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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19화 (219/687)

219화

친구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이한은 침착했다.

절대로 사적인 감정이 아닌, 타당한 근거에 따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르규가 없는 이상 흰 호랑이 탑 놈들은 절대 나와 협력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소란을 일으키면 일으켰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록 드레이크의 시선을 끌 수 있어.’

그 설명에 요네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 않...”

“가자.”

“......”

이한은 투명화 마법을 증폭시킨 뒤 발걸음을 옮겼다.

요네르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 뒤를 쫓았다.

*         *         *

“모두 움직이지 마라.”

“으... 으헉!”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튀어나왔는데 안 놀랄 수가 없는 것이다.

“뭐, 뭐야. 워다나즈였잖아.”

“사실 안심할 건 아니지...”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한은 방금 중얼거린 놈의 얼굴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소리 내지 마라. 소리 내면 공격하겠다.”

“그렇게 말 안 해도 알아. 워다나즈. 우리가 무슨 신병도 아니고.”

“?”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한은 ‘너희는 지금 제압됐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한다면 에인로가드 규정에 따라 포로로서 대우해주겠다’를 어떻게 말해야 덜 기분 나쁠지 고민했다.

“안 그래도 널 찾고 있었어. 워다나즈. 더르규가 간곡히 부탁해서 이렇게 왔다고.”

“!”

이한은 멈칫했다.

놀랍게도 이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협력을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 하지?’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자.’

‘우리 지팡이 들고 있는 자세 좀 수상해보이지 않아?’

이한이 신호만 보내면 바로 마법을 쓰기 위해 지팡이를 들고 있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슬며시 손을 내렸다.

자세가 좀 수상해보였던 것이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물었다.

“그런데 워다나즈. 친구들을 왜 이렇게 많이...”

“알다시피 도서관이 위험하잖나.”

“그래서 그런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뿜어내는 살기 섞인 기세에 의아해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일단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가이난도가 속삭였다.

“언제 공격해?”

“공격?”

요네르가 손짓하자 다른 친구들이 재빨리 가이난도를 제압했다.

이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언제 록 드레이크를 공격하냐 이야기였지.”

“록... 록 드레이크를 공격한다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미친놈 보듯이 이한을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저 놈이 온갖 마법과 비전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광기 어린 대마법사란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미친놈일 줄이야!

‘아차. 실수했군.’

급한 나머지 변명이 좀 이상하게 나왔다. 이한은 재빨리 해명했다.

“꼭 록 드레이크를 공격한단 건 아니고, 정말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그래.”

“우, 우리 없을 때 할 거지?”

해명에도 불구하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미 두세 걸음 물러서 있었다.

아무리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록 드레이크를 공격할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가장 막나가는 기사 가문 출신 학생도 ‘이렇게 된 이상 록 드레이크를 공격한다’ 같은 생각은 안 했는데...

“...됐다. 온 이유나 말해라.”

*         *         *

사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푸른 용의 탑 학생들보다 훨씬 사정이 나았다.

장점이라고는 가문과 마법 능력밖에 없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과 달리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어디에 던져놔도 자기 한 몸 챙길 능력은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셋씩 나눠서 길을 찾는다!

자신이 있다면 나눠져서 움직이는 게 훨씬 더 유리했다.

이한이야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알다시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용맹 하나만큼은 어디 가서 지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이번에는 운까지 따라줬다.

-찾았다! 여기 아래로 내려가는 문이다!

-다른 놈들도 다 불러와! 찾았다고 전해!

한 조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자 더르규는 친구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어떤 부탁이냐에 따라 다르지. 더르규.

-저번에 내가 버터 스펀지 케이크 두 조각을 선물해줬던 거 기억나나?

-...알겠어. 들어주면 되잖아. 뭔데?

-슬쩍 가서 푸른 용의 탑 친구들한테 여기 위치를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직접 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뭐?! 왜!? 역시 워다나즈한테...

-...그런 게 아니야. 신세진 게 있어서 그렇다. 너희들도 기사의 명예에 걸고 생각해봐라. 워다나즈한테 신세진 게 없나?

-...없진 않지만...

더르규의 말에 흰 호랑이 탑 친구들은 말문이 막혔다.

그들도 기사 가문 출신으로서 명예가 있었다. 이한이 도와준 사실들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사의 명예를 걸고 생각해봐도 너무 많이 당했는데.

-맞아. 우리가 너무 많이 당했어.

명예고 뭐고 간에 진짜 너무 많이 당했다!

그러나 결국 친구들은 더르규를 이기지 못했다.

‘명예롭게’ ‘받은 은혜에는 보답’같은 말이 나오면 차마 기사 가문 출신으로서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짜 가기 싫다.

-맞아. 워다나즈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할지 알고.

-갈 거면 숫자나 더 늘려주지... 이 인원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아?

*         *         *

“그래서 더르규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 우리가 이렇게 온 거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그들이 투덜거리고 불평한 대사는 싹 생략했다.

이한은 살짝 감동했다.

‘더르규...’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중에서도 양심이 있고 명예가 뭔지 아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가 바로 더르규였다.

이렇게 도와줄 줄이야.

“용케 워다나즈를 찾으러 왔네? 너희 워다나즈랑 엮이는 거 되게 싫어하지 않았나?”

“...흥.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해야 할 일에 끼워 넣지는 않는다. 귀족 출신들은 잘 모르겠지. 기사로서의 이 책임감을.”

