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01화 (201/687)

201화

“오해입니다.”

-협박받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악마는 괜히 악마가 아니었다. 악마다운 노련함으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고대의 마법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혹한 방식으로 제자를 수련시켰다.

고대부터 살아온 악마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볼라디 교수가 정상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고대에도 제자를 악마와 싸우게 하는 스승은 드물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제로 제자를 악마와 싸우게 하다니... 정신 나간 마법사 놈. 계속 그렇게 굴다가는 네가 잠자는 사이 네 제자가 등을 찌를지도 모른다.

이한은 이름도 모르는 악마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더 말해줘라!

“싸워라.”

볼라디 교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악마를 재촉했다.

악마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했다.

-싫다. 광자(狂者)들과 어울리는 건 사양이다. 너희 마법사들의 광기 어린 수련에 나를 엮지 마라.

“싸우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내가 고통에 굴복할 것 같으냐?

“원하는 조건을 말해라.”

볼라디 교수는 악마를 설득하기 위해 즉시 태도를 바꿨다.

물론 강제로 불려 나와서 신나게 맞은 다음에 ‘네가 그래도 좀 더 싸워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세상의 절반을 준다고 하더라도 너 같은 미치광이와는 계약할 일 없을 거다.

말을 마친 악마는 이한을 쳐다보았다. 시간을 준 덕분에 기억 속에서 이한과 비슷했던 존재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너는 워다나즈 가문의 혈통이군. 널 동정하고 기억하겠다. 어린 마법사여. 만약 네가 나와 계약할 일이 생긴다면 자비를 베풀어주도록 하지.

이한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고대의 악마에게 동정을 받다니...

볼라디 교수가 옆에서 속삭였다.

“지금 계약해라. 그런 다음 싸우자고 하도록.”

-그딴 계약에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광자 놈아.

악마는 볼라디 교수를 욕하고 차원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볼라디 교수는 아주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매우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많이 배웠습니다.”

“너무 짧았군. 아쉽게 됐다.”

“아닙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이한이 위로했지만 볼라디 교수는 듣지 않았다.

“새로 찾아야겠군.”

“......”

뱀파이어 교수는 이한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잠깐. 이 사람 설마...’

이한은 숲을 나왔을 때 볼라디 교수가 어울리지 않게 밤산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설마?

‘...내가 상대할 만한 적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마법적인 추위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차가운 소름이 올라왔다.

탁!

볼라디 교수가 버두스 교수를 묶은 밧줄을 풀었다.

풀려난 비버 수인족 교수가 물었다.

“왜 묶었어!?”

“다치지 않도록.”

“아. 그렇군.”

버두스 교수는 바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도 내지 않았다.

‘둘을 빨리 떨어뜨려놔야 한다.’

솔직히 계속 붙여 놓으면 어떻게 될지 흥미롭긴 했지만, 높은 확률로 이한에게 좋지 않을 터.

이한은 둘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왜?”

“제자의 수련을 위해서.”

“그쪽이 왜?”

“스승이다.”

“스승이 왜?”

“마땅히 스승이 해야 할 일.”

그러나 이한이 끼어들기도 전에 두 교수는 지들만 알아듣는 말로 빠르게 문답을 주고받았다.

버두스 교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승이 하나하나 다 떠먹여줘야 한다니.

그러면 스승이란 너무 괴롭고 힘든 직책 아닌가.

어떤 마법사도 그런 일을 맡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버두스 교수의 지론에 볼라디 교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더 낫군.”

“그런가?”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목소리에 담긴 희미한 자부심에 기가 막혔다.

물론 어떤 면에서 보면 볼라디 교수가 버두스 교수보다 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있었지만...

그건 절대 자랑이 아니었다.

가이난도보다 공부 잘하는 게 자랑이 아니듯이!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좋을 거다.”

“싫어. 난 내 시간이 더 중요해.”

“마음대로 하도록. 난 다른 적을 찾으러 가겠다.”

볼라디 교수의 말에 이한은 경악했다.

아까 했던 의심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진짜 찾고 다녔던 거였나?’

“적?”

