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상대 학생이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오고닌은 다급히 외쳤다.
“...나는 교수가 아니다!”
“?!”
이한이 보내는 수상하다는 눈빛을 받고 나서야, 오고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프로 도둑놈이었다면 말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했겠지만 오고닌은 아마추어 도둑놈.
마법사로서는 제국에서도 명성이 높았지만 도둑놈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 경험이 이런 실수를 만들었다.
“아니... 그게...!”
“감히 속임수를!”
“속임수는 안 썼...?! 크윽!”
오고닌은 더 이상 설득과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상대 학생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뭐... 뭐 이런... 대체?!’
학생이 수십 개가 넘는 물 구슬을 불러냈을 때, 오고닌은 기겁하긴 했지만 못 막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고닌의 전문이 마법전투는 아니었지만 마법사로서의 경력이 얼마인데 마법전투를 안 겪어봤겠는가.
저 정도 되는 원소마법도 상대해봤었다.
개수가 많아서 위압감이 들지만 어차피 정면만 잘 막으면 되는 것이다.
한 번만 잘 막아내면 그 다음은 다시 환상마법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
...어야 하는데?!
쉬이이익!
물 구슬이 모두 제멋대로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예상 밖의 속도로 빠르게 날아들자 오고닌은 다시 한 번 당황해야 했다.
‘무슨 이런! 무슨 이런!’
오고닌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이렇게 유치하게 공격을 피하게 될 줄이야.
“땅이여 나를 도와라!”
흙이 갑자기 미끄러지듯이 오고닌을 밀어내고 동시에 물 구슬들을 집어삼키려고 들었다.
이한은 괜히 컨트롤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집어삼키려면 집어삼켜라.
왜냐하면...
더 불러내면 되니까!
“샘솟아라!”
“!!!”
방금 그렇게 불러내놓고서도 조금의 휴식 없이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학생의 모습에, 오고닌은 자신이 악몽에 빠진 기분이었다.
환상 마법사가 악몽에 빠지다니?
‘고... 고나달테스가 준비해 놓은 함정인가!?’
오죽하면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원소여 원래대로 돌아가라!”
날아드는 물 구슬들을 향해 오고닌은 원소 해제로 카운터를 먹였다. 물 구슬들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러나 상대는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불러냈다.
오고닌은 깨달았다.
‘지구전으로 가면 못 이기겠구나!’
제국 마법사로서 자존심이고 뭐고, 이쯤 되자 오고닌도 오히려 냉정해졌다.
망신도 한 번 당해야 얼떨떨하지 연속으로 몇 번이고 당하면 슬슬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대체 뭐하는 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제압하고 도망쳐야 한다!
“화염이여, 내 모습으로 변해라!”
오고닌은 통하지 않는 환상 마법을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시도하는 걸 포기했다.
환상 마법은 상대에게 직접 거는 주문 외에도 다양했다.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걸 쓰면 됐다.
화염이 일어나더니 오고닌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완벽한 분신이었다.
이한은 경악의 눈빛으로 오고닌을 쳐다보았다. 오고닌은 상처 난 자존심이 아주 조금 회복된 걸 느꼈다.
“...학생이여, 말을 들어다오! 내가 당황해서 무례하게 말한 건 사과하겠다. 하지만 나에게도 사정이 있...”
치치치칙-
“?”
뒤에서 들리는 심지 타들어가는 소리에 오고닌은 고개를 돌렸다.
화염 분신이 불을 붙인 심지가 다 타들어가더니 폭죽을 발사시켰다.
퍼퍼퍼퍼퍼퍼퍼퍼펑!!!!!
이한도, 오고닌도 할 말을 잃고 폭죽 더미가 발사되는 걸 그저 바라보았다.
* * *
다음 문제! 제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펑!
“?”
“뭐지?”
지루한 문제에 하품하던 학생들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아름다운 폭죽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펑펑!
“폭죽이다!”
“이런, 벌써 시작할 때가 됐나?”
손님들도 신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폭죽 아니겠는가.
에인로가드에서 직접 준비한 폭죽을 이렇게 가까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아니... 아니... 아니!?
