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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3화 (193/687)

193화

사실 이한의 선택은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지금 이 층의 복도는 여러 대마법과 유물, 정령이 섞여 폭주한 탓에 차원이 혼탁해져 있는 상태.

안쪽에서 어떤 사악한 존재가 흘러들어와 속임수를 부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교수님을 부르는 건 좀 다른 문제였지만!

후회할 거다, 어린 마법사여. 힘이 필요할 텐데!

“잠... 잠깐. 아깝지 않나? 뭘 주는지는 들어봐도 되지 않아?”

가이난도의 말에 라파드엘까지 무심코 동의했다.

저 안의 존재가 뭔가 좋은 선물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마법학교가 학생들을 망치고 있군.’

이한은 한탄했다.

하도 학생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니 저런 수상쩍은 제안에도 솔깃해하는 것 아닌가.

“가이난도. 정체도 모르는 누군가가 그럴듯한 제안을 해올 때는 의심부터 해라.”

“콜록. 말 잘했다.”

달려온 모르툼 교수가 이한의 말에 동의했다.

저 안쪽에 어떤 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안에 솔깃하면 안 됐다.

악마 같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선량한 척 가면을 쓰고 다가올 수도 있었으니까.

“물러가라, 하찮은 놈들아!”

캬아아아아악!

모르툼 교수의 주문에 복도 안쪽에서 느껴지던 기척들이 빠르게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가이난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 과연. 죄송합니다. 교수님. 앞으로 저런 곳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콜록. 그건 아니다.”

“네?”

“저런 식으로 다른 차원들이 섞여 들어온 곳은 귀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마법사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소지.”

악마나 정령은 물론이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다른 차원의 초현실적인 존재들.

이들은 마법사들이 모르는 지식들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잊혀진 비의들과 유물들, 주문과 보물들은 마법사로서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군요.”

“콜록. 그러니까 안전하게 탐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번 기회에 한 번 탐사해보고 와라.”

“...네?”

가이난도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얼어붙은 언데드가 기어 나오고, 혹한의 서리가 주기적으로 맥동하며, 방금 악마의 울부짖음이 들린 것 같은 곳으로 탐사를 가라고?

“콜록. 저 안을 보면 많은 걸 배울 수 있겠지.”

모르툼 교수는 순수한 선의로 말했다.

가끔은 수백 마디의 말보다 단 한 번의 경험이 더 강렬한 감동을 줄 때가 있었다.

저 복도 안쪽을 이루고 있는 영역 중 일부는 흑마법으로 구성된 곳.

그런 곳을 신입생들이 가까이서 목격한다면 흑마법의 경이로움을 새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역시 데리고 올 때부터 불안했다.’

모르툼 교수의 지팡이가 휘둘러지고 보호 마법이 시전됐다. 준비를 끝낸 교수가 말했다.

“콜록, 콜록. 둘로 나눠서 한 바퀴 걷고 오거라. 길 잃지 말고.”

가이난도는 황급히 말했다.

“나... 나는 이한이랑 같이 갈래.”

“나는 이미르그와 함께 가겠다.”

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의 말에 모르툼 교수는 동전을 던졌다.

“워다나즈와 이미르그가 왼쪽으로 걷고 와라. 콜록. 너희 둘은 오른쪽으로 출발하고.”

“......”

가이난도와 라파드엘 모두 불행한 결과가 나왔다. 둘은 구겨진 얼굴로 출발했다.

“우리도 출발할까?”

“그, 그래.”

*         *         *

다행히 모르툼 교수가 걸어준 마법 때문에 주변으로 접근하는 적은 없었다.

이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볼라디 교수한테서 배운 게 있다면, 어느 순간이라도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것.

이한은 가능한 모든 경계를 하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서리가 내려앉고 있는 길가에 사령(死靈)이 모여 꽃망울을 만들어냈다.

봉오리가 피어나려고 꿈틀거리더니 그 아래 땅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저거...”

