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05화 (205/687)

205화

-■■■■■...!

겨울 망령은 마력으로 형성된 화염에 괴로워했다.

아무리 취약한 속성이라지만, 저 정도로 마력을 흡수해서 강해진 겨울 망령은 1서클 마법에 크게 영향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망령이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슨 마법 숫자가?’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이한은 주문을 연사하며 계속해서 불꽃을 불러왔다.

주변에 지독하게 퍼진 냉기가 오히려 화염의 통제를 도와줬다.

불꽃을 불러오고.

그 불꽃을 움직이고.

이 과정을 반복한다.

아주 단순했지만 그 반복을 빠르게, 무수히 계속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막강한 화력이 만들어졌다.

디레트는 후배들을 몬스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상황도 잊어버리고 홀린 듯 시선을 던졌다.

‘이건...’

원래 에인로가드의 고학년 학생들은 어지간해서는 낮은 서클 마법에 감탄하지 않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그랬다.

낮은 서클 마법에 발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단련하고 단련해서 시전 속도를 단축시키고 파괴력을 올리고 컨트롤을 향상시킬 수야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정석이 아니었다.

그런 건 마법 전투를 전문적으로 하는 전투 마법사나 갈고 닦는 기술이지 원래 마법사가 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마법사가 더 높은 서클 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고 마법이란 학문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기 위해서.

그런 목적에 비교했을 때 낮은 서클 마법을 저 정도로 단련하는 건 탈선에 가까웠다.

하지만...

디레트뿐만 아니라 다른 4학년 학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낮은 서클 마법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마법사들을 압도할 수 있다고!

“뭐해? 다들.”

디레트는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을 재촉했다. 친구들은 퍼뜩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4학년 학생들은 지팡이를 들었다.

원래 겨울 망령을 상대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놈의 주변 기온을 올려서 움직임을 억제한 다음에 공격하는 것이었다.

움직임을 묶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자극했다가는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겨울 망령은 안개부터 시작해서 진눈깨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사의 오감을 어지럽히는 재주가 있었고, 경험 적은 1학년 신입생들한테 그런 재주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다른 방법도 있었다.

겨울 망령을 공격한 다음에, 반응할 틈도 없이 계속 공격을 무수히 퍼붓는 방법!

“...괜히 끼어드는 거 아닌가? 잡을 것 같은데?”

“그래도 그냥 내버려두면 좀... 뭐라도 해봐.”

“장막이라도 쳐볼까.”

쿠만다스는 지팡이를 들었다.

겨울 망령에게 열의 장막을 둘러 움직임을 억제할 생각이었다.

탁!

그 순간 날아온 얼음 구슬이 쿠만다스의 손등을 때렸다.

쿠만다스는 얼얼해진 손등을 붙잡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방해다.”

“예?”

쿠만다스는 왜 손등을 맞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1학년 후배 도와주려고 한 것 때문에 맞은 건 아닐 테고...

“지금 냉기가 강하게 퍼진 상황에서 열의 장막 같은 광역 마법을 펼쳤다가는 다른 몬스터도 자극해서 불러올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과, 과연.”

꿈보다 해몽이라고, 친구가 하는 말에 쿠만다스는 그대로 납득해버렸다.

확실히 어설픈 범위 공격 마법은 지금처럼 뒤틀린 차원에서는 위험할 수 있었다.

숨어 있는 다른 몬스터들도 자극해서 불러올 수 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교수님. 전투 경험이 부족해서....”

볼라디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만다스는 머쓱해졌다.

“실수 때문에 화나신 건가?”

“괜찮아. 앞으로 만회하면 되지. 네 실력을 보여주라고.”

그러나 쿠만다스가 만회할 기회는 생각처럼 나오지 않았다.

냉기 시체벌레.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후... 후배. 대단한데?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도 이번에는 투사체 계열 마법으로... 화염 화살을 준비해볼까...

-야. 다 잡았잖아.

스트리고이.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후배... 마력 부족하지 않니?

-괜찮습니다만.

-그래도 내가 좀 나서볼까?

탁!

-?!

