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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02화 (202/687)

202화

1학년 때부터 저런 평가를 받는 학생은 마법학교에서도 흔치 않았다.

마법학교는 생각보다 자유로운 곳이었던 것이다.

학생이 학년 도중에 자신의 가문을 잇기 위해 떠나거나, 혹은 배운 마법을 활용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종사한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마법학교를 책임질 핵심인재’같은 평가는 실로 어마어마한 평가였다.

졸업 이후에도 마법학교에 남아, 제국 최고의 두뇌들과 함께 마법이란 아득한 미지의 학문을 개척해나갈 인재!

마법사에게 이 정도로 명예로운 평가도 없었다.

만약 로지네 교수가 저런 평가를 들었다면 관료가 아니라 마법사로 남았을 것이다.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둬야지. 미래의 위대한 대마법사의 어린 순간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걸지도 모르니.’

제국 고관 출신으로 학생들을 마법사로 키워내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알펜 나이튼 교수와 달리, 급히 불려 온 로지네 교수는 그런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금화 받았으니 그만큼 일할 뿐!

당연히 다른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일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학생들이 출세하면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는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괜히 원한을 사는 건 바보나 할 짓이었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격려하고, 이런저런 고민 상담해주고...

나중에 학생들이 와서 ‘그 때는 감사했습니다 교수님’같은 말만 해줘도 보람일 것 같았다.

물론 눈앞에서 계약의 틀린 점을 완벽하게 짚어내는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긴 했다.

워낙 혼자서 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칭찬 많이 듣는 이유를 알겠네.’

다른 학생들이 더듬거리는 수준에서 멈출 때 이한은 눈빛을 불태우며 막힘없이 읽어나갔다.

그 모습에서는 열정이 느껴졌다.

단순히 재능이나 영리함이 아닌, 학문과 탐구를 향한 열정.

언제나 즐기는 자가 가장 강하지 않던가.

저 소년은 공부를 정말로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잘 했습니다. 모두 박수!”

박수갈채를 받으며 이한은 뿌듯함을 느꼈다.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한 보람을 이렇게 강하게 느낀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인상을 남긴 다음, 기회를 봐서 상담 드리는 거다. 관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괜히 워다나즈한테 억지로 말 걸면 다른 교수들한테 오해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

마법학교는 자유로웠지만 교수들까지 너그럽지는 않았다.

특히 제국 관료 출신들에게는 더욱 예민한 편이었다.

-감히 내 공방에 감사관이...?

-아니, 폐하의 금화를 받으셨으니까 당연히 어떻게 쓰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거 아닙니까!

-또 내 제자를 관직으로 꼬드길 생각이겠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22년 전에 딱 한 번 그랬던 거잖습니까! 그리고 학생이 애초에 관직에 뜻이 있었던 건데!

-닥쳐라! 이 타락한 황금의 노예야. 순수한 마법의 탑에 발을 디디지 마라!

교수가 아끼던 학생 한 명 관직으로 데리고 가는 순간, 이제 그 관료는 교수는 물론이고 친분 있는 마법사들 모두의 적이 되는 셈이었다.

그것도 평생!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관료들도 교수가 아끼는 제자는 굳이 데리고 가지 않았다.

문제 일으키는 거 싫어하는 로지네 교수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제자 한 명 데리고 가도 난리가 나는데 마법학교 전체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인재를 데리고 가면...

‘애초에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텐데 말이지!’

저렇게 학문을 좋아하는 소년이 무엇하러 관직에 관심을 갖겠는가.

마법학교의 다른 교수들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         *

“이한.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래 보이나?”

금요일.

검술 강의를 위해 모인 학생들.

더르규는 이한의 얼굴 표정이 평소보다 부드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주말이긴 했지만 다른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추위가 계속되고 있는 탓이었다.

당장 더르규도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고 뼛속까지 시린 기분이었으니...

“난 그 이유를 알지.”

지나가던 앙라고가 대신 말했다.

“뭐지?”

이한은 앙라고가 ‘이한이 곧 이 추위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 것이기 때문’이라고 헛소리를 하면 한 대 때릴 생각이었다.

