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그러나 그런 가르시아 교수의 분노에도 노마법사는 얼굴 하나 변하지 않았다.
“우리 때에는 아예 던전에서 마법을 가르치곤 했단다. 마력이 충만해서 좀 더 강한 마법을 쓰기 좋았거든. 게다가 이런저런 현상들까지 일어나니 참고하기 좋았지.”
“요즘 마법사들은 그렇게 안 배워요.”
사실 마법학교의 교육방침을 떠올리면 구시대적인 교육에서 그리 멀어진 것 같진 않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일단 그렇게 주장했다.
적어도 가르시아 교수는 그렇게 가르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래도 제자를 너무 약하게 키워서 좋을 게 없을 텐데...”
“교장 선생님께서 그러시다가 여럿 망쳤는데요.”
“고나달테스는 너무 심하고.”
유미디후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엄격하고 혹독한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유미디후스가 보기에도 고나달테스의 교육은 지나쳤다.
“언제나 적당한 선이 중요한 거지. 볼라디 배그렉은 선을 지킬 테니 너무 걱정할 거 없다.”
인자한 할머니 같은 목소리였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조금도 안심되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존경스러운 노마법사가 가르시아 교수보다는 해골 교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방심할 수 없다!
“배그렉 교수님과 구면이신가요?”
“내 밑에서 잠깐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지.”
“제자였나요?!”
“제자는 아니지. 잠깐 가르침을 받았을 뿐.”
‘보통 그걸 제자라고 하는데...’
가르시아 교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뭐라고 지적하진 않았다.
사실 마법사들 중에서 제자의 정의를 까다롭게 따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마법 하나 가르쳐줬다고 스승-제자 관계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제자는 무릇 그 마법사의 비전과 깨달음을 이어받아야 한다!
노마법사의 말을 들은 가르시아 교수는 흥미가 생겨서 물었다.
“배그렉 교수님은 제자로 삼기에 부족하셨나요?”
“서로 성격이 안 맞아서 오래 얼굴 보면 둘 중 하나는 죽겠구나 싶었지.”
“......”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였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진심으로 납득했다.
확실히 볼라디 교수는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 * *
“교수!”
이한은 욕설치고는 특이한 말을 내뱉으며 뒤로 날아갔다.
‘젠장!’
100% 매복이 있을 만한 어두컴컴한 광장에 들어가면서, 이한은 할 수 있는 준비를 최대한 했다.
말이 할 수 있는 준비였지 다른 마법사들이 봤다면 ‘대체 저 놈은 신입생이 맞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준비였다.
<공간 인지>나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은 물론이고, <파하이트의 하급 환상>, 그것도 모자라서 <물 방패>로 몸을 감쌌다.
아귀가 어떤 방향에서 기습하든 막아낼 수 있도록.
그리고 이한의 계산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
-■■! ■■■!
실제로 광장 곳곳에서 나타난 아귀들은 이한의 준비를 뚫지 못했다.
몇몇은 환상에 속아 넘어가 그쪽으로 달렸고, 몇몇은 물 방패에 부딪혀 허우적댔다.
그 사이 이한은 정확히 아귀들을 쓰러뜨렸다.
멀리 있는 아귀는 불꽃을 점화시키고, 가까이 있는 아귀는 물 구슬들로 쓰러뜨려서 부수고...
모든 게 완벽해보였다.
예상치 못한 적이 나오기 전까지는.
-■■■■■!!!
“......”
보통 아귀보다 몇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나찰아귀의 등장에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다중 운용 한 번 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이한은 갑자기 억울해졌다.
물 구슬 나눠서 쓴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강의 시간에 저런 놈을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찰아귀는 이한의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고 돌격했다.
이한은 이를 악물고 마법을 난사했다.
불꽃이 작렬하고 동시에 물 구슬이 사방에서 어지럽게 날아들며 힘차게 나찰아귀를 후려갈겼다.
