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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72화 (172/687)

172화

‘쓸데없이 오해를 샀군.’

친구들의 오해와 달리 이한은 그렇게까지 공부에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필요한 것만.

필요한 것만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닐리아. 너까지 오해하는 건 아니지?”

“뭐가 오해인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겠지만... 잠깐.”

말하던 이한은 멈칫했다.

‘이건가?’

해골 교장이 축제 때 뿌린 보물상자 안에 있던 종이.

마법이 적혀 있었지만 당연히 그냥 얻을 수 있지는 않았다.

친절하고 상세하게 적혀있어도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마법사 혼자만 아는 암호와 비유로 적혀있으면 드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덕분에 이한도 꽤 시간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이한은 종이를 내려놓고 깃펜으로 미친듯이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제각각 메모해놨던 암호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전체적인 마법의 맥락이 드디어 보였다.

“......”

“......”

물론 친구들 눈에 이한은 갑자기 종이를 노려보며 미친 것처럼 깃펜을 휘갈기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가이난도가 중얼거렸다.

“마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한은 너무 심한 것 같아.”

*         *         *

달빛만이 남은 캄캄한 밤.

이한은 휴게실에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니...’

다른 학생들이 생각보다 암기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이 생각보다 암기를 못하긴 했지만 그건 이한의 문제가 아니었다.

‘...투명화 마법이었다니.’

2서클 마법, <고나달테스의 투명 망토>.

사실 이건 해골 교장의 잘못이 아니었다.

저 마법을 가져갈 학생이 이미 투명화 마법 걸린 허리띠를 갖고 있을 거라고 어떻게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한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쁜 건 아니다.’

언젠가 허리띠를 못 쓰는 상황이 찾아오면 저 마법도 쓸모가 생기리라.

...그런 상황이 오면 투명화 마법이 문제가 아니겠지만.

파라라라락!

“?”

희미하게 들리는 책장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풍경.

이한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또 너냐?”

해골 교장이 준 책이 페이지를 드러낸 채 공중에 떠있었다.

‘기준이 뭐지?’

마법을 배우라고 불러온 건 알겠지만, 검은 책이 불러오는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떨 때 불러오는 거지?

“어떨 때 불러오는 건지 말해줄 수 있나?”

검은 책은 대답 대신 페이지만 드러냈다.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마법이나 익히라는 게 느껴졌다.

‘하긴 해골 교장이 준 책이 친절할 리가 없지.’

이한은 중얼거렸다.

“설마 일부러 사람이 바쁘거나 힘들 때 불러오는 건 아니겠지.”

파락!

“...?”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 검은 책이 좀 움직였던 것 같았다.

설마?

검은 책은 이한의 시선을 무시하고 마법이 적힌 페이지를 흔들었다.

다행히 검은 책의 마법은 축제 때 얻은 마법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2서클 마법, <고나달테스의 암흑 시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시야를 유지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제법 괜찮군.’

이한은 반색했다.

밤에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 많은 이한 입장에서는 이런 강화 마법이 유용했다.

빛을 불러올 수도 있었지만 그게 언제나 가능한 건 아니었으니...

‘그런데... 해골 교장 마법들이 다 좀...?’

검은 책에게 배운 마법들을 떠올린 이한은 위화감을 느꼈다.

<고나달테스의 기민한 발걸음>, <고나달테스의 날카로운 손>, <고나달테스의 투명 망토>(검은 책에게서 배운 건 아니었지만), <고나달테스의 암흑 시야>까지.

마법사의 이름이 붙은 마법들은 보통 그 마법사가 필요성을 느끼고 직접 개발한 마법이었다.

‘젊었을 적에 뭘했길래 이런 마법들을?’

파라라락!

“알겠다. 집중하지.”

이한은 검은 책에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익히기 전에는 나가기 힘들었다.

익혀서 나쁠 것 없으니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이한은 깨닫지 못했다.

검은 책이 주는 마법을 익히지 않고 요령껏 시간을 끌면 다음 마법이 나올 때까지 얼마든지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한 번에 다 익히려고 집중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         *         *

월요일이 지나자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숙취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이한은 아침 대용으로 휴게실 탁자 위에 산더미 같은 달걀 샌드위치를 쌓아올렸다.

텃밭에서 나오는 달걀만으로는 부족해서 우레걸음 교수 오두막의 달걀을 조금 빌렸지만 아마 이해해주시리라.

‘괜찮군.’

부드러운 흰 빵 사이에 으깬 달걀을 바른 간단한 샌드위치였지만 맛이 좋았다.

‘재료를 또 아낄 수 있겠어.’

점점 더 재료를 아끼면서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능숙해지는 기분이었다. 이한은 살짝 뿌듯함을 느꼈다.

“워다나즈. 넌 천재야.”

“시험 때문에 바쁘다고 이런 메뉴를...”

친구들은 이한의 사악한 속셈도 모르고 달걀 샌드위치를 하나씩 집어 들며 고마워했다.

“그런데 워다나즈. 황녀님한테는 전해드렸어?”

“...아.”

이한은 멈칫했다.

어제 자는 동안 검은 책한테 시달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달걀 삶고 으깨느라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가져다주지 그래?”

이한은 황녀를 추종하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 우리는 좀...”

“??”

“아무래도 혈통이 혈통이다 보니까 먼저 찾아가서 함부로 말을 거는 게 좀 조심스러워서...”

“????”

옆에서 달걀 샌드위치 오물거리며 먹고 있던 가이난도가 충격 받은 표정으로 노려봤다.

귀찮아진 이한은 추종자들을 격려했다.

