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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25화 (225/687)

225화

다음 날 아침.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퀭한 얼굴로 휴게실로 나섰다.

언데드를 탈탈 털어서 쪽지시험을 보는 강의들을 알아내긴 했지만...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어차피 공부하는 건 학생들이었으니까.

강의가 한두개도 아니고 대부분 쪽지시험을 본다는데 어쩌겠는가.

밤을 꼬박 새서 공부할 수밖에.

“...잠깐만. 이한. 뭐 먹고 있는 거야?”

요네르는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이한이 언데드가 갖고 온 간식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아니지?”

“언데드가 갖고 온 간식 아니냐고? 맞는데.”

이한은 담담히 대답했다.

물론 이런 간식은 안 먹고 버리는 게 가장 좋았지만, 원래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

물자가 부족한 만큼 이런 간식을 버리는 건 아까웠다.

게다가 이한에게는 간식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미 어제 확인을 마친 뒤였다.

‘쓸데없이 맛있군.’

누가 구웠는지는 몰라도 해골 교장의 간식은 쓸데없이 맛있었다.

“워다나즈... 우리는 멀쩡한 간식을 주고... 자기는 상한 걸...”

뒤에서 다른 학생들이 울먹이며 이한을 쳐다보았다.

평생 대귀족 가문에서 살아온 학생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위해 상한 음식을 먹어주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상한 거 아닌데. 맛있...”

“다들 봤지? 워다나즈의 헌신에 보답하는 거야.”

“가이난도. 공부하라고! 카드 그만 만지고!”

“아. 다 했다니까?!”

자기들끼리 알아서 격려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이한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다음 간식을 집어 들었다.

*         *         *

<기초 제국 기하학과 산술>.

알펜 나이튼 교수는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이 보이는 열의에 살짝 놀랐다.

물론 뜨거운 열정과 성적은 별개였다.

-가이난도 군. 자네는 워다나즈 군하고 친한 사이로 알고 있는데, 워다나즈 군에게 따로 배우고 다시 시험을 보는 편이 낫겠군.

-...그, 그냥 배우기만 하면 안 될까요? 기말고사 때는 잘 보겠습니다. 꼭이요!

<기초 제국 언어와 논리>.

로지네 플뤼워크 교수는 학생들을 응원했다.

-다들 아주 훌륭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학생들이 있다니, 제국의 미래가 참 밝아요. 리치몬드 학생. 37점이라니. 훌륭해요. 조전 학생. 33점. 아주 좋아요. 워다나즈 학생. 음. 잘했어요.

-?

-왜 워다나즈는 점수를 말 안...

의아해하던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이한의 시험지 위에 적힌 세 자리 점수를 힐끗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가끔은 친구가 너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때도 있었다.

‘이건 우리만 알자.’

‘다른 탑 놈들이 우리의 배려에 고마워해야 하는데 말이야.’

*         *         *

저녁.

노을을 보며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잉걸델 교수는 기쁜 얼굴로 달려오는 학생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다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교수님!”

“강의를 진행해주십시오!”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애정 넘치는 시선으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하루 종일 쪽지시험에 시달린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이었다.

시험을 안 보는 잉걸델 교수 뒤에서 후광을 느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핫! 하앗!”

“흐아압!”

신이 나서 목검을 휘둘러대는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을 두고, 이한은 잉걸델 교수에게 물었다.

“참. 교수님. 여쭤볼 게 있는데...”

“그럴 줄 알았습니다. 록 드레이크의 약점에 대해 물으려고 하는 거죠?”

잉걸델 교수는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닌데요.”

이한은 정색할 뻔했다.

누가 보면 이한이 록 드레이크와 원수라도 진 줄 알 것 아닌가!

“아니었습니까?”

“대체 왜 그런 착각을...?”

“교장 선생님께서 워다나즈라면 다음에는 혼자 잡으려고 할 거라고 하셔서...”

“......”

“아니었나보군요. 뭘 물어보려는 거죠?”

“사실 록 드레이크를 상대하면서...”

