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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199화 (199/687)

199화

쿠만다스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어딘가로 끌려간 버두스 교수를 대신해서 부여 마법 강의도 해야 했고, 눈앞에 찾아온 신입생을 어떻게든 몰래 설득해서 뒤틀린 차원의 복도로 부르기도 해야 했고...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저희가...”

“잠깐!”

새처럼 지저귀려는 신입생들의 입을, 4학년 선배들이 단호하게 막았다.

그들도 1학년 시절을 보냈던 만큼 신입생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생활에 대한 어떤 질문도 하지 마! 학교 어디에 식료품 창고들이 있는지, 몇 층에 시험 관련 정보가 있는지, 도서관 어디에 쓸만한 책이 있는지,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어떤 것도 묻지 마! 오로지 부여 마법에 관한 이야기만 할 테니까!”

“......”

1학년 학생들은 선배의 단호한 태도에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선배들도 필사적이었다.

실수 한 번 하면 징벌방에 끌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해골 교장 눈치를 보시는 거군.’

이한은 선배들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해골 교장 성격에 선배들이 후배들을 도와주는 걸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던 것이다.

“다들 선배님을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 말자. 선배님도 사정이 있으실 테니.”

이한은 탁자 위의 버터 쿠키를 외투에 쓸어 담으면서 말했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배님들도 눈치가 보이시겠지.”

“설마 후배한테 가르쳐주는 것까지 뭐라고 하실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

아직 순진한 후배들의 대화에 4학년 학생들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직 순진하구나!’

‘그런데 저 워다나즈 가문 녀석이 과자 쓸어 담는 건 아무도 지적 안 하나?’

“으흠. 그러면 부여 마법에 대해 시작해보도록 할까.”

부여 마법을 듣는 4학년 학생들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강의를 시작했다.

부여 마법.

사람에게, 혹은 물체에게 거는 마법으로 강화, 각인, 축복 등 여러 마법이 여기에 들어갔다.

물체에 영구적으로 거는 데에 성공하면 아티팩트가 됐고 사람에게 전문적으로 시전할 만큼 익숙해지면 강화술사로 칭송받는 만큼 부여 마법의 쓰임새는 정말로 넓었다.

흑마법의 학문이 넓은 것과(적어도 모르툼 교수의 주장이 맞다는 가정 하에) 별개로 그 쓰임새가 좁은 것을 비교해보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마법이었다.

“후배 여러분들은 몸에 거는 부여 마법은 한동안 시전하지 마세요.”

선배 중 한 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실력에 자신이 없을 때 부여 마법을 잘못 시전하면 크게 다칠 수 있거든요.”

물체에 거는 부여 마법은 실패하더라도 물체가 부서지고 끝났지만, 사람에게 거는 부여 마법은 실패할 경우 그 피해가 심각해졌다.

“실력이 붙을 때까지는 물체를 대상으로 하는 부여 마법만 전문적으로 공부할 겁니다.”

‘과연... 음?’

선배의 설명을 듣던 이한은 멈칫했다.

...해골 교장이 준 책은 나한테 강화 마법부터 먼저 가르쳐주지 않았나?

“......”

이미 다 지난 일이긴 했지만 이한은 묘하게 억울해졌다.

이 검은 책 자식이...

“듣기로는 후배 여러분들이 <하급 냉기 저항>을 먼저 조금 배웠다고 했는데, 사실 <하급 냉기 저항>은 지금 완전히 마스터하기에는 난이도가 있는 마법입니다. 지금 날씨가 추워져서 그나마 나은 거지, 날씨가 풀리면 더 어려워질 거고요. 괜히 욕심 부리지 마시고 다른 마법부터 천천히 익히세요.”

선배의 말에 친구들이 이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한은 못 본 척 무시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보죠.”

<종이 강도(剛度) 강화>.

부여 마법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위해 징검다리처럼 배우고 넘어가는 쉬운 마법이었다.

마법의 원리도 단순했다.

부드러운 종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뿐.

저학년 학생들은 이런 종이를 외투 밑에 넣어서 갑옷을 대신하곤 했다.

“종이여, 단단해져라!”

“종이여, 강철처럼 변해라.”

“주문은 의지의 집중을 위한 도구지만, 너무 구체적으로 표현하거나 괜히 제약을 두진 마세요.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 될 테니까.”

