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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06화 (206/687)

206화

“서리거인의 왕은 자격 있는 도전자의 정당한 도전을 즐기는 명예로운 존재다.”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궁금해하자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과연 교수다운 박식함이었다.

이한은 순간 볼라디 교수가 뒤틀린 차원의 복도 안쪽에 있는 존재가 누군지 미리 알고 온 게 아닌가 의심했다.

‘왠지 그런 것 같은데.’

“저도...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디레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령, 악마, 천사 등 다른 차원에 거주하는 존재들 중에서도 나름 명성 높은 자들이 있었다.

서리거인의 왕도 그런 존재였다.

자격 있는 도전자의 정당한 도전을 즐기고, 그 도전에 합당한 보상을 내리는 명예로운 존재.

...물론 그건 그거고 지금 상황이 이상한 건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도전을 좋아하는 명예로운 존재라도 그렇지 1학년을 거기에 밀어 넣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디레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교수님. 신입생이 서리거인의 왕에게 도전하는 건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틀렸다.”

“......”

나름 용기 내서 말했는데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즉답이 돌아오자 디레트는 분노했다.

4학년 친구들은 기겁해서 디레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디레트. 네가 참아. 상대는 교수님이야!”

“무제 교수라고!”

...너무 어리지 않나? 좀 무모한 것 같은데.

그러나 생각치도 못한 상대가 디레트의 편을 들어줬다.

바로 서리거인의 왕이었다.

서리거인의 왕은 이한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마법사란 족속들이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천재들이라지만, 눈앞의 마법사는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던 것이다.

정정당당한 도전을 선호하는 서리거인의 왕이었다.

너무 어린 도전자를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서리거인의 왕이여. 이 도전자의 능력은 내 이름을 걸고 보장하오.”

볼라디 교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상대 마법사에게서 느껴지는 강함에, 서리거인의 왕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의 이름을 건다면야...

“......”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자기 이름까지 걸어서 도전을 해야 하나?

왕을 접견하는 도전자는 이름을 밝혀라.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입니다.”

좋다. 어린 도전자여.

서리거인의 왕은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진 푸른 얼음 왕관을 가리켰다.

긍지를 상징하는 이 왕관에 상처를 입힌다면 그대의 승리가 되리라.

‘생각보다...?’

생각보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서리거인 왕의 모습에 이한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보아하니 서리거인 왕이 보여주는 모습은 진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관에 상처만 내도 이한의 승리로 인정해준다는 점도 그렇고, 지금 서있는 자세도 상당히 느슨했다.

하긴 1학년 학생을 상대하는데 진심으로 경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했다.

이제까지 해왔던, 이한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

상대가 방심한 사이에 선공으로 끝장 보기!

“그런데 서리거인의 왕이시여.”

무엇이냐?

“지금 이 주변의 차원이 뒤틀린 상황인데, 도전에서 승리한다면 이 문제도 해결되는 겁니까?”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되리라. 도전에서 승리한 자의 정당한 권리니.

서리거인의 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보아하니 저 서리거인의 왕이 지금 영역을 유지하는 핵심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서리거인의 왕이 떠나면 이 뒤틀린 차원의 복도도 곧 원래대로 돌아오리라.

이한은 한 걸음 슬쩍 앞으로 내딛었다.

사실 방금 대화의 내용은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거리를 좁히는 것!

‘한 걸음만 더.’

“서리거인의 왕이시여.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여라.

“저 뒤에 있는 것은 왕의 수하입니까?”

서리거인의 왕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한은 지팡이를 뻗고 외쳤다.

“몰아쳐라, 페르쿤트라의 벼락이여!”

이제까지 이한이 시전했던 마법 중 가장 빠르고 격렬하게 시전된 마법이었다.

상대가 눈치채면 안 되는 만큼 사전에 마력을 전혀 끌어낼 수가 없었다.

서리거인의 왕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주문을 외우고, 마력을 엮어서 지팡이 끝에서 폭발시킨다!

“!”

4학년 학생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쏘아져나가는 번개 마법의 위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봤던 저 신입생의 마법전투는 쉬운 마법을 무수히 연사해서 화력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감탄하긴 했지만, 난이도 자체는 시간만 주면 4학년 학생들도 할 수 있었다.

마법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여준 기습은 그것보다 몇 단계는 높은 수준의 마법이었다.

원소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불안정한 번개를 다루는데도 저렇게 빨리 완성시켜서 시전하다니.

저건 단순히 마법 시전 속도만 빨라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번개 원소에 대한 강한 통제력과 깊은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내가 1학년 때에는 번개 원소는커녕 화염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어찌나 놀랐는지 지금 신입생이 서리거인의 왕 상대로 속임수를 쓰고 기습을 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방금 보여준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어... 저렇게 속여도 되나?”

“불리하니까 해도 되지 않을까?”

꽝!

그러나 이한의 공격은 왕관에 닿지 못했다.

서리거인 왕이 쓴 왕관 앞에 푸른 얼음의 벽이 생겨나더니 번개를 막아낸 것이다.

“......”

이한은 볼라디 교수가 왜 떠다니는 냉기 방패 마법을 완성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능이... 좋군.’

기습을 당했지만 서리거인의 왕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자격이 확실히 있구나.

“감사합...”

이한은 감사 인사를 하면서 물의 구슬을 날릴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서리거인의 왕은 두 번 당해주지 않았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서리거인 왕의 뒤쪽에서 반원 형태로 얼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음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올라라!”

이한은 주문을 외우며 몸을 날렸다.

진정한 도전의 시작이었다.

