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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8화 (218/687)

218화

꿀꺽, 꿀꺽-

마실 물이 확보되자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게, 당장 목마른 게 해결되자 기분도 바뀌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학교에 들어왔지’였는데 지금은 ‘친구들하고 이런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몰라’같은 생각이 들었다.

학생 몇몇은 메마른 바위 언덕 위에 앉아 지평선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엄청 나쁘진 않다. 그렇지?”

“맞아.”

‘방금까지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댔으면서...’

요네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 그래도 이미 충분히 힘든 친구들을 굳이 구박하진 않았다.

“흰 호랑이 탑 놈들은 더 고생하면 좋겠다.”

“나도.”

“......”

요네르는 친구들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런 소리 하다가 벌 받는 거 아닐까?’

“으아아악!”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대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한은 지팡이를 붙잡고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저, 저기...!”

친구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이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멀리 지평선 쪽에서 묵직한 덩치를 가진 중형급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록 드레이크!’

이한은 물론이고 다른 학생들 몇몇도 모습을 보고 정체를 알아볼 정도로 제국에서는 잘 알려진 몬스터였다.

선조에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덩치 크고 힘이 좋은 아룡종 몬스터 드레이크.

그 중에서도 단단한 바위로 된 껍질을 가진 록 드레이크는 무식할 정도의 방어력으로 악명이 높았다.

-록 드레이크가 나오는 곳은 조심하라고. 어지간한 중견 모험가들도 잘못 걸리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갈아버리니까.

-저번에 록 드레이크가 나오는 곳에 갔거든. 거기 사람들이 록 드레이크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나? ‘마법사의 악몽’이라고 부르더라. 마법을 그냥 튕겨내 버리는 거야.

절대로 1학년 때 상대할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아무리 나찰아귀를 상대한 적 있는 이한이라 하더라도!

급을 따지면 몇 단계는 더 높은 몬스터였다. 아무 몬스터에게나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 붙지는 않는 것이다.

“다들 자세 낮춰. 자극하지 마라.”

“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며 접근하는 록 드레이크는 빠르지는 않았지만 살벌한 압박감이 있었다.

이한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록 드레이크가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상 빠르게 대책을 세워야 했다.

“지금 바로 도망쳐야 해! 다른 쪽으로 이동하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록 드레이크가 공격성이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자기 영역에 들어온 몬스터는 무조건 공격하는 놈이라고. 괜히 움직여서 놈을 자극했다가는 그걸로 끝이야!”

“그러면 놈이 오는데 가만히 있자고?”

“이쪽으로 오고 있지만 우리가 있는 언덕으로 올지 확실하지는 않은 거잖아. 다른 곳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아.”

“더 늦어지면 정말로 도망칠 기회도 사라져!”

친구들의 의견은 팽팽히 나뉘었다.

‘쉽지 않군.’

이한이 보기에도 양쪽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어서 더 문제였다.

록 드레이크가 감각이 그렇게 예민한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학생들 여럿이 우르르 움직이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눈치를 챌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 서고 뒤에서 숨어있자니 완전히 운에 맡기는 셈이라 다른 대책이 없었고...

“은화라도 던져볼까?”

“...나쁘진 않군.”

“뭐? 이한. 괜찮은 거 맞아?”

가이난도는 자기가 말을 꺼내놓고 이한이 동의하자 당황스러워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참고만 할 거야. 돌이여, 앞날을 가르쳐다오.”

이한은 색색의 돌을 바닥에 던지며 강력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원래 예지 마법을 가능한 잘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라는 것.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

물론 파셀레트 교수나 가르시아 교수가 있었다면 ‘쉽든 어렵든 1학년이 지금 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겠지만, 불행히도 이 자리에는 두 교수가 없었다.

원하는 대답은 록 드레이크가 이쪽에 오느냐, 오지 않느냐?

순간 흐릿한 이미지 여러 개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한은 간신히 그 중 하나를 응시할 수 있었다.

“...오는 것 같은데.”

“젠장!”

언덕 위의 서고를 부수고 날뛰는 록 드레이크의 모습에, 이한은 친구들을 데리고 탈출을 결심했다.

“빠져나갈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 투명화 마법이 있긴 한데...”

“아!”

“문제는 내가 아직 나한테만 쓸 수 있다는 거지.”

“아...”

같은 마법이라 하더라도 마법사 본인에게 쓰는 것보다 타인에게 쓰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티팩트가 있어. 가이난도. 한 번 차봐.”

이한이 내민 허리띠를 받은 가이난도는 순순히 찼다.

그리고는 앞으로 풀썩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

“마... 마력이...”

“이런. 생각보다 마력소모가 심하군.”

“이한... 네가 날 암살할...”

“요네르. 물약 좀 줄래?”

이한은 코르크 뚜껑을 따고 물약을 가이난도에게 퍼먹였다.

다행히 잠시 후 가이난도는 기운을 차렸다.

“이러면 아티팩트 대여는 힘들겠는데.”

이한의 말에 친구들은 모두 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투명화 마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저 아티팩트들을 차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정말 용케도 저런 아티팩트를 차고 있다!’

“이한. 좋은 방법이 있어.”

가이난도가 말했다.

“뭐지?”

“네가 지금 다른 사람한테 걸 수 있는 투명화 마법을 익히면 돼.”

“......”

“......”

“저 자식 록 드레이크 미끼로 주면 안 되나?”

친구들의 기세가 흉흉해지자 이한이 손을 뻗어서 말렸다.