“아까 말한 이유.”

“아. 수련. 어... 본관 상층부에 차원 중첩 터졌는데. 거기 괜찮을 것 같아. 어때?”

“고맙군.”

“......”

이한은 둘을 빨리 분리시키지 못한 스스로를 저주했다.

*         *         *

촤아악!

이한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시냇물 앞에 모여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었다.

나름 식량을 모아놓긴 했지만 추위가 언제까지 길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모아놔야 했다.

“...이한. 혹시 고민 있어?”

“왜 그러지?”

“그야 아까부터 한숨을 수십 번 쉬고 있으니까?”

“아. 그랬나? 주의하도록 하지.”

“아니 주의하란 게 아니라...”

이한은 잡은 생선의 배를 가르고 머리를 딴 다음 흐르는 물에 씻었다. 그리고 소금을 뿌려서 옆에 매달았다.

고민은 많아도 손동작은 막힘이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들이 감탄할 정도로.

“워다나즈. 무슨 일인데? 혹시 메이킨이 널 괴롭혔어?”

아산이 묻자 가이난도가 깜짝 놀랐다.

“메이킨이 이한 괴롭혔어?! 애들아! 메이킨이...”

요네르는 들고 있던 소금을 가이난도 얼굴에 뿌렸다.

“이한. 우린 친구잖아. 고민이 있으면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내가 뒤틀린 차원의 복도에 가서 추위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

“......”

“...그걸 대체 네가 왜?”

“알겠다. 워다나즈는 지금 책임감을 느끼고 있...”

“헛소리 하지 마.”

“메이킨. 네가 뭘 안다고!”

말을 잘린 아산은 요네르에게 투덜거렸다.

그러는 사이 반대쪽에서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낚싯대를 들고 나타났다.

“맞다. 검은 거북이 탑 녀석들이 벽돌로 화덕 만들었더라.”

생활력이 뛰어난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암시장 근처 공터에 화덕을 만들었다.

추운 날씨를 버티기 위해서였다.

“화덕을?”

“어. 이것저것 구워먹던데.”

“원한다면 만들어 줄 수 있다.”

다가온 살코가 입을 열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반색했다.

“정말로?!”

“너희들한테 말한 거 아니다. 워다나즈한테 말한 거지.”

살코는 으르렁대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한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선하고 교환하고 싶나? 아니면 고기하고? 미안하지만 설탕과 찻잎, 커피 가루는 거래불가다.”

“...교환하러 온 게 아니라 저번에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다. 워다나즈.”

살코는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한이 각 탑을 돌면서 냉기 저항 마법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이다.

“뭐? 정말로 그냥 해주는 건가?”

“그렇다.”

그 대답에 옆에 있던 가이난도가 중얼거렸다.

“수상한데?”

“닥쳐.”

“아니...”

가이난도는 울컥했다.

이한도 의심했잖아!

“그렇다면 감사히 받지.”

“표정이 어두운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살코의 질문에 아산이 대신 대답했다.

“워다나즈는 지금 이 추위 문제의 근원지를 공략하려고 하고 있어.”

“......”

방금까지 으르렁대던 살코는 놀랍다는 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널 존중한다. 워다나즈.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넌 진짜 귀족이다.”

“그냥 화덕이나 만들고 가라.”

이한은 살짝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해명하기도 귀찮았다.

*         *         *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앞으로 온갖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만날 일 많은 어린 마법사들에게는 꽤나 필수적인 강의였다.

정령, 악마, 천사 등 이런 존재들이 꼭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가끔은 적대적이지 않아서 더 위험했다.

자칫해서 서투른 계약이라도 맺는다면 마법사의 인생이 아주 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학교의 마법사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훈련받았다.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는 바로 이런 부분을 도와주는 강의였다.

-오늘은 제국력 117년에 있었던, 마법사 폴켈발라스와 악마의 계약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악마의 계약서가 듣는 사람을 잠에 빠지게 만드나?

-그럴지도... 모르겠어.

-실로 악마적이야. 악마여, 내가 졌다. 항복하겠다... 쿨쿨.