*         *         *

“뼈여, 적을 붙잡아라. 망토여, 나를 삼켜라!”

이한이 뼈 구속구를 소환하고 고나달테스의 투명 망토를 시전하자 서리거인의 왕은 흥미롭다는 듯이 시선을 던졌다.

장벽 뒤의 저 마법사가 뭘 믿고 보장했나 싶었는데, 확실히 지금 싸우는 걸 보니 이 어린 마법사는 도전자로서 자격이 있었다.

첫 번째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대한 마력.

사용하는 마법들은 아직 미완성의 느낌이 났지만 어마어마한 마력량이 그 단점을 보완했다.

특히 그 장점이 드러나는 건 화염 마법을 시전할 때였다.

지금 이 주변은 서리거인 왕이 자신의 힘을 선포한 장소라 어지간한 불꽃은 피어오르지도 못해야 하는데, 저 소년이 시전하는 마법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올랐다.

그것도 상당히 맹렬하게!

화르르륵-

냉기와 상성인 것이 또 화염인지라 서리거인 왕이 휘두르는 얼음도 화염 앞에서는 그 움직임이 둔해졌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저 어린 마법사에게는 다른 장점도 있었다.

‘감각이 있군.’

서리거인 왕이 감탄할 정도로 위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

주변에서 움직이는 원소를 한 발짝 먼저 감지하고 반대 방향으로 피하는 걸 보면 저게 과연 어린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 뛰어난 감각이 각종 강화 마법을 유지할 수 있는 막대한 마력과 결합되자 서리거인의 왕도 맞히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기민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법을 다양하게 조합하는 유연함.

서리거인 왕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보통 마법사들은 자신의 전문을 깊게 파는데, 그대는 특이할 정도로 넓은 영역을 다루는군. 이유가 있나?

눈앞의 도전자가 보여준 마법만 해도 벌써 원소(화염, 번개)와 환상, 부여, 흑마법 등 다양했다.

어린 마법사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신기한 일이었다.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힘들어서 대답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지금 눈앞에서 거대한 얼음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고 있는데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날카로운 얼음의 조각들이 빗방울처럼 날아오는데...

볼라디 교수가 대신 대답했다.

“필요해서 스스로 배운 것이오.”

과연. 저 나이에 전투마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스스로 배우다니. 대단하군.

서리거인의 왕은 감탄했다.

자기 단점을 알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나서는 마법사들은 많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저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마법사는 드물었다.

4학년 선배들도 감탄했다.

‘그런 거였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감탄...

쾅!!

“이한!!!”

더르규가 기겁해서 비명을 질렀다. 방금 이한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그대로 내리꽂힌 것이다.

“걱정 마라. 더르규.”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간 이한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위에서 떨어지기 전에 원소의 움직임을 먼저 탐지한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몸은 좀 쑤셨지만...

‘미치겠군. 틈을 주지 않는다.’

이한은 오랜만에 막막함을 느꼈다.

아무리 마력이 많다지만 마법으로 엮어내지 않는다면 그건 의미가 없었다.

조금만 시간을 준다면 사방에 화염을 불러내서 화력을 좀 키워보겠는데, 서리거인 왕은 조금도 시간을 주지 않고 매섭게 몰아쳤다.

피하는 것에만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이니 반격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무리하게 공격하는 대신 수비를 선택했다.

괴롭고 힘들지만,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어린 마법사답지 않은 끈기에 서리거인 왕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도전자여. 화염 마법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아까부터 원소 마법은 화염만 쓰고 있구나.

서리거인의 왕은 이한이 띄운 화염 방패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실, 화염 방패는 원소 계열 방패 마법 중에서도 가장 쓰이지 않는 마법이었다.

방어력도 약하고, 마력 소모도 크고, 형태 고정도 힘들고...

물론 이한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냉기와... 상성 아닙니까?”

이한은 상대가 공격을 멈추자 경계하며 대답했다.

상성이긴 하지. 하지만 마법사는 환경을 이용하는 존재일 터. 이 주변에 가득한 냉기의 힘을 굳이 거스를 이유가 있나?

‘...어?’

이한은 멈칫했다.

그런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다른 마법사였다면 화염 마법이 시전되지 않는 것에서 눈치채고 냉기 마법을 시전했겠지만...

이한은 그렇게 고생한 화염 마법이 잘 통제되는 쾌감에 열심히 화염 마법만 쓴 것이다.

‘추워서 머리가 굳었나?’

이해한다. 도전자여. 도전자로서의 자긍심이겠지. 그 자긍심은 높게 평가하노라.

“아니...”

하지만 이 도전은 생사결이 아니다. 가끔은 자존심을 접고 다른 힘을 이용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이한은 해명하는 대신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외쳤다.

“얼어붙어라!”

쩡!

순간 허공에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생겨났다.

화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이한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형태 변화를 시도했다.

“쪼개져라!”

물 구슬 여러 개를 동시에 움직였던 것처럼, 이한은 얼음조각을 움직였다.

수십 개가 넘는 얼음의 조각들이 덩어리에서 분리되며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리거인 왕은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 아까 번개를 막은 푸른 얼음의 벽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 순간 이한의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배운 것을 토해냈다.

유미디후스에게 배운, 물 원소의 심화 응용.

“증발하라!”

순간 푸른 얼음의 벽이 옅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곧바로 다시 형성되었지만 그보다 얼음조각들이 더 빨랐다.

이한이 전력을 다해 쏘아낸 얼음조각들이 장벽 안으로 침투했다.

‘닿았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서리거인 왕이 쓴 왕관에 얼음조각 하나가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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