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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232화 (232/687)

232화

‘하긴 자기 방 꾸미기가 재밌긴 하겠지.’

요즘 친구들이 개인실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싶었는데 이럴 줄이야.

물론 이한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개인실은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자기 방에 스켈레톤 전사들을 우르르 세워놓은 사람답게 이한은 개인실 꾸미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거 큰일이군... 워다나즈라면 분명히 만족할 줄 알고 갖고 왔는데.”

“워다나즈가 보기에는 너무 값어치가 떨어지는 물건인가? 이거 그래도 나름 괜찮은 도자기인데...”

“그러게 내가 뭐랬어! 워다나즈가 평범하게 좋은 장식품에 만족할 리가 없댔잖아. 워다나즈 가문의 성벽은 순은으로 되어 있고 저택의 창들은 홍옥과 청옥으로 구성되어 있대. 당연히 이런 걸로 만족 못하지!”

‘아닌데.’

눈앞에서 당당하게 헛소문을 만들어내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

워다나즈 가문이 워낙 폐쇄적인 만큼 밖에서 이런저런 헛소문이 도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억울했다.

가문에 재산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한 본인이 사치를 부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사치라도 부릴 수 있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큰일났군. 다른 대가가 없는데. 방학 때 값을 지불한다고 약속하면 안 되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네가 워다나즈라면 그깟 은화 때문에 일하겠어? 귀족들의 명예, 자존심 몰라?”

탁-

이한은 친구들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말했다.

“마땅한 게 없어서 고민인가보군. 그러면 방학 때 은화로 갚아라.”

“...!”

“정, 정말로 그래도 되나?”

“물론이지. 너희 탑의 리치몬드도 그런 적 있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

“하지만... 어째서...?”

검은 거북이 탑 학생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친구가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멍청아. 워다나즈가 우리 체면을 살려주려는 거야.”

“아하!”

‘아하는 무슨 아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이한이 그냥 도와주면 자기들이 민망해 할까봐 명목상 은화를 받겠다고 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한은 상대방 학생들의 재력이 짐작이 갔다.

‘부자 놈들 같으니.’

평민들 위주인 검은 거북이 탑이라 하더라도 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제국에서 손꼽히는 상인들은 어지간한 대귀족 가문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재력을 갖고 있었으니까.

배움에 필요한 것 아니면 용돈도 받지 못하는 이한과 비교하면 은화를 물쓰듯이 쓸 수 있으리라.

“고맙다. 워다나즈. 이렇게 도와줄 줄이야.”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자. 여기에 사인해라. 어디로 찾아가면 되지?”

“투탄타 가문으로 오면 되는데...”

계약서를 써내려가던 살코는 살짝 혼란이 왔다.

이한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보였던 것이다.

...설마 진짜 은화 때문에 하는 건 아니겠지?

*         *         *

“다들 물 마셔라.”

“고맙다. 워다나즈.”

사막지대로 들어서자 열기가 훅 올라왔다. 저번에 도서관 황무지와 비슷한 지형이었지만 훨씬 더 뜨겁고 건조한 곳이었다.

“샘솟아라.”

물론 그런다고 물이 안 나오진 않았다. 이한은 망설임 없이 허공에서 물을 불러냈다.

“자철석이여, 방향을 알려다오.”

살코는 모래 바닥을 탁탁 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모래 위에 문양이 생겼다.

“이쪽이 북쪽이군.”

“마법 괜찮군. 알려줄 수 있나?”

“농담도 잘하는군. 이런 게 필요할 리가... 아니. 진짜로?”

살코는 이한의 관심에 당황했다.

이런 생활 관련 마법들은 굳이 익히지 않고 넘어가는 마법사들도 많았다.

방향을 알기 위해 굳이 마법까지 쓸 필요는 없었다. 하인이나 노예가 방향을 알아두면 됐다.

“왜 그러지? 괜찮은 마법 같은데.”

“...아니다.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지. 어려운 마법은 아니지만, 흙 원소에 적성 없는 놈은 잘 못 다루는 마법이...”

말하던 살코는 저번에 이한이 학교 내 미궁을 돌파할 때 미궁 벽을 가루로 부수며 전진했던 걸 떠올렸다.

“...지만 그건 신경 쓰지 마라.”

“왜지?”