이미르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한은 벌써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팍!

묵직한 물의 구슬이 땅을 난타하했다. 그 위로 번개가 쏟아지고 화염이 작렬했다.

무언가 일어나려던 땅이 그대로 잠잠해졌다.

파파파파파팍! 파파팍!

그러나 이한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을 날렸다. 얼어붙은 땅이 검게 그을리고 움푹 파였다.

“워... 워다나즈. 뭔진 모르겠지만 이미 도망친 거 아닐까?”

이미르그는 주저하며 말했다.

솔직히 방금 나오려다가 사라진 존재보다 이한이 조금 더 무서웠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도망친 것 같...”

이한은 마지막으로 번개를 날렸다.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사라진 거 같지?”

“......”

“이미르그. 거리를 좀 좁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교수님이 걸어준 보호 마법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네, 넵.”

“왜 존대를 하지?”

“죄, 죄송합니다.”

*         *         *

“디레트. 정말 고마워.”

“뒤져.”

“...디레트. 다시 한 번 정말 고마워.”

“뒤져버려.”

“...미안하다니까...”

4학년, 흑마법 전공 코홀티는 디레트한테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코홀티와 친구들이 저지른 대형사고 때문에 디레트까지 불려왔으니, 코홀티가 디레트였어도 분노했을 것이다.

“징벌방에서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게 무슨...”

“안 그래도 교수님한테 한 소리 들었다구.”

코홀티는 어찌나 모르툼 교수한테 시달렸는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같이 흑마법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같은 학년 친구로서 디레트는 코홀티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라고. 뒤져버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바빠 죽겠는데 여기 불려 와서 뒤처리를 돕게 된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빨리 들어가서 해치우던가 뒤지던가 해. 너희들 때문에 학교가 눈투성이잖아.”

“곧... 곧 들어갈 거야.”

불완전한 소환으로 침식된 차원과 환경 변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소환된 놈을 해치우면 됐다.

온갖 마법과 현상이 섞여있다 하더라도 결국 핵은 소환된 놈일 테니까.

물론 말이 간단한 방법이었지 절대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다른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복도를 뚫고 들어가 잔뜩 화가 난 정령을 쓰러뜨려야 하는 것이다.

마법학교의 고학년이라도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사고를 친 마법사들은 디레트의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지금 조금씩 영역의 마력을 빼고 있어. 실제로 안에 있는 놈들이 약해지고 있고.”

“우리 계산이 맞으면 조금 지나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될 거야.”

지금 마법사들이 하고 있는 건 복도 영역 곳곳에 구멍을 뚫어 마력을 누출시키는 작업이었다.

영역의 마력 자체가 줄어든다면 그 안에서 활동하는 존재들의 힘도 줄어들기 마련.

작업이 끝나면 학생들끼리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리라.

디레트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몇 시간 정도 걸리는데?”

“......”

“...설마 하루 넘게 걸려?”

“......”

“...며칠인데 이 저주받을 자식들아. 빨리 말 안 해?”

“일... 일주일 정도?”

“그냥 들어가서 죽어버려라! 얼마나 소환에 마력을 퍼부었길래 일주일이나 걸려!”

“미, 미안해! 디레트! 미안해!”

디레트는 욕설을 퍼부으며 지팡이로 환지통 저주를 날렸다.

누출 작업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그 동안 복도에서 언데드들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디레트를 포함한 고학년들이 계속 보초를 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일주일이나!

“아악! 디레트! 용서해줘!”

“디, 디레트! 저기 봐! 저기!”

“어디서 헛수작을...”

디레트는 고개를 돌렸다.

신입생들이 영역 안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 교수님이 데리고 오신 거구나.”

순간 초현실적인 광경에 압도될 뻔한 디레트였지만, 곧 상황을 파악했다.

모르툼 교수가 신입생들한테 이 특이한 광경을 보여주겠다고 데리고 온 게 분명했다.

