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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0화 (210/687)

210화

해골 교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흑색의 원이 퍼져나갔다.

그 흑색 원 안의 세계는 밖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해가 뜨면 지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는 세계의 섭리를 거부하는 별개의 공간.

‘고유세계!’

제국의 마법들은 흔히 서클로 분류됐다.

마법사가 시전을 위해 필요로 하는 공정 횟수에 따라 숫자를 매기는 서클 마법은 그 편의성 덕분에 드넓은 제국 전역에서 널리 사용됐다.

이 서클 마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한 마법사가 만든 마법을 다른 마법사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마법이란 마법사의 의지로 세계의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

각자가 가진 심상과 감성이 제각각일 텐데 다른 사람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서로가 공유하는 이치와 규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서클 마법의 규칙 밖에 있는 마법이 있었다.

오로지 그 마법을 만든 마법사 본인만 쓸 수 있는 마법.

마법사 본인 안의 심상을 확장시켜 별개의 세계를 만드는 마법.

제국에서는 고유세계라고 부르는 마법이었다.

세계의 질서를 비트는 대신 자신의 뜻대로 새로 규정하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이한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물론 목적이야 남의 탑에 와서 시비 걸려고 하는 짓이었지만, 그 마법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으니 그 목적도 잊게 됐다.

푸드득!

날아가던 새가 세계 안으로 들어오자 곧바로 언데드로 바뀌었다. 새는 자신이 언데드로 바뀌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날아갔다.

저 밑의 산맥에서 자라고 있던 식물들도 기괴한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영역 안의 모든 존재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버리고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이자 해골 교장은 미소 지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열반의 광경이었다.

...잠깐. 넌 왜 그대로지?

“예?”

해골 교장은 마차 안에 있던 이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역 안의 모든 생명체들이 언데드로 바뀌었는데, 이한 혼자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해골 교장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저만 제외시켜주신 것 아닙니까?”

그럴 리가? 언데드가 되는 경험이 얼마나 교훈적인데.

“......”

해골 교장의 마음씀씀이에 살짝 감사할 뻔했던 이한은 정색했다.

하여간 마력은 더럽게 많아가지고.

해골 교장은 금세 이유를 알아차렸다.

세계를 바꾸는 힘인 만큼 마력의 양이 많아지면 마법사들도 예측하기 힘든 특이한 상황을 만들어내곤 했다.

바로 지금 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처럼.

세계의 규칙이 바뀌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멀뚱멀뚱 앉아서 ‘무슨 일 있나요?’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어이가 없었다.

“마력이 많은 게 제 잘못은...”

조용히 해라. 저기 환상 마법사들 나온다.

해골 교장이 앞을 가리켰다.

우뚝 솟은 탑의 문이 열리더니 마법사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         *         *

제국에서 명망 있고, 실력 있고, 사교적이기까지 한 마법사들은 보통 단체나 클럽을 조직해서 서로 교류하곤 했다.

마법이란 학문은 무궁무진한 만큼 아무리 천재라도 쉬이 깨닫기 어려웠다. 믿을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도 드물었다.

오고닌이 이끄는 환상 마법사들의 클럽, 몽환포영은 오고닌을 필두로 가지각색의 마법사들로 구성된 단체.

이제 막 환상 마법에 발을 디딘 입문자들부터 시작해서 나름 환상 마법에 능통해진 숙련자, 그리고 제국 학회에 환상 마법 관련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유능하고 명망 있는 환상 마법사 등 그 구성은 다양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오고닌을 향한 존경심 정도!

젊은 시절부터 제국의 환상 마법사들을 위해 이런저런 환상 마법을 개발하고 그 길을 닦아준 오고닌이었다.

후배 환상 마법사라면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오고닌이 이렇게 말했을 때, 환상 마법사들은 깜짝 놀랐다.

-내가 고나달테스의 보물을 도둑질하려다가 실패했네... 다들 미안하게 됐어. 내가 자네들의 명성까지 더럽혔군.

-아닙니다! 고나달테스 각하의 도발이 잘못된 겁니다.

