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이한이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볼라디 교수는 타이르듯이 말을 이어갔다.
“록 드레이크는 원래 지금 잡을 몬스터가 아니다.”
‘그럼 나찰아귀는 지금 잡을 몬스터란 겁니까?’
이한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강제로 나찰아귀를 잡게 한 사람이 저러니 몇 배로 얄미웠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조급함은 마법사를 망칠 수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네 목표는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명심하도록.”
“예. 알고 있... 제 목표 말입니까?”
이한은 멈칫했다.
이한의 목표라니?
‘내가 볼라디 교수에게 제국 관료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아니면 제국 최고의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다른 목표라면...
‘해골 교장을 한 대 때리고 싶긴 했는데.’
“실례지만 제 목표라는 게 무엇을 말하시는 겁니까?”
“다중마법수련으로 완전한 전투 마법의 형(形)을 완성시키려는 것 아니었나?”
“...!”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들으면 ‘예?’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 법.
지금 이한이 바로 그랬다.
마법이라는 학문이 원래 위험하다지만, 그 중 마법을 전투에 사용하는 전투 마법사들처럼 위험과 직면하는 이들도 드물었다.
이런 전투 마법사들의 고민은 언제나 똑같았다.
-어떻게 하면 마법을 더욱 더 전투에 걸맞게 다듬을 수 있을까?
사실 어떻게 보면 마법은 전투와 가장 걸맞지 않은 기술이었다.
가까이서 사람을 죽이려면 검을 휘두르고 멀리서 죽이려면 화살을 쏘면 되지, 몇 년 동안 수련해서 칼날 같은 손과 바람으로 된 화살을 만들어 낸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물론 고위 서클 마법들이 가진 강력한 파괴력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보통 그런 마법들을 전장에서 시전하려면 막대한 제약이 걸려서 그렇지.
준비 과정에, 시약에, 집중에...
게다가 또 그런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면 상대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대도 눈이 있는 만큼 마법사부터 먼저 죽이려고 들었다.
안 그래도 고위 서클 마법을 시전하느라 정신 집중을 해야 하는데(이런 마법들은 또 실패하면 시전자가 죽을 수 있었다) 상대방의 공격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니.
마법 전투라는 게 괜히 어려운 게 아니었다. 뛰어난 마법사들도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게 마법 전투였다.
하여간 이런 어려운 걸 전문으로 하는 만큼 전투 마법사들은 언제나 약점을 의식하고 보완을 고민했다.
-저는 평생 화염 원소 마법을 수련했습니다. 그런데 저번 전장에서 뒤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고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변에 광역 화염 마법을 시전해서 다른 자들의 접근을 원천차단하세.
-그건 무리입니다. 같이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렇다면 화염으로 장막이나 방패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시도해봤지만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할뿐더러 화염의 특성상 특수 처리가 된 화살은 막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군. 이 로브를 받게.
-혹시 방어 마법이 걸려 있는 로브입니까?
-아니. 흙 원소 마법사들이 주로 입고 다니는 로브일세. 이 로브를 입고 있으면 궁수들이 다른 자들부터 노릴 걸세. 흙 원소 마법사들은 대부분 방어가 단단하거든.
-......
하지만 마법을 익혀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듯이, 단일 학파의 마법만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을 완전히 해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여 마법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소환 마법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은가.
어지간히 경지에 오르면 단일 학파의 마법만으로도 응용해서 해소가 되겠지만 그건 정말 대마법사로 불릴 정도의 수준이어야 가능하고...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학파의 마법도 배우는 거였다.
물론 이 가장 쉬운 방법을 다른 전투 마법사들이 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전장에서 날아오는 기습을 막기 위해 예지 마법을, 그리고 저를 지키는 방패를 불러오기 위해 소환 마법을, 혹시라도 공격을 맞았을 경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화 마법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상을 대비해 치유 마법을. 이렇게 익혀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네가 생각해도 지금 뭔가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나?
...한 학파의 마법을 진득하게 파고 수련해도 대성하기 어려운데 여러 학파의 마법을 배운다니.
제국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놓은 에인로가드의 학생들도 두셋 이상의 학파를 수련하지 않았다.
아무리 같이 배워 놓으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좋다지만, 사람의 육체와 정신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잠깐. 설명은 이해했습니다만 이 이야기가 왜 나온 겁니까?”
듣고 있던 이한은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전투 마법을 완성시키려고 모든 학파의 마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볼라디 교수의 질문에 이한은 정색하고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연의 일치였나? 그렇군.”
‘납득하셨나?’
“직감은 때때로 이성보다 더 좋은 길잡이다. 예지 마법에 적성이 있는 만큼 더더욱.”
“......”
‘환장하겠군.’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는 무슨 일을 할 때 결과만 보지 원인이나 이유를 그리 따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미 이한이 여러 학파의 마법 강의를 듣는 이상, ‘그렇다면 그 모든 마법들을 활용하는 전투 마법사가 되면 좋겠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교수님. 다중마법수련으로 약점 없는 완전한 전투 마법을 완성시키는 건 얼핏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설득하려고 했다.
딱 들어도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적이지는 못한 수련법 아닌가.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하셨...?’
“하지만 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강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더군.”
“......”
이한은 교수들에게 분노했다.
왜 이렇게 다들 입이 가볍단 말인가?
학생의 적성이나 성적은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가능성이 낮지 않다.”