해골 교장이 시치미를 뚝 떼고 놀란 척을 하자 제국의 손님들은 하하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깜짝 선물을 참으로 좋아하시는군요!”
“이렇게 유쾌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니 제자들도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아니... 대체... 어떤... 영원히 저주받을 개잡놈이...?
“방금 뭐라고?”
조용히!
해골 교장은 본색을 드러내고 제국 손님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강제 침묵 저주를 당한 손님은 읍읍거리며 답답해했다.
대체... 어떤...!
푸른 안광이 활활 타오르며, 날아가는 해골 교장의 뒤에 흔적을 남겼다.
눈물은 먼 옛날에 말랐지만 해골 교장은 영혼으로 울었다.
학생들한테 유쾌한 폭죽 피하기 경험을 시켜주려는 계획을 어느 사악한 자가 망쳐버린 것이다!
* * *
“...끝났구나...”
오고닌은 절망한 표정으로 푹 엎드렸다.
설마 이게 폭죽 더미였을 줄이야.
게다가 이렇게 터뜨렸으니 이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곧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패도 되나?’
이한은 엎드린 오고닌을 보며 고민했다.
확실하게 제압을 하려면 기절시키는 게 맞았다.
보아하니 교수가 아니라 도둑인 것 같았고...
하지만 상대는 도둑치고는 또 묘하게 신분이 있는 사람 같았다.
괜히 팼다가 교수 중 한 명과 아는 사이기라도 하면 이한의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곤란해졌다.
“혹시 사정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라고?”
“사정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너는... 잠깐. 일단 학생은 맞느냐?”
절망하던 오고닌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 맞습니다.”
“5학년?”
“아닙니다.”
“4학년?”
“아닙니다.”
“6학년??”
“1학년인데요.”
“......”
오고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목을 매달 만한 밧줄을 찾고 있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한이 달랬지만 오고닌은 좌절해서 엎드렸다.
세상에 신입생 하나 환상 마법으로 제압 못해서 쩔쩔매다가 폭죽 더미에 불이나 붙이고!
마법사로서 살아온 세월을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그렇습니까. 음. 그래서...”
이한은 절망에 빠진 마법사를 달래서 사정청취를 시도했다.
대충 환상마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오고닌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예전에 한 번 경매에 나온 환상마법과 관련된 고대 유물을 고나달테스가 낼름 입찰해서 가져가버렸고, 같이 연구 좀 하자고 해도 ‘내가 왜? 너도 네 돈으로 사서 해라’같은 대답이나 돌아오고...
결국 이렇게 그 유물을 직접 손에 넣기 위해 잠입한 것이다.
‘눈물나는 이야기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욱 눈물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지금 고학년들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해골 교장의 창고를 털고 있지 않던가.
거기서 더 올라가면 다른 마법학교의 창고를 털러 가야 할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아니, 오고닌 님!”
같은 환상 마법사이자 마법학교의 교수인 키르민 쿠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가 깜짝 놀랐다.
오고닌 님이 왜 여기에?
“오셨으면 불러주시지 어째서...”
키르민 교수는 뒤에서 펑펑 발사되며 터지고 있는 폭죽들을 보고, 엎드려 있는 오고닌을 보고, 다시 한 번 폭죽을 보았다.
그리고 상황 파악을 끝냈다.
“혹시 오고닌 님께서 폭죽을 터뜨리신 거야?”
“예.”
“...워다나즈.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니?”
“교장 선생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면 됩니까?”
“너는 정말...”
키르민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부탁할게. 물론 꼭 해달라는 건 아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오고닌 님이 교장 선생님의 보물에 손을 대려고 한 건 사실이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교수님의 친구 분 아니십니까.”
“...고맙다. 워다나즈. 이 은혜는 꼭 갚을게.”
키르민 교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배그렉과 달리, 배그렉의 제자는 정말로 인정 많고 따뜻한 마법사였다.
대체 어떻게 배그렉 밑에서 이런 제자가...!
퍼퍼퍼퍼펑!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해골 교장이 자리에 도착했다.
