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부여 마법은 정말 재밌지.”
“......”
“......”
아직까지도 추위로 반쯤 얼어붙어 있는 학생들은 비버 수인족 교수의 말에 살짝 당황했다.
어쩌라고?
“자, 그러면 냉기를 대비할 수 있는 부여 마법은...”
“????”
“교수님? 어, 부여 마법에 대해서는 그게 다인가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비블레 교수의 모습에 학생들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제까지 새로운 마법에 대해 가르쳐주기 위해 온 교수들은 보통 ‘이 마법 분야는 어떤 마법이고, 제국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얼마만큼 장래성이 있고...’같은 식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블레 교수는 그런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래도 되나?
“왜? 다 말했잖아.”
“그... 부여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 제국에서 어떻게 쓰이고 다른 마법과는 어떻게 응용됩니까?”
흰 호랑이 탑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비블레 교수는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건 알아서 찾아봐. 자. 그래서 냉기를 대비할 수 있는...”
“......”
학생들은 생각보다 부여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더욱 그랬다.
신체를 직접 강화시키든 아니면 장비를 강화시키든 부여 마법은 기사들에게 상당히 요긴한 마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꼭 흰 호랑이 탑 학생들만 아니더라도 부여 마법 자체가 워낙 쓸만한 만큼 다른 탑 학생들도 관심이 많았는데...
‘교수님이 약간 정신나가신 것 같은데.’
‘사실 다른 교수님들도 그렇지.’
‘안 배울 수도 없고... 나 부여 마법 배우려고 했는데...’
-이한 학생.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가 텔레파시 마법을 시전하더니 이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이한 학생이 좀 도와주세요.
‘아니...’
이한은 당황스러웠다.
나도 신입생인데!
‘솔직히 이건 교수가 하거나 교수 제자가 할 일 아닌가?’
하지만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가르시아 교수가 박살낸 교탁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정말 착한 학생이야.’
이한의 두려움을 알아차리지 못한 가르시아 교수는 그저 감동할 뿐이었다.
어쩌다가 저런 착한 학생이 에인로가드에 와서...
‘으음. 쉽지 않겠군.’
가르시아 교수의 부탁을 받은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질문을 던졌을 때 잘 대답해주기만 해도 괜찮은 교수였다.
그리고 비블레 버두스 교수는 당연히 미친 사람이었고.
고민하던 이한은 전략을 세웠다.
“교수님. 부여 마법은 생명체나 비생명체나 똑같은 방식으로 시전해도 됩니까?”
“뭐?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연히 안 되지.”
비블레 교수는 이한의 말에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반응했다.
“왜 안 됩니까?”
“그야 당연히...”
비블레 교수는 열심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부여 마법을 걸 때는 언제나 그 반작용을 걱정해야 하고, 그런 만큼 걸 수 있는 부여 마법도 한정되고...
“과연.”
“넌 왜 그런 걸 물어? 모를 리도 없잖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자. 그러면 냉기 대비를...”
“그런데 교수님. 부여 마법을 배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뭐!? 아니야! 안 죽어!”
비블레 교수는 펄쩍 뛰며 반박했다.
“아니었습니까?”
“그래!”
반박하기 위해 열심히 떠드는 비블레 교수의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전율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정말로 천재적이었다.
마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생각해보니 안 좋은 것 같기도.’
* * *
“아휴! 너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잖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비블레 교수는 투덜댔지만 학생들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아, 부여 마법은 이런 마법이었구나!
“냉기 대비에 들어가자. 원래 너희는 냉기에 대비하는 부여 마법을 못 배워.”
“왜요?”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물었다.
비블레 교수는 당연한 사실을 왜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멍청하니까.”
“......”
“너희 신입생들은 종이 강화 마법부터 해야지.”
“???”
이한은 비블레 교수의 말에 다른 의미로 당황했다.
‘난 바로 마법 폭죽 만들게 시켰잖아?’
학생 차별하냐?
“교수님! 저희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참다못한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폭발했다.
지옥 같은 중간고사 기간을 극복한 학생들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조금 부푼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옆의 친구들이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쉬었다.
“무시한 게 아닌데?”
“예?”
교수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냥 사실을 말한 거잖아? 워다나즈. 그렇지 않아?”
“......”
이한은 갑자기 자기한테 말을 거는 비블레 교수를 못 본 척 했다.
난 모르는 사람이야!
“어쨌든 냉기 대비를 해야 하니까 가르쳐 줘야지.”
비블레 교수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허공에서 잘 손질된 가죽이 나타났다. 교수는 가죽 위에 마법을 시전했다.
팟!
“자. 해봐.”
“...버두스 교수님. 최소한 주문이라도 외워주면서 하세요 제발...”
가르시아 교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 *
<하급 냉기 저항>.
대상으로 지정한 비생명체에, 냉기에 저항하는 힘을 잠시 부여하는 마법.
이한에게는 꽤나 친숙한 마법이었다.
왜냐하면 저번에 마법 폭죽을 만들면서 비블레 교수에게 강제로 <하급 화염 저항> 마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거 3서클 마법이잖아...’
1학년은 보통 1~2 서클 마법을 배우는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3서클 마법을 가르쳐주다니.
부여 마법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고 싶다면 최선의 방법이었다.
“가죽이여, 냉기를 밀어내라!”
“가죽은 냉기를 밀어낸다!”
그러나 언제나 궁하면 통하듯이, 냉기 가득한 혹독한 에인로가드의 환경은 학생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놀랍게도 몇몇 학생들이 마법을 성공시킨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자면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다.