“같은 탑 학생인데다가 에인로가드의 규칙 중 하나가 평등이잖나.”

모두 평등하게 괴로운 곳.

그게 바로 에인로가드였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거리를 두고 조심스러워하면 안 되지.”

“으윽... 그렇긴 한데...”

이한의 말에도 추종자들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여전히 황녀한테 먼저 찾아가서 말을 거는 건 꺼림칙했던 것이다.

‘가발 쓴 가이난도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이한이 그런 미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추종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은화를 더 낼 테니까 이번만 워다나즈 네가 전해드리면 안 될까?”

“안 될 것 없지.”

“?!”

이한은 바로 납득했다.

뭐 서먹할 수도 있지!

*         *         *

<기초 탈 것 훈련> 강의.

평소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탈 것을 돌봐줬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

이한은 복잡한 표정으로 폰리그를 쳐다보았다. 폰리그는 왜 그러냐는 듯이 히힝거렸다.

‘네가 그리폰이니까 그렇지...’

다른 친구들이 말 끌고 다닐 때 자기 앞에는 말 잡아먹는 놈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번개걸음 교수는 승마용 채찍으로 짝 소리를 만들어내며 말했다.

“자! 내가 몇 번이고 말했던 것 같지만, 동물과 친해지는 건 꾸준한 노력과 정성밖에 없다. 다른 강의는 시험 직전에 몰아서 공부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내 강의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가이난도는 그 말에 안타깝다는 듯이 자신의 말을 쳐다보았다. 말은 가이난도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오늘 시험은 말을 타고 달린다. 정해진 시간까지 최대한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거다. 질문 있나?”

이한은 손을 들었다.

“뭐지?”

“저번처럼 위험한 강물이 있습니까?”

번개걸음 교수는 참 뒤끝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심지어 그건 번개걸음 교수가 만든 것도 아니었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에인로가드의 땅은 넓고 온갖 장애물들이 많다. 경계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그러면... 시작!”

번개걸음 교수는 학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바로 호각을 불며 시작을 알렸다.

‘담합하면 안 되나?’

폰리그 위에 올라타면서, 이한은 그 짧은 사이에 다른 생각을 했다.

다 같이 어느 정도 이상은 가지 말자고 담합하면 서로 편하게 시험을...

‘음. 절대 무리겠군.’

벌써부터 다른 탑 학생들이 서로 욕설 퍼붓고 있는 걸 보니 담합은 절대 무리였다.

“내 앞에서 꺼져 검은 거북이 놈들아!”

“원한다면 실력으로 뚫어보시지! 기사라고 자처하면서 그 정도 실력도 안 되나?”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말했다.

“왜 저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군.”

“......”

요네르는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마 저기 학생들 중 1/3 정도는 이한을 견제하고 싶어 할 텐데...

이한이 다른 강의에서 뛰어난 만큼 당연히 질투도 따라왔다.

학생들 중에서 ‘이 강의에서만큼은 워다나즈 놈을 이기고 말겠다’하는 학생들이 꽤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한은 그냥 원한 쌓은 게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에서 이한에게 안 맞은 학생이 더 적을 정도로.

번개걸음 교수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서로 공격하는 건 금지다. 마법이나 무기를 휘둘러서 공격하지 말도록.”

“아니!”

이한은 깜짝 놀랐다.

시작하면 물 구슬을 날려서 덤벼드는 놈들을 처리할 생각이었기에 더욱 놀랐다.

요네르는 그걸 보며 황당해했다.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탈 것 훈련이지 마법전투 훈련이 아니다! 말들끼리 부딪히는 것까지는 허락해주겠지만 그 이상은 금지다. 알겠나?”

“예!”

번개걸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대답했다.

그러나 번개걸음 교수는 알지 못했다.

‘그렇군. 말들끼리 부딪치는 식으로 처리하면 되겠군.’

이한 같은 학생들은 규칙을 엄격하게 잡아놓지 않으면 그 빈틈을 노린다는 것을!

*         *         *

다그닥다그닥!

주어진 경로를 따라 말발굽이 땅을 박차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학기 동안 게으르게 군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말들을 돌본 학생들은 말을 타고 속도를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이한도 그 중 하나였다.

“이한! 이렇게 계속 속도를 올려도 될까?”

요네르가 말에 박차를 가하며 물었다.

이번 시험은 단순히 빨리, 멀리 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너무 멀리 갔다가 제한시간 내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선두그룹이 이렇게 치고 나가는데 속도를 늦추는 건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다들 생각이 있을 거다. 걱정하지 마.”

이한의 말대로 선두그룹에 소속된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계속 전력질주하면 말들이 지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친한 사이끼리 모여서 무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데.’

경주라 하더라도 혼자서 달리는 것보다는 모여서 달리는 게 훨씬 유리했다.

무슨 장애물이 나와도 대처하기 쉬울 뿐더러 각종 충돌에도 대응하기 쉬운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이한을 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워다나즈가 가장 위협적이다.’

‘워다나즈 놈한테 복수해야...’

‘워다나즈가 앞으로 못 나오게 막아야 해.’

이한은 친구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하긴 이한 본인이었어도 이한 같은 학생이 있었다면 바로 경계했을 것이다.

압도적인 1등 후보!

-푸르륵.

폰리그가 이한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히힝. 히히힝.

“자. 착하지. 지금 날뛰면 안 된다.”

폰리그가 답답하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는 앞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쾅!

이한이 말릴 틈도 없이 폰리그가 미친듯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른 친구들은 경악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무슨 생각이야! 저런 식으로 달렸다가는 금세 쓰러질 텐데!’

‘설마 이것도 준비해 둔 계획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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