그리고 당연히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기초를 쌓는 강의들이 대체로 재미가 없다지만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는 특히 심했다.

온갖 사례들을 글자 하나하나 읽어가며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또 사례 중에 제국 지역 사투리가 있으면 정확하게 번역하고, 옛말이나 고어(古語)가 나오면 또 번역하고...

이한 같은 사람도 이를 악물어야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응?”

“왜 교수님이 안 오시지?”

그런 만큼 교수가 들어오지 않자, 학생들의 얼굴에는 희미한 기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교수님이 오늘은 안 오시는 것 아닐까?

설마 교수님이 다음 주도 안 오시는 것 아닐까?

다들 놀라지 말도록. 윌터 제비어 교수님이 계약 도중 정신이 붕괴되셔서 신전으로 가셨다.

“......”

방금까지 기대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경악과 죄책감으로 물들었다.

기대하긴 했지만 이런 걸 기대하진 않았던 것이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앞으로 계약할 때 더욱 조심하도록. 플뤼워크 교수. 들어오시오.

“감사합니다.”

‘관료 출신?’

밤색 머리칼의 여우 수인족 교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이한은 의아해했다.

몇 번 제국 관료 출신들을 만나다보니, 관료 출신과 마법사 출신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관료 출신들은 마법사 출신보다 비교적...

...덜 미친 사람 같았다.

그리고 플리워크 교수. 윌터 제비어 교수가 정신이 붕괴되어서 신전으로 갔지만 이건 마법학교가 위험한 게 아니라 마법이란 학문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사고라는 것을 황제 폐하에게 꼭...

“네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그러면 강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로지네 플리워크 교수입니다. 다들 잘 부탁해요.”

로지네 교수는 해골 교장을 밖으로 내보내고 시원시원하게 인사했다.

그 태도에 학생들은 반가워하면서도 약간 경계 섞인 시선을 보냈다.

이미 교수들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로지네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윌터 제비어 교수님은 어디까지 하셨었죠?”

“삼두거인과 잘못된 계약을 한 불행한 마법사 구르구까지 하셨습니다.”

“좋습니다! 학생이 한 번 읽고 실수를 말해볼까요?”

“......”

괜히 앞에서 대답 한 번 했다가 지목당한 학생은 울상을 지었다.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강의 난이도를 봤을 때, 좋은 말 들을 가능성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매정하게 시선을 피했다.

‘힘내라.’

‘나 쳐다보지 마. 내가 발표하기 싫으니까.’

10분 후.

“아주 훌륭해요!”

“헉. 정말입니까?”

“물론 41군데 정도 틀리긴 했지만 1학년인데 그 정도면 훌륭하죠. 자. 모두 박수!”

“???”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나 로지네 교수의 강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1시간 후.

강의가 끝날 때쯤 되자 학생들은 모두 다 로지네 교수의 추종자가 되었다.

“교수님!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교수님! 제가 해볼게요!”

‘아니 이런 분이 왜 마법학교에?’

이한은 놀랐다.

착한 사람은 교문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는데...

“교수님은 여기 오시기 전에는 어디서 일하고 계셨어요?”

“제국 파견관리관으로 일하고 있었죠.”

마법사들을 비롯해 제국의 여러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파견하는 직책.

인맥이 넓고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런 긍정적인 성격도 이해가 갔다.

‘잠깐. 그러면 관직에 추천도 가능한 것 아닌가?’

한동안 묻어뒀던 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한은 이제까지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를 열심히 공부했던 건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

“저도 읽겠습니다!”

“워... 워다나즈. 왜 갑자기...”

“야. 빨리 손 내려. 워다나즈가 읽겠다잖아. 비교되고 싶냐?”

주변 친구들은 투덜거리면서 손을 내렸다.

다른 강의에서도 칭찬 많이 듣는 놈이 꼭 여기서도 칭찬을 들어야 해?

‘아. 쟤가 그 워다나즈 가문이구나.’

로지네 교수는 손을 든 이한을 알아보았다. 오기 전에 몇 군데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장차 마법학교를 책임질 핵심인재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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