어찌됐건 간에 흑마법적으로 대단한 장관이긴 했으니까.

“이런 곳을 신입생이 돌아다녀도 돼?”

“모르툼 교수님께서 보호 마법을 걸어놨어. 어지간한 존재들은 접근하기 힘들 거야.”

“하지만 신입생이잖아. 사악한 존재들은 접근하지 못하더라도 자기들이 겁을 먹어서 사고를 칠 수도 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입생 한 명이 미친듯이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사령꽃 밴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두들겨 맞더니 급히 땅속으로 들어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

“말, 말려야 하지 않아? 저러다 신입생이 쓰러지겠어!”

보나마나 뻔했다.

공포로 인한 판단력 상실, 그로 인한 마법 난사.

신입생일 때 가장 빠지기 쉬운 실수였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마력 고갈이 오는 순간...

“내버려둬. 괜찮으니까.”

그러나 디레트는 이한의 마력이 넉넉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침착했다.

“저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는 선천적으로 마력을 타고난 녀석이니까.”

“그, 그렇군.”

팍! 파파파파파파팍!

“......”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고학년들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타고났어도 저 정도면 슬슬 쓰러질 때가 된 것 같았다.

디레트도 살짝 불안해졌다.

마력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지는 디레트도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말, 말려야 한다니까 저거!”

“저주받을 해골 교장 같으니...!”

결국 불안함이 디레트한테도 전염되었다. 디레트는 징벌방을 각오하고 지팡이를 붙잡았다.

같은 스승 밑에서 흑마법을 배우는 선배로서, 후배가 쓰러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팍!

그러나 선배들이 호들갑을 떤 게 무안해질 정도로, 이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지막 마법을 날린 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

“저, 저거 대체 뭐하는 놈이냐?”

선배들은 워다나즈 가문이라는 이름에 속지 않았다.

신입생들이야 경험이 없어서 ‘워다나즈 가문이라 그런가봐’했지만, 선배들은 알았던 것이다.

아무리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라도 저 나이에 저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력이라고!

‘가주가 드래곤이랑 했나?’

‘천 명 정도 목숨 바쳐서 악마하고 계약했나?’

‘교장이 신입생으로 변신한 거 아니야?’

“디레트.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이 방법을 사용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무슨 방법인데? 설마 4학년씩이나 되어서 저 신입생을 끌어들이려는 건 아닐 테고. 말해봐.”

“...그게 맞는... 제, 제발! 지팡이 겨누지 말고 말을 들어줘, 디레트! 저주 쓰지 마! 저주 쓰지 마! 마력만 빌린다니까! 마력만!”

*         *         *

“콜록. 어땠나?”

“정말로 감동적이고 유익했습니다.”

“?”

이미르그가 이한을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같이 걸었는데 왜 이렇게 감상이 다르지?’

이미르그는 한파가 몰아치는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는데...

“그럴 줄 알았다.”

모르툼 교수는 흐뭇하다는 듯이 말했다.

흑마법에 관심이 있는 마법사라면, 저 뒤틀린 차원의 영역을 보고 감명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콜록. 다음에 또 둘러보고 싶으면 말해라. 다음에는 무언가 값진 지식을 얻을지도 모르지.”

“예. 알겠습니다.”

이한은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물론 절대로 다시 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와당탕!

“......”

가이난도와 라파드엘이 반대쪽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데굴데굴 굴러왔다.

얼마나 투닥댔는지 둘 다 꼴이 엉망이었다.

모르툼 교수는 그걸 보며 혀를 찼다.

“콜록. 저런 귀한 기회를 저렇게 날리다니... 다음에는 워다나즈 네가 안내해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이런 무례한 놈들. 교수님께서 기회를 주셨는데 서로 싸우느라 날리다니! 똑바로 정신 차리고 다시 돌아보고 와!”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콜록.”

모르툼 교수는 사양하면서도 살짝 기쁜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역시 신입생 중 가장 기대가 되는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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