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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79화 (179/687)

179화

뚝!

깃펜이 또 하나 부러졌다. 이한은 고개를 들고 멈칫했다.

‘공부해야 할 과목이 많긴 많군.’

사실 다른 친구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이한은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됐지?’ 절망과 좌절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런 걸로 흔들리기에는 이한의 정신이 너무 단단하고 굳건했던 것이다.

후회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읽고 준비를 하는 성격.

...이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많긴 많았다.

도움이 필요한가...

“?”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다 휴게실에서 자기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이난도도 커스터드 파이를 퍼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누가 말을 건 거지?

나다. 소년이여...

말을 건 것은 놀랍게도 투구였다.

지하 던전에서 주워 온 투구!

‘에고 아티팩트였나?’

뛰어난 마법사가 만든 아이템은 스스로 의식과 지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 마법사의 수준이 정말 뛰어나다면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아티팩트도 가능했다.

“에고 아티팩트인 줄은 몰랐군.”

이한은 깃펜을 내려놓았다.

원래라면 시험이 끝나고 찬찬히 뜯어 볼 생각이었는데 저렇게 말을 걸어오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지?”

나는 지혜의 투구다.

“그렇군. 지혜의 투구...”

이한은 탁자 아래로 지팡이를 붙잡았다.

상대가 아티팩트라고 해서 절대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지하 던전에 있었던 놈 아닌가.

게다가 그 던전은 볼라디 교수가 관리하고 있었고, 던전이 있는 마법학교는 해골 교장이 관리하고 있었으니...

무조건 의심하고 봐야 했다.

“혹시 오수 고나달테스나 볼라디 배그렉과 상관이 있나?”

아니. 나는 교장이 만든 투구가 아니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투구지. 수십 년 전 학생 한 명이 시험에 대비해서 나를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그렇군. 물론 네 말을 완전히 믿는다는 건 아니다.”

......

지혜의 투구는 황당해했다.

평생 속고만 산 것도 아니고 어린 놈이 뭐 이리 의심이 많단 말인가?

“그래서 네 능력은 뭐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지혜의 투구다. 내 안에는 먼저 온 주인들이 남긴 지식들이 있지.

“...!”

이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먼저 온 주인들이 남긴 지식들이 남아 있다니.

마법학교의 학생으로서 그건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갖고 있는 정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나 학교 내에 숨겨진 공간 등등 이런 정보들을 구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런 것들 중 몇 개만 건져도...

“자. 준비됐다. 전부 말해라!”

이한은 빠르게 새 종이를 꺼내고 외쳤다. 일단 닥치는 대로 적을 생각이었다.

진정해라. 소년이여... 나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투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질문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대답할 수 있다. 내 안에 쌓인 지식들을 활용해서 무엇이든지 대답할 수 있지.

“중간고사 문제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한가?”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러면 무엇이든지가 아니잖나?”

...내가 만난 주인들 중 소년 네가 가장 까탈스러운 것 같군. 나는 만능의 투구가 아니다.

투구는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그렇군...”

이한은 이 지혜의 투구가 어떤 투구인지 대충 감이 왔다.

이건 약간 정령 페르쿤트라 같은 아티팩트였다.

너무 기대를 했다가는 오히려 실망할 수 있는 존재.

‘질문도 잘 정해야겠군.’

자칫 잘못 질문을 던졌다가는 한 달에 한 번 가능한 질문을 헛되이 날릴 수 있었다.

“혹시 오수 고나달테스를 협박할 방법이 있?”

그냥 중간고사 문제를 예측해보겠다. 꽤 틀릴 수 있겠지만...

“아니다. 그냥 물어본 거다.”

이한은 투구를 천으로 잘 닦은 다음 옆으로 치웠다.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영 어정쩡한 아이템이었다.

‘에고 아티팩트면 꽤 가격이 나갈 텐데 밖에 가지고 나가서 팔아버릴까?’

잠깐, 이대로 끝인가? 왜 질문을...

