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44화 (144/687)

144화

‘놀랍지도 않다.’

이한은 놀라워하는 대신 말했다.

“그렇습니까. 학생들한테 쏘려고 하시는군요.”

학생들에게 폭죽을 쏜다니 말이 되나?->(X)

학생들에게 폭죽을 쏘려고 하시는구나!->(O)

이미 각오를 마친 이한은 이 정도에 흔들리지 않았다.

‘친구들한테 해골 교장이 하는 행사는 피하라고 전해놔야지.’

이번 축제에서 해골 교장이 아무리 맛있는 간식을 준다고 하더라도 따라갔다가는 폭죽을 맞을 수 있었다.

이한의 반응이 무덤덤하자 해골 교장은 재미없어했다.

오래 살면 살수록 남는 재미는 줄어드는 법.

해골 교장에게 남은 재미라고는 마법을 탐구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제자들을 괴롭히는 재미 정도밖에 없었다.

정말로 검소한, 수도승 같은 청빈의 삶.

그런데 이한이 저렇게 반응하니 해골 교장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한테 폭죽을 쏜다는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

“아닙니다. 쏘실 수도 있죠 뭐...”

......

해골 교장은 새로 발견한 제자가 새삼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제까지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고 괴롭혀왔지만 눈앞의 제자처럼 독특한 놈도 드물었다.

말하는 걸 보면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그 심지가 어지간한 귀족 놈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다.

‘저런 녀석일수록 제대로 마법을 해야 하는데...’

해골 교장은 제국의 세태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마법학교가 다 뭐란 말인가.

옛날에는 스승과 제자가 일대일로 마주 앉아 모든 걸 전수받았는데...

다른 마법사들에게 이런저런 잡소리를 들으면 괜히 헛바람만 들었다. 지름길이 있는데 빙빙 돌아가야 한다는 게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         *         *

이한은 해골 교장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다른 교수의 공방인가?’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특한 외견의 탑.

교수들이 각자 자기 공방을 갖고 있는 만큼 여기도 다른 교수의 탑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화로와 풀무. 각종 대장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설들과 장비들이 앞에 어질러있는 걸 보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마법학교에 이런 곳이?’

기사 알라르롱을 따라다닐 때 가끔 이런 곳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기사들에게 무구는 목숨보다 중요한 만큼, 뛰어난 솜씨의 대장장이와 안면을 익혀놓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알라르롱이 방문하는 대장장이의 대장간 또한 제국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한 시설을 갖고 있었는데...

‘거기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군.’

너무나도 전문적이라서 좀 놀라웠다.

어떻지?

해골 교장은 이한이 놀라워하는 것 같자 은근히 물었다.

이 마법학교의 시설 중 몇몇은 해골 교장이 황제에게 굽신거려가며 따낸 예산으로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다.

“놀랐습니다. 여기는...”

성각관이다. 뭘 하는 곳인지 알겠나?

“아티팩트를 만드는 곳이군요.”

그래.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마법이 걸린 아이템, 아티팩트를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누가 마법을 부여하겠는가?

그런 만큼 뛰어난 아티팩트 제작자는 뛰어난 마법사이자 동시에 훌륭한 대장장이였고, 또 노련한 조각가이자 재능 많은 세공사이기도 했다.

“아티팩트를 축제 때 팔아서 수익을 올리시려는 겁니까?”

...흥미로운 발상이지만 아니다.

해골 교장은 이한의 말에 어이없어했다.

물론 아티팩트 판매는 마법사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긴 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만들 줄 아는 마법사들 중에 어떻게든 아티팩트를 많이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돈에 집착하고, 또 돈을 목적으로 하는 마법사들은 높은 경지에 오르기 힘든 것이다.

아티팩트 판매는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연구를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

‘왜 안 팔지? 외부 손님이 생각보다 많아 보이던데.’

‘이 놈은 학교 운영하는 놈도 아닌데 왜 이렇게 돈에 관심이...?’

교장과 학생은 서로를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탑 안에서 교수가 나타났다.

이한은 교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귀여우시군!’

양손에 각각 망치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교수는 비버 수인족이었다.

여러 수인족을 제법 봐온 이한이 보기에도 놀랄 정도로 귀여웠다.

“왜 왔어?”

마법 폭죽이 필요해서 왔다.

“알겠어. 만들어놓을게. 가.”

여기 도와줄 제자를 데리고 왔다.

“도움 필요 없는데?”

비버 교수는 의아하다는 듯이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해골 교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학생들을 시키지 않고 혼자 만드는 걸 너무 좋아하잖나. 그러다 몸 상해.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제자들을 시켜야 하는데? 이해를 못하겠네.”

비버 교수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해골 교장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한에게 마법 폭죽 제작 작업을 시키려고 데려온 것 아닌가.

기껏 데려왔는데 정작 이한은 탱자탱자 놀고 비버 교수만 열심히 일하면 해골 교장 입장에서는 정말 슬플 것이다.

어허! 그러다 몸 상한다니까! 교장으로서의 명령이다. 여기 이 제자와 같이 만들어!

‘집요하다 진짜.’

이한은 해골 교장의 걱정해주는 말에 속지 않았다. 갑자기 해골 교장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마법사가 된 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이한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보아하니 저 비버 교수는 제자에게 일을 맡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한에게 맡기지 않을까봐 저렇게 강조를 하는 것이다.

“알겠어. 알겠어. 같이 하면 되잖아.”

그래! 믿겠다. 자. 워다나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정해진 마법 폭죽을 모두 만들어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해골 교장은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한 다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둥둥 떠나갔다.

이한은 지금 왠지 모르게 예전에 읽었던 동화가 떠올랐다.

