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6화 (196/687)

196화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볼라디 교수의 마법 강의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버두스 교수한테 들었다. 부여 마법도 전공하기로 했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짝 듣는 정도입...”

“좋은 선택이다.”

부여 마법은 그 넓은 범용성 덕분에 다른 마법과의 연계에도 용이했다.

특히 냉기 원소 마법은 부여 마법과 연계하기 좋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냉기 원소 마법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곤 했다.

칼날 같은 추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이미지, 익히고 사용하는 난이도의 어려움.

-어쩌면 냉기 원소는 원소 중 가장 파괴적이고 전투적인 원소 아닐까?

하지만 아니었다.

순간파괴력으로 놓고 본다면 화염 원소가 훨씬 더 나았다. 화염은 불을 붙이는 순간 스스로 주변을 삼켜가며 알아서 타올랐으니까.

그에 비해 냉기 원소는 한 번 불러온다고 상대가 바로 얼어붙지 않았다.

계속해서, 상대가 얼어붙을 때까지 마법사가 마력을 불어넣으며 냉기를 유지해야했다.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음. 앞으로는 무식하게 그냥 얼리지 말아야겠군.’

호수에서 급하다고 무작정 마력 불어넣어서 얼음을 만든 이한은 반성했다.

친구들만 있어서 망정이지 다른 교수들이 봤다면 ‘저런 무식한 놈’소리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냉기 원소는 다른 개성도 애매한 편이었다.

형태 변화나 유지력이라면?

물 원소가 나았다.

순수관통력이라면 흙 원소가, 빠르기라면 번개 원소가...

냉기 원소는 그 얼어붙는 특성을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애매하고, 사용하기 까다로운 원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쓸 줄만 안다면 냉기 원소도 분명 다른 원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부여 마법이었다.

탁-

볼라디 교수는 레이피어를 뽑아들었다. 그 안정된 자세에서 이한은 교수가 검술을 배웠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마법전투에 목숨 건 사람이 근접격투를 허술히 하진 않았겠군.’

쉭!

이한은 레이피어의 검날 위로 차가운 마력이 피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덤벼봐라.”

“...!”

이한은 너무 기뻐하는 티가 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하며 일어났다.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자 교수는 바로 선공에 들어섰다. 미끄러지듯 거리가 좁혀지며 찌르기가 날아왔다.

빠르고 날카로운 찌르기였지만 멀리서 아무런 속임수 없이 뻗어오는 공격에 맞을 정도로 이한은 검술을 허투루 배우지 않았다.

바로 목검을 앞으로 밀어내 찌르기를 쳐냈다.

쩌적!

그 순간 목검의 일부분이 얼어붙었다.

이한은 마력을 억지로 불어넣어서 얼음을 털어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볼라디 교수는 내 검술 스타일을 자세히 모를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한 대만...’

“알겠나?”

“예?”

속마음을 들킨 이한은 멈칫했다.

“부여 마법 말이다.”

“아... 예. 냉기 원소와 상성이 좋군요.”

마법사가 마력을 집중해서 냉기를 흩뿌리거나 냉기의 결정체를 만들어서 쏘아낼 필요가 없었다.

물체에 냉기를 부여시키면 지속적으로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한 번 스치는 걸로 쓰러뜨릴 순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이한도 검술을 제대로 배운 만큼 이런 냉기 부여가 얼마만큼 효과적인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검사들끼리 싸우면 계속 무기를 부딪쳐야 하는데, 대여섯번이면 전투불능이 되겠군.’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알아들은 것 같자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었다. 이한은 속으로 아쉬워했다.

“던져봐라.”

“예.”

볼라디 교수는 쇠 구슬을 향해 턱짓했다. 이한은 아까처럼 표정을 관리하며 구슬을 잡았다.

‘침착하자.’

상대를 경계시키지 않고, 최대한 냉정을 유지해서...

이한은 전신에서 마력을 끌어내서 구슬에 불어넣었다.