잉걸델 교수는 ‘아니라고 해놓고 맞았잖습니까’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한은 최대한 빠르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같은 마력 성질 변화를 깨달았는데,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

“무조건 좋은 일입니다!”

잉걸델 교수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전을 어렸을 때부터 배워도 재능이 없다면 하지 못하는 게 저런 마력 성질 변화였다.

그런데 아직 어린 검사가 마력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법을 스스로 깨닫다니.

나중에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시킬지도 모른다는 좋은 징조였다.

“검술에 인생을 헌신한 천재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시키곤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검술은 단순히 검술이 아닌 그 검사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죠.”

“어...”

이한은 머뭇거렸다.

이야기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난 내 자신만의 검술에 별 관심이 없는데.’

이한은 자기만의 검술을 세워서 제국 검술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는 야심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검술 강의 듣는 이유도 성적 쉽게 받겠다고 들어온 것 아닌가.

알라르롱에게 배운 벽암검도 충분히 좋은 검술인 만큼 이한은 이 검술을 굳이 바꾸거나 재해석할 생각이 없었다.

“워다나즈 학생. 그 성질 변화를 검술에 섞어보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워다나즈 학생만의 검이 보일 겁니다.”

갑자기 강제로 마력 성질 변화를 섞어서 검술을 수련하게 되자 이한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한의 검술, 벽암검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완성된 상태였다.

어렸을 때부터 휘두른 만큼 당연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새로 깨달은 마력 성질 변화를 섞는다면 다시 익숙해질 때까지 많은 혼란이 있으리라.

물론 이한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게 어떤 현상이고 어떻게 쓰면 좋을지 정도 들으려고 물어본 거였는데...

“교수님. 제가 아직 마력 순환도 완전히 완성하지 못했는데 성질 변화까지 같이 욕심을 부렸다가는 검이 무뎌지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워다나즈 학생. 검의 길은 그렇게 좁지 않고, 워다나즈 학생은 그렇게 재능이 없지 않으니까요. 둘 다 같이 해도 충분합니다.”

“......”

이한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쓸쓸하게 돌아섰다.

더르규가 옆에서 말했다.

“들었다. 이한. 마력 성질 변화를 검술에 적용하려고 한다면서? 대단하군. 우리 탑의 학생들도 마력 순환이면 모를까 성질 변화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워낙 검술에 진심이잖나.”

“당연히 알고 있었지. 너처럼 검술에 진심인 학생은 우리 탑에서도 드물어. 지금쯤이면 친구들도 이한 네 진심을 느끼고 있을 거다.”

“......”

농담 한 번 했는데 진담으로 받아치는 더르규의 모습에 이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게 더르규 잘못은 아니니...

“대련이나 도와줬으면 좋겠군. 검술이 익숙해지려면 꽤 걸릴 텐데, 다른 놈들은 사정을 안 봐줄 것 같거든.”

“물론이지. 이한. 하지만 다른 친구들도 사정을 듣는다면 봐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이한은 더르규와 목검을 부딪쳤다.

잉걸델 교수가 저렇게 말한 이상 매주 볼 때마다 ‘검술 어떻게 변했습니까?’하면서 볼 테니, 그만한 결과는 보여줘야 했다.

‘일차 목표는... 균형을 무너뜨리는 걸로 하자.’

다행히 이한에게는 참고할 만한 목표가 있었다.

저번 백양목 기사단의 견습기사들이 왔을 때, 흡검(吸劍)을 쓰는 기사를 봤던 것이다.

엥게 가문의 라브다는 끌어당기는 성질을 가진 마력을 검에 살짝 둘러서 부딪칠 때마다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물론 경지가 올라가면 더 복잡한 기교들이 있겠지만 이한에게 그 정도까진 필요 없었다.

중요한 건 잉걸델 교수한테 ‘저 이렇게 연습했습니다’라고 보여줄 정도의 수준!

“둘이 뭘 하고 있는 거지?”

“워다나즈가 흡검을 연습한다더라.”