“조용히 들어라. 어쨌든 이 마법은 흙이 좀 많은 곳에서 써야 한다. 또 자철석 가루가 없는 곳에서는 잘 시전되지 않아. 그러니 주의해야...”

말하던 살코는 이한 옆에 떠있는 물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쨍쨍하게 내려쬐는 햇빛 아래에서도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차가운 물덩어리.

“...아니 그것도 신경 쓰지 마라.”

“너무 대충 가르쳐주는 거 아닌가?”

이한이 불평했지만 살코는 무시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앞장서서 길을 확인했다.

“여기. 돌아올 때 볼 수 있게 슬슬 표식 남기자.”

“새겨져라.”

바람이 불면 지형이 바뀌는 게 사막지대였지만 마력으로 남긴 표식은 이야기가 달랐다.

모래 위에 작은 표식이 새겨졌다. 한두 시간은 족히 갈 표식이었다.

“고생했어. 바람 좀 불어줄게.”

“정령 불러도 돼?”

“응. 삼일 넘게 쉬었으니까 정령도 부탁 들어줄 거야.”

형태가 희미한 하급 바람의 정령이 나타나자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협력에 이한은 뒤에서 감탄했다.

‘우리 탑 놈들은 왜 저런 걸 못하는 거지?’

애들이 마법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마법 실력만 놓고 보면 네 탑 중 가장 뛰어난 편에 가까웠다.

...그 마법들이 대부분 이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 아니라서 그렇지.

솔직히 이런 탐험 때 <원무곡(圓舞曲)을 위한 마법 장식> 마법은 별로 쓸모가 없지 않은가.

-크르르르릉!

“?”

샤르칸이 갑자기 살기 넘치는 소리를 냈다. 그 반응에 이한은 몬스터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

‘몬스터는 없는데?’

순간 이한의 본능이 강렬한 경고를 날렸다.

최근 많이 느낀 감각.

볼라디 교수가 다짜고짜 기습을 갈길 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바로 그 감각이었다.

“...방패여, 펼쳐져라!”

이한은 주저하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상황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마법부터 쓰는 건 멍청한 짓일 수도 있었지만, 이한에게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껏 낭비해도 되는 사람!

“워다나즈?! 어째서?!”

“살코, 방어해라!”

“...알겠다!”

이한의 외침에 살코는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과 함께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

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물 방패 위로 공격이 꽂혔다.

두터운 물 방패를 뚫지 못하고 떨어지는 단검에 이한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물 방패를 뚫지 못했기에 허섭한 공격 같아 보였지만, 이건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방법을 아는 놈들이다!’

볼라디 교수에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당한 이한이었기에, 전투에 들어가면 다른 적들이 마법사를 어떻게 상대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다. 적들은 마법사를 먼저 쓰러뜨린다.

-과연... 마법사는 여러모로 변수가 될 테니까요.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완벽하게.

-...저 아직 회복 안 됐... 큭!

거창한 공격은 준비도 오래 걸리고 시끄러울 뿐.

준비 안 된 마법사를 쓰러뜨리는 건 단검 하나면 충분했다.

문제는 이한이 먼저 살기를 느끼고 방어에 들어갔다는 점.

“방패여, 펼쳐져라.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적들에게는 불운이었다.

원래라면 마법사들 중에 전투에 능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마법학교의 학생이라면 더더욱.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일어나라, 뼈로 된 전사들이여!”

채 몇 초도 주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마법들을 연속으로 시전해나가며 방어를 올리는 모습에 적들은 경악했다.

“저 자식 뭐야?!”

“제기랄, 고학년이다! 준비해! 마법 전투를 제대로 배운 놈이야!”

“...에인로가드의 5학년을 만난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

“썅...! 하필이면 재수도 없지!”

“......”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은 물과 흙으로 된 장벽 뒤로 몸을 숨기던 와중에 황당하단 표정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         *         *

제국에서 악명 높은 모험가 조직, <단풍나무의 뱀>.

제국 모험가들이 나름 평판을 신경 쓰고 눈치를 본다지만, 그 중에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적인 의뢰도 받아들이는 자들이 있었다.

<단풍나무의 뱀>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적절한 금화만 주어진다면 온갖 불법적인 의뢰도 받아들이는 자들!