해골 교장이 나들이를 다녀오는 동안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면 이한은 딱히 도와줄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이나 해야지.’

겉모습은 귀여웠지만 이한은 방심하지 않았다.

과연 이 비버 교수는 어떤 사람일까?

*         *         *

“교수님?”

“어? 어.”

“...교수님?”

“어? 어어. 그래. 어.”

비버 수인족 교수, 비블레 버두스 교수는 생각보다 그렇게 위협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신입생에게 번개를 날리거나 언데드 소환수를 보내서 습격하는 부류의 교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대신 비블레 교수는 제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마법을 제외하면 세상 어떤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부여 마법을 가르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한의 말에 비블레 교수는 30초 정도 유리와 금속을 만지작거리다가 뒤늦게 대답했다.

“어어.”

부여 마법.

그 폭이 넓고 제국에서도 수요가 많은 마법이었다.

사람에게 걸면 강화 마법이 됐고 물건에 걸면 아티팩트가 되는 것이다.

이한은 이 부여 마법에 호감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금술 못지않게 환금성이 좋은 학문이지.’

부여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들은 황금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오직 고고한 학문의 길을 쫓는다지만 그건 이한이 알 바 아니었고...

아티팩트 만드는 법을 배워둬서 꾸준히 팔면 쏠쏠한 부업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제국 관료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꾸준한 부수입을 하나 마련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이 이러시니.’

“으응. 잠깐만 기다려.”

“예.”

사실 해골 교장만 없다면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교수가 이한에게 관심이 없으면 이한도 적당히 자기 할 일 하다가 가면 됐으니까.

하지만 해골 교장 성격에 끝나고 와서 안 물어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한이 아무것도 안 했다면 온갖 심술이란 심술을 다 부리리라.

30분 정도 지나자 비블레 교수는 작업을 마쳤다. 완성된 금속판을 커다란 용액 속에 담가두고 마법을 걸더니 다른 방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교수님!”

“어!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교수님께서 마법 폭죽을 만드는 걸 돕기 위해 온 이한이라고 합니다.”

“아. 그랬지. 미안해. 자꾸 잊는단 말이야.”

비블레 교수는 이한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몇 학년이지?”

“1학년입니다.”

“......”

비블레 교수는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1학년?”

“예.”

“...어... 고나달테스가 착각한 거 아니야?”

“착각하신 거 아닙니다.”

“그래? 정말 재능이 뛰어난가봐?”

비블레 교수의 말에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보다는 악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

“마법 폭죽을 만드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아. 다만 예쁘고 다양하게 만드는 게 어려운 거지. 신입생한테는 더더욱.”

비블레 교수는 두꺼운 종이를 둥그렇게 말았다. 그런 다음에 마법을 걸고, 위와 아래도 마저 막았다.

마지막으로는 종이 아래에 실을 달았다. 당길 수 있도록.

“지금 안에 마법이 걸린 거야. 당기면? 펑하고 터져나가는 거지.”

“...죄송한데 다시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 다시?”

비블레 교수는 당황했다.

“그래. 잠깐만.”

교수는 다시 마법을 보여줬다.

종이를 말고, 안에 마법을 부여하고, 위와 아래를 봉인하고, 실을 달고.

끝!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천천히 다시...”

“어어? 아직도 다시?”

“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부여 마법에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마법사가 모든 마법을 다 잘 할 필요가 어디 있어!”

비블레 교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게 교육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교육자로서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신입생한테 부여 마법을 무언(無言) 주문으로 시전한 다음에 ‘어? 아직 이해 못하겠어? 재능이 없나보구나!’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리 없었으니까!

가르치는 스승이나 배우려는 제자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주변에는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

비블레 교수는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자. 그러니까 여기서...”

*         *         *

비블레 교수의 가르침에 따르면(사실 이한이 거의 혼자 터득한 것에 가까웠다), 마법 폭죽의 뼈대가 되는 마법은 2서클 마법인 <화염 부여>와 <빛 부여>였다.

“그렇군요. 종이에 화염과 빛을 부여하는 방식입니까.”

“그래. 하지만 그러면 너무 멋이 없으니까, 뛰어난 마법사라면 여기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거야.”

비블레 교수는 출출해졌는지 옆에서 나무껍질을 하나 꺼내 오물거리면서 설명했다.

“원소 모양 변화나 형태 유지 할 줄 알지?”

“예.”

사실 신입생한테 할 질문이 아니었지만 비블레 교수는 이미 이한이 신입생이라는 걸 머리에서 잊고 있었다.

이한도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원리는 비슷해. 그걸 물질에 새겨 넣어야 하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건데...”

부여 마법에선 마법사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마법을 부여하려는 물질도 중요했다.

내구성이 약할수록 마법과 마력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스크롤이나 폭죽에 사용되는 종이는 평범한 종이가 아니었다. 마력에 내성을 가진 재질의 종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수님. 저는 마력이 많은 편인데 잘 할 수 있을까요?”

“못해도 어쩔 수 없지. 다른 마법 하면 되잖아?”

“따뜻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이한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사실 아쉽긴 했지만 저렇게라도 말해주는 게 어딘가 싶었다.

볼라디 교수였으면 ‘네가 될 때까지 대장간의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라고 했을지도...

탁!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한이 처음으로 만든 빛 마법 폭죽이 완성됐다.

마력을 최대한 자제한데다가 일단 작동 가능을 목표로 했기에, 모양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동만 되면 좋겠군.’

이한도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실을 당겼을 때 마법 폭죽으로서 작동만 한다면 만족이었다.

“그러면 당겨볼까?”

비블레 교수가 나무껍질을 내려놓고 폭죽을 들었다.

그리고 실을 당겼다.

팡!

섬광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비블레 교수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광량(光量)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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