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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75화 (175/687)

175화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이한은 기다리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나찰아귀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만큼 시간을 오래 줄 수 없었다.

“공간이여, 인지되어라.”

<공간 인지> 마법.

간단한 효과였지만 이런 어두컴컴한 던전에서는 몇 배의 힘을 발휘하는 마법이었다.

실제 싸움에서 바닥에 널려있는 바위나 돌멩이들이 어떤 변수를 만드는지 생각해보면 더더욱.

“손이여, 적을 갈라버려라. 눈이여, 암흑을 꿰뚫어라.”

이한은 빠르게 강화 마법을 연속으로 시전했다.

그 모습에 더르규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이 친구는 1학년인데도 고학년에 못지않은 마법의 달인이었다.

더르규가 강화 마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이렇게 연속으로 강화를 시전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단하다, 이한!’

더르규는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이제 저 마법들이 끝나면 이한도 뛰어 내려갈 테니, 더르규도 같이 갈 생각이었다.

“번쩍여라!”

“?!!”

이한은 지팡이를 휘둘러서 벼락을 쏘아냈다.

달려들던 나찰아귀는 한 대 얻어맞고 통증에 괴성을 질렀다.

-■■!

원소 중에 가장 파괴력 있고 격렬한 벼락은 간단한 마법만으로도 나찰아귀에게 데미지를 주었다.

물 구슬은 빠르게 날려도 두꺼운 장갑으로 제법 버티는 놈이지만, 감전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여라!”

이한은 짧고 빠르게 주문을 연타했다.

번쩍이는 벼락 줄기가 지팡이 끝에서 꽃피듯이 피어나오며 나찰아귀를 타격했다.

그럴 때마다 나찰아귀는 움찔거리며 동작을 멈췄다.

홀린 듯 쳐다보던 더르규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이... 이한. 내려가려는 게 아니었나?”

강화 마법을 그렇게 걸었는데 안 내려가고 계속 번개만 쏘아대니 좀 당황스러웠다.

언제 내려가려는 거지?

“왜 내려가야 하지?”

“으응?? 아니... 마법을 그렇게 걸었잖...?”

마법사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사용할 수 있다고 무작정 전부 다 사용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어디까지나 효율적으로.

지금 상황에 필요한 마법만.

이한이 강화 마법들을 걸었다면 그건 근접전을 하기 위해서...

...가 아닌가?

“아. 강화 마법? 그냥 습관적으로 걸었군. 원거리에서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내려갈 이유가 없지.”

“......”

더르규는 검을 꽉 쥔 손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천천히 말려 죽인다.’

이한은 서두르지 않았다.

위치도 이한이 유리했고 상황도 이한이 유리했다.

벼락 한 방이 나찰아귀에게 크게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지만 나찰아귀에게 꾸준하게 데미지를 쌓아나가고 있는 건 확실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언젠가 바위를 뚫는 법.

...물론 이건 막대한 마력량을 가진 이한만이 가능한 사냥법이었다.

다른 마법사라면 약한 마법을 무한정 연타해서 몬스터를 쓰러뜨린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약한 마법이라도 마법사의 마력이 먼저 고갈되어서 쓰러질 것이다.

“번쩍여라, 번쩍여라, 번쩍...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의 주문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허공에서 물이 생겨나더니 방패의 형태를 갖췄다.

그리고 그 위에 나찰아귀가 던진 뾰족한 바위가 정통으로 꽂혔다.

퍽!

“음. 이상하군. 눈앞에 검을 든 적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한이 중얼거리는 말에 더르규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번개를 날려대면 아무리 눈앞에 적이 있어도 열이 받지!’

아무리 눈앞에 칼 든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두들겨 맞으면 이한을 먼저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놈이 올라온다!”

“막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비탈길 위에 진을 쳤다. 동시에 위에서 다른 학생들의 마법이 쏟아졌다.

그러나 아귀와 달리 나찰아귀의 두꺼운 장갑은 어중간한 저주나 저서클 마법들을 튕겨냈다.

기세가 오른 나찰아귀는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가파른 비탈길을 타고 올라왔다.

순식간에 놈이 뛰어오르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래에서 맞는 모습만 봐서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놈이 파고든다!’

더르규는 다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렇게 보니 이한이 강화 마법을 건 게 아주 쓸모없는 짓은 아니었다.

이런 만약의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

“다들 고개 숙여라.”

쉭!

불규칙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물 구슬이 절벽을 올라오는 나찰아귀의 면상을 타격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연달아서!

아무리 두꺼운 장갑을 갖고 있는 나찰아귀라 하더라도 불안정한 자세로 이렇게 맞으면 버티지 못했다. 그대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한은 다시 지팡이를 휘둘러 벼락을 쏘아 날렸다.

“번쩍여라!”

“......”

진짜 강화 마법은 왜 건 거냐?

*         *         *

나찰아귀는 올라오지도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더르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탈길 아래로 내려갔다.

“괜찮나?”

“고, 고맙다. 초이.”

흰 호랑이 탑 친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이 주변에 나찰아귀가 없다고 했었는데 어디서 나온 거지?”

“...글쎄.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잖나. 이만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그런가?”

위로 올라오자 사냥 성공에 기뻐하던 학생들이 흰 호랑이 탑 친구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했었는데.”

“미... 미안하다. 다들.”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그 시선에 주눅들었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노려보는데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기사 가문 출신이라 하더라도.

“자. 말했듯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워다나즈...”

흰 호랑이 탑 학생은 다시 한 번 감동받았다.

구해준 것도 모자라서 화도 내지 않다니.

어쩌면 더르규는 세뇌 마법에 당한 게 아니라 이런 점에 감화된 걸지도 몰랐다.

