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가르시아 교수.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 잘못했어. 분노를 가라앉혀줘.”
“화 안 났는데요.”
파셀레트 크라어 교수는 일단 사과했다. 물론 가르시아 교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화 안 났다는 사람치고 정말 안 난 사람이... 아니. 멀쩡하잖아?”
“네. 그러니까 저 정도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파셀레트 교수는 이한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르시아 교수에게 물었다.
“쟤가 걔인가?”
“네. 이한 학생이 걔죠.”
‘뭐지? 왜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거지?’
이한은 자신이 시도하는 돌 점 마법이 불러오는 부작용인가 싶어서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미래를 보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마력이 정말 많긴 한가보군.”
파셀레트 교수는 생각에 잠겼다.
원래 더 쉬운-1초 후나 2초 후의 미래 같은-예지 마법을 학생들에게 내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불가능한 하루 후를 예지하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실패하라고 내준 것이다.
어린 마법사들은 어설프게 성공하느니 차라리 실패하는 게 더 나았다.
아무리 마법이란 수단을 빌린다 하더라도 미래를 보는 건 대가를 필요로 하는 위험한 행위.
그 대가가 마력으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고, 성공할 경우 더 치명적인 지불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파셀레트 교수는 지팡이로 이한 앞의 돌들을 날려버렸다.
저 신입생이 겁도 없이 계속 돌 점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이 워낙 많으니 실패 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1학년. 예지 마법은 다른 마법처럼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다고 시도하면 안 돼. 그나마 실패 시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비교적 작다지만 반복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한은 멀쩡한데요?”
가이난도의 천진난만한 의문에 가르시아 교수는 지팡이를 흔들어 그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괜히 파셀레트의 성질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교수님.”
“그래. 명심해둬.”
이한은 정말로 이해했다.
‘정말로 불안정한 마법이군.’
이쯤이면 마법 중에서 가장 불확실하고 변덕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먼 미래를 보려고 할수록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커지고, 그 미래를 정확하고 선명하게 볼수록 대가가 커지며, 심지어 실패해도 반복하면 대가가 커질 수 있었다.
마력이 많다고 계속 시도해도 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더 조심해야겠다.’
이한은 예지 마법에 그렇게 큰 뜻이 있지 않았다.
예지 마법에 포부가 있는 마법사는 ‘세계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며 더 먼 미래를 추구했지만, 이한은 그냥 해골 교장이 무슨 함정을 준비했는지 정도만 알아도 만족했다.
그 정도면 어디 가서 예지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 터.
물론 파셀레트 교수는 이한을 믿지 않았다.
“가르시아 교수. 저 학생,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것 같은데.”
“네?”
“자기가 마력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런 학생이 예지 마법에 대해 알았으니, 절대 자제할 리 없어. 마력을 전부 쏟아 부어서라도 예지 마법을 계속 시도할걸.”
파셀레트 교수는 반쯤 확신했다.
미래를 엿보는 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쾌감이었다.
신입생밖에 안 되는 마법사가 그걸 자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감시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이한 학생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가르시아 교수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그 착한 가르시아 교수가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에 파셀레트 교수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가르시아 교수. 신입생들은 전부 다 텅텅 빈 무쇠대가리를 갖고 있는 거 알잖아...”
“알고 있죠. 그런데 이한 학생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천재라서 그래? 이런 경우에는 천재가 더 위험한 거 알잖아.”
재능이 없으면 모를까, 마법에서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더 위험했다.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마법이란 늪에 깊숙이 몸을 담그게 되는 꼴이니...
“그렇죠. 그런데 이한 학생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가르시아 교수는 단호했다.
이한의 성격에 절대 무모한 짓을 할 리 없는 것이다.
재능이나 마법 능력을 떠난 확신!
“...???”
물론 파셀레트 교수 입장에서는 더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체 무슨...?’
파셀레트 교수가 할 말을 잃고 입만 벙긋거리는 사이 가르시아 교수는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지 마법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만큼 경고했으니, 이제 예지 마법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줄 시간이었다.
아무리 예지 마법이 위험하더라도 마법사는 결국 위험에 뛰어드는 족속.
무작정 위험하다고 관심도 가지지 않을 거라면 마법사가 될 이유가 없었다.
“자. 다들 예지 마법이 다른 마법과 달리 이질적이고 독특해서 많이 놀랐을 거예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학생들은 바닥에서 쓰러진 채로 손가락만 까딱거렸다. 점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시도한 마법은 상당히... 어려운 마법이었어요. 예지 마법에는 저렇게 어려운 마법만 있지 않답니다.”
‘그렇다면 쉬운 마법부터 보여주시는 게 맞지 않나?’
졸지에 상당히 어려운 마법을 몇 번이고 시도한 꼴이 된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었다.
마력이 많아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 강의실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친구들과 같이 뻗었을 것 아닌가.
“지금 강의실 안에 숨어 있는 물건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놓치고 있거나 잊어버린 지식들, 자기가 짠 마법진 안의 실수 등 예지 마법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다른 학파의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들도 예지 마법을 조금씩 배워놓는 경우가 여럿 있어요.”
깊게 파고들면 예지 마법만큼 위험한 마법도 없지만, 얕게 파고들면 예지 마법은 상당히 편리하고 범용성이 높은 마법이었다.
마법사의 두뇌를 보조하는 만큼 어느 계열의 마법과 같이 쓰든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니, 예지 마법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크라어 교수님 밑에서 강의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언제나 미래 앞에서 겸손해야하는 거 잊지 말고요.”
