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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41화 (141/687)

141화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이한은 즉시 반응했다. 허리가 절도 있게 숙여졌다.

이번 주에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학교에 방문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점이 컸다.

‘외부에서 온 마법사겠군.’

“안녕하십니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늙은 마법사는 의아해했다.

유미디후스라는 이름이 가진 명성에 비해, 노마법사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겉으로 보면 인자한 할머니 같은 만큼 저렇게 깍듯하게 존경심을 표할 이유가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오신 손님이신 만큼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능 있는 마법사치고는 너무 예의바르구나!”

유미디후스는 놀랐다.

보통 마법사들의 인성은 재능에 반비례하는 편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능이 있으면 있을수록 건방져지고 오만해지는 게 현실이었다.

눈앞의 소년 정도라면 유미디후스를 만나자마자 옆에 침 뱉고 ‘누구쇼?’같은 말을 해도 놀랍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워다나즈 가문 출신에 볼라디 배그렉에게 배우고 있지 않은가.

당연히 오만하고 괴팍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공손한 이한의 모습에 유미디후스는 신기해했다.

‘어떻게 저런 제자가 볼라디 배그렉 밑에 있지?’

“나찰아귀를 쓰러뜨리다니. 놀라지는 않았니?”

“놀랐지만 이제까지 배운 마법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한은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상대의 신분을 모르는 만큼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물론 외부에서 온 손님이긴 했지만 해골 교장이나 볼라디 교수와 어떤 사이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랐다.

“이런 시련을 준비한 볼라디 배그렉한테 화가 나진 않았고?”

유미디후스는 이한이 침착하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게 가장 신기했다.

나찰아귀는 볼라디 배그렉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이었다.

원래 던전 아래쪽에 있어야 할 놈이 어쩌다가 위로 올라온 것이다.

아직 어린 마법사라면 화를 내야 정상이었다.

저 정도 재능을 가진 오만한 마법사라면 더더욱.

그러나 이한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볼라디 교수와 친분이 있는 사이다!’

교수라고 부르지 않는 걸 보니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이한은 다시 한 번 인내했다.

“아닙니다. 교수님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위해 준비하셨을 뿐입니다. 화를 낼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런!”

노마법사는 탄성을 내뱉었다.

‘어쩌다 볼라디 배그렉한테 저런 과분한 제자가?’

보통 마법사들은 재능이 있으면 인성이 없고 인성이 있으면 재능이 없는 편이었는데 눈앞의 소년은 놀랍게도 둘 다 갖고 있었다.

심지어 볼라디 배그렉의 성격에도 불평하지 않을 정도로 인내심이 강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무사히 넘어갔군.’

상대가 만족한 것 같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볼라디 교수와 가르시아 교수가 아래에서 나타났다. 가르시아 교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괜찮아요, 이한 학생? 하필이면 나찰아귀를 만나다니...”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가르시아 교수와 같이 볼라디 교수를 욕했겠지만, 보는 눈이 많았다.

이한은 다시 한 번 가식적으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볼라디 교수님께서 다 계산하고서 준비해주신 거니까요.”

“나찰아귀는 미리 준비한 게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온 거예요. 이한 학생.”

“...아.”

이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쩐지 마법들이 안 통하더라!

욕이 목구멍으로 올라왔지만 이한은 안면근육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군요.”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속마음도 모르고 안타까워했다.

이럴 때 정도는 화를 내도 되는데, 사람이 너무 착해서 안타까웠다.

“참. 이 분은 유미디후스 님이세요. 이름은 들어봤겠죠?”

“!”

이한도 유미디후스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제국에서 유명한 물 원소 마법사 아니었던가.

이한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미디후스 님.”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이름에 그렇게 존경을 표하니 오히려 민망하구나.”

“아닙니다. 유미디후스 님.”

“물 구슬을 회전시켰던데. 맞지?”

이한은 노마법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회전까지 완전히 다뤘다면 여기 있는 다른 마법사들은 부끄러워서 지팡이를 꺾어버렸을 거다. 그 정도만 해도 정말 대단하구나.”

유미디후스는 생각에 잠겨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며칠 더 머무르게 될 텐데, 간단한 가르침을 더 받아볼 생각이 있느냐?”

“!”

볼라디 교수나 유미디후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가르시아 교수 혼자 깜짝 놀랐다.

유미디후스가 가르침을 내려준다는 건 절대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몇날며칠을 무릎 꿇고 빌어도 가르침을 내려주지 않는 게 유미디후스였다.

보석 같은 재능을 갖고 있는 마법사만이 유미디후스의 눈에 들어서 간단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볼라디 교수도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그것도 다 먼저 가르침을 청하는 경우.

그런데 저 노마법사가 아직 아무런 업적도 없는 일개 신입생한테 먼저 가르쳐주겠다고 제안을 하다니.

가르시아 교수는 믿기지가 않았다. 볼라디 교수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괜히 더 답답했다.

‘받으세요, 이한 학생! 좋은 기회에요!’

“감사합니다만...”

“?!”

이한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가르시아 교수는 답답해 죽으려고 했다.

“거절하려는 이유라도 있는 거냐?”

유미디후스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볼라디 교수님께 배우고 있는데 멋대로 다른 분께 가르침을 받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한은 신중했다.

교수란 작자들은 생각보다 마음이 좁았다. 앞에서 ‘예 배우겠습니다’ 같은 말을 했다가는 학점에서 보복당할 수 있었다.

물론 볼라디 교수가 그럴 것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 법 아닌가.

조심하는 게 좋았다.

“허!”

유미디후스는 다시 한 번 탄성을 내뱉었다. 아까 탄성보다 더 긴 탄성이었다.