기분 좋든 말든 그건 용서할 수 없었다.

“눈싸움이 기대되서지?”

“...뭐?”

“눈싸움.”

앙라고가 뒤를 가리켰다.

걸어오는 잉걸델 교수와 함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양손에 눈뭉치를 쥐고 있었다.

“...교수님. 혹시 오늘 강의가?”

“네. 눈싸움입니다.”

“......”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웬 눈싸움?

그러나 잉걸델 교수는 진지했다.

“싸울 때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투척 무기를 상대하는 법을 알아두는 건 중요합니다. 특히 다대다 싸움에서는 더더욱.”

“그, 그렇군요...”

이한은 납득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전장의 공격은 눈앞에서만 정직하게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정면의 기사보다 더 위험한 게 사각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였다.

물론 뒤에서 서로 눈뭉치를 던지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보면 ‘그냥 눈싸움을 좋아하시는 거 아니야?’싶은 생각도 조금 들었지만...

‘잠깐.’

이한은 불온한 분위기를 느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소곤거리면서 눈뭉치를 들고 이한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의도는 매우 뻔했다.

‘이 자식들이...’

이한은 바로 지팡이를 뽑았다.

물 구슬도 얼려서 날리면 눈뭉치랑 크게 차이가 없을 터.

“잠깐. 워다나즈. 마법은 쓰지 마세요. 마법을 쓰면 너무 쉬워질 겁니다.”

“아니... 교수님. 저 그렇게 마법에 능숙하지 않습니다.”

저번 중간고사 때 그랬듯이 또 마법을 금지당한 이한은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잉걸델 교수는 조금도 넘어가지 않았다.

뒤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워다나즈 니가 마법에 능숙하지 않으면 우린 굼벵이냐?’

‘저 자식은 저딴 거짓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도 안 됩니다. 검술 강의인 만큼 마법에 의존하지 않고 싸우는 법을 배워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한은 일단 수긍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교수님이 안 보시는 순간 박살내버린다.’

볼라디 교수가 괜히 마법전투에 있어서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아니었다.

이럴 때 빨리 빨리 패라고 가르쳐 준 게 분명했다.

“참.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서 선물을 갖고 왔습니다.”

“예?”

잉걸델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선물을?

-■■■■...

우레걸음 교수의 연금술 강의에서 만난 적 있던 흉포한 강화돼지.

그 돼지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오늘 눈싸움에서 우승한 학생들한테 선물로 줄게요.”

“감... 감사합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돼지는 지금 상황에서 좋은 선물이 맞았다.

돼지는 버릴 곳이 하나 없었으니까.

고기는 물론이고 돼지기름 같은 건 추울 때 쓸 곳이 많았다.

‘그런데 저걸 어디서 구해오신 거야?’

“이야. 잘 부탁해.”

금색 머리칼의 흰 호랑이 탑 학생, 지젤 모라디가 한쪽 입가를 올리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속마음이 느껴지는 매우 기분 나쁜 미소였다.

합법적으로 이한의 낯짝에 눈뭉치를 날릴 수 있는 기회인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교수님. 모라디가 친구들하고 짜고서 절 괴롭히려고 하는데요.”

이한은 즉시 대응했다.

허를 찔린 지젤은 경악한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저런 개새끼가...’

기사 가문 출신들이야 자존심 때문에 고자질을 못한다지만 이한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고자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거겠죠.”

“아닙니다. 교수님.”

“오해라니까요.”

“??”

잉걸델 교수가 흔들리지 않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뭐지?

잉걸델 교수는 꽉 막힌 완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아예 말도 안 들어줄 줄이야.

...설마 이한이 펼쳤던 수작질들이 들켰나?

“이한.”

옆에서 더르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부르지?”

“너랑 모라디랑 나는... 한 조야.”

“......”

“......”

이한도, 지젤도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랬었지...!

*         *         *

두두두두두두!

“혹시 모라디가 친구가 없나?”