선배들은 비블레 교수보다 가르치는 데에 뛰어났다. 각자 학생들을 나눠서 질서정연하게 가르치자 능률이 눈에 보일 정도로 좋았다.

사실, 이한이 가르쳤어도 교수보다는 뛰어났을 것이다.

쿠만다스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쟤는 내가 가르쳐도 될까?”

“마음대로. 그런데 왜?”

“별, 별 거 아니야.”

쿠만다스는 친구들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저번에 친 사고 있잖아. 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신입생의 능력이 필요해.

-저번에 과제 했을 때도 의심가긴 했지만 네가 드디어 미쳐버렸구나. 쯧쯧.

...이런 반응이 나올 테니까.

“음. 시전해봐.”

쿠만다스는 자기 앞에 있는 학생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이한만 집중적으로 쳐다보았다.

“...?”

이한은 옆에 있는 요네르에게 속삭였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글쎄? 없지 않아?”

“아까 간식을 너무 노골적으로 챙겼나?”

“선배님들도 1학년이었을 때가 있으셨을 텐데 그거 가지고 노려보시면 너무한데.”

“그렇지? 이유를 모르겠군.”

빠른 납득을 끝낸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종이여, 단단해져라.”

이한은 쉽게 마법을 성공시켰다.

이미 이것보다 몇 배는 어려운 마법들을 억지로 익혔던 만큼, 종이 강도 강화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정말 괜찮군.”

쿠만다스는 일단 칭찬했다.

사실 이한이 건 마법은 보지도 않았다. 다른 학생들도 성공하고 있는 만큼 어려운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는 다른 게 중요했다.

‘어떻게든 메시지를 전해야 해!’

“어, 두드려보지 않아도 아시는 겁니까?”

옆에 있던 앙라고가 의아해했다. 쿠만다스는 대충 대답했다.

“경험이 쌓이면 후배 너도 할 수 있게 될 거야.”

“오...!”

앙라고는 신기해하며 이한의 종이를 두드려보았다.

마법이 걸리기 전에는 팔랑거리는 종잇장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단단한 나무처럼 딴딴한 소리가 났다.

앙라고도 마법에 성공했지만 이 정도로 단단하진 않았던 것이다.

부여 마법은 일정 기준만 넘기면 성공으로 인정했지만, 같은 성공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또 차이가 나는 법.

“이렇게 단단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력 더 불어넣어봐.”

쿠만다스는 앙라고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앙라고는 아까보다 좀 더 마력을 불어넣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오...! 정말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래. 잘됐다.”

쿠만다스는 건성으로 대답한 뒤 슬쩍 이한에게 속삭였다.

“...혹시 힘든 일 없나?”

“?!”

이한은 놀랐다.

‘뭐지 이 사람?’

왜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함정인가?’

악마는 언제나 친절한 법.

이한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뭐라도...”

쿠만다스가 속삭이는 사이 다른 4학년 학생이 오더니 이한이 건 마법을 보고 놀랐다.

“와, 용케도 마력을 이렇게 불어넣었네? 자칫했으면 종이가 녹아버렸겠는데.”

“그러게? 혹시 부여 마법을 배운 적이 있나?”

“그럴 리가. 아직 그럴 때가 아닌데.”

선배들은 놀라워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부여 마법은 무조건 강하게 건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일정 한계를 넘으면 마력 때문에 물체가 파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아슬아슬한 선 안에서 마력을 최대로 불어넣으려면, 재능뿐만이 아니라 경험도 필요했다.

“쿠만다스. 쿠만다스. 너도 이거 봤어?”

계속 이한에게 ‘힘든 일 없냐’, ‘난 널 도와줄 수 있다’, ‘날 믿어봐라’하고 속삭이던 쿠만다스는 친구들의 부름에 귀찮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뭐? 왜?”

“이거 봤냐니까?”

“봤어. 아까 성공했다고 했잖아.”

“그게 아니라 여기에 깃든 마력을 보라고. 나무보다 더 단단한 거 같지 않아?”

“무슨 호들갑을... 헉!”

쿠만다스는 종이에 깃든 마력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자 친구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쿠만다스를 쳐다보았다.

‘봤다면서...’

*         *         *

“선배들 중에서도 이상한 사람이 있는 것 같더군.”