초반에 그런 난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르시아 교수의 말이 설득력 있었는지, 꽤 많은 학생들이 예지 마법을 듣기로 결정했다.
강의가 끝나고 하나둘씩 걸어 나오면서 학생들은 예지 마법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을 할 건지 떠들었다.
“고생하셨어요. 크라어 교수님.”
“내가 뭘? 다 가르시아 교수가 했지.”
파셀레트 교수의 말에 가르시아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크라어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건데요. 괜히 저 때문에 가르칠 학생들이 너무 많아질까봐 걱정되네요.”
흑마법의 모르툼 교수가 들었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소리였다.
인기 있는 마법을 다루는 교수들만의 특권!
그러나 파셀레트 교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차피 대다수가 기초만 닦고 나갈 녀석들이야.”
다른 마법과 달리 예지 마법은 학생들의 이탈률이 상당히 높았다.
적당한 수준만 익혀둬도 워낙 쓸만한데다가 더 높은 수준으로 갈수록 목숨이 위험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파셀레트 교수도 제자를 구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운 좋으면 생기고 운 나쁘면 말겠지.
“그래도 쓸만해 보이는 학생은 없으셨나요?”
“예지 마법은 다른 마법처럼 초반에 두각을 드러내는 천재 찾기가 어렵다니까. 가르시아 교수. 당신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어.”
파셀레트 교수는 툴툴대며 말했다.
가르시아 교수야 학생들을 워낙 아낀다지만 파셀레트 교수는 별생각 없었다.
예지 마법에서 1학년 때 재능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1학년 내내 ‘비교적’ 쉬운 예지 마법을 연습하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점을 쳐도 재능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일단 점을 성공시키는 것부터가 지극히 어려운데다가(직관과 영감이 필요했다), 또 그 불확실한 미래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하니...
“그리고 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다른 교수들이 관심 가진다면서. 나중에 나한테 와서 책임지고 물어내라는 거 아니지?”
괜히 아끼는 제자가 예지 마법 몰래 수련하다가 피 토하고 쓰러지면 다른 교수들이 누구한테 화를 내겠는가.
파셀레트 교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다니까요.”
‘불안한데...’
마침 이한과 친구들이 걸어 나왔다. 파셀레트 교수는 귀를 기울였다. 1학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볼 요량이었다.
“난 열심히 수련해서 내가 섞은 덱의 순서를 기억해보려고 해. 그래서 이한. 아까 계속 돌 던지면서 점 시도했었잖아. 뭐라도 보였어?”
가이난도의 질문에 파셀레트 교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설명했는데 벌써 까먹다니.
저렇게 덜렁대는 성격은 예지 마법에 적합하지 않았다.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음. 짤막한 이미지들이 지나가긴 했는데...”
“?!”
파셀레트 교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라고?
‘실패한 게... 잠깐... 1학년들을 책망할 때가 아니잖아.’
당연히 실패했을 거라고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이한은 돌 점이 실패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성공했는데도 다시 시도한 것이다!
‘성공의 대가를 지불했을 텐데...’
어떤 흐릿하고 불확실한 이미지든 간에 미래를 보는 순간 그 대가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그런데 그걸 몇 번이고, 아무런 내색 없이 했다는 건...
‘타고났다!’
예지 마법의 재능 중 하나.
그건 대가를 잘 지불하는 체질이었다.
농담 같이 들렸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재능이었다.
한 마법사는 미래를 보고 나면 피를 바쳐야 하는데 다른 마법사는 마력을 바쳐야 하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니까.
저 학생은 대가를 마력으로 지불하는 체질이 분명했다.
‘하지만 마력을 대가로 바치려면 어마어마한 양이 필요할 텐데...’
마력이 많다는 건 들었지만 파셀레트 교수는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마력이 많다지만 성공 대가를 모두 마력으로 바치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니...
그게 가능한가?
혹시 저 1학년의 착각이 아닐까?
어린 마법사가 자신이 미래를 봤다고 착각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교수는 아까보다 더욱 귀를 기울였다. 대화를 마저 듣기 위해서.
“뭘 봤어? 뭘 봤는데?!”
“내가 로스트 비프를 요리하더군.”
“로스트 비프...! 내일 메뉴는 로스트 비프구나!”
“확실한 건 아니지. 미래를 봤어도 그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하셨잖아.”
“아니야. 이한. 미래는 우리가 만들 수 있어.”
가이난도는 군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내일 메뉴가 로스트 비프래.”
“로스트 비프?! 나 그거 좋아하는데! 무슨 고기 써?! 혹시 양고기?”
“뭔 로스트 비프?”
“푸른 용의 탑 놈들이 내일 로스트 비프 먹는다는데.”
“제기랄. 아니꼬운 놈들 같으니.”
파셀레트 교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한창 중요한 대목인데 다른 1학년 학생들이 쓸데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내가 본 건 소고기를 쓴 로스트 비프였다.”
“소고기...!”
“소고기면 좋지!”
“저 자식들. 마법학교에 먹으러 온 거야? 배가 부르면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없는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질투 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파셀레트 교수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점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어떤 이미지를 어떻게 보느냐는 마법사마다 모두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선명성과 구체성.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미지일수록 뛰어난 예지인 것이다.
고기 종류까지 볼 정도로 선명하게 했다면...
파셀레트 교수는 멍해진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그새 인격 바뀌셨어요?”
뒤에서 나온 가르시아 교수가 의아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