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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4화 (214/687)

214화

“불을 지르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가이난도의 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보였다.

“관둬. 멍청이들아. 1학년이 불 지른다고 폐쇄될 도서관이라면 진작에 박살났겠지.”

지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노골적으로 아쉬워했다.

그래도 가이난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 세게 불을 지르면... 이한이 질러도 안 되나?”

“야. 가이난도. 워다나즈가 무슨 드래곤이냐?”

“여, 여러분. 도서관에 불 지르면 안 돼요.”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의 불온한 대화에 당황해서 말했다.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교수님.”

“저희가 불을 지를 리가 없잖습니까.”

“...진짜 지르면 안 돼요. 방학 동안에도 징벌방에 있어야 할지 몰라요.”

“......”

“저, 저희 정말 불 안 지릅니다. 진짜입니다.”

방학이 찾아와도 징벌방 안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공포는 어떤 협박보다도 학생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가장 과격한 학생도 저 말에 불을 지르는 걸 포기할 정도로.

‘큰일이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놀랍게도 이제까지 교수들이 학생들을 배려하느라 도서관의 책을 사용하는 일이 적었던 거였으니, 앞으로는 도서관의 책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질 터.

단순히 강의가 어려워지고 공부할 내용이 많아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에인로가드에서는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찾아가지고 나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것이다.

입구 근처에서 책 찾는 것만 해도 한세월이 걸렸는데 더 깊은 곳에 있는 책은...

‘그냥 밖에 나가서 사오면 안 되나?’

물론 마법학교의 도서관에만 있는 희귀한 마도서들도 있겠지만, 몇 개는 밖에서도 팔 것 아닌가.

그냥 정문 열어주면 가서 사오면 되는데!

“교수님. 들어오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이 더 절망하기 전에 오늘 강의를 빨리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문을 열고 밖의 교수를 불렀다.

‘정령 혼혈?’

이한은 눈빛을 번득이며 들어오는 교수의 모습에서 정령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학생들 중에서도 정령이나 천사, 악마 혼혈이 있듯이 교수 중에 피가 섞인 사람이 있어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정령은 아닌 것 같은데.’

“파셀레트 크라어 교수님. 예지 마법의 달인이신 분이죠.”

“!”

예지 마법.

난해하고 까다로운 마법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이한도 가문의 저택에서 머무르는 동안 다른 마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지식을 들었지만, 예지 마법에 대해서는 단편적이고 짤막한 편린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조전 가문에서 일어난 홍옥 목걸이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예지 마법사가 나섰습니다. 동전을 이용한 점으로 홍옥 목걸이의 위치를 추측한...

-그 깐깐한 상인 놈들이 금화 주머니를 들고 가서 마법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 들었나? 고작 점 한 번 쳐달라고 그럴 줄이야.

-뛰어난 예지 마법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신이 점심에 뭘 먹을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예지 마법에 필요한 재능은 다른 마법에 필요한 재능과 전혀 다르다. 오로지 번뜩이는 직관만이 등불이지.

어떤 마법인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한은 예지 마법에 상당히 흥미를 갖고 있었다.

‘뛰어난 예지 마법사들이 그렇게 인기가 있다지?’

현실을 자신의 의지로 바꾸는 마법사들은 제국에서도 두려움과 존경을 사는 직업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뛰어난 예지 마법사들은 유독 더 강한 존중을 받곤 했다.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는 두려운 법.

그 미래를 읽어낼 줄 아는 자를 어찌 존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한은 미래를 통달하고 싶은 욕망은 없었지만, 어디 가서 ‘저는 예지 마법을 익힌 마법사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흑마법사라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대접이 나을 테니까.

-저는 예지 마법사입니다.

-저런! 대단한 마법사께서 마을에 오셨군! 마법사 님. 혹시 제 자식의 미래를 점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흑마법사입니다.

-...이봐. 우리 마을 묘지 문 잠군 거 맞지?

“크라어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가 부르자 크라어 교수는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 오늘은 제가 성실한 인격으로 방문해달라고 부탁드렸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잖아.”

“교수님. 제가 부탁드렸잖아요.”

가르시아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크라어 교수의 눈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아. 그래. 예지 마법. 강의하기로 했지.”

‘...다중인격?!’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성실하게 구는 크라어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적잖이 놀랐다.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군.’

교수들은 다 많든 적든 다중인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크라어 교수는 그 정도가 좀 심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다들 잘 부탁해. 파셀레트 크라어다. 밴시 혼혈이고. 예지 마법을 전공했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수님!”

학생들은 입을 모아 인사했다.

크라어 교수는 얼굴을 가리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성가신 듯 고개를 흔들어 치워냈다.

“혹시 준다어 돌프람에 대해 아는 사람 있나?”

이한 옆에 있던 아산이 손을 들고 외쳤다.

“제국 예지 마법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마법사입니다!”

“똑똑하군. 혹시 준다어 돌프람이 제국력 131년에 자살한 것도 아나?”

“어... 아니요?”

“그렇구나. 알아두도록 해. 혹시 준다어 돌프람의 제자, 켈텐 이난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있는지 궁금한데?”

이한도 들어본 적 있는 마법사였다. 황녀를 포함해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심지어 가이난도조차도.

이한은 놀랐다.

“켈텐 이난을 알아?”

“이한. 내 덱의 주력 카드잖아.”

“아. 미안. 맨날 나오기 전에 끝나서 몰랐군.”

가이난도는 숨을 씨근대며 눈물 고인 눈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하도 진심 어린 분한 표정에 이한이 사과했다.

“네가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운에 달린 게임이잖아.”

“그, 그렇지? 그치? 실력하고는 상관없지?”