“나중에 생각나면 물어보마.”

지혜의 투구는 당혹스러워했다.

이제까지 투구를 잡았던 마법학교의 학생들 중에서 이런 학생은 없었던 것이다.

지혜의 투구를 만든 마법사는 투구에게 두 가지 주문을 걸어놓았다.

하나는 주기적으로 주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지혜로워지려고 하는 것.

계속해서 세상을 떠돌며 주인을 바꿔가는 동안 지식이 쌓이고 쌓인다면, 마법사 본인보다 더 영리한 투구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목표를 위해 만든 아티팩트였던 것이다.

그 이름 없는 마법사는 예전에 늙어죽었지만 지혜의 투구는 여전히 돌아다니면서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혜의 투구는 초조해졌다.

만든 마법사도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있었으니, 그건 지혜의 투구가 주인을 조종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투구가 계속해서 지혜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투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아야 했다.

그러려면 주인이 투구에게 의존할수록 좋았다. 투구가 하라는 대로 새로운 것을 찾아 움직이고 경험하러 갈 테니.

그리고 이제까지 주인들은 전부 다 투구에게 의존해왔다.

학생들은 투구가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감탄하며 숭배해왔던 것이다.

-과연... 이 <광역 화염 마법 개론서>에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적혀 있었어! 지혜의 투구야, 고마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 너는 조금 더 화염 마법을 공부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해?

-그럼! 자, 산맥의 지하 용암 지대로 탐색을 가보는 게 어떻겠나?

-거긴 좀 위험해 보이는데.

-너라면 괜찮을 거다!

물론 이런 의존적 관계는 끝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학생들은 크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야 지혜의 투구가 자신을 조종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당연히 그 때쯤 되면 투구도 옛 주인을 버리고 떠났다. 새 주인을 찾아야 하니까.

그런데 이번에 투구를 주운 새 주인은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관심이 없는 것처럼...

‘착각이겠지. 곧 나한테서 뭐라도 캐내려고 말을 걸어올 거다!’

그러나 이한은 투구를 개인실 구석에 던져 놓고 공부에 집중하느라 그 사실을 곧 잊어버렸다.

*         *         *

마법학교 4학년 학생, 까마귀 수인 디레트는 하품이 나오는 걸 참으며 외투 안쪽에서 물약을 꺼냈다.

‘자꾸 수면 방지 물약으로 버티는 건 좋지 않아... 좋지 않은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눈앞의 졸음은 일단 몰아내야지.

“콜록. 콜록. 왔나?”

“교수님 오셨습니까.”

디레트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둘은 평범한 교수와 학생 관계가 아니었다.

디레트는 모르툼 교수 밑에서 흑마법을 전공하는, 일종의 스승과 제자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제가 도와도 되는 거 맞죠? 징벌방 가는 거 아니죠?”

“콜록. 허가 받았다.”

원래라면 1학년 있는 곳에는 얼씬도 할 일 없는 4학년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모르툼 교수의 흑마법 중간고사를 돕기 위해서였다.

교육에 뛰어난 교수들은 알아서 시험을 만들고 알아서 채점을 하지만, 모든 교수들이 뛰어나진 못했다.

그러면 이제 뛰어난 제자들이 대신 나서야했다.

바로 디레트 같은 제자들이.

“콜록. 이거 받도록.”

모르툼 교수는 묵직한 은화 주머니와 시약 상자를 내밀었다.

이번 중간고사에 참여하는 대가로 디레트가 받는 보수였다.

4학년쯤 되면 자기 마법 연구하느라 들어가는 돈이 상상을 초월했다.

교수의 일을 돕는 건 디레트 같은 고학년에게도 쏠쏠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디레트는 은화 주머니를 챙겼다.

“콜록. 1학년 학생 앞에서 입 열면 안 되네.”

“네.”