‘확실히 원리로는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한테 거는 투명화 마법이나, 다른 사람한테 거는 투명화 마법이나 원리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자가 훨씬 더 까다롭고 섬세한 과정이 필요해서 그렇지.

‘몇 번 해보자.’

이한은 록 드레이크가 가까이 오기 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기로 했다.

마력이 많다는 건 그만큼 낭비할 수 있다는 것.

만약 방향이 잡힌다면 그걸로 좋은 일이고,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가이난도.”

“...아까부터 내가 실험 대상 같은데 기분 탓이지...?”

가이난도는 투덜거리면서 앞에 섰다. 이한은 지팡이를 겨눴다.

“망토여. 친구를 삼켜라.”

‘역시 안 되나.’

제대로 집중했고 동작도 정확했지만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허공에서 마력이 움직이며 마법의 술식 구조를 짜는 도중에 충돌과 정체가 일어나며 실패한 것이다.

아직 마법의 개념에 완전히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망토여. 나를 삼켜라.”

이한은 참고를 위해 스스로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당연히 성공했고, 그 순간...

근처에 있던 가이난도의 팔이 사라졌다.

“으아악 내 팔!!”

“멀쩡한데?”

“아. 그러네?”

팔이 투명해져서 기겁했던 가이난도는 원래대로 돌아온 팔에 안도했다.

다시 팔을 뻗자 또 투명해졌다.

“다들 이거 봐!”

이한을 중심으로 2~3m 정도 되는 공간에 투명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증폭!’

그 순간 이한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이한은 지금 첨탑지기가 준 투명화 목걸이를 작동시킨 상태로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같은 계열의 마법 두 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증폭된 것이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교장 선생님이 말한 뜻이 그런 거였나?’

이한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원래 이런 증폭은 일반적인 결과가 아니었으니까.

-한 번 시전한 마법을 다시 시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

근력 강화 마법을 또 걸거나, 민첩 강화 마법을 또 걸거나, 투명화 마법을 또 걸거나...

이런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정답은 ‘알 수 없다’였다.

워낙 상황, 장소, 마법 등 수많은 변수에 영향을 받는 만큼 제대로 된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증폭이란 결과가 나올 줄이야.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행운이었다.

‘잠깐. 그러면 왜 허리띠는 같이 증폭이 되지 않았지?’

프리싱가 교단에서 받은 허리띠.

이 허리띠도 마찬가지로 투명화 마법이 걸려 있는 허리띠였다.

그런데 증폭이 되지 않은 건...

‘방식이 다르다!’

순간 조용한 깨달음이 이한의 머릿속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겉으로 보면 같은 투명화 마법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투명화를 구현하느냐 차이가 있었다.

프리싱가 교단의 허리띠는 시전자 주변에 빛을 굴절시키는 미채(迷彩)를 둘러 시각을 교란시키는 마법이라면...

첨탑지기의 목걸이나 교장의 마법은 보는 사람의 개념에 혼란을 일으켜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에 가까웠다.

후자는 방식이 같았기에 서로 증폭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한테 더 생각해보라고 한 거였나. 이걸 알려주려고.’

이한은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한 본인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마법사의 깨달음이란 게 바로 이런 부류의 것이었다.

막혀 있던 마법에 대해 아주 사소한 깨달음을 얻고 진전을 보이게 되는 것.

어떻게 보면 이한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까지 마법을 익히면서 막힘이란 게 거의 없었으니까.

재능은 마법사의 든든한 길잡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법사를 취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해골 교장이 옆에 있었다면 ‘그래, 바로 그거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이한! 움직여야 해!”

“미안. 잠깐 한눈을 팔았군. 움직이자.”

이한은 자신이 방금 경험한 게 얼마나 귀한 건지 감사하게 생각하는 대신 바로 행동으로 들어갔다.

깨달음이고 뭐고 한 가지만 중요했다.

‘투명 마법을 범위 단위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이한은 <고나달테스의 투명 망토> 마법을 시전해 다시 한 번 범위를 증폭시켰다.

얼마나 걸어야 적당한 범위가 완성되는가?

처음에는 통제고 뭐고 없었지만 몇 번 시도하자 어느새 감이 왔다.

“망토여, 나를 삼켜라... 됐다. 이 정도면 되겠군. 가자!”

깨달음을 얻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거기에 몰두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기껏 얻은 깨달음이 어딘가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도 있었다.

감사고 몰두고 뭐고 깨달은 다음에 바로 움직이는데도 전혀 막힘이 없는 천재가!

이한은 투명화 범위에 친구들을 넣고 달렸다.

해골 교장이 옆에 있었다면 짜증을 참지 못하고 손수 시련을 추가했을 모습이었다.

*         *         *

록 드레이크를 따돌린 뒤에도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쉽게 쉬지 못했다.

새로운 서고를 찾아 책을 뒤진 다음 서고를 의지해 몸을 위장했다.

“이제 괜찮지 않나?”

“다시 쫓아오면 어쩌려고? 조금 더 봐야 해.”

“불을 붙이고 싶은데...”

제대로 된 휴식을 준비하려면 불부터 시작해서 짐을 여럿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간신히 빠져나온 친구들은 록 드레이크의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저, 저기!”

“?!”

누군가 숨죽인 목소리로 외치자 모두 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록 드레이크는 아니었다.

“아니잖아!!”

“록 드레이크라고 안 했어...! 저거 보라고!”

나타난 사람은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 네 명으로 구성된 학생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몸을 숨긴 탓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어떡하지, 워다나즈? 불러볼까?”

“더르규 있나?”

“더르규? 없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군. 제압한다.”

“......”

뭐가 어쩔 수 없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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