볼라디 교수의 지론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이한은 ‘기초’ 원소 수련을 늦지 않게 마친 상태였다.
여기에 이제 몇몇 심화 과정(증발이나 회전, 혹은 떠다니는 얼음 방패)을 수련해야 하지만...
...이한이 다중마법수련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그리고 있다면 그것도 존중해줘야 했다.
그래서 볼라디 교수는 다른 마법 학파에서 배운 마법들을 응용하고 조합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었다.
“다른 학파의 마법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겠지.”
“실례지만 그건 어떻게?”
“도서관에서 책들을 갖고 오라고 했지 않나?”
“......”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다니.
이한은 속으로 한탄했다.
도서관에 불을 질렀어야 했는데!
‘잠깐.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르겠군.’
생각해보니 다른 학파의 마법들이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간다고 해도,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볼라디 교수는 그 배운 걸 응용하고 조합시키려고 할 테니 어느 정도 진도가 느려질 것 아닌가.
그리고 다른 학파의 마법들은 볼라디 교수처럼 가혹하게 몰아붙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서로 다른 마법들을 응용하고 조합하는 방법을 배우는 동안, 이 강의는 평화롭고 따뜻한 강의가 된다.’
애써서 상황의 긍정적인 면모를 찾아내고 있던 이한의 귓가에 볼라디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
전방위로 내리꽂힐 준비를 마친 매직 미사일들의 폭풍우.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는 다른 학파의 마법들을 전투에 응용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 기존에 가르친 심화 과정을 멈춘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같이 하는 것이다.
“...얼어붙어라!!”
* * *
볼라디 교수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록 드레이크를 잡겠다는 급한 욕심 때문에,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제자가 부유하는 얼음 방패 마법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냥 실패는 아니었다.
이한은 얼음 방패를 소환하는 것까지는 성공했고, 그 얼음 방패를 공중에 띄우는 것까지도 성공했다.
다만 이제 이 얼음 방패에 ‘자율적으로 돌아다니면서 공격을 막아라’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부여 마법이 아직 덜 익숙한 탓에 얼음 방패가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충돌하거나 했으니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1학년 학생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나 강의실에 있는 스승과 제자 중 어느 누구도 이 성과를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힘들지?’
이한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마력은 멀쩡했지만 정신력의 소모가 심했다.
평소보다 냉기를 불러오고 유지시키는 게 훨씬 더 힘들었던 것이다.
저번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아.”
이유를 깨달은 이한은 멈칫했다.
“왜 그러지?”
“교수님. 저번 주와 달리 지금 학교는 서리거인의 왕이 없어진 탓에 냉기 마법을 쓰기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그렇군. 다음 강의 때는 강의실에 냉기를 불러놓겠다.”
“......”
자기가 잊고 있었다는 말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넘겨버리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이한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타고난 교수시군. 정말.’
* * *
“이한. 아무래도 간식에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친구들은 이한의 그늘진 표정을 걱정했다.
해골 교장의 간식을 괜찮다고 먹었지만, 사실 역시 함정이 있었던 것 아닐까?
“그냥 강의가 힘들어서 그런 거다.”
“그렇구나. 그런 거라면.”
안심하는 가이난도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안심해도 되는 거 맞나?
-지금 워다나즈가 추가로 듣는 강의가 대충...
그러나 어쩌겠는가.
친구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데.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 소환 마법 강의는 좀 괜찮을 거야!”
“맞아. 워다나즈 넌 소환 마법 특히 잘하잖아. 별로 힘들 거 없...”
그러나 밀레이 교수는 학생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단안경의 위치를 바로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들 도서관에서 책을 갖고 왔으니, 오늘 강의는 좀 어려운 내용을 하려고 합니다.”
“......”
“......”
이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워다나즈...!”
“힘내! 쓰러지면 안 돼!”
물론 다른 탑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푸른 용의 탑 놈들, 뭐하는 거지?”
“대체 워다나즈를 왜 걱정해주는 거지? 워다나즈가 자기들을 걱정해주면 몰라도?”
“조용.”
밀레이 교수는 학생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해골 교장처럼 강제적인 마법 없이도 이 노교수는 학생들을 조용하게 만들 줄 알았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은 마법진을 이용한 소환 마법을 시전해왔습니다. 그만큼 소환 마법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밀레이 교수는 말과 함께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바닥에서 돌조각들이 일어나 부딪치며 금속으로 변하더니 검으로 변했다.
교수의 동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더 휘두르며 부여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검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춤을 추었다.
“다들, 이 검이 보입니까?”
“예!”
“이 춤추는 검을 완성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오전에 비슷한 걸 한 이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밀레이 교수는 주머니에서 팔면체 형태의 시약을 던지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똑같은 춤추는 검이 소환되었다.
“똑같은 현상을 재현하는 데에는 수십, 수백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 소환 마법은 짧은 지름길에 해당되지요.”
무(無)에서 검을 만들어내고, 그 검에 부여 마법을 걸어서 완성하는 것보다 춤추는 검을 한 번에 소환하는 게 훨씬 더 편리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소환 마법은 준비 과정이 많고 복잡하며 어렵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든, 움직이지 않는 존재든.”
몇 번이고 들어서 알고 있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처럼 춤추는 검은 여러분들 수준으로는 수십, 수백 가지 방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환 마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
이한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음.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