해골 교장은 이한을 보고, 키르민 교수를 보고, 오고닌을 본 다음 마찬가지로 상황 파악을 끝냈다.
연구 협조를 거절했다고 감히 남의 축제에 불을 질러!?
“아... 아니...”
“고나달테스 님.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셋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폭죽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
생각치도 못한 배신에 해골 교장은 경악했다.
생각해보니 키르민 쿠 교수는 오고닌과 친한 환상 마법사.
오고닌의 편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런 환상 마법사 놈들...!’
무슨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그럼 폭죽이 스스로 탔다고!?
“고나달테스 님.”
키르민 교수는 힘 있게 말했다.
“오고닌 님이 만약 일부러 불을 지르셨다면 여기 남아 있으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
해골 교장은 실로 오랜만에 허를 찔렸다. 말문이 막힌 해골 교장은 눈동자만 굴렸다.
너무나 타당한 말이었던 것이다.
대체 오고닌은 왜 폭죽에 불을 지르고 남아 있었던 거지?
“교장 선생님! 폭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런 걸 보게 되다니...!”
펑! 퍼펑! 퍼퍼펑!
다행히 해골 교장이 정답을 떠올리기 전에 신이 난 손님들이 몰려왔다.
그 틈을 타 키르민 교수는 다급히 말했다.
“오고닌 님. 빨리 나가십시오.”
“고... 고맙네. 그리고...”
“이 학생은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키르민 교수의 말에 오고닌은 눈물 글썽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네. 자네의 이름도 결코 잊지 않겠어. 마법의 이름에 맹세코 이 은혜를 꼭 갚도록 하겠네.”
“빨리 가십시오!”
오고닌은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해골 교장한테 붙잡히면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하리라.
그 사이 손님들을 대접하던 해골 교장은 뒤늦게야 진상을 깨달았다.
워다나즈한테 발각된 거구나! 이 놈! 워다나즈한테는 환상 마법을 직접 걸어봤자 안 걸릴 테니까!
“무슨 소리신지...”
오고닌 어디 갔나! 이미 도망쳤나?!
해골 교장은 이를 갈았다.
생각해보니 이한한테 발목이 잡힌 게 분명했다.
신입생과 명망 높은 제국 마법사는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처음에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둘의 상성을 비교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
이게 아니라면 폭죽을 터뜨리고 자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두고 보자... 오고닌! 이 축제의 원한은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
“빨리 도망치자.”
키르민 교수는 이한을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오래 남아있어 봤자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 * *
축제가 끝난 금요일.
밖에서 온 손님들도 모두 떠나고, 그렇게 떠들썩했던 곳도 텅 비어버렸지만, 학생들은 아직도 축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폭죽 봤어? 정말 예쁘더라.”
“부여 마법으로 만든 거지? 다다음 주에 배우려나?”
그러나 이한은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이제 곧 해골 교장과 만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에 외출권을 얻은 학생들이 제법 있었기에 모두 다 한 자리에 모여서 해골 교장과 대면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한이 가지고 있는 외출권은 두 장.
하나는 이전에, 하나는 이번 주에 볼라디 교수에게서 새로 받은 외출권이었다.
‘설마 어제 일로 나한테까지 원한을 품고 있지는 않겠지?’
이한은 그냥 입만 다물고 있었지만...
해골 교장의 성격에 그것만으로도 토라질 수 있었다.
다들 왔냐?
“예!”
축제는 즐거웠고?
“예!”
그러나 나타난 해골 교장은 분노에 불타지도, 광기를 번뜩이지도 않았다.
시무룩하고 담담해보였다.
‘다행... 아니. 안심하지 말자.’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던 해골 교장은 이한 앞에 도착하자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오고닌하고 친하냐?
“예? 아닙니다만.”
그렇구나.
이한은 완벽에 가깝게 표정을 관리했다. 빈틈 하나 없었다.
...해골 교장의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면 다음에 나하고 외출할 때 같이 가도 되겠구나.
“......”
이한은 해골 교장이 어디로 ‘외출’하려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어디로 가려는지 확 느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