잉걸델 교수한테 ‘검에 그렇게 마력 불어넣으면 위험하다’라고 소리를 들은 만큼 이한도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어쩔 수 없는 때가 있었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쐑!

공기 찢는 소리와 함께 쇠 구슬이 살벌하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볼라디 교수 허리춤에 찬 단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쨍강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구슬을 정확히 관통했다. 그렇게 빠르게 날아들던 구슬의 속도가 순식간에 줄어들며 얼어붙었다.

자연의 냉기가 아닌, 마법사가 불러온 냉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비현실적인 정지 현상이었다.

이한이 놀라워하고 있는 동안 볼라디 교수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뱀파이어 교수는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마력을 순환시킨 게 아니라 즉발시켜서 던진 건가?”

“...예.”

“장비에 무리가 가겠지만, 소모품인 투척무기는 괜찮겠지. 좋은 방법이다.”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품고 있던 살의가 들키지 않은 것이다.

“검술 강의에서 이런 걸 연습했군.”

“예?”

이한은 멈칫했다.

주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은 낌새를 맡은 것이다.

볼라디 교수의 말이 꼭, ‘마법전투에서 이런 방법을 추가하려고 검술 강의를 듣는 거였군’처럼 들렸던 것이다.

학점 관리를 위해 듣고 있는 이한에게는 상당히 억울한 누명이었다.

“제가 일부러 한 건 아니고...”

“잘했다. 냉기 방패를 소환해봐라.”

볼라디 교수는 이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는 듯이 주제를 바꿨다.

이한은 불안했지만 누명을 풀 기회가 없었다.

‘...괜찮겠지. 설마.’

*         *         *

2서클 마법, <냉기 방패>는 <물 방패> 마법과 같은 서클인 주제에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원소 난이도, 마력 소모량, 마력 유지량 등등 전부.

이 정도면 같은 서클 마법이라고 하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하지만 <냉기 방패>는 그만한 난이도를 가질 자격이 있었다.

‘닿는 공격을 얼려버리는군!’

단순히 얼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공격의 위력을 확 줄인다는 점에서, 실로 뛰어난 마법 방패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방패에게 명령을 내려서 널 스스로 지키게 해라.”

“예... 예?”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깜짝 놀랐다.

강의 시간 내내 노력해서 냉기 원소의 형태 변환 요령을 익히고, 간신히 <냉기 방패>를 만들었는데 이제 여기에 자율성까지 부여하라니.

볼라디 교수가 이한의 오해를 눈치챘는지 입을 열었다.

“지금 하라는 게 아니다.”

“아. 최종 목표...”

“다음 시간까지.”

“......”

이한은 아까 쇠 구슬을 던질 때 조금 더 마력을 넣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조금 더 넣었다면 방어를 뚫지 않았을까?

“방패에게 명령을 내려서 스스로 지키게 하려면... 4서클은 되지 않습니까?”

이한은 간단하게 가늠해보았다.

공중에 떠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다가 주인에게 공격이 날아오면 막아주는 냉기 방패를 만들려면?

...최소 4서클이었다.

“그렇다.”

“교수님. 저는 1학년입니다.”

“?”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왜 뜬금없이 이런 걸 말하나 의아하다는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마법의 난이도가 좀...?”

“물 구슬에 회전 속성과 발사 속성 결합, 아지르모 소환 부여. 모두 다 4서클이잖나.”

“......”

이한은 정말로 말문이 턱 막혔다.

살다 살다 볼라디 교수한테 논리로 질 줄이야.

너는 4서클 난이도의 마법을 성공한 적이 있다->그러니까 4서클 난이도의 마법을 또 성공할 수 있다!

반박할 수가 없는 완벽한 논리였다.

볼라디 교수가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농담한 건가?”

“...예... 뭐...”

“농담에 재주가 없군. 괜찮다. 마법전투에는 농담이 필요 없지.”

볼라디 교수는 이한을 위로까지 하고 강의실을 먼저 나섰다.