-추하게 1학년 후배 공 빼앗지 말고 네가 처음부터 잡으라는 거겠지.

-과... 과연. ...그런데 저 후배가 너무 빠르지 않아?

-네가 더 빠른 마법 써.

-......

쿠만다스는 머뭇거리면서 이한의 눈치를 봤다.

사실 마법전투를 전문적으로 할 게 아니라면 마법의 시전 속도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연구나 실험에 빠르게 시전하는 능력이 뭐 그리 필요하겠는가.

당연히 쿠만다스도 시전 속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1학년 후배한테 압도당하기 전까지는.

‘...돌아가면 연습해야겠다...’

‘괜찮나?’

4학년 선배들이 눈치를 보는데 이한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이한은 미묘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설마...’

여기 몬스터들을 잡고 싶으신 건가?

이한은 설마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보였다.

대체 왜 잡고 싶어 하는 거지?

이한이야 볼라디 교수가 등 뒤에서 칼, 아니 지팡이 겨누고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어쨌든 양보해봐야겠군.’

“교수님.”

“안다.”

“예?”

“몬스터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아서 불만이겠지.”

“......”

이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른 친구들이야 ‘워다나즈 저 자식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몬스터 태워 죽이는 거 봐 저게 대마법사지’하며 감탄하고 있었지만, 상대하는 이한은 매 싸움마다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몬스터도 전략이 있고 자신만의 능력이 있었다.

경험이 부족한 이한이 몬스터의 전략에 휘말렸다가는 정말 크게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한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선공.

첫 공격과 함께 상대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 압도적인 선공!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공격을 퍼부었더니 한다는 소리가...

‘침착하자.’

이한은 침착을 되찾았다.

“그것보다는 다른 분들도 사냥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4학년 선배들은 물론이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가 기사 가문 출신 아니랄까봐, 이한이 사냥하는 걸 보니 자기들도 나서고 싶어진 것이다.

볼라디 교수는 친절하게 해결책을 조언했다.

“떨거지들은 꺼지라고 하도록.”

“...조금 기회를 드리는 게 어떻습니까?”

4학년 선배한테 ‘떨거지들은 꺼져’라고 말하는 1학년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이한은 최대한 예의바르게 말했다.

그러자 볼라디 교수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교장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었군.”

“예?”

“네 유약함이 약점이라고 하셨다.”

“...그, 그렇군요.”

이한은 다른 건 몰라도 나중에 해골 교장이나 볼라디 교수를 팰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유약함을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         *         *

볼라디 교수는 그래도 이한의 부탁을 거절하진 않았다.

이한이 뒤로 물러서자 4학년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사냥에 나섰다.

“다들 절대로 무리하지 마십시오!”

“내가 마법을 시전하기 전에 절대 움직이지 말도록. 섣불리 자극하지 마!”

이한이 빠진 마법사들의 사냥은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탄탄한 정석이었다.

4학년 선배들이 먼저 나서서 강력한 마법으로 몬스터의 능력을 대폭 깎아내고.

볼라디 교수의 강화 마법으로 신체 능력이 크게 올라간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달려들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목검은 평범한 목검이 아니었다. 쿠만다스가 시전한 마법이 부여되어 있었다.

이 마법은 목검이 충돌할 때마다 열기가 치솟아 몬스터에게 추가적으로 데미지를 줬다.

서로 유기적으로,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움직이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니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게 됐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앞에서 이끌어주고 열정적인 후배들은 뒤에서 미는 이런 사냥...

‘...갑자기 슬퍼지는데.’

이한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냥을 보다보면 이제까지 이한이 혼자 한 사냥은 뭐였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으니까!

“교수님. 저도 단체로 같이 싸우는 방법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볼라디 교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칭찬했다.

“그러면...”

“혼자서 싸우는 것에 능숙해지면 단체로 싸우는 것에도 능숙해진다.”

“...아. 예.”

“단체로 싸울 줄 아는 자들은 혼자서 싸우지 못하지만, 혼자서 싸울 줄 아는 자들은 단체로 싸울 줄 안다.”

“예...”

딱히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부러워 해본 적은 없었지만, 오늘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잡는 걸 보니 처음으로 부러웠다.