“그래. 어쩌면 예지 마법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러는 사이 다른 학생이 대신 대답했다. 크라어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그런데 혹시 켈텐 이난이 제국력 241년에 자살한 거 알아?”

“...아니요?? 실종되신 게... 아니었나요?”

“실종은 무슨. 예지 마법사들 기록 중에 실종, 행방불명, 연락두절 이런 게 적혀 있으면 자살이라고 생각해. 자. 방금 말한 것처럼... 제국 예지 마법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마법사, 준다어 돌프람은 제국력 131년에 자살했다. 그 제자 켈텐 이난은 제국력 241년에 자살했고. 이제 너희들이 예지 마법을 배울 차례네.”

“......”

“......”

‘저번 주보다 더 싸늘한 것 같은데.’

이한은 말 몇 마디로 서리거인의 왕보다 더 학교를 차갑게 만드는 교수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         *

경고한 것치고 크라어 교수의 강의는 그리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사실, 다른 교수의 강의와 비교하면 좀 더 쉬운 편이었다.

무언가 하거나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대신 설명을 듣기만 하면 됐으니까.

“사실 예지란 건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기술이야.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강의실에 나온 학생은 자기가 강의 끝날 때쯤 배가 고플 걸 알지. 가르시아 교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인격으로 강의실에 찾아온 교수는 강의 뒤에 자기가 어떻게 될지 알고.”

“크라어 교수님. 학생들이 오해하겠어요.”

가르시아 교수의 경고에 크라어 교수는 조금 더 눈치를 보며 말했다.

“과거의 정보를 현재의 판단으로 미래를 읽어내는 것. 그게 예지다. 마법사의 예지가 특별한 건 평범한 자들은 잡아내지 못할 정보까지 불러와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지. 심지어 마법사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정보까지 말이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예지 마법은 크게 가까운 미래를 예지하는 것과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으로 나뉘었다.

가까운, 그러니까 몇 초 후의 미래를 예지하는 건 상당히 직관적이고 정확하며 비교적 쉬운 마법이었다.

그러나 먼, 몇 시간 이상의 미래를 예지하는 건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마법사 본인도 어마어마한 부담을 지는 어려운 마법이었다.

“거기 너. 여기서 뭘 느꼈지?”

아산은 질문을 받자 당황했다.

“예... 예지 마법은 심오하고 그 끝이 없는 만큼 한없이 정진해야 한다?”

“아니지. 미치기 싫으면 가까운 미래만 예지하라고. 남한테 부탁받아도 더더욱. 자꾸 먼 미래 예지 시도하다가는 준다어 돌프람, 켈텐 이난, 펄준 제가처럼 되는거야.”

“교수님. 펄준 제가라는 마법사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죽었으니까 못 들었겠지. 그래서 오늘은 먼 미래를 예지해본다.”

“???”

이한은 의아해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 미래는 예지하지 말라면서?

크라어 교수는 냉정했다.

“하지 말라고 안 하면 마법사가 아니지. 남몰래 기말고사 문제 예지하다가 피 토하고 쓰러지느니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쓰러지는 게 낫지 않겠어?”

“......”

“과연.”

“뭘 과연이야?!”

이한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산은 경악했다.

저게 뭔...!

‘저 정도면 배려심 있는 편 아닌가 싶은데.’

학생들 앞에 마법진이 깔리고, 가지각색의 돌이 무질서하게 배치됐다.

크라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예지 마법에 숙련되면 될수록 자신에게 맞는 점(占) 방식을 찾아간다고 했다.

물론 그런 게 없는 신입생들은 가장 쉬운 편인 돌 점을 선택했다.

“돌을 잡고, 주문을 외우고, 가볍게 던지도록. 목표는 하루 후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하루 정도면 알 수 있지 않아?”

가이난도가 소곤거렸다. 크라어 교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뛰어난 예지 마법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신이 점심에 뭘 먹을지 알 수 있다고 하지. 하루 후면 까마득한 미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던져!”

촤르륵-

곳곳에서 돌 던지는 소리와 함께 주문이 시전됐다.

“색색의 돌이시여, 내일의 저를 보여주십시오.”

“붉은, 파란, 초록 돌이시여. 내일의 저를...”

먼저 주문을 시전한 학생들은 멀뚱멀뚱 널브러진 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난 건가요?”

“아무런 이미지가 안 떠오르면 실패한 거야. 이미지가 떠올라야 해.”

“다시 해도 됩니까?”

“물론.”

크라어 교수는 싱긋 웃었다.

그 순간 말을 꺼낸 학생은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쿵!

“컥...!”

“미래를 보는 건 대가가 필요해. 마력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못, 못 봤잖아요?”

“그래. 못 봤으니까 저 정도야. 뭐라도 봤으면 신음소리도 못 내.”

“......”

지팡이를 휘두르려던 학생들은 슬슬 겁이 났는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지 마법이 매력적이어도 이쯤되면 그냥 자살 마법처럼 보이는 것이다.

“잘 했지? 가르시아 교수?”

“조금 더 섬세하게 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경고는 제대로 하셨네요. 잘 하셨어요.”

“이 정도는 해야 학생들이 진지하게 조심하지. 예지 마법이 원래 혼자 익히다가 피 토하기 좋은... 잠깐! 뭐하는 거야!”

크라어 교수는 날카롭게 이한을 보며 외쳤다.

점을 한 번 시도한 것도 모자라 두 번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학생이 쓰러진 걸 보고서도 저런 짓을 하다니.

어지간히 대담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재능에 취해 오만해진 학생이 틀림없었다.

이한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괜찮긴 뒤진 마법사들이 괜찮겠다. 가르시아 교수. 포션!”

“저 정도는 괜찮을 걸요...”

“?!?”

그 착한 가르시아 교수가 학생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자, 크라어 교수는 경악했다.

세상이 멸망할 징조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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