물론 <단풍나무의 뱀>도 평소라면 제국의 쟁쟁한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에인로가드를 건드리진 않았을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한이라 하더라도 지능이 없지는 않았다. 사악한 돈벌이를 하는 자들일수록 눈치가 빠르고 강함에 민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너무나도 비싼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에인로가드에 원하는 유물이 있소.

-하지만 에인로가드는...

-알고 있소. 외부인들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 들어갈 방법 정도는 내가 마련해주겠소. 먼저 들어간 길잡이가 있으니 따라 들어가서 만나시오.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이오.

-......

모험가들은 ‘길잡이가 이미 들어갔는데 왜 우리까지 들어가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서로 대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의 보물을 훔쳐서 갖고 나오는데 목숨 두세개로 성공시킬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지. 에인로가드라면 더더욱.’

피 냄새가 짙게 풍기는 제안이었지만 모험가들은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험가의 삶이란 게 위험을 감당하는 삶 아니던가.

중요한 건 얼마나 크게 버느냐였다.

-좋습니다.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요.

“어떻게 할 거냐?!”

모험가들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지하통로를 타고 우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에인로가드의 학생을 만나게 될 줄이야.

심지어 5학년이었다.

에인로가드의 명성을 아는 모험가들에게 5학년 학생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저 정도면 모험가들 중에서 보기 드문 대마법사 아닌가.

게다가...

“반응을 보니 마법 전투 훈련을 받은 놈이야! 제압은 무리다. 죽여야 해!”

“마법학교 학생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나!”

“나도 안다, 빌어먹을 머저리야! 누군 보복이 안 두려운 줄 아나? 하지만 제압할 방법이 없잖나!”

“...지랄맞은 신이시여. 알겠다! 죽여!”

모험가, 겔리악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반대편을 보니 상대 마법사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방향에서 날아온 기습을 막은 것도 놀라웠는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반쯤 요새를 완성시켰다.

환상들이 일렁거리고 물과 흙으로 된 방벽, 그리고 스켈레톤 전사들이 마법사들을 가리고 있었다.

나름 에인로가드 출신 학생들을 몇 번 본 적 있는 겔리악이었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반응인지 잘 알았다.

지금 마법보다 고위 마법을 쓸 줄 아는 학생들은 봤어도, 살벌한 전투 상황에서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연달아 마법을 성공시키는 학생은 처음이었다.

‘재수가 없어도 아주...’

착!

하지만 겔리악만 재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늘 마주친 5학년 학생들도 만만찮게 재수가 없는 셈이었다.

마법사들의 굴혈(窟穴)에 들어오면서 겔리악과 동료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들어왔겠는가.

누구보다 마법사를 가장 두려워하는 건 겔리악과 동료들이었다.

당연히 대(對) 마법사 준비를 끌어모을 수 있는 만큼 끌어모으고 온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됐으니, 마법사로서는 불운 그 자체였다.

“스크롤 찢어! 빨리!”

“닥쳐! 이게 얼마짜린데... 간다!”

겔리악이 스크롤을 찢자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작 불가능한 고대의 마법 스크롤!

강력한 힘으로 주변의 마법들을 모두 날려버리는 <마법 분쇄의 폭풍> 주문이 내장된 스크롤이었다.

얼마나 비싼 스크롤인지, 겔리악은 찢으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큭!”

“헉...!”

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거북이 탑 학생들이 새파래진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방벽들과 환상들, 소환수들이 모두 사라졌다.

시전된 마법이 강제로 취소되면서 연결된 마법사 본인에게도 타격이 들어간 것이다.

‘다시 봐도 위력적이군.’

더럽게 비싼 게 흠이었지만 마법사에게 이만한 사형선고도 없었다.

있는 마력을 잔뜩 투자해서 마법을 걸어놓으면, 그걸 한 번에 지워버리고 마력을 진탕시키는 것이다.

마력이 없으면 마법을 쓸 수가 없는 마법사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기습.

게다가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당하기 쉬웠다.

겔리안은 예전에 5서클 마법사가 이 스크롤 하나로 제압되는 것도 본 적이 있었다.

“방패여, 펼쳐져라. 열이여, 공기를 일그러뜨려라. 발이여, 땅을 주름잡아라. 일어나라, 뼈로 된 전사들이여...”

“...??!?!?”

그렇기에 겔리안은 5학년 학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마법들을 덕지덕지 깔아버렸을 때, 눈만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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