부여 마법은 원래 마법의 효과만큼을 구현하지 못하면 실패로 쳤으니까.
학생들이 마법을 건 가죽은 아주 희미한 온기만 느껴졌다.
그래도 처음 배우는 날에 이 정도 성취를 보인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학교가 냉기에 가득 차 있는 걸 감안해도 정말 대단한...
“교수님! 어떻습니까?”
“이게 무슨 냉기 저항이야! 입고 나갔다가는 얼어 죽겠다!”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걸 보았다.
가르시아 교수는 침착을 되찾기 위해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러다가 부여 마법에 재능이 있고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전부 도망갈지도 몰랐다.
“이한 학생. 미안한데 다시 한 번 부탁 좀 할게요. 다른 탑 친구들 좀 도와줄 수 있어요?”
“교수님. 저도 아직 <하급 냉기 저항>을 못 익혔습니다.”
이한은 황당한 표정으로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옆에 있던 친구들에게 부여 마법의 요령을 설명해주느라 지팡이도 못 휘두르고 있었는데...
“해보세요.”
“...가죽이여, 냉기를 밀어내라!”
팟!
가죽 위에 정확히 마법이 걸렸다. 가르시아 교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다른 친구들을 좀 도와주세요.”
“...교수님. 이건 제가 <하급 화염 저항> 마법을 먼저 배웠기 때문에, 정말 운이 좋게 한 번에 된 거지 원래는 이렇게 안 됩니다.”
이한은 소심하게 저항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상당히 억울했다.
한 시간 후.
가르시아 교수와 이한의 노력 덕분에 강의가 끝나갈 때쯤 되자 상당히 완성에 근접한 학생들이 여럿 나왔다.
물론 비블레 교수는 조금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못해도 괜찮아. 어쩔 수 없지. 재능 없고 멍청한데 어떻게 잘하겠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괜찮아.”
“......”
안 그래도 추운데 학생들은 더 시무룩해졌다.
비블레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부여 마법 재밌으니까, 배우고 싶은 학생은 찾아와. 알겠지?”
“예...”
“감사합니다...”
이한은 과연 몇 명이나 비블레 교수의 공방을 찾아갈지 궁금해졌다.
‘설마 나 혼자 듣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이한 학생.”
강의가 끝나자 가르시아 교수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어떤 부탁 말씀이십니까?”
“혹시 아까 가르쳐 준 것처럼 다른 탑 친구들을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내가 하고 싶은데, 개... 아니, 교장 선생님께서는 허락하시지 않으실 거라서요.”
‘방금 개라고 하지 않으셨나?’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선량한 표정을 쳐다보았다.
접근만 해도 부들부들 떨며 헛소문들을 퍼뜨리고 다니는 못된 친구들을 도와야 한다니.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한은 즉시 대답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감동의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교수는 이한이 본인의 주먹을 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 아까 교탁을 저 손으로 으깨셨지.’
“정말 고마워요! 이한 학생. 내가 어떻게든 보답해줄게요.”
“교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그런 걸 기대하겠습니까.”
“이한 학생은 정말...”
가르시아 교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체 에인로가드는 이렇게 착한 제자를...
* * *
“...헉!”
“...흡!”
“지팡이 휘두를 때마다 소리 좀 그만 내라.”
이한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지금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은 이한에게 <하급 냉기 저항>을 마저 배우고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한테 사정설명을 들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이 지팡이를 휘두를 때마다 움찔거렸다.
“자. 봐라. <하급 냉기 저항>의 마법 구조는 기본적으로 이런 식이지.”
이한은 깃펜으로 종이에 마력이 움직이는 방향을 그렸다. 복잡한 마력의 회로가 그려졌다.
“이해했나?”
“이해했다. 워다나즈.”
“이 부분, 이 부분, 이 부분은 심상으로 생략되는 부분이고.”
‘냉기’나 ‘저항’이나 ‘부여’같은 키워드들은 일일이 마력을 복잡하게 움직여서 구현할 필요 없이 마법사의 심상만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됐다.
하나하나 다 마력을 움직여서 해결하려면 마법이 몇 배로 복잡해질 것이다.
“그렇지.”
“나머지 이 부분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겠지?”
“그래.”
“그러면 이제 반복해.”
“...어?”
“???”
“반복하라고.”
“어... 뭐 다른 요령 같은 건 없나?”
그래도 마법명가 출신인 워다나즈가 마력을 세밀하게 움직이는 기발한 비결이나 상상을 단단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비결을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
“그런 거 없다. 하면 느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바로 마력이 고갈될 텐데.”
“아.”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한을 노려보았다.
“으음. 그래. 반복은 안 되겠군.”
“워다나즈. 마력을 움직이는 요령을 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여기 이 과정에서 지팡이를 움직일 때 마력이 분산되거나 흩어지지 않나?”
“그랬나? 난 안 그랬는데.
“...워다나즈. 혹시 이 부분에서 마력을 집중시킬 때 꼬이진 않았고?”
“없었던 것 같은데...”
“......”
아까보다 더 살벌하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이한을 노려보았다.
이래서 천재들은!
“워다나즈 네가 익히면서 막혔던 부분은 없나?”
“물론 있지.”
“오... 뭐지? 말해다오.”
학생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 워다나즈 놈은 대체 어디서 막혔을까?
“마력을 움직일 때 마력을 너무 많이 끌어내서 마법이 지나치게 증폭된 적이 있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지?”
“마법이 너무 강하게 걸렸지.”
“...그게 왜 막힌 부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