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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5화 (195/687)

195화

“...미안하다.”

이한은 일단 사과했다.

정말로 흰눈도치가 그냥 도망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 자식 몬스터치고 너무 겁 많은 것 아닌가?’

몬스터면 상대의 마력을 상관하지 않고 흉포하게 덤벼들어야지, 저렇게 겁이 많아서야...

“아.”

“?”

옆에서 시아나 사제가 뒤늦게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흰눈도치를 쫓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

“어째서지?”

이한은 시아나 사제가 무슨 말을 하든 거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몬스터가 도망치는데 감사히 여겨야지 억지로 잡으려 할 이유가 없었다.

저기 멍청한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나 ‘워다나즈가 몬스터를 쫓아내는 걸로 만족할 리가 있나’같은 착각을 하지...

“흰눈도치는 냉침옥잠을 좋아해서 모아놓거든요.”

“!!”

냉침옥잠.

폭설 내릴 때 쌓인 눈을 헤치고 얼어붙은 호수의 표면을 깬 뒤 물속으로 들어가야 구할 수 있는 재료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이건 구하려는 시도도 하지 말아야겠군’하며 제외해 놓았던 거였는데...

“쫓자! 샤르칸. 놈의 흔적을 쫓아! 닐리아. 도와줘!”

외침에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친구들을 한 대씩 때리려다가 말았다.

*         *         *

냉정하게 판단해서 구하기 쉬운 재료부터 모으는 이한 같은 학생이 있다면, 구하기 힘든 재료를 모아 우레걸음 교수의 눈에 들려는 학생도 있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바로 그랬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 혹한의 날씨에 두꺼운 호수의 얼음을 깨고 냉침옥잠을 구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직!

“됐다!”

마침내 도끼로 호수의 얼음을 부수는데 성공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서로 주먹을 부딪쳤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는 얼음을 부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도끼를 휘둘렀다가는 옷이 땀에 젖어서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조금씩 휘둘러야 했다.

“조심해.”

“알고 있어. 자. 들어간다!”

학생 중 한 명이 문양이 새겨진 둥그런 구슬을 꺼냈다.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한테서 산, <가짜 눈동자>이었다.

“보여다오, 눈이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구슬 주변의 시야를 사용자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아티팩트.

일회용이었지만 이 정도면 학교에서 구할 수 있는 실패작들 중에서 훌륭한 편에 속했다.

학생들은 구슬을 막대에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호수 속에 집어넣었다.

하급 냉기 저항 마법이 걸린 가죽을 몇 겹씩 두르고 있었지만, 호수에 빠지면 그런 건 무의미해졌다.

그만큼 학생들의 움직임도 조심스러웠다.

“저기 있다! 갈고리!”

냉침옥잠을 발견한 학생들이 갈고리를 집어넣어 꺼내려고 시도했다.

단단하게 뭉쳐있던 냉침옥잠이 조금씩 끌려왔다. 학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꺼냈다!”

“계속 캐내! 우리가 다 챙겨가자고!”

-■■■■! ■■■■!

“?!?”

“뭐야!?”

흰눈도치가 나타나기 전에는.

파팍거리는 소리와 함께 흰눈도치가 호수 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낚시에 열중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대응이 한 발 늦었다.

“저... 저거...”

“이쪽으로 오지 마!”

학생들의 외침에도 흰눈도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왔다.

흰눈도치는 학생들이 뚫어놓은 구멍을 노리고 돌진했다. 약해진 얼음이 연쇄적으로 부서지더니 거대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첨벙!

흰눈도치는 그대로 호수 안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리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         *         *

“저 자식들은 왜 호수 위에 있어? 위험하게!”

아산은 저 멀리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호수에 빠지는 걸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이한은 조금 다른 걸 보았다.

‘아니. 냉침옥잠을 캐냈잖아?’

호숫가 위에 남아있는 바구니.

그리고 그 바구니에 가득 찬 냉침옥잠을 본 이한의 눈빛이 빛났다.

저걸 캐내는데 성공했을 줄이야.

“도와줘야 해!”

닐리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흰눈도치를 추격한 탓에 이런 사고가 난 것 아닌가.

그 말에 어떻게 냉침옥잠을 빌릴지 고민하던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와주고 그 대가로 냉침옥잠도 빌리자.”

“어? 뭐라고?”

“움직여라!”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일단 빠진 놈들을 구해준다!

이한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쌓아놓은 장대를 들어서 움직였다. 호수 위에서 허우적거리던 학생들이 간신히 장대를 붙잡았다.

“빠져나와!”

“워... 워... 워...”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추위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부들거리며 장대를 잡고 올라왔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지는 못했다. 몇몇은 팔이 마비됐는지 힘을 주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내가 직접 올려야 한다!’

짧은 순간 이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 물에 빠진 학생들을 호숫가로 올려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밑의 물을 조종해서...’

이한은 다시 한 번 주문을 날렸다.

호수에 빠진 학생들의 발 아래를 조준한 주문이었다.

물 원소 마법은 이한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마법.

이제 다급한 상황에서도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전되었다.

‘...위로 띄운다!’

첨벙!

학생들의 머리가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물에 빠진 사람을 물의 그물망으로 건지는 건 쉽지 않았다.

‘안 되나!’

거리가 있는데다가 워낙 다루려는 범위가 넓은 만큼, 물의 힘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만약 이한이 소환한 물이었다면 통제력이 훨씬 더 강했겠지만 호수의 물은 다루기 만만치 않았다.