“우린 워다나즈와의 원한 같은 건 조금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워다나즈한테 진 신세만 생각했지. 그게 명예니까.”

‘이 자식들 진짜 오기 싫었나보군.’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발끈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신세를 진 게 맞았으니까.

“그래. 고맙다. 그러면 안내해주겠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앞장서서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지형이 바뀌지 않아 길을 찾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쉬운 건 아니었다.

“록 드레이크다!”

이번 던전 공략 내내 학생들을 괴롭힌 몬스터가 여전히 황야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자신 넘치게 말했다.

“뭐야. 록 드레이크를 상대하는 방법을 모르나?”

“너희는 알아?”

“물론. 오면서 록 드레이크를 한 번 마주쳤는데, 상대하는 방법을 몰랐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어?”

자신만만한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태도에 이한은 놀랐다.

‘기사 가문에만 내려오는 방법이 있나?’

이한도 나름 워다나즈 가문에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번개걸음 교수한테 각종 몬스터 공부를 추가로 받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록 드레이크를 쉽게 상대하는 요령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뭐지?

‘기사 가문에만 내려오는 방법이라면 놓칠 수 없지.’

“자. 봐라!”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먼지투성이 흙바닥에 납죽 엎드렸다. 뜨겁게 달아오른 메마른 흙바닥이 옷과 손발을 더럽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록 드레이크의 시야는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 이렇게 엎드리면 놈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지.”

“그리고 이 상태에서!”

흰 호랑이 탑 학생 한 명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몸이 솟구치면 안 되는 만큼 벌레가 땅을 비비듯이 기어갔다.

보던 푸른 용의 탑 학생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저거 벌레 같...”

“쉿. 조용히 해.”

“봤지? 이렇게 기어가면 록 드레이크를 피할 수 있다.”

“그냥 투명화 마법을 걸어주겠다.”

이한의 말에 흙먼지를 탈탈 털어내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멈칫했다.

...어?

그런 게 가능해?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가능하지.”

“...근데 왜 우리한테 이걸 시킨 거냐?”

“너희들의 방법이 더 괜찮으면 배우려고 했지.”

“......”

해명에도 불구하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이한을 노려보았다.

*         *         *

“저기, 옆으로 비스듬하게 서있는 언덕이 우리가 발견한 입구가 있는 곳이야.”

“그렇군.”

4~5m 정도 되는 높이의, 가파른 절벽을 끼고 있는 언덕의 모습을 확인하자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반대쪽의 완만한 비탈면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잠깐. 아직 안 넘어간 학생들도 있나?”

“글쎄? 왜?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어?”

“있는 것 같군.”

이한은 마력을 눈 주변에 낭비하듯 퍼붓는 방식으로 강화시켰다.

그러자 멀리 있는 언덕 위에 있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아직 못 온 친구들을 기다려주는 건가? 내려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그런 거라면 기사들의 우정이란 참으로 대단ㅎ...

-막아! 놈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갖고 있는 물약 모조리 꺼내! 록 드레이크가 올라오면 죽는다!

“......”

입을 벙긋거리면서 황급히 이곳저곳으로 달려가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의 모습에, 이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속도 모르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옆에서 재잘거렸다.

“워다나즈. 네가 아무리 마법에 뛰어나도 이렇게 길을 찾는 건 전혀 별개의...”

“쯧.”

“...내, 내가 너무 잘난 척을 했나? 화난 건 아니지?”

*         *         *

-문이 잠겨있는데. 어떻게 여는 거지?

-근처 서고를 뒤져봐. 열쇠나 여는 방법이 있을 수 있어.

-그래. ...록 드레이크다!!

-뭐? 록 드레이크로 연다고? 여기서 록 드레이크를 어떻게 구해?

-아니! 저기 록 드레이크라고!!

아래로 내려가는 문을 어떻게 여나 고민하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 앞에 록 드레이크가 나타났다.

-■■■■■...

학생들이 공포, 절망, 위압 등등 다양한 감정을 극한으로 보이는 동안 록 드레이크는 거리를 좁히더니 언덕 앞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리고는 학생들을 노려보았다.

몬스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저 생물은 지금 불만이 많군’이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땀만 흘리며 망설이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상대가 움직이지 않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먼저 나섰다.

-가... 가라고 경고하는 건가?

-일단 움직이자!

-문은? 아래로 내려가는 문인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록 드레이크가 전진을 개시했다.

적을 짓밟으려는 무시무시한 돌진은 아니었지만, 그냥 언덕으로 걸어오기만 해도 그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쪽으로 온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반대쪽으로 내려가더라도 시간을 끌어야 해!”

“퇴치 물약 있는 거 다 갖고 와! 던져!”

“마법 준비해. 눈을 노린다! 어떻게든 위협해야 해!”

빡!

어디선가 날아온 물 구슬이 정확하게 록 드레이크의 코를 강타했다.

나름 천천히 걸어오던 록 드레이크가 이제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봐도 짜증 가득한 움직임이었다.

“괜... 괜찮은 거 맞지? 워다나즈?”

“글쎄...”

“......”

이한은 무심한 듯 차가운 표정으로 록 드레이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무심코 아까 들은 말을 떠올렸다.

-언제 록 드레이크를 공격하냐 이야기였지.

-꼭 록 드레이크를 공격한단 건 아니고, 정말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공격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 자식. 진짜 지금 잡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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