저게 뭐라고...

“!”

속으로 불평하던 이한의 안색이 바뀌었다. 볼라디 교수도 동시에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으로 알아차린 건 4학년 학생들이었다.

복도 안쪽에서 상당한 마력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이제까지 나타난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

“교수님.”

디레트와 4학년 학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볼라디 교수를 불렀다.

저런 몬스터는 1학년은 물론이고 4학년인 그들도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교수가 직접 나서야했다.

볼라디 교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감사합니다.”

볼라디 교수는 지팡이를 붙잡고 휘둘렀다.

파아아아아앗!

거대한 힘의 흐름과 함께, 4학년 학생들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뒤로 밀려났다.

디레트는 느낄 수 있었다.

몇 개의 마법이 순간 겹쳐져서 앞의 영역을 관통하는 거대한 장벽이 만들어지는 것을.

어지간한 몬스터라도 이 마법의 장벽을 뚫고 학생들이 있는 쪽으로 넘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교수님이시군.’

디레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4학년쯤 되면 자연스레 마법학교 학생들의 콧대는 높아지고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당장 1학년 학생만 해도 마법학교 밖으로 나가면 어딜 가든 마법사라고 대접 받는데, 4학년쯤 되면 ‘나 정도면 제국 마법계의 핵심 인재 아닌가?’같은 착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법학교의 교수들이 보여주는 진짜 실력을 볼 때면 그런 오만함은 싹 사라지곤 했다.

제국의 으뜸가는 천재들만 모아놓는 에인로가드를 능히 이끌 수 있는 마법사들.

그들이 바로 교수진...

“...어? 어?? 교수님?? 교수님??”

디레트는 당황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흑마법 후배가 장벽 바깥쪽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지?”

“저... 저 후배가 못 들어왔는데요?”

“안다.”

“...네? 아니...”

디레트는 순간 ‘알면 데리고 와야지 미친새끼야 뭐라는거야’라고 말하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상대는 교수였던 것이다.

디레트는 일단 정신 나간 교수는 나중에 설득하기로 하고 이한을 불렀다.

“후배! 뒤로 달려!”

“예? 왜요?”

“...위험하니까?”

“감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아니 조심이 아니라...!”

디레트는 자신이 이상한 건가 싶어서 친구들을 쳐다보았다.

물론 다른 4학년 친구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

“눈이여. 암흑을 꿰뚫어라.”

이한은 강화 마법들을 다시 걸고 몬스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놈들보다 더 강한 만큼 더욱 최선을 다해야 했다.

‘먼저 친다.’

달려오는 놈이 복도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쓸 수 있는 마법은 다 퍼붓는다!

“......”

그 순간 이한의 얼굴이 굳었다.

저쪽에서 뿜어져 나오던 상대의 마력이 갑자기 수십 배로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마력을 감췄던 게 분명했다.

이러면 계산이 달라졌다.

‘장벽 부수고 뒤로 피할까? 부술 수 있나? 볼라디 교수가 얼마나 튼튼하게 쳤지?’

누가 서리거인의 왕을 접견하려는가?

“...!!!”

쩌렁쩌렁 울리는 위엄찬 목소리.

장벽 너머의 1학년 학생들도 위압하는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압도적인 것은 상대의 풍채였다.

드높은 복도의 천장에 닿을까봐 숙인 고개. 한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대검.

‘차라리 다행인가?’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중간하게 강한 놈이라면 더 위험했다.

대화가 안 통하는 흉폭한 몬스터였다면 이한은 꼼짝없이 마력 파악 잘못한 대가로 두들겨 맞았으리라.

볼라디 교수가 뒤에 있으니까 죽진 않겠지만...

...아마도...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적들은 차라리 대화가 가능했다.

지성이 있고 호기심이 강한 만큼 질문을 해오는 것이다.

이렇게.

너는...

“서리거인의 왕이여. 여기 재능 있는 도전자가 왔소. 당신에게 도전하오.”

“......”

이한은 고개를 돌려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4학년 학생들도 고개를 돌려서 볼라디 교수를 쳐다보았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