원래라면 쓰러졌을 아귀와는 달리 나찰아귀는 그 덩치만큼 두꺼운 끈적거리는 점액질의 갑옷으로 몸을 보호했다.
타오르는 불꽃이 사그라지고, 물 구슬이 충격을 주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퍽!
“교수!”
둔탁한 충격과 함께 이한은 뒤로 날아갔다.
물 방패를 불러서 급히 막지 않았다면 뼈 한두개 정도는 나갔을 것이다.
이한은 바로 몸을 일으켰다.
욕을 하거나 투덜거리는 건 나중에 해도 됐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번쩍여라!”
번개가 날아가다가 옆으로 꺾였다. 나찰아귀에게 닿지도 않았다.
“...!”
이한은 빠르게 상황을 깨달았다.
광장에 위치한 녹색 바위가 번개 마법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뭐 이런...?!’
이한은 짧은 사이에 페르쿤트라를 욕하고, 볼라디 교수를 욕했다.
사실 페르쿤트라는 크게 잘못이 없었지만...
* * *
유미디후스와 가르시아 교수는 곧 볼라디 교수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지하 강의실과 연결되어 있는 던전의 심층부였다.
“유미디후스 님.”
“볼라디 배그렉. 오랜만이구나.”
예상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도 볼라디 교수는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유미디후스도 딱히 볼라디 교수의 호들갑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바로 시선을 돌렸다.
볼라디 교수 앞에는 환상 마법으로 구성된 시야가 펼쳐져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안 봐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었다.
‘진짜 던전에 데려갔잖아?’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던전에 데려왔을 줄이야.
가르시아 교수는 기가 막혔지만, 유미디후스와 볼라디 교수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태연하게 대화를 진행해나갔다.
“저 신입생은 어느 정도 수준이지?”
“원소 통제, 모양 변화, 다중 운용.”
“...중 어떤 것에 숙련되었냐는 질문이었단다. 볼라디 배그렉.”
유미디후스는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볼라디는 기본적으로 화술에 별 재능이 없었다.
그냥 말이 서투른 거면 모를까 자기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확신까지 있어서 사람을 더 열받게 만들었다.
아마 지금도 ‘나는 제대로 대답을 했는데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모두 숙련된 상태입니다.”
“...뭐라고? 정말로?”
유미디후스가 깜짝 놀랐다.
“고나달테스가 날 속이려고 이러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유미디후스 님.”
가르시아 교수가 해명했다.
물론 유미디후스 입장에서 볼라디 교수의 말이 믿기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신입생이 저 정도로 원소 마법에 숙련되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배그렉 교수님이 조금 엄격하고 가혹하게 가르쳐서...”
“?”
볼라디 교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르시아 교수의 말이 납득가지 않았던 것이다.
“잘 가르쳤나보구나.”
“감사합니다.”
“......”
두 마법사의 대화에 가르시아 교수는 갖고 있던 존경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꼈다.
가르시아 교수의 속마음도 모르고 유미디후스는 말을 이었다.
“제자의 성취는 스승의 좋은 가르침 없이는 나올 수 없지. 네가 누군가를 가르칠 능력이 있나 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과소평가한 모양이야.”
볼라디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칭찬을 받아들였다. 가르시아 교수는 이 자리에서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오늘 목적은?”
“다중 운용의 체화입니다.”
“몬스터는?”
“아귀입니다.”
유미디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시아 교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지적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귀는 신입생이 상대하기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유미디후스는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신입생도 신입생 나름이지. 원소 통제, 모양 변화, 다중 운용 모두 숙련된 신입생이면 아귀 정도는 상대해도 될 거야.”
“......”
가르시아 교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옆에서 볼라디 교수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시아 교수는 주먹을 꼭 쥐었다.
유미디후스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상당히 흥미로운 소년이었다.
“마법을...?”
“마력이 상당히 많은 편이에요.”