미친놈처럼 날아오는 눈뭉치 세례에 이한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이한과 지젤, 더르규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셋이 강의에서 손꼽히는 고수라고 하더라도 물량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셋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일치단결해서 눈뭉치를 던져대는데 정면으로 대응할 수는 없었다. 셋은 일단 후퇴하고 있었다.

“모라디가 친구가 없는 게 아니야. 이한. 우리 셋이 유력한 우승후보니까 다들 우리부터 먼저 견제하려고...”

“초이. 저딴 개소리에 일일이 대답해주지 말라고.”

지젤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냥 무시하고 넘기려 했는데 더르규 때문에!

파파파파파팍!

“그렇군. 하도 날아와서 혹시나 했지.”

“네가 쌓은 원한은 생각도 안 하고?”

“솔직히 잊혀질 때 되지 않았나? 어떻게 생각해? 더르규?”

“......”

“......”

지젤과 더르규는 침묵했다.

딱히 납득해서는 아니었고,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였다.

‘잊혀지기에는 애들이 너무 많이 맞은 것 같은데...’

“워다나즈, 죽어라!”

셋이 올라가고 있는 언덕길을 빙 우회해서 매복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나무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한은 능숙하게 마법을, 아니, 눈뭉치를 피해내고 들고 있던 눈을 집어던졌다.

퍽!

“잠깐. 더르규. 이거 한 대 맞으면 끝 아닌가?”

맞아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눈을 긁어모으는 학생의 모습에 이한은 멈칫했다.

“아닌데? 자기가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다.”

“......”

생각보다 원시적이고 무식한 규칙이었다.

‘그보다 이러면 너무 불리한데.’

한 대만 맞혀도 되면 모를까 이렇게 맞혀도 맞혀도 끝이 없으면 셋이 불리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외쳤다.

“워다나즈!!”

“듣고 있다.”

“오늘 반드시 널 쓰러뜨리고 말겠다!”

“꼭 오늘만 기회가 아닐 텐데 그래야 하나?”

“오늘 놓치면 기회는 없어!”

‘저 자식이 흰 호랑이 탑 망신은 다 시키네.’

지젤은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젤도 오늘처럼 이한이 마법 봉인한 때가 아니면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밖으로 내뱉는 건 별개였다.

“그냥 항복할까?”

“아. 아니. 그건 좀... 이한. 그래도 좀 더 해봐야지.”

“전원이 우리를 노리는데 무모하게 버텨봤자 손해 같은데.”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한은 바위 위로 몸을 내밀어 눈을 집어던졌다.

빡!

다가오던 흰 호랑이 탑 학생이 그대로 자빠졌다. 이한은 멈추지 않고 만들어 놓은 다른 눈뭉치를 집어던졌다.

“악! 항복! 항복! 워다나즈! 진짜 아프잖아!”

“뭐? 몇 대 안 맞았잖아. 어쨌든 고맙다.”

“너 돌멩이 넣었지!!”

“아닌데.”

이한은 들고 있던 눈뭉치를 쪼갰다. 정말 돌멩이 같은 건 없었다.

돌멩이를 넣는 꼼수 같은 건 너무 들키기 쉬운 반칙이었던 것이다.

얼굴이 벌게진 흰 호랑이 탑 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진짜 아팠는데?’

부드러운 눈뭉치가 아닌 딱딱한 중량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너 정말 돌멩이 넣은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봐.”

지젤은 믿기지가 않아서 작게 속삭였다. 돌멩이 안 넣은 것치고는 상대가 너무 쉽게 항복했던 것이다.

“안 넣었다니까. 내가 그런 쉽게 들킬 속임수를...”

쉭!

이한은 다가오던 학생한테 다시 한 번 눈뭉치를 던졌다. 거리가 있는 만큼 무의식적으로 마력을 사용했다.

볼라디 교수한테 전력으로 구슬을 던졌던 경험은 상당히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 경험이 몸에 남아 마력을 사용하는 것에 도움을 줬다.

쩌적-

“...?”

이한은 그 순간 분명히 느꼈다.

날아가기 직전의 눈뭉치가 손 안에서 단단하게 냉기로 얼어붙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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