-경매에서 샀으면 산 거지, 그렇게 사람을 모욕하다니!

-오고닌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곧 보복이 올 수 있으니, 다들 이 탑 방문을 삼가고 근처에 오는 걸 피하게.

-너무 걱정이 과하십니다. 아무리 고나달테스 각하께서 짓궂고 장난이 심하시다지만 명예로운 제국의 대마법사이자 황제 폐하의 마령관, 마법학교 에인로가드의 학장이신데 그렇게 사사로운 보복을 하시겠습니까?

-맞습니다. 자신이 먼저 유치하게 모욕을 했다는 걸 아실 테니 그냥 넘어가주실 겁니다.

-...자네들은 고나달테스를 잘 모르는군그래.

환상 마법사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나달테스 정도 되는 대마법사가 저런 사소한 다툼 하나하나에 보복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건 너무...

속이 좁은 일 아닌가?

그으핫핫핫핫핫핫핫핫!

“......”

“......”

그러나 그런 생각은 허공에 둥둥 떠서 폭소를 터뜨리는 해골을 보자 싹 사라졌다.

졸지에 언데드로 바뀌어버린 환상 마법사들은 어색한 몸의 감각에 당황스러워하며 따졌다.

“고나달테스 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체 왜 여기에서??”

너희 마법사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위해 마법을 썼을 뿐이다.

‘더럽게 뻔뻔하시군.’

이한은 마차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 아래 환상 마법사들에게 해골 교장의 제자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골 교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어떠냐. 아름답지 않으냐?

“아... 아름답긴 합니다만...”

“마법을 풀어주십시오!”

환상 마법사들은 해골을 딱딱 부딪치며 항의했다.

물론 이 고유세계 마법은 무심코 정신을 놓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되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자기가 언데드가 됐는데 그게 들어오겠는가.

빨리 오고닌이나 나오라고 해라. 연구 협조 안 해줬다고 남의 축제 자리에 찾아와서 불이나 지르고 말이야. 축제방해자, 폭죽파괴자, 유물절도자 오고닌! 빨리 나와라!

해골 교장은 남에게 치욕스러운 칭호를 붙이는 데에 재주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고닌이 황급히 탑에서 뛰쳐나왔다.

“이게 무슨... 고나달테스 각하. 내가 잘못한 일인데 왜 다른 마법사들을 괴롭히시오?!”

그러면 자네는 왜 내가 잘못한 일에 내 폭죽을 괴롭히고 내 축제를 괴롭히고 내 학생들을 괴롭혔나?

‘엄밀히 따지자면 학생들을 구해주신 것에 가까운데.’

오고닌이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학생들은 불타서 날아드는 폭죽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고닌은 그렇게 따지기에는 너무 사람이 순진했다.

“미, 미안하오. 사과드리겠소.”

흥. 사과한다고 망한 축제가 돌아오고 상처받은 학생들의 마음이 돌아오나. 이거나 받게.

해골 교장은 포장해 온 책을 날렸다.

입문자나 볼 책을 선물하는 무례한 일이었지만 오고닌은 하도 당황해서 그냥 감사히 받아들였다.

“선물 고맙소.”

......

해골 교장은 그 반응에 살짝 실망한 것 같았다.

에이. 나와라.

“......”

설마 지금 못 들은 척 하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한은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마차 문을 열었다.

아래에 몰려나온 환상 마법사들의 시선이 모두 이한에게 꽂혔다.

“자네는...”

오고닌은 이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저번에 오고닌에게 절망을 안겨 준 그 1학년 학생 아닌가.

여기 내 어리고 미숙하고 경험 부족한 제자를 데리고 왔다. 너를 섬기는 제자들과 한 번 실력을 겨뤄보고 싶어서 말이지.

“아니... 교장 선생님.”

이한은 정색했다.

해골 교장이 몰래 들어가서 탑에 불 좀 지르고 보물이나 훔칠 줄 알았는데, 이건 이야기가 달랐다.

이건 이한이 한 발 담그는 수준이 아니라 전신을 푹 담그는 수준 아닌가!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건 너무 위험한 대결이었다.