강의가 끝나고 혼자 남은 이한은 머리를 싸매고 후회했다.

‘...냉기 원소를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나비효과의 시작은 바로 저거였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         *         *

아직 학교는 추웠지만 이한은 이틀 정도 지나자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슬슬 첨탑 길 뚫어야겠군.’

물론 몇몇 가이난도 같은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꼭 이런 날씨에 가야 해!? 나중에 가!

하지만 이한은 잘 알았다.

춥다고 핑계대고 덥다고 핑계대고 쪽지시험 있다고 핑계대고 카드게임 해야 한다고 핑계대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고.

“알겠으니까 그만 구박해...!”

걱정 한 번 했다가 온갖 구박을 다 받은 가이난도는 억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꼭 이런 날씨에 가야 해!? 나중에 가!’가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할 걱정은 아닌 것 같은데!

달그락달그락-

저녁.

휴게실에 모여 앉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숟가락으로 그릇에 남은 음식을 긁어먹고 있었다.

식사를 먼저 끝낸 이한은 시아나 사제에게 선물로 받아온 물약들을 꺼냈다.

이 날씨에, 그것도 밤에 나가는 만큼 할 수 있는 준비는 해놔야 했다.

꿀꺽-

마실 만한 물약은 대충 다 마신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나중에 보자.”

“몸조심해.”

“걱정해줘서 고맙다.”

“......”

가이난도는 훈훈한 대화에 매우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내가 한 말이랑 뭐가 다른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         *         *

“어? 나왔다!”

“정말로?”

4학년 학생, 코홀티와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했는데 정말 이런 날씨에 탑을 빠져나올 줄이야.

“신입생 맞아?”

“평범한 신입생이 아니긴 하지.”

코홀티의 말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뒤틀린 차원 복도에서 미친놈처럼 마법을 난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했다.

보통 신입생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말했지?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가 작정하고 대악마와 계약해서...

-아니 워다나즈 가문이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

-그럼 내가 제시한, 좀 더 온건한 가설인 워다나즈 가문의 가주가 용하고...

-애들아. 토론하는 건 좋은데 밖에 나갔을 때 워다나즈 가문 사람들한테 암살당할 만한 이야기는 좀 적당히 하자.

디레트는 ‘쓰레기 새끼들아 니들이 해결해’하면서 욕설을 퍼부었지만, 코홀티와 친구들은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뒤틀린 차원 복도를 지금 당장 해결하려면 상당히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상당히 많은 마력을 뒤틀린 차원 복도까지 손실 없이 가져가는 방법은 거의 없다->이런 상황이라면 신입생의 도움이라도 빌려야 하지 않나?

물론 디레트나 다른 고학년들은 ‘저 새끼들이 4학년 망신 다 시킨다’하고 비난하겠지만, 코홀티와 친구들은 마음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럼 니들이 교수한테 갈굼당하면서 뒤틀린 차원 복도 처리해봐라!

그래서 코홀티와 친구들은 디레트 몰래 이렇게 푸른 용의 탑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 나오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운 좋게 나오면 접촉하려고.

그런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메시지 보내! 메시지!”

“기다려. 지금 간다!”

4학년 학생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법을 시전했다.

해골 교장의 엄밀한 감시 때문에 신입생들과 접촉하는 건 목숨 걸고 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4학년 학생들도 이 학교에서 산전수전 겪은 이들인 것이다.

툭-

종이로 만든 새가 빙글거리며 날아가더니 이한의 발 앞에 떨어졌다.

“?”

이한은 의아해하며 종이를 주웠다.

용기 있고 지혜로운 신입생이여. 모르툼 교수님이 안내해준, 뒤틀린 차원의 복도로 오시오.

그리한다면 신의 있는 마법사들이 당신의 헌신에 보답하리다!

“......”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마법학교도 편지 사기가 있나?’

쫙쫙쫙!

이한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편지를 찢어서 버렸다. 괜히 챙겼다가 이상한 마법이라도 걸려 있으면 골치가 아팠던 것이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