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하고 교환을 해서 좀 더 채운다 치고, 진지하게 덫을 놔서 잡아보는 것도 고민해봐야겠군. 호숫가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야채는 아직 텃밭이 있어서 괜찮고.’

계산하던 이한은 갑자기 살짝 억울해졌다.

왜 마법학교에 들어와서 이래야 하지?

그냥 마법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참. 형제님. 혹시 봄 축제의 행사를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할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해드려야죠. 친구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한은 한 끼 때울 수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프리싱가 교단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십니까?”

“일단 연극과...”

나쁘지 않았다. 이런 축제 때 곳곳에서 진행되는 연극들은 언제나 인기가 좋았다.

“고리 던지기.”

간단한 놀이였지만 판 초콜릿 하나만 걸어줘도 신입생들은 눈이 벌게져서 던질 것이다.

“저주 체험이 있습니다.”

“...오...”

이한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야 저 저주 체험을 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흰 호랑이 탑 놈들을 알아봐야 하나?’

*         *         *

달카드 가문의 아산은 한숨을 푹푹 쉬며 이한에게 고마워했다.

“정말 고맙다. 워다나즈. 나 때문에 너까지 주말에...”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을 가르치는 교수, 알펜 나이튼 때문에 아산은 다른 친구들이 주말에 쉬는 동안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주에 내 친구 중 한 명이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네. 제국 행정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사귀었던 친구인데, 그 친구가 방문할 때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솜씨를 보고 싶어하더군. 그래서 간단한 마법진 제작을 자네들에게 맡기고 싶네.

이한 다음으로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맡게 되었지만 아산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황금 같은 주말에도 나와서 준비를 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이한이 도와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걸 다 혼자서 해야 했던 만큼 이한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너무 미안해할 것 없다. 아산.”

“워다나즈...!”

이한의 사악한 속셈을 모르는 아산은 감동으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가이난도 같은 놈 백 명을 합쳐놔도 이한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행정관의 눈에 들겠다.’

쪽지시험이나 중간고사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이한의 눈빛은 의욕으로 불타올랐다.

교수의 친구에게 반드시 깊은 인상을 남기고야 말겠다!

“그나저나 다음 주 축제 때 교수님들도 뭔가 하신다던데, 들었어?”

“...정말로?”

“응. 교장 선생님께서도 뭘 하신다던데.”

“......”

이한은 갑자기 기대감이 사라지고 걱정이 몰려왔다.

이 미친 리치가 또 뭘 하려고 이러지?

‘아니... 아직 아니다. 게다가 사제들이 학교에 있잖아.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그런데 아산. 그건 어디서 들은 거지?”

“아까 가르시아 교수님이 축제 때 도와줄 사람을 찾으시던데? 성적 우수한 학생들부터 부르시더라.”

“그랬군. ...잠깐.”

이한은 순간 섬뜩한 직감이 뒷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해골 교장이 설마 이한을 부르진 않겠지?

*         *         *

가르시아 교수에게 불려온 닐리아는 이한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했다.

“워다나즈는 안 오나요?”

각 탑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불렀다면 절대 이한이 빠질 수가 없었다.

“이한 학생은... 너무 바쁘고 힘들어보여서요.”

“......”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닐리아는 입을 다물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공감 가는 말이었던 것이다.

“닐리아 학생이 언제 한 번 몸조심하라고 말해주세요.”

“저는 말하는 편인데... 그게... 워다나즈가 워낙 마법에 진심이라...”

“그렇긴 하죠?”

두 교수와 학생은 이한이 들었다면 황당해 할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심히 준비하는구려... 가르시아 교수...

“......”

뒤에서 나타난 해골 교장은 평소보다 몇 배는 시큰둥한 목소리였다.

가르시아 교수는 상대방이 오만상을 찌푸린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고 황당해했다.

원래 리치는 저렇게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근육이나 살점 없는 해골을 굳이 마법으로 움직여서 표정을 만들다니.

‘고위 마법을 저런 곳에 쓰셔야 하나 꼭?’

“학생들이 기뻐하지 않겠어요?”

학생들이 왜 기뻐해야 하지? 가르침을 주는 건 우린데... 학생들이 우릴 기쁘게 해야 하는 거 아닌지...

해골 교장은 계속해서 구시렁댔다. 가르시아 교수는 닐리아의 귀에 소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법으로 막았다.

나도 준비하러 가보겠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사제들이 폐하에게 말할 테고 폐하는 나한테 뭐라고 하겠지... 제국을 저능아들이 좀먹고 있어서...

가르시아 교수는 닐리아의 귀를 막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해골 교장은 그 뒤로도 제국의 교단들을 몇 번이고 욕했다.

이만 가보겠소... 잘 지내시오...

“잠깐. 교장 선생님. 그런데 뭘 준비하실 생각이신가요?”

가르시아 교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학생한테 물어보고 정해야겠지...

“그렇군요. ...잠깐만요. 잠깐만요.”

왜 자꾸 그러시오...

“아니... 자꾸 불러서 죄송한데요. 어느 학생을 부르실 건가요?”

가르시아 교수는 ‘교장 선생님은 친한 학생 없잖아요’라는 말을 굳이 하진 않았다. 이미 해골 교장은 충분히 슬퍼하고 있었으니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

“...이한 학생은 너무 바쁘지 않나요?”

내 알 바 아니오...

“......”

가르시아 교수는 마법을 한 방 날리고 싶은 걸 꾹 참아야했다.

잠깐.

“뭐요 또?”

저기 배그렉 교수... 친한 학생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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