이한이 어떻게 저 노련한 환상 마법사들을 이긴단 말인가.

“저 자신 없습니다.”

그러냐? 난 자신 있다.

“......”

해골 교장은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저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소년은 모든 환상 마법사의 천적이었다.

환상 마법은 상대에게 직접 거는 마법과, 주변에 거는 마법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전자가 훨씬 더 고등하고 강력한 수법이 많았다.

마법사의 실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환상이나 미혹에 노련해지고 잘 눈치 채는 만큼 직접적으로 거는 게 반쯤 필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법들이 웬 처음 보는 마법사한테 전부 파훼된다면?

심지어 그 마법사가 1학년 학생이라면?

나는 벌써 너무 행복하구나.

해골 교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 사악한 속셈이 있다는 걸 모르는 순진무구한 환상 마법사들은 의기충천해져서 나섰다.

“좋습니다! 저희는 오고닌 님의 제자를 자처할 정도로 뻔뻔하거나 오만하지는 않습니다만, 오고닌 님의 탑을 찾아온 도전자를 그냥 내버려 둘 정도로 너그럽진 않습니다. 감히 한 번 실력을 겨뤄보겠습니다.”

“아니... 잠깐...”

오고닌은 당황해서 환상 마법사들을 말리려고 했다.

이미 마법학교에서 한 번 걸어본 적이 있었던 만큼 이한의 특이한 체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오고닌 님!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저희의 실력이 오고닌 님보다는 부족하지만 절대로 지지 않겠습니다.”

‘저 오고닌이라는 분은 실력은 좀 부족해도 인망은 참 좋은가보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환상 마법사들이 들었다면 멱살 잡을 생각이었다.

그렇다잖나! 오고닌! 설마 자네를 위해 이렇게 모인 마법사들을 못 믿는 건 아니겠지? 설마?

오고닌은 정말 해골 교장을 한 대 치고 싶었다.

말이나 못하면...

“...알겠네. 다들 들어오게.”

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오고닌의 어깨가 유난히 좁아보였다.

*         *         *

탑의 환상 마법사 중 클빅이 가장 먼저 나섰다.

클빅.

본인은 겸양하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오고닌의 제자 중 가장 열정적이고 정력적인 사람을 뽑는다면 클빅을 뽑았다.

그만큼 클빅은 이번 해골 교장의 무례하고 오만한 제안에 분개하고 있었다.

아무리 무시해도 그렇지!

“들었나? 1학년 학생이라더군. 1학년! 아무리 에인로가드가 제국 천재들의 요람이라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나!”

“나도 동의하네.”

“아마 그걸 노리고 데리고 온 것 아닐까?”

“뭐라고?”

“보게. 1학년 학생이라면 당연히 패배할 것 아닌가. 그러면 1학년 학생 상대로 전력을 다했다고 우리를 비웃으려는 게 아닌가 싶네.”

이한의 체질을 모르는 환상 마법사들은 해골 교장의 제안을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교활한 대마법사가 먼저 제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걱정 말게. 1학년 상대로 전력을 다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 가볍게 제압해주고 오겠네.”

“믿겠네!”

클빅은 발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홀의 복도 한쪽에는 이한이.

다른 한쪽에는 탑의 환상 마법사들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해골 교장과 오고닌이 있었다.

규칙은 간단하다. 탑의 마법사들은 환상 마법으로만, 내 제자는 다른 모든 마법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한에게 유리한 규칙이었지만 거기에 불평하는 환상 마법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1학년 학생인 걸 감안해보면 사실 환상 마법사들의 팔다리를 묶고 눈을 가려도 모자랐다.

클빅은 이한을 보고 갑자기 동정심을 느꼈다.

1학년 학생이 혼자 이 적진에 끌려와서 긴장으로 얼굴을 굳히고 있지 않은가.

‘고나달테스 각하를 나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도하실 줄이야! 어린 재목한테 너무하시는군!’

시작!

그 순간 클빅은 보았다.

눈앞의 소년이 미친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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