“그래? 조심해야겠다.”

이한의 말에 휴게실에 있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놀라워했다.

이 마법학교는 선배도 믿을 수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런 노골적으로 수상한 질문을 던지다니.’

만약 솔직하게 대답했다면 해골 교장의 징벌방으로 날아갔을지도 몰랐다.

“오늘도 나갈 거야?”

“아니.”

“그러면 카ㄷ...”

“며칠 동안 밤에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책 좀 읽으면서 밀린 공부해야지.”

“......”

카드뭉치를 꺼내던 가이난도가 질색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재수 없이 잘못 잡히면 같이 공부하게 될지도 몰랐다.

“?”

책을 읽던 이한은 열린 창으로 날아 들어오는 종이 새를 발견했다.

‘뭐지?’

아래 지도로 최대한 빨리 올 것!!!

-비블레 버두스

‘와. 정말 가기 싫다.’

이한은 쪽지를 보자마자 질색했다.

차라리 뒤틀린 차원의 복도로 오라는 쪽지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왜 갑자기 교수가 부르는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무시할 수 없는 스스로가 슬퍼질 정도로...’

교수가 부르면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학생의 저주받은 숙명이었다.

*         *         *

‘처음 보는 곳인데.’

지도는 본관 서쪽의 숲을 가리키고 있었다.

숲에 발을 디딘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미친 아티팩트한테 습격을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숲은 조용했지만 이한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당기고, 그루터기 위에 동그라미를 세 번...’

이한은 지도에서 나온 대로 행동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을 가리고 있던 환각이 사라지고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

마법학교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가장 복잡하고 거대한 본관 건물.

다른 교수들이 제각각 자기 취향대로 드넓은 부지 내에 세운 탑인 공방 건물.

마법학교에는 그 외에도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건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거처럼 노골적인 감옥은 처음 보는군.’

시커멓고 녹슨 금속으로 된 외관이 징벌방보다 더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교수님?”

“쉿. 조용히 해!”

쇠창살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블레 버두스 교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비버 수인족 교수는 이한을 보며 손을 까딱거렸다.

“빨리! 빨리 이쪽으로 와!”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몰라! 고나달테스가 갑자기 와서 화를 막 내더니 가두더라고!”

“......”

이한은 대충 상황 짐작이 갔다.

창고에서 날뛴 아티팩트를 해골 교장이 직접 넣어놨을 리는 없고, 누군가 넣어놨을 텐데...

‘이 사람이었군.’

덕분에 죽을 뻔했잖아!

“빨리 문 좀 열어줘.”

“어... 교수님. 다른 제자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까 보니 고학년 제자들도 있었는데 왜 이한을?

“걔네들은 고나달테스가 감시하고 있을 거야. 분명히 그럴 성격이거든. 어쨌든 빨리 문 좀 열어줘. 안에서 재미없는 아티팩트만 만들어서 지루해 죽을 것 같아!”

이한은 쇠창살 안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음. 1학년보다 잘 먹고 잘 지내시는군.’

푹신한 침대에, 각종 과일과 나무껍질들.

해골 교장이 화가 났어도 최소한의 선을 지킨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긴 했다.

‘신입생한테 저래야 하지 않나?’

“워다나즈? 뭐해? 안 열고?”

“교수님. 이걸 제가 열면... 교장 선생님께서는 범인을 의심하지 않을까요?”

“내가 열었다고 하면 되지!”

“하지만 과연 그걸 믿으실까요?”

“...너 왜 그래!? 안 열어줄 거야?!”

버두스 교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제자가 기껏 오더니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저도 열고 싶지만... 만약에 나중에 교장 선생님이 알아도 후회하지 않도록 뭔가 좀 보상이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한은 슬쩍 말을 흘렸다.

버두스 교수는 제자가 갇힌 스승에게 협박을 시도하거나 협잡질을 건다는 사실에 분노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인식도 없었다. 그냥 ‘왜 저래? 뭘 원하는데?’싶을 뿐.

“알겠어! 나가면 내가 꼭 보상해줄게! 열어줘!”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수님. 안 그래도 열어드리려고 했습니다. 설마 제가 보상 때문에...”

“빨리 열어달라니까!”

버두스 교수는 이한의 변명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기에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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