“뭐? 엥게 가문에서나 쓰는 검 아닌가?”

“워다나즈 저 자식...”

흰 호랑이 탑 학생들은 놀라움 섞인 시선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지금도 충분히 상위에 속하는 검술 실력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검술을 개발하려고 연구에 들어가다니.

실로 검술에 탐욕스러운 놈이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워다나즈. 검술에 대한 열정이라면 우릴 이길 순 없을 거다!”

‘한 대씩 패고 싶군.’

더르규의 공격에 쩔쩔매며 비틀거리던 이한은 속으로 분노했다.

남은 지금 익숙지 않은 검술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마치 검술훈련을 처음 받던 시절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한. 괜찮나?”

“괜찮다. 계속하지.”

기분과 별개로 이한은 해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하는 성격이었다.

기분이야 답답하지만 잉걸델 교수가 원한다면 어쩌겠는가.

결과를 만들어서 보여줘야지.

‘공격이 들어올 때, 멈춘다. 다시 공격이 들어올 때, 멈춘다.’

이한은 검술의 동작을 유려하게 펼치는 대신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했다.

마력의 성질 변화 자체가 어려운 만큼 다른 부분은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노리는 건 하나.

상대의 공격이 들어왔을 때 흡의 마력으로 끌어당겨 동작을 멈추게 만드는 것.

캉, 캉, 캉, 캉-

더르규의 빠른 공격이 연속으로 검날 위에 부딪치다가, 순간 검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공중에서 멈칫했다.

“방금! 방금 봤나? 이한?!”

“그래. 봤다.”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떻게 한 번 성공시켰군.’

낭비를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마력을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것과, 목검이 부서지지 않도록 마력을 적당히 불어넣는 건 그 난이도가 달랐다.

검에 마력을 뻗어 자신의 신체처럼 꾸준히 순환시키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검사들은 필요할 때마다 마력을 짜내서 검에다 불어넣는 식으로 싸워야 했다.

마력 낭비가 심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한 같은 사람은 다른 부분을 고민해야 했다.

마력을 너무 불어넣어서 검이 부서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

흡검을 보여주려면 검이 부딪칠 때마다 마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더더욱 집중이 필요했다.

“이한 네 검술은 무겁고 강한 중검 계열의 검술이지.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카운터가 더욱 더 강력해질 거다.”

“고맙다. 더르규.”

“자. 그러면 계속해보자.”

“...조금 쉬어도 되지 않나?”

“이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깨달음을 얻었을 때 계속하지 않으면 검술은 손에 남지 않는데?”

더르규는 알 만큼 아는 이한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놀라워했다.

잉걸델 교수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워다나즈. 계속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마력이...”

“?”

“?”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하자. 더르규.”

“그래. 알겠다!”

마력이 부족하단 핑계를 대려던 이한은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젠장. 좀 쉬려고 했더니...’

더르규도 잉걸델 교수도 이한을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더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만큼 조금 쉬고 싶어도 가차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다.

*         *         *

다음 날.

이한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볼라디 교수의 강의실로 향했다.

어제 익숙지 않은 검술을 수련한 탓에 온몸이 뻐근했다. 어지간하면 바로 쓰러지지 않는 이한인데 그냥 곯아떨어질 정도로.

‘문을 여는 게 두렵다.’

완전한 상태로 만나도 두려운데 불완전한 상태로 만나다니.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석상처럼 서있던 볼라디 교수는 이한이 앉자 입을 열었다.

“떠다니는 냉기 방패는 완성했나?”

“예? 어... 아직 못했습니다만.”

“준비.”

“잠깐만요.”

“?”

“록 드레이크는...”

말을 꺼낸 이한은 후회했다.

볼라디 교수가 먼저 말을 안 꺼냈는데 왜 스스로 무덤을 팠단 말인가.

“록 드레이크의 약점을 알고 싶나?”

“그건 아닙...”

“교장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었나보군. 저번에도 말했지만, 너무 마음이 급하다.”

“......”

이한은 정말로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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