‘빨리 화제를 돌려야겠군.’

이한은 ‘나찰아귀가 그런데 어디서 나온 거야?’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내려갔지?”

“이 투구 때문에.”

흰 호랑이 탑 학생은 투구를 가리켰다. 푸르스름한 빛이 투구에서 뿜어져 나왔다.

“아하. 이 투구가 널 부른 건가.”

“아니. 그냥 빛이 나오길래 궁금해서.”

“......”

이한은 가이난도를 보는 눈빛으로 흰 호랑이 탑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알아차린 흰 호랑이 탑 학생이 눈빛을 피했다.

“내... 내가 경솔했지.”

“아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투구를 건드리지 않은 건 잘했다.”

어떤 아티팩트인지 모르는데 섣불리 손을 대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이런 지하 던전 아래에 있는 아티팩트라면 더더욱.

“어... 이미 건드렸는데.”

“.......”

“...미안하다.”

“아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지...”

*         *         *

백양목 기사단의 존경받는 기사, 비켈린츠는 아직 어린 견습기사들을 쳐다보았다.

이 견습기사들은 백양목 기사단 소속이 아니었다.

제국의 여러 기사 가문에서 온 소년소녀들.

혹독하게 훈련 받고 미래에는 제국의 여러 기사단이나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가 제국을 든든하게 지킬 기둥들인 것이다.

그런 견습기사들이 비켈린츠와 함께 에인로가드로 온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마법이나 배우는 놈들한테 질 수는 없어.”

“쉿. 말조심해. 다른 분이 들으면 혼날 거라고.”

기사단 내에서도 마법사들은 있었고 이들은 보통 존경받는 편이었다.

오지나 험지에 위치한 기사단의 마법사가 얼마나 할 일이 많겠는가.

그러나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견습기사들이었다.

그런 것까지 판단해서 말할 정도로 생각이 넓지는 않았다.

“넌 분하지도 않냐? 기사단에서 훈련 받지도 않는 놈들이 비켈린츠 님에게 그렇게 칭찬을 받았는데?”

“당연히 분하지!”

존경하는 비켈린츠가 에인로가드에 갔다 오더니 거기 학생들을 신나게 칭찬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참으로 훌륭했소. 심지어 학생 중 하나는 나를 이겼는데...

-그게 정말이십니까? 실로 놀랍군요!

그 말이 견습기사들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혹독하게 훈련 받고 있는 그들이 마법학교에서 마법이나 배우고 있는 기사들에게 평가에서 밀리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해.

-마법사들의 소굴인 만큼 속임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떤 마법으로 함정을 팠을지도 모르잖아?

-비켈린츠 님은 명예롭고 관대해서 마법사들의 수작을 눈감아주셨을 지도...

결국 견습기사들은 각오했다.

그들이 직접 부딪쳐서 그 허상을 깨주겠다고!

견습기사들이 입을 모아서 겨루고 싶다고 부탁하자 비켈린츠는 고민하다가 결국 허락을 받아왔다.

중간고사를 명목으로 마법학교에 입장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다.

“자. 여러분.”

비켈린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견습기사들에게도 존대를 하는 비켈린츠였지만, 그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여기는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소. 그런 만큼 안에서 기사다운 품위와 명예, 자긍심을 잃는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믿소.”

비켈린츠의 말에 견습기사들은 뜨끔했다.

그들이 품고 있는 감정을 비켈린츠가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맹세하겠습니다. 비켈린츠 님.”

“기사로서 긍지를 지키겠습니다.”

“고맙소. 다들.”

견습기사들은 줄지어서 마법학교의 정문을 통과해 걸어갔다.

퀭하고 깡마른 얼굴의 마법학교 학생들이 중얼거리며 학교를 돌아다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래서 마법사들은 정말이지.’

‘괴팍하고 믿지 못할 족속들이야.’

저 앞에 잉걸델 교수와 모여 있는 검술 강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견습기사들이 수군거렸다.

“그래서 어떤 놈이 그 놈이지?”

감히 비켈린츠를 이겼다는 헛소문을 가진 놈.

견습기사들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그 놈이었다.

“초이 가문인가? 초이 가문에서 마법학교 하나 들어갔다고 소문 들었는데.”

“모라디 가문일지도 모르겠어.”

“둘라크 가문은...”

떠드는 사이 조각상처럼 잘생긴 소년이 다가왔다. 견습기사들은 소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생김새부터 동작까지, 아무리 봐도 기사 가문 출신은 아니었다.

‘얼굴 아는 사람?’

‘모르겠는데. 대귀족 가문 출신 아니야?’

기사 가문 출신이 아닌 마법학교 학생이라면 검술 대련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비켈린츠를 꺾었을 리도 없고, 칭찬을 받았을 리도 없는 만큼 견습기사들의 얼굴이 풀어졌다.

“혹시 너희들... 검술 대련을 위해 찾아온 건가?”

“그래. 맞다.”

그 대답에 이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잉걸델 교수님은 아직 양심이 남아있으셨구나!’

역시 저번에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과 붙는 건 너무 미친 짓이었다.

수준에 맞춰서 나이 맞는 견습기사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물론 아침점심저녁으로 훈련만 하는 견습기사들의 실력도 대단하긴 했지만...

‘모든 건 상대적이지.’

백양목 기사단의 기사들을 각오하고 있었던 이한에게 견습기사 정도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상대였다.

“너희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환영 고맙다. 가문이?”

“워다나즈.”

“워다나즈! 그 워다나즈 가문인가.”

“그래. 잘 부탁한다.”

이한은 손을 흔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견습기사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왜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소년은 잘 부탁한다고 한 거고, 또 왜 기사 가문 출신 마법학교 학생들 사이에 앉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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