“그러면 통제하기 힘들 텐데, 용케 마법을 저렇게 많이 쓰는구나.”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들은 아무래도 성장이 더딘 편이었다.
마력량이 많은 만큼 통제하는 데에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도 저렇게 마법을 여러 개 사용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재능이었다.
마력과 함께 마력을 조종하는 재능도 같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방패여, 펼쳐져라.
“......”
“......”
그러나 그런 유미디후스도 이한이 광장에 들어가기 전에 추가로 마법을 시전하자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소년은 마법을 저렇게 써도 괜찮나?”
“예.”
“너한테 물은 게 아니란다. 볼라디 배그렉.”
유미디후스는 과연 노련한 마법사답게 누구한테 질문을 해야 쓸만한 대답이 돌아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대답하기 싫은 표정으로 말했다.
“예... 괜찮아요 저 정도는.”
“마력이 생각보다 더 많은가보구나.”
“......”
준비를 마친 이한은 안으로 들어갔다.
신입생치고는 너무 과한 화력으로 무장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광장 안에 매복해 있던 아귀들을 도륙해나갔다.
제법 잘 매복해 있던 아귀들도 닿지도 못한 채 쓰러지는 걸 본 유미디후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네가 이렇게 가르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빠득-
듣던 가르시아 교수는 이를 갈았다.
그렇게 도륙되고 끝났나 싶었는데 광장에서 다른 몬스터가 나타났다. 나찰아귀였다.
‘...저건 진짜 너무 심하지 않나?’
가르시아 교수는 지적하려다가 망설였다. 말해봤자 저 두 마법사들이 또 괜찮다고 할 것 같았던 것이다.
“저건 너무 심하지 않나?”
유미디후스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노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다중 운용의 체화에 굳이 저런 몬스터까지 필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볼라디 교수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예상 밖의 상황입니다.”
“...네가 뭐 그렇지. 내가 다녀오마.”
유미디후스는 볼라디 교수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볼라디 교수는 역시 제자를 길러낼 역량이 없었던 것이다.
가르시아 교수가 보기에는 둘 다 똑같았지만...
“통제를 하려면 똑바로 해야...”
말을 하던 유미디후스는 멈칫했다.
능력 없는 스승한테 걸린 제자가 나찰아귀를 쓰러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 * *
번개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한은 나찰아귀의 공격을 재빠르게 피했다.
해골 교장에게 감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 덕분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실전에 가까운 검술로 단련된 상태에서 강화 마법까지 걸린 만큼, 단순한 돌진은 피해낼 만했다.
‘가장 익숙한 원소로.’
이한은 물 원소를 선택했다.
먹히지 않는 번개 원소나, 아직 자신이 없는 불 원소보다 물 원소가 차라리 나았다.
물론 그냥 쏘아낼 수는 없었다. 이미 기존 물 구슬의 충격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든 회전시킨다. 완벽할 필요는 없어!’
이한은 공중에 떠있는 물 구슬들을 단체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저번에 골렘을 쓰러뜨린 것처럼 완벽한 회전은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적을 쓰러뜨릴 정도의 관통력뿐.
상대의 공격을 계속 피하면서, 침착하게 완성시키면 그만이었다.
파파파파팍!
‘부족했다. 다시 시도하자.’
첫 시도가 실패했음에도 이한은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았다.
얼음처럼 침착하게.
두 번째, 세 번째.
점점 물의 구슬이 날카롭게 충격을 전해주자 나찰아귀는 슬슬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퍼퍼퍼퍼퍼퍽!
‘됐다!’
골렘을 쓰러뜨릴 때처럼 완벽한 회전은 아니었지만, 회전하며 날아든 물의 구슬들이 나찰아귀의 몸에 강한 충격을 때려 박았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상대의 모습에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지옥에나 가라! 볼...”
“대단하구나.”
“...아귀!”
“저건 볼아귀가 아니라 나찰아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