“원래 그런 것이지만, 참 세상은 불공평하구나...”

선하게 살면 운이 따른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렇다면 볼라디 배그렉 같은 놈 밑에 어떻게 저런 인성바른 제자가 들어왔겠는가.

유미디후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예의바른 아이구나.”

유미디후스는 고개를 돌려 볼라디 배그렉을 쳐다보았다.

“잘 가르쳤구나.”

“예.”

“그런데 정말로 네 공은 아니다.”

“??”

볼라디 교수는 노마법사의 말에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째서?

유미디후스는 볼라디 배그렉한테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가르침을 좀 줘도 되겠지?”

“예.”

“된다는구나. 그러면 며칠 동안 잘 부탁하마.”

노마법사는 이한의 어깨를 두드린 다음에 돌아서서 나갔다.

둘의 대화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한이 가르시아 교수에게 물었다.

“유미디후스 님이 배그렉 교수님과 어떤 관계십니까?”

“배그렉 교수님이 유미디후스 님 밑에서 배운 적이 있어요.”

“......”

대답을 들은 이한의 얼굴이 던전의 어둠보다 창백하게 변했다.

*         *         *

자신의 선택을 저주하고 있는 이한에게 볼라디 교수가 천천히 말을 걸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이한은 말 뒤에 ‘교수놈아’라고 나오는 걸 꾹 참았다.

나찰아귀가 올라오는 걸 눈치 못 채고 있었다니 그걸 말이라고...

“참. 교수님. 아까 번개 마법을 방해하는 지물이 있었습니다.”

“내가 뒀다.”

“...아하.”

물 마법에 집중시키기 위해 번개 마법을 방해하는 지물을 설치해놓다니.

이한은 교수의 세심한 배려에 감격해서 몸을 떨었다.

“다중 속성은 거의 완벽하더군. 몇 번 더 싸우면 익숙해질 거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 이한은 아귀 정도는 괜찮았다. 어떻게든 준비해서 싸울 자신이 있었다.

“다음번 나찰아귀 때에는 다른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확실히 관리해야겠군.”

“감사합... 잠시만요. 교수님.”

“?”

“다음번 나찰아귀 때라니... 아귀가 아닙니까?”

“아귀는 너한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볼라디 교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위협을 느껴야 마법의 실력이 빠르게 상승하는데, 평범한 아귀들로는 이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나찰아귀가 나오는 곳으로 내려가야 했다.

“...다음번에는 마법 풀고 싸우겠습니다.”

위협을 느낀 이한이 저항을 시도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강화 마법을 푼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아귀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그렇군요.”

볼라디 교수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오판했다.”

“예?”

“회전 속성에 도전해봐라.”

이한이 지나치게 성급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속성부터 익숙해지게 하려고 했던 볼라디 교수였다.

하지만 오늘 싸우는 걸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진정 재능 있는 마법사라면 막는다고 해서 미지의 영역에 뛰어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다중 운용을 하면서 회전까지 시도하는 이한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스승이라면, 제자의 앞길을 섣불리 막아서는 안 된다.

볼라디 교수는 또 한 번 가르침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교수가 창백한 얼굴로 묵묵히 자신을 쳐다보며 응원하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은 생각했다.

‘진짜 한 대 갈기고 징벌방 갈까?’

지금 회전 속성을 누구 때문에 시도하게 된 건데...

*         *         *

“교수님.”

“왜 그러지?”

강의 시간이 끝나고 볼라디 교수에게 ‘안녕히 계십시오’하려던 이한은 그러지 못했다.

볼라디 교수와 함께 지하에서 올라와 본관 앞의 축제 매대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교수에게 배정된 것 같은 소박한 공간에 둘이 같이 서있자 이한은 벌써 기숙사로 가고 싶어졌다.

강의 시간에도 지긋지긋했는데 쉬는 시간에도?

“다른 학생은... 음. 아닙니다.”

‘다른 학생을 시키면 안 되나요?’라고 물으려던 이한은 빠르게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의 강의를 듣는 사람이 이한밖에 없었다.

“교수님께서도 행사를 여시는 겁니까?”

“그렇다.”

“축제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다.”

“그런데 왜?”

“고나달테스.”

“아하.”

볼라디 교수의 짤막한 대답에 이한은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쳤다.

하긴 볼라디 교수가 사제들도 아닌데 학생들의 즐거움을 위해 축제 운영에 헌신할 리가 없었다.

‘사악한 교장 같으니. 분명 괴롭히려고 이러는 걸 거다.’

사실 황제 폐하의 명령이었지만 이한은 그것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이한은 왼쪽을 쳐다보았다.

장갑을 낀 사제들이 신입생들을 위해 달달한 과자를 구워주고 있었다.

이한은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형형색색의 복장으로 꾸며 입은 사제들이 연극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불리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갔지 볼라디 교수의 점포에 들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학점과 상관없어서 다행이군.’

볼라디 교수가 주머니에서 표 하나를 꺼냈다. 이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놀랍게도 그건 외출권이었다!

“이걸 승자한테 준다.”

“교... 교수님.”

“왜 그러지?”

“저도 그걸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밖에 없다.”

“만약 끝났는데도 남는다면...?”

“필요한가?”

볼라디 교수는 ‘왜 외출을 하고 싶어하지’하는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다. 주겠다.”

“......”

이한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뭘 하든 간에, 손님에게 저걸 넘길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다.’

“교수님. 종목이 뭡니까?”

볼라디 교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천막 위에 어느새 글씨가 새로 생겨나 있었다.

-<물 구슬 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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