이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차라리 내가 물을 따로 소환해서 집어넣어야 하나? 아니... 집어넣는 순간 호수의 물과 섞여서 약해질 텐데.’

고민하던 이한의 뺨을 차가운 혹한의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한 줄기 영감이 이한의 팔을 타고 흘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이한은 본능적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이른바 마법사의 깨달음이었다.

“얼어붙어라!”

쩌저저저저적!

볼라디 교수한테 목숨을 위협받다가 어느 순간 물 원소를 통제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처럼, 이한은 냉기 원소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상황도 잊고 이한은 냉기를 통제하는 데에 빠져들었다. 깨달음은 혹한의 추위도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요네르는 깜짝 놀라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이 무슨 마법을 써도 ‘워다나즈는 사악한 비술도 쓸 줄 아는 놈인데 뭐가 놀랍겠어’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요네르는 이한이 쓸 줄 아는 마법과 쓸 줄 모르는 마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냉기 원소 마법은 이한이 쓸 줄 모르는 마법이었다.

쓸 줄 알았다면 애초에 식자재를 보관할 때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터.

그런데 지금 이한은 냉기 원소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교수님한테 배우지도 않고 혼자서 깨우친 것이다!

-메이킨. 좋은 마법사는 빨리 배우지만 뛰어난 마법사는 혼자서 깨우치는 법이란다.

-그게 가능한가요?

-그럼. 너도 배우다보면 언젠가 혼자서 깨닫게 될 때가 올 거란다. 그 때부터가 진짜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 때지.

촤아아악-

물속에서 생겨난 넓적한 얼음이 빠진 학생들을 위로 밀어냈다.

친구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서둘러 건져냈다.

“불 피워!”

“부, 부싯돌이 젖었는데?”

“너 마법사 맞냐!?”

“아... 아차. 미안.”

“물약 갖고 와!”

학생들은 호숫가에 급히 불을 피우고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의 손발을 주물러줬다.

“요네르, 도와줘! 물약을 더 만들어야 해!”

“응? 아, 미안.”

요네르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물약을 준비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친구들이 많은데, 방금 본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차린 사람은 요네르 혼자라니.

마침 이한이 걸어 나왔다. 이한은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요네르는 궁금해져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이한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혹시 방금 깨달은 것에 대해서?’

“탑에 돌아가면 상하기 쉬운 재료부터 얼리는 연습을 해야겠군.”

“......”

요네르는 못 들은 척 솥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일은 생각보다 의외로 시시할 때가 많았다.

*         *         *

“워다나즈... 고맙다. 대체 흰눈도치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건지 모르겠군.”

“그거 사실 우리ㄱ...”

“괜찮다.”

이한은 닐리아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다른 탑이긴 하지만, 위기에 빠진 학생을 도와주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

닐리아는 황당하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 그러면 냉침옥잠...”

“저기 흰눈도치가 다시 온다!”

“!”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흰눈도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흰눈도치는 천천히 접근하더니 무언가를 툭 내려놓았다.

냉침옥잠 한 뭉치였다.

“...!”

“저, 저건...”

“워다나즈. 네가 친구들을 구해주는 걸 보고 흰눈도치가 감동을 받았나봐!”

“그런...! 기적이야!”

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정말로 놀랐다.

한낱 몬스터가 감동해서 이런 선물을 주고 갈 줄이야.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적이었다.

닐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 겁먹은 것 같은데? 저거 자기 쫓아오지 말라고 선물하는 습성...”

“쉿. 닐리아 님. 조용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랫포드가 닐리아의 입을 막았다.

굳이 이 분위기를 깰 필요 없었던 것이다.

*         *         *

우레걸음 교수는 이것저것 재료를 모아온 학생들을 칭찬해줬다.

그리고는 재료들을 다듬어서 학생들이 계속해서 쓸 수 있도록 유리병에 보관해줬다.

쓸데없는 말을 몇 마디 하긴 했지만.

-냉침옥잠을 구해왔네? 이걸 진짜로 구해왔다고? 어떻게 구해왔지?

-......

덕분에 몸이 얼어붙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분노로 몸이 뜨끈뜨끈해졌다.

이한은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볼라디 교수의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주는... 냉기가 주가 되지 않을까?’

강의실로 향하며 이한은 생각했다.

볼라디 교수는 교수들 중에서 가장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 밖의 폭설은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볼라디 교수도 이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왔군.”

“예.”

“원소 중 냉기는 까다로운 축에 속한다. 마법전투에 있어서는 더더욱. 하지만 적절한 응용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지.”

이한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뱀파이어 교수의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뿐만 아니라 표정에는 미미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안 그래도 마침 냉기 속성을 깨우치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유지가 어렵고 순간파괴력이 부족하지만, 냉기 마법은 다음과 같은 순간에 유용한데...”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설명을 집중해서 메모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볼라디 교수가 설명을 마쳤다.

“냉기 생성 마법을 시전해보도록.”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어붙어라!”

지팡이 끝에서 냉기가 쏘아져 나오더니 강의실의 온도를 낮췄다. 이한 앞의 책상들 위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원래라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감을 잡아야 할 냉기 원소 마법.

그걸 신입생이 알아서 익히고 왔다는 놀라운 상황에서도 볼라디 교수는 표정변화가 없었다.

“잘했다.”

‘응?’

“하루는 걸릴 줄 알았는데 진도를 앞당겨도 되겠군. 다음에 시전할 마법은...”

“......”

이한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뭐하고 있었던 거지?’

아까 냉기 원소를 깨달은 게 기뻐서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은 못 하는 척 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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