“시선도 돌리면 안 돼. 어떤 눈짓이나 손짓, 암호가 될 수 있는 신호나 마력 전이... 콜록. 하여간 기타 등등 모든 게 안 되네. 석상처럼 가만히 있게.”

“...그냥 교수님께서 하시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디레트는 벌써 후회가 됐다.

괜히 돕는다고 나섰나?

“독은 준비됐나?”

“예. 그런데 교수님. 1학년 학생들이 아직 독을 안 배웠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계시죠?”

“콜록. 물론일세. 왜 묻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디레트는 상냥하게 웃었다.

본인의 1학년 때도 그랬지만, 모르툼 교수는 허를 찌르는 발상을 즐겨하는 창의적인 마법사였다.

어찌나 창의적인지 학생들이 배우지 않은 부분을 시험으로 들고 오곤 했다.

-교수님. 제가 1학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만... 분명 제가 배운 기억이 없는데 왜 자꾸 시험에 나오는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콜록, 배운 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학생의 진짜 실력은 모르는 걸 풀 때 나오는 법이야.

-...아하!

만약 1학년 때 이걸 미리 알았다면 흑마법 전공을 바꿨을지도 몰랐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후배들. 용서해.’

디레트는 독을 준비했다.

흑마법에 관심을 가진 1학년들은 이제 자신들이 배우지도 않은 흑마법 분야가 시험으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촤르르륵- 탁!

가르시아 교수가 멀리서 다가왔다. 지팡이를 휘두르자 복도의 강의실들이 모습을 바꿨다.

디레트는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좋은 아침이에요. 디레트 양.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디레트는 시선을 돌려 강의실들을 쳐다보았다.

제국의 여러 마법들을 듣고 관심을 가지는 강의답게, 그 시험을 보는 공간들도 나눠져 있었다.

흑마법 시험을 보는 강의실, 소환 마법 시험을 보는 강의실 등등.

가르시아 교수는 다른 교수들에게 인사한 뒤 말했다.

“학생들이 도착하면 원하는 순서대로 시험에 도전하라고 말할게요.”

“콜록. 그렇게 하십시오. 가르시아 교수.”

“다른 시험들을 보고 오느라 늦게 들어오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으니 감안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디레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학생이 있나?’

한 개면 보통이고 두 개면 학년에서 손꼽히는 우등생이었다.

세 개면...

미친 사람이었고.

*         *         *

“!” 가이난도와 같이 흑마법 강의실부터 들어간 이한은 처음 보는 사람에 놀랐다.

“콜록. 여긴 내 제자 디레트다.”

“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가이난도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디레트는 눈도 쳐다보지 않았다.

가이난도가 상처 받은 표정으로 이한에게 말했다.

“내... 내가 흑마법 못한다고 저러시는 건가?”

“그보다는 교장 선생님의 교칙 때문에 저러시는 것 같은데.”

“!”

디레트는 살짝 놀랐다.

1학년 신입생이 듣기도 전에 저렇게 사정을 알아맞힐 줄이야.

“콜록. 맞다. 원래라면 너희하고는 얼굴도 마주치면 안 되지만, 이번 시험을 돕기 위해서 특별히 찾아왔다.”

‘저런.’

이한은 안타깝다는 듯이 디레트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그냥 교수 혼자서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제자를 시키다니...

‘날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디레트는 설마 싶었다.

지금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 디레트였지 신입생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어디서 들어봤는지 목소리가 상당히 낯익었다.

고민이 이어지기 전에 모르툼 교수가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콜록. 그러면 슬슬 시작하는 게 좋겠네.”

“예! 교수님. 준비됐습니다!”

가이난도는 지팡이를 붙잡았다.

저주든, 언데드 소환이든 어제 열심히 연습한 것이다.

다른 강의를 버리고 흑마법을 판 만큼 가이난도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뭘 하면 됩니까?”

“독.”

“...네?”

“콜록. 이번 시험은 독일세.”

“......”

가이난도는 억울함, 배신